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제76화
누가 케탄을 죽인 것일까? 케탄이 1봉우리에 있다는 것을 아는 자는 많지 않다. 10명도 되지 않는다.
‘일단 빨리 알려야겠어.’
2봉우리와 5봉우리 그리고 7봉우리. 3개 봉우리에 동료들이 있다. 케탄이 죽었다. 그리고 케탄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동료들에게도 위험이 찾아갈 수 있다. 어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혹시 구슬은 못 보셨습니까? 붉은 구슬인데…….”
로미안은 문득 든 생각에 수혁에게 물었다. 물론 케탄을 죽인 자들이 붉은 구슬을 가져갔을 확률이 매우 높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아, 네. 여기 있습니다.”
수혁은 로미안의 물음에 답하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이미 퀘스트 보상으로 열쇠를 획득한 수혁이었다. 붉은 구슬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수혁은 인벤토리에서 붉은 구슬을 꺼냈다.
‘응?’
붉은 구슬을 꺼낸 수혁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빛이…….’
처음 보았을 때에는 기묘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빛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퀘스트를 완료해서 그런 건가?’
혹시나 빛이 사라진 게 퀘스트 완료와 관계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수혁은 로미안에게 붉은 구슬을 내밀었다.
“…….”
로미안은 말없이 붉은 구슬을 보았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린 로미안은 붉은 구슬을 받고 수혁에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네.”
수혁의 답을 들은 로미안은 책상으로 다가가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케탄의 편지와 붉은 구슬을 넣은 뒤 두루마리 하나를 들고 수혁에게 돌아왔다.
“여기 의뢰 확인서입니다. 감사했습니다.”
로미안이 가져온 두루마리의 정체는 바로 의뢰 확인서였다.
[로미안의 의뢰 확인서를 획득하셨습니다.]
수혁은 의뢰 확인서를 받았다. 그리고 이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로미안의 방에서 나와 생각했다.
‘끝까지 못 물어봤네.’
비밀 동굴에 대한 이야기를 끝까지 물어보지 못했다.
‘뭐 언젠가 물어볼 날이 오겠지.’
뭐 지금 당장 비밀 동굴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로미안의 존재를 안 것만으로 충분했다. 수혁은 마음 편히 용병 사무소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76.
* * *
수혁을 보낸 뒤 로미안은 다시 붉은 구슬을 꺼냈다.
‘뭔가를 했어.’
처음 발견했을 때에는 빛이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붉은 구슬에 무슨 짓을 한 게 분명했다.
‘녀석들이 했겠지.’
붉은 구슬에 빛이 사라진 것을 보면 목적을 달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더 이상 위험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로미안은 붉은 구슬을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동료들에게 케탄의 죽음과 혹시 모를 위험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똑똑
바로 그때였다.
“로미안 있는가?”
노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상단장님?’
나갈 채비를 마친 로미안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을 연 로미안은 예상대로 코파인 상단의 부상단장 헤론을 볼 수 있었다.
“부상단장님께서 어쩐 일로…….”
로미안은 말끝을 흐리며 헤론에게 물었다. 헤론은 이곳 조장들의 숙소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로미안과의 관계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로미안을 제외한 나머지 조장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헤론이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온 것일까? 그 오기 싫어하는 조장들의 숙소에 직접 올 정도로 중요한 일이 생긴 것일까?
“아, 그게 잠시 전해 줄 말이 있어서 말이야.”
헤론은 로미안의 물음에 답했다.
“근데 자네 어디 가나?”
그리고 이어 로미안의 차림을 보고 물었다.
“예, 잠시 친구를 만나고 오려 합니다.”
“아이고, 이런.”
로미안의 답을 들은 헤론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
그런 헤론의 반응에 로미안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런 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끙, 이걸 어쩌나.”
헤론은 앓는 소리와 함께 중얼거리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로미안에게 말했다.
“상단장님께서 비밀리에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시네.”
“……!”
도대체 헤론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분위기를 잡는 것인지 궁금했던 로미안은 이어진 헤론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리셨단 말입니까?”
코파인 상단의 상단장인 코파인은 최근 상행을 다녀온 뒤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되었고 이내 정신을 잃었다.
상단의 대표인 코파인의 건강 악화는 상단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더 이상의 악영향을 막기 위해, 코파인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치유 마법사도 불러보고 사제도 불러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코파인이 정신을 차렸다. 치유 마법사와 사제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뭔가…….’
무언가 이상했다.
“그렇다네. 정신을 차리시고 바로 자네를 찾으시더군. 혹시 친구들과의 일이 많이 급한가?”
하지만 그 이상함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헤론의 물음 때문이었다. 헤론의 물음에 짧은 시간 동안 고민을 한 로미안은 결정을 내렸다.
“……아닙니다.”
오랜 시간 정신을 잃었던 코파인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찾는 것을 보아 평범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럼 30분 뒤 상단장님의 방으로 찾아가게.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고.”
