# 55
제55화
“여기.”
수혁이 의아해하던 사이 파비앙이 돌아와 책 네 권을 내밀었다. 수혁은 책을 보고 파비앙을 보았다. 그러자 파비앙이 이어 말했다.
“마법을 사용하는 데 있어 자신의 생각이 아주 중요하거든. 그래서 남이 가르쳐 주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그게 나라고 해도 말이야.”
그리고 파비앙의 말이 시작된 순간 수혁은 불안감을 느꼈다.
“책을 보고 마나를 움직여 봐.”
불안감은 파비앙의 말이 이어질수록 점점 커져갔다.
“재능이 재능이니만큼, 한두 번이면 성공할 거야.”
하지만 그런 수혁의 불안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파비앙은 계속해서 이어 말했다.
“이제 면역력도 강화됐으니 마법에 중독될 위험도 없고.”
파비앙의 말을 들으며 수혁은 생각했다.
‘뭐야…….’
스킬북도 스킬 퀘스트도 아니었다.
‘책 보면서 마나를 움직이라고?’
NPC도 아닌 수혁이 어떻게 마나를 움직이겠는가?
‘이건 아니야.’
안 된다. 독의 마탑장에게 마법을 배울 기회다. 그런데 이렇게 허망하게 날려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퀘스트를 받아야 돼.’
어떻게 해서든 퀘스트를 받는 쪽으로 상황을 바꿔야한다.
“아!”
하지만 이어진 파비앙의 말에 수혁은 생각을 바꿨다.
“마법을 시전할 때 필요한 재료들은 전부 준비해 뒀으니까 언제든지 찾아와. 날 찾아와도 되고 케일을 찾아가도 돼.”
“……재료요?”
“응, 독 마법을 시전하려면 많은 것들이 필요하거든. 혹시나 따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구해 줄 수 있는 건 전부 구해 줄 테니까.”
“……!”
파비앙의 말에 수혁은 침을 꼴깍 삼켰다.
‘재료가 전부 준비됐다고?’
파비앙은 재료를 전부 준비해 뒀다고 말했다. 거기다 따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지원을 해 주겠다고도 말했다.
‘그러면…….’
굳이 지금의 상황을 퀘스트로 변화시킬 필요가 없어졌다.
‘개방을 독으로 해 버리면…….’
독의 문을 개방하지 않은 이유는 파비앙에게 마법을 배울 경우 겹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파비앙에게 마법을 배울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필요한 재료들이 전부 준비되었다. 거기다 따로 필요한 것들도 지원해 준다고 한다.
‘스킬 퀘스트를 막 완료할 수 있는 거 아냐?’
불의 문을 개방해 받은 수많은 스킬 퀘스트들. 대부분 아이템만 있으면 된다. 몬스터를 잡아야 되는 퀘스트는 몇 개 없었다.
독의 문 역시 불의 문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부분의 스킬 퀘스트가 아이템만 있으면 완료가 될 것이다.
‘그래! 겹칠 일도 없어졌는데.’
거기다 파비앙에게 마법을 배울 수 없으니 겹치는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혹시나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생각에 잠겨 있던 수혁은 파비앙의 말에 생각을 끝냈다. 그리고 파비앙과 마찬가지로 활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예!”
56.
* * *
모니터를 보며 양주혁과 장율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 드디어 특전을 완료했네.”
“시간 참 빠른 것 같아요. 벌써 30일이 지났다니.”
이야기의 주인공은 수혁이었다.
“근데 이제 어떻게 될까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장율이 물었다.
“뭐가?”
“이제 마법 못 배우는 걸 알았잖아요. 혹시나 독의 문을 개방하려 하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지.”
양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율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이제 마법을 배우지 못하는 걸 알았으니 바람의 문이 아닌 독의 문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확실한 건 아니다. 선택지가 한두 개가 있는 것도 아니고 9개나 있는 데다, 무엇보다 수혁의 마음이었다.
“만약 독의 문을 선택하면…….”
장율이 말끝을 흐리며 말을 마쳤고 양주혁이 이어 말했다.
