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제65화
“뭐? 그거 쓰지 말라고 공표한 거 몰라?”
“내가 니네 길드 말을 왜 들어?”
“이 새끼가 말로는 안 되겠네.”
“어이고, 언제는 말로 끝냈나 봐?”
이내 악마 길드원과 붉은 여우 가면을 쓴 유저가 싸우기 시작했다.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고 곧 하나가 쓰러졌다.
“뭣도 아닌 새끼가 깝치고 있어.”
악마 길드원은 시체가 된 유저에게 말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있던 유저들은 악마 길드원의 시선에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수혁 역시 마찬가지로 걸음을 옮겼다. 물론 그냥 걸음을 옮긴 건 아니었다.
“플레임.”
[유저 ‘무대뽀’를 공격하셨습니다.]
[유저 ‘무대뽀’와 적대 상태가 됩니다.]
[범죄자 수치가 높은 유저입니다.]
[범죄자 수치가 상승하지 않습니다.]
걸음을 옮기기 전 수혁은 무대뽀에게 플레임을 시전했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어?”
메시지가 나타난 건 수혁뿐만이 아니었다. 무대뽀 역시 메시지를 보았고 이내 당황스런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대뽀는 방금 전 PK로 생명력이 크게 깎인 상태였다. 플레임이 시전된 후 3초가 지나기도 전에 무대뽀는 쓰러졌고 검은빛이 나타났다.
“응?”
“뭐야? 검은빛?”
“왜 뒤진 거지?”
제 갈 길을 가려던 유저들이 갑자기 쓰러진 무대뽀를 보며 웅성이기 시작했다. 수혁은 웅성이는 유저들을 지나쳐 악마 길드의 길드 하우스로 걸음을 옮겼다. 수혁의 걸음 속도는 한층 더 빨라져 있었다.
‘알릴 수도 있으니…….’
온라인으로 연락을 할 수는 없다. 죽었기에. 그러나 오프라인 연락은 가능하다. 지금쯤 캡슐에서 나와 연락을 할 수도 있다. 연락이 가 대비를 하기 전 수혁은 일을 벌일 계획이었다.
“포이즌 포그.”
이내 수혁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틀 전 왔었던 악마 길드의 길드 하우스. 수혁은 입구를 오가는 악마 길드원들을 보며 포이즌 포그를 시전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입구에 독 안개가 나타났고 무수히 많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수혁은 메시지에 시선을 한 번 주고는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았다.
“포이즌 스피어. 독의 사슬. 파이어 스피어.”
그저 묵묵히 마법을 날려 독 안개에서 뛰쳐나오거나 혹은 길드 하우스로 들어가려다 독 안개에 뒤로 돌아선 악마 길드원들을 죽여 나갔다.
‘한 달 정도 할까.’
악마 길드원들을 죽이며 수혁은 생각했다.
‘그래, 한 시간도 아니고 10분 정도 깽판 치는 건데. 한두 번으로는 안 되지.’
비록 가상현실이긴 하나 부모님을 죽였고 그 시체를 두 눈으로 보았다. 그런데 사과는 커녕 척살령을 내렸다. 한두 번으로는 성이 안 풀린다.
하루에 몇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10분 정도만 투자하면 된다. 거기다 길게 한두 번이 아닌 짧게 여러 번이 악마 길드 입장에서는 더욱 짜증이 날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는 해야 알려 주겠지.’
학살의 의뢰자. 수혁은 학살의 의뢰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의뢰자에 대한 신변 보호가 뛰어난 악마 길드에서는 쉽게 알려 주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면…….’
생각을 마친 수혁은 악마 길드원들을 몇 명 더 죽인 후 이틀 전의 모퉁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공간으로.”
[대마도사의 아공간으로 워프합니다.]
모퉁이에 도착하자마자 수혁은 아공간으로를 시전해 공동으로 돌아왔다. 공동에 도착한 수혁은 워프 마법진으로 향했다.