“……30분 뒤 말입니까?”
“그렇게 전하라 하시더군.”
헤론은 로미안의 반문에 답한 뒤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이어 말했다.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그리고 이내 헤론은 뒤를 돌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로미안은 점점 작아지는 헤론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뭔가 이상한데.’
헤론과 대화를 나누면서 무언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코파인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코파인이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는 것도 이상했지만 지금 느껴진 이상함은 다른 것에 대한 이상함이었다.
‘잠깐!’
그리고 이내 그 이상함이 무엇에 대한 이상함인지 깨달은 로미안은 미간을 좁혔다.
‘친구들이라고?’
분명 헤론에게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친구들이 아니다. 분명 친구였다. 그런데 헤론은 친구들이라 말했다.
‘아니야,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야.’
헤론이 잘못 들은 것일 수도 있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을 수도 있다. 친구들이라 잘못 말할 수 있다.
‘신경이 너무 예민해진 건가.’
요 근래 신경이 너무 예민해진 것 같았다. 로미안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상단장을 만나러 가기 전 신경을 가라앉히기 위해 명상을 시작했다.
얼마 뒤, 로미안은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코파인의 방으로 향했다. 운이 좋게도 단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로미안은 그 누구도 모르게 코파인의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코파인의 방 앞에 도착한 로미안은 방 앞에 서 있는 코파인의 첫째 부인 안나를 발견하고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코파인이 깨어났기 때문일까? 안나는 미소를 지은 채 로미안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그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나의 말에 로미안은 방으로 들어갔다.
“……?”
그리고 방으로 들어온 순간 로미안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깨어났다는 코파인의 상태가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코파인의 안색은 좋지 못했고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잠에 빠져 있었다.
끼이익
안나가 문을 닫았다.
“이게 어떻게 된…….”
로미안은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묻기 위해 뒤로 돌아서며 물었다. 그러나 뒤로 돈 순간 로미안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찌익! 찌익!
안나가 자신의 옷을 찢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왜 옷을 찢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로미안은 불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꺄아아악!”
옷 찢기를 멈춘 안나가 비명을 내질렀다.
“이게 무슨!”
로미안은 안나의 비명에 당황스런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로미안은 안나의 답에 더욱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시면 안 돼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안나는 로미안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었다.
‘함정!’
로미안은 안나의 말을 들으며 이를 악물었다. 함정이 분명했다.
‘헤론 이 개 같은 자식!’
함정을 판 것은 헤론이 분명했다.
‘도대체 왜!’
헤론이 왜 이런 짓을 한 것일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서 벗어나야 해!’
어째서 이런 함정을 판 것인지 이유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생각을 마친 로미안은 안나를 지나쳐 방에서 나왔다. 하지만 방에서 나오자마자 로미안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다닥!
반대편에서 헤론이 달려오고 있었다. 문제는 헤론과 함께 달려오는 이들이었다. 로미안을 제외한 나머지 조장들이 헤론과 함께 달려오고 있었다.
“로미안! 무슨 일인가! 방금 전의 그 비명은!”
이내 방 앞에 도착한 헤론이 외쳤다.
“…….”
그러나 로미안은 헤론의 말에 답할 수 없었다. 그저 이를 악문 채 헤론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 회의를 빠질 만큼 중요한 일이라 했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건가!”
헤론이 이어 말했다. 헤론의 뒤에 있는 조장들 역시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러운지 당황스런 표정으로 로미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흑흑.”
안나의 울음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설마 자네.”
헤론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의 상황은 자신과 전혀 관련 없다는 듯 말하는 헤론에 침묵을 지키던 로미안이 입을 열었다.
“왜 이런 짓을…….”
하지만 로미안은 끝까지 말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헤론이 말을 잘랐기 때문이었다.
“첫째 사모께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설마 로미안…….”
“자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조장들이 하나, 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해를 한 것 같았다. 하기야 지금 상황은 누가 보아도 오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네! 이건 함정이야!”
로미안은 부정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억울한 표정으로 외쳤다. 하지만 로미안의 외침에도 한번 변한 조장들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도망을 치면…….’
부정적으로 변한 조장들의 눈빛을 보며 로미안은 생각했다. 여기서 도망을 친다면? 이 상황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하지만 도망을 치지 않는다고 해도.’
조장들의 눈빛은 이미 부정적으로 변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믿지 않을 것이었다.
‘헤론 이 개자식!’
로미안은 지금의 상황을 만든 헤론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내 뒤로 돌아 창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을 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푹!
그러나 곧 로미안은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감촉에 넘어지고 말았다. 로미안은 허벅지에 박힌 단검을 보고 고개를 들어 헤론을 보았다. 그리고 로미안은 볼 수 있었다. 헤론의 입가에 순간 나타났다 사라진 비릿한 미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