“칭호가 있으니 엄청 수월해지겠지.”
칭호가 있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이라면 너무나도 수월하다. 바람의 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쉬움을 느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어?”
장율이 말했다.
“아공간 갔는데요?”
* * *
퀘스트를 완료한 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수혁은 파비앙이 준 책을 인벤토리에 넣고 방에서 나왔다.
‘좋았어. 독의 문을 개방하는 거야.’
이전까지는 바람의 문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독의 문, 무조건 독의 문을 개방해야 된다.
‘근데 가능할까?’
그러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대미지가 더 잘 들어가긴 하겠지만.’
불은 독에 강하다. 같은 공격이라도 바람의 골렘보다 독의 골렘에게 더 많은 대미지를 줄 수 있다.
‘내가 받는 대미지가 문제인데…….’
문제는 받는 대미지였다. 바람의 골렘이 2차 각성을 했을 때 한 방에 2만이 넘는 생명력이 사라졌다. 생명력이 높아졌고 독의 골렘이라고 해도 자신이 과연 그 공격을 버틸 수 있을까?
‘한번 해 보자.’
솔직히 말해 당장 문을 개방할 생각이 없었다. 나중에 레벨을 더 올리고 아이템을 맞춘 뒤에 개방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한번 시도는 해 봐야지 않겠는가? 생각을 마친 수혁은 캐릭터 창을 열었다.
직업 : 대마도사의 후예
레벨 : 102
경험치 : 62%
생명력 : 56200
마나 : 41200
포만감 : 54%
힘 : 40 (+10)
민첩 : 35 (+16)
체력 : 1108 [554 (+10)]
지혜 : 2060 (+10)
‘스텟은 변화 없고.’
들어오기 전 스텟을 확인했던 수혁이었다. 스텟에는 변화가 없었다. 수혁은 칭호 버튼을 클릭해 칭호 창을 열었다. 그리고 칭호 ‘독의 대가’의 정보를 확인했다.
“……?”
정보를 확인한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와…….”
그리고 이내 감탄을 내뱉었다.
-독의 대가 (1. 자신의 독에 중독되지 않는다. 2. 평범한 독에 중독되지 않는다.)
칭호 ‘독의 대가’의 효과는 2개였다. 첫 번째 효과는 자신의 독에 중독되지 않는 것이었고 두 번째 효과는 평범한 독에 중독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박인데?’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독 마법이 인기 없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자신이 사용한 마법에 자신이 중독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칭호로 인해 그럴 일이 아예 사라졌다. 거기다 자신의 독뿐만 아니라 평범한 독에도 중독이 되지 않는다.
‘무조건 독이다.’
수혁은 독의 문을 개방하기로 다시 한 번 다짐하며 칭호 창을 닫고 이어 캐릭터 창을 닫았다.
“아공간으로.”
그리고 마탑에서 나온 수혁은 바로 ‘아공간으로’를 시전했다.
[대마도사의 아공간으로 워프합니다.]
메시지와 함께 주변 공간이 일그러졌고 곧 수혁은 아공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과 동시에 수혁은 걸음을 옮겼다. 당연하게도 목적지는 독의 문 앞이었다.
저벅!
독의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 수혁은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이 문에 닿았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독의 문을 개방하시겠습니까?]
바람의 문 때와 같은 메시지였다. 수혁은 확인을 눌렀다. 그리고 또다시 메시지가 나타났다.
[독의 문을 개방하기 시작합니다.]
[현재 개방된 문의 수 : 1]
[독두꺼비가 소환됩니다.]
[30분을 버티거나 독두꺼비를 처치하십시오.]
“……응?”
메시지를 본 수혁은 당황했다. 바람의 문을 개방할 때 바람의 골렘이 소환되었다. 그래서 독의 문 역시 속성만 독일 뿐 골렘이 소환될 것이라 생각했다.
‘골렘이 아니야?’
그런데 아니었다.
‘독두꺼비?’
소환되는 건 골렘이 아니라 독두꺼비였다.