수혁이 접속한 이유는 악마 길드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워프 마법진에 도착한 수혁은 마탑으로 워프했다. 그리고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도서관에 도착한 수혁은 사서 NPC와 인사를 하며 증표를 건넸다. 그리고 도서관에 들어 온 수혁은 책장으로 향했다.
* * *
쾅!
하기스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이 미친놈! 개새끼! 쌍놈!”
책상을 내린 하기스는 이어 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
반대편에 앉아 있는 바알은 아무런 말없이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하기스의 욕 때문이 아니었다.
‘개 같은 새끼.’
하기스처럼 겉으로 내뱉지 않을 뿐 바알 역시 속으로 온갖 욕을 하고 있었다.
“수혁 그 개새끼! 진짜! 아오!”
답답해 죽을 것처럼 하기스는 온몸으로 짜증을 표현했다. 바알과 하기스의 욕을 받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수혁이었다.
“벌써 10일째야!”
한껏 짜증을 표출해 낸 하기스가 말했다. 수혁이 10일 전 처음 나타나 난동을 부릴 때만 하더라도 미친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이틀 뒤, 그러니까 8일 전부터 이어진 수혁의 행동에 하기스는 수혁에 대한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미친 새끼가! 그 미친 짓을 시작한 지!”
보통 미친 게 아니었다. 어마어마하게 미친놈이었다. 아니, 미친놈이란 단어로도 부족했다. 현재 수혁이 하는 짓은 ‘미친’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하루에 한 번씩 수혁은 길드 하우스를 방문했다. 그리고 길드원들을 죽였다. 그 시간은 10분 안팎이었다. 문제는 학살을 막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시간도 랜덤인 데다가 일단 수혁은 너무나도 강했다.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거야?”
하기스는 바알에게 물었다.
“그 미친 새끼 때문에 가면 쓰는 새끼들도 존나 늘었어! 우릴 개무시하고 다닌다고!”
처음에는 붉은 여우 가면, 두 번째는 곰 가면, 세 번째는 양 가면. 수혁은 날마다 다른 가면을 착용한 채 나타났다. 그 때문일까? 악마 길드와 사이가 좋지 않은 길드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가면을 착용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이어지는 학살에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 길드원들이 이탈하고 있었고 의뢰도 줄어들고 있었다.
“나도 잡고 싶다.”
바알이 입을 열었다. 바알 역시 수혁을 잡고 싶었다. 길드장인 바알의 입장에서 수혁은 정말 최악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잡고야 싶었지만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
하기스는 답하지 못했다.
“그 새끼에 대한 정보가 없잖아.”
바알이 짜증이 가득 깃든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바알의 말대로 악마 길드에는 수혁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길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는 것이라고는 캐릭터명뿐이었다. 유명하지도 않았다. 캐릭터명으로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얼굴을 아는 로켄과 헤이든이 있었다. 하지만 둘의 기억력이 문제였다. 둘이 기억하고 있는 수혁의 얼굴이 달랐다. 몽타주를 그리는 것도 실패였다.
“최상위 랭커들한테 의뢰하고 싶어도 뭘 알아야 의뢰하지!”
악마 길드의 힘만으로는 수혁을 잡는 게 불가능하다. 바알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최상위 랭커에게 의뢰하는 것. 그런데 수혁에 대한 정보가 없어 의뢰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런 개새끼!”
바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하기스는 그런 바알의 반응에 재빨리 따라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바알의 뒤를 따라 길드 하우스에서 나온 하기스는 입구를 가득 메운 독 안개를 볼 수 있었다.
66.
‘이 새끼가 또!’
바알이 뛰쳐나갔을 때 혹시나 했는데 진짜였다.
“뭐하고 있어! 어서 가동해!”
