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제95화
94.
로아가 죽다니?
“아무것도 없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방금 전 카미안이 말했다. 막혀 있으며 아무것도 없다고. 그런데 갑자기 로아가 왜 죽었단 말인가?
“예, 분명 아무것도 없다고 말을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카미안 역시 당황스러웠다.
“나가서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로아에게 직접 물어봐야 될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취이익!
-아우우우우!
귓가에 들려오는 오크의 콧소리와 늑대의 포효에 대화를 멈춘 수혁은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확인했다.
-취이익!
-아우우우우!
오크의 콧소리와 늑대의 포효는 오른쪽 통로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로아 님이 왼쪽으로 가셨죠?”
수혁은 오른쪽 통로를 주시하며 물었다.
“예, 분명 왼쪽이었습니다.”
“왼쪽에 뭔가 있는 것 같죠?”
“예, 아무래도…….”
아무것도 없다고 했지만 로아가 죽었다. 로아가 보지 못했을 뿐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녀오세요. 여기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카미안은 수혁의 말에 답하며 로그아웃 했다. 물론 제자리에서 로그아웃 하지는 않았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카미안은 뒤쪽으로 이동 후 로그아웃 했다. 그렇게 카미안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혁은 볼 수 있었다.
스악!
통로에서 날아오는 초록색 덩어리를.
“피하세요!”
독 덩어리가 분명했다. 수혁은 독 덩어리를 막기 위해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수혁의 외침에 뒤에 있던 코마 길드원들이 뒤로 물러났다.
퍽!
그리고 수혁은 팔을 들어 독 덩어리를 막았다.
[빙독에 중독되셨습니다.]
[1분 동안 오한 상태에 빠집니다.]
[1분 동안 출혈 상태에 빠집니다.]
‘어?’
수혁은 메시지를 본 순간 당황했다.
‘중독이 됐다고?’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피하지 않고 막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중독이라니?
일단 수혁은 생명력을 확인했다.
‘……다행이야.’
생명력을 확인한 수혁은 안도했다. 중독이 되어 생명력이 팍팍 깎일까 걱정했는데 걱정할 만큼 깎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긴 마방이 얼만데.’
지혜가 3천을 넘어 4천에 가까운 상태였다. 중독되었다고 해도 데미지를 얼마 입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케이 님! 지금 저 키메라 생명력이 어떻게 돼요?”
수혁은 이내 통로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낸 키메라를 보며 케이크로스에게 물었다.
“200만입니다!”
얼마 뒤 케이크로스가 외쳤다.
‘200만부터는 중독되는 건가.’
수혁은 케이크로스의 외침을 듣고 생각했다. 방금 전 죽였던 키메라의 생명력은 180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중독이 되지 않았었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생명력이 200만을 넘는 키메라는 조심해야 될 것 같았다.
아무리 데미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도 마비 같은 특수 상태에 걸리면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독의 사슬.”
수혁은 키메라의 이동속도를 늦추기 위해 독의 사슬을 시전했다.
“플레임.”
이어 생명력을 빠르게 녹여버릴 플레임을 시전했다.
스악!
두 번의 마법이 시전된 순간 늑대가 다시 한 번 독 덩어리를 내뱉었다. 피할 수 없다면 모를까 피할 수 있는데 굳이 맞아 줄 필요는 없었다. 거기다 중독도 된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나았다. 수혁은 뒤로 재빨리 물러났다.
퍽!
독 덩어리는 수혁이 있던 자리에 작렬했고 이어 파편이 되어 주변으로 퍼졌다. 하지만 이미 파편까지 계산하고 뒤로 빠진 수혁이었다.
파편은 수혁에게 닿지 못했다. 그리고 수혁은 독의 사슬에 의해 느려진 이동속도로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는 키메라에게 다시 마법을 날리기 시작했다.
“파이어 스피어, 파이어 볼.”
쾅! 쾅!
파이어 스피어와 파이어 볼이 작렬하며 폭음이 울려 퍼졌다.
‘생명력이 높을수록 방어력도 높은 건가.’
수혁은 늑대에 달려 있는 오크의 눈을 보며 생각했다. 이쯤이면 원래 오크가 눈을 감아야 했다. 그런데 오크의 두 눈은 감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흉포함이 가득했다. 한시라도 빨리 거리를 좁혀 공격을 하고 싶어 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확실히 여태까지 잡았던 키메라와는 느낌이 달랐다. 아무래도 생명력이 높을수록 방어력도 높아지는 것 같았다.
‘지속에 광역만 아니었어도.’
수혁은 미간을 좁혔다. 독 마법은 대부분 범위도 넓고 오랜 시간 유지되었다. 그래서 쓸 수가 없었다.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카미안과 코마 길드원들이 있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지속이든 범위든 신경 쓰지 않고 마법을 쏟아내며 순식간에 잡았을 것이다. 어차피 칭호 ‘독의 대가’의 효과로 중독이 되지 않으니까.
“불놀이, 포이즌 볼, 포이즌 스피어.”
수혁은 이어 불놀이, 포이즌 볼, 포이즌 스피어를 날렸다. 3개의 마법이 작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크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어 늑대가 움직임을 멈추고 쓰러졌다.
-변형된 오크의 피부
-변형된 늑대의 피부
늑대가 쓰러지고 드랍 창이 나타났다.
스악
‘어?’
하지만 수혁은 드랍 창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시체에서 작은 불덩어리가 튀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불놀이의 특수 효과는 10초 안에 대상이 죽을 경우 범위 안에 있는 또 다른 몬스터에게 재시전되는 것이었다.