‘설마 문마다 다른 건가?’
아무래도 각 문마다 조건이 다른 것 같았다. 아니, 다른 게 확실했다.
‘30분만 버티면 된다라.’
바람의 문을 개방하는 방법은 하나였다. 바로 바람의 골렘을 처치하는 것. 하지만 이번 독의 문은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소환된 독두꺼비를 처치하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요, 30분을 버티는 것이 두 번째 방법이었다.
수혁은 뒤로 돌아섰다. 뒤로 돌아선 수혁은 공동 중앙에 나타난 마법진과 마법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두꺼비를 볼 수 있었다.
“매직 미사일.”
수혁은 두꺼비를 향해 매직 미사일을 날렸다. 바람의 골렘이 아니니 혹시나 소환 전에 공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독두꺼비가 소환되는 중입니다.]
[소환이 끝나기 전에는 공격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매직 미사일은 등장과 동시에 사라졌다.
‘이건 같네.’
소환 전에 공격이 불가능한 것은 바람의 골렘이나 독두꺼비나 마찬가지였다. 수혁은 독두꺼비의 소환이 끝나길 기다렸다.
-시험을 시작한다.
얼마 뒤 마법진이 사라졌다. 그리고 독두꺼비가 말했다. 바람의 골렘과 달리 상당히 걸쭉한 느낌의 목소리였다.
“매직 미사일.”
수혁은 독두꺼비에게 다시 한 번 매직 미사일을 시전했다. 바람의 골렘처럼 디스펠을 사용하는지 아니면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쾅!
하지만 독두꺼비는 디스펠을 사용하지 않았다. 매직 미사일은 그대로 목적지에 도착했고 독두꺼비와 조우한 순간 폭발했다. 바로 그때였다.
스아악!
매직 미사일이 폭발함과 동시에 독두꺼비의 몸에서 초록색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초록색 연기는 엄청난 속도로 공동 전체로 퍼져나갔다. 수혁은 다가오는 초록색 연기를 보며 생각했다.
‘독?’
독두꺼비의 몸에서 나왔다. 아무래도 초록색 연기는 독 같았다. 수혁이 생각하는 사이 초록색 연기가 수혁을 집어 삼켰다. 그리고 수혁은 볼 수 있었다.
[중독되지 않습니다.]
[중독되지 않습니다.]
[중독되지 않습니다.]
.
.
.
끊임없이 나타나는 메시지.
“……?”
메시지를 본 순간 수혁의 표정에 의아함이 나타났다.
‘……아!’
그리고 이내 떠오른 생각에 수혁은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독의 대가!’
중독되지 않는다는 메시지. 이런 메시지가 뜬 이유는 칭호 ‘독의 대가’의 두 번째 효과 때문이 분명했다.
‘평범한 독 안에 들어가는 건가?’
평범한 독에는 중독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지금 주변을 가득 채운 독 연기는 평범한 독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설마 이대로 버티면 끝?’
독의 문의 개방은 독두꺼비를 처치하거나 30분을 버티면 끝난다. 중독되지 않으니 생명력이 떨어질 이유가 없다. 즉, 이대로 시간을 보내면 끝이 난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쉽다고?’
너무나도 쉬웠다. 바람의 문을 개방할 때와 너무나도 달랐다.
‘아니야, 뭔가 있겠지.’
수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렇게 쉬울 리 없다. 수혁은 독 연기에 가려 형태만 보이는 독두꺼비를 보았다.
‘공격을 해? 말아?’
매직 미사일이 작렬한 순간 독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때마침 독 연기가 나오던 것일 수도 있지만 공격을 할 때마다 독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라면? 점점 강해진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걸 수도 있잖아.’
공격을 하지 않고 이대로 기다리기도 애매했다. 혹시나 시간이 지날수록 독 연기의 독이 강해진다면?
‘지금도 진해지고 있고.’
독 연기의 색이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 어차피 기회가 한 번 있는 것도 아니고.’
이번이 끝이 아니다. 다시 개방에 도전하면 그만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수혁은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