먼저 나온 바알이 외쳤다. 바알의 외침에 길드원 중 하나가 길드 하우스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뒤 입구 바닥에 마법진이 나타나더니 독 안개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독 안개가 사라지자마자 바알과 하기스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길드원들을 학살하고 있는 수혁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바알과 하기스의 등장 때문일까? 길드원들을 학살하던 수혁이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야!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도망을 치는 수혁의 뒤를 따라가며 하기스가 외쳤다. 그러나 수혁은 하기스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수혁이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바알과 하기스 역시 곧 모퉁이에 도착했다.
“…….”
“…….”
모퉁이에 도착한 바알과 하기스는 아무런 말없이 걸음을 멈췄다.
“……후.”
바알은 깊게 한숨을 내뱉었고.
“이 미친!”
하기스는 욕을 내뱉었다.
“또야 또!”
수혁이 사라졌다.
* * *
[대마도사의 아공간으로 워프합니다.]
공동에 도착한 수혁은 워프 마법진으로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나날이 발전하네.’
악마 길드에 복수를 시작한 지 8일째였다. 시간이 좀 되었기 때문인지 악마 길드의 대응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마법진까지 설치할 줄이야.’
입구에 시전했던 포이즌 포그는 금방 사라졌다. 입구에 설치된 마법진 때문이었다.
‘슬슬 방식을 바꿔야 되나.’
아무래도 방법을 바꿔야 될 것 같았다.
‘마법진 범위가 넓은 건 아닌 것 같은데.’
포이즌 포그를 없앤 마법진의 범위는 그리 넓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수혁이 내일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연중 : 수혁아.
연중에게서 귓속말이 왔다. 마침 워프 마법진에 도착한 수혁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연중의 귓속말에 답했다.
-수혁 : 응.
답을 보낸 후 수혁은 마탑으로 워프했다.
-연중 : 오? 바로 답해 주네? 지금 어디냐?
그리고 마탑에 도착한 순간 연중에게 다시 귓속말이 왔다.
-수혁 : 도서관 가는 중인데. 왜?
-연중 : 역시, 그럼 그렇지.
-연중 : 길드 언제 가입할 거냐?
연중이 귓속말을 보낸 이유, 그것은 바로 길드 가입 때문이었다.
-수혁 : 조금만 기다려 줘.
수혁은 연중에게 답했다. 아직 가입할 수 없다. 악마 길드와의 일이 끝나지 않았다. 지금 가입할 수는 없었다.
-연중 : 악마 길드 때문이야?
연중 역시 수혁이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고 있었다.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이슈 중 하나다. 정보에 민감한 연중이 모를 리 없었다.
-수혁 : 응.
-연중 : 얼마나 더 하려고?
수혁의 답에 연중이 물었다. 연중은 궁금했다. 벌써 오랜 시간 악마 길드는 고통을 아니, 벌을 받고 있었다. 얼마나 더 벌을 내릴 것인지 궁금했다.
-수혁 : 원래는 한 달 채우려고 했는데…….
한두 번으로는 분이 풀릴 것 같지 않아 처음에는 한 달을 채우려 했다.
-연중 : 한 달?
-수혁 : 응, 그런데 요즘에는 생각이 조금 바뀌는 느낌.
그런데 막상 복수를 하다 보니 생각이 달라지고 있었다.
-수혁 : 생각보다 일찍 끝낼 것 같아.
생각보다 분이 빨리 가라앉고 있었다.
-연중 : 그럼 끝나는 대로 알려 줘라.
-수혁 : 알았다.
-연중 : 근데 책은 얼마나 남았냐?
도서관에 도착해서도 연중과의 귓속말은 이어졌다.
-수혁 : 일주일이면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마탑 도서관에 남은 책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여행 후 20일 정도는 걸릴 것 같았는데 그마저도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연중 : 진짜 넌 미쳤어. 어떻게 벌써…….
-연중 : 마탑 도서관 책 다 읽으면 어떻게 할 거냐? 또 다른 도서관 찾으러 갈 거냐?
-수혁 : 아마도 그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