범위 안에 몬스터가 없다면 불놀이는 시전되지 않는다. 그대로 끝난다. 그런데 불덩어리가 튀어나왔다는 것은 범위 안에 몬스터가 있다는 뜻이었다.
‘설마.’
불놀이의 특수 효과 범위는 숙련도가 올라 5M에서 30M로 늘어난 상황이었다. 시체에서 튀어나온 불덩어리는 어둠으로 가득 찬 오른쪽 통로 안으로 날아갔다.
얼마 뒤.
-취익! 아프다!
-크허허허헝!
통로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목소리를 들은 수혁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들려왔던 소리와 달랐기 때문이었다.
-취익! 인간이었군!
-크허헝!
이내 오른쪽 통로에서 소리의 주인공들이 나타났다. 소리의 주인공들은 키메라였다. 그것도 앞서 잡았던 늑대와 오크를 합성한 늑대오크 키메라였다. 하지만 소리에서도 알 수 있듯 앞서 잡은 늑대오크 키메라와는 달랐다.
-크허헝!
-조용히 해라. 취익!
오크는 콧소리뿐만 아니라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크기 또한 더 컸다. 오크와 마찬가지로 늑대 역시 앞서 보았던 늑대들 보다 2배 이상 거대했다.
‘보스?’
설마 보스 몬스터인 것일까?
‘아니야, 보스라면 메시지가 떴겠지.’
수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스 몬스터였다면 메시지가 떴을 것이다. 즉, 나타난 키메라는 보스 몬스터가 아니었다.
바로 그때였다.
“수, 수혁 님!”
뒤쪽에 있던 케이크로스가 외쳤다.
“저 몬스터 생명력 500만이에요!”
“……!”
수혁은 케이크로스의 외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500만이라고?’
구분이 될 정도로 확실히 외형이 다르긴 했다. 그런데 500만이라니?
‘중간 보스인가?’
보스 몬스터는 아니다. 하지만 일반 몬스터도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중간 보스뿐이었다.
-취익! 늑대! 독을 날려라!
생각에 잠겨있던 수혁은 오크의 외침에 늑대를 주시했다.
스아악!
그리고 이어 늑대의 입에서 독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늑대의 입에서 나온 독은 앞서 보았던 독 덩어리가 아니었다. 덩어리가 아닌 연기였다. 독연기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더 뒤로 가세요! 파이어 볼!”
액체가 아닌 연기였다. 연기라면 파이어 볼로 폭발을 일으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수혁은 코마 길드원들에게 경고하며 파이어 볼을 시전했다.
‘어?’
그러나 수혁은 이어진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폭발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해 파이어 볼을 시전했다.
‘내성이 있는 건가?’
그런데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파이어 볼은 연기를 조금 태우고 사라졌다. 수혁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재차 마법을 시전했다.
“파이어 스피어.”
파이어 볼보다 한 단계 강력한 파이어 스피어였다.
스아악…….
하지만 파이어 스피어 역시 폭발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파이어 볼보다는 더 많은 연기를 태워 없앴지만 그뿐이었다.
‘어쩔 수 없나.’
수혁은 거리를 좁혀오는 독 연기를 보며 생각했다.
‘어차피 이야기도 들어야 되니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도 들어야 된다. 즉, 시간이 걸린다. 고민을 끝낸 수혁은 입을 열었다.
“파이어 스톰.”
파이어 스톰이 시전되었고 전방에 불의 회오리가 나타났다.
스아악!
불의 회오리는 독 연기를 불태우며 키메라를 집어 삼켰다.
-취익! 아프다! 취익!
-크허허헝!
-도망 취익! 아니, 앞으로! 아니, 뒤로! 취익!
오크와 늑대의 고통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혹시나 키메라가 파이어 스톰을 뚫고 튀어나올 수 있기에 수혁은 파이어 스톰을 주시했다.
“케이 님, 지금도 볼 수 있나요?”
파이어 스톰을 주시하며 수혁은 케이크로스에게 물었다. 간파의 눈으로 키메라의 생명력이 얼마나 남았는지 궁금했다.
“죄송합니다. 시야 때문에.”
하지만 간파의 눈은 시야에 있을 때만 발동이 가능했다. 케이크로스의 답에 수혁은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파이어 스톰을 주시했다.
-취익! 돌아가야…….
-크허허…….
오크와 늑대의 소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파이어 스톰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오크와 늑대가 소리를 작게 내는 것이 아닌 거리가 멀어 작아지는 게 분명했다.
얼마 뒤 파이어 스톰이 움직임을 멈췄다.
-변형된 오크의 피부
-변형된 늑대의 피부
-완벽히 변형된 오크의 피부
-완벽히 변형된 늑대의 피부
그리고 드랍 창이 갱신됐다.
‘역시.’
수혁은 갱신된 드랍 창을 보며 생각했다.
‘독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파이어 스톰이 좋단 말이지.’
독의 문을 개방할 때 나타났던 독두꺼비를 상대했을 때부터 느꼈다. 독을 사용하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파이어 스톰 만한 마법이 없다는 것을.
‘피해만 안 입으면 딱 좋을 텐데.’
수혁은 파이어 스톰을 보았다. 파이어 스톰은 적아를 가리지 않는다. 피해를 입는 것은 시전자도 마찬가지다.
마법을 시전한 수혁이라도 피해를 입는다. 물론 시전자는 다른 이들에 비해 피해를 덜 받지만 피해를 입는 것은 분명했다.
‘뭐 이런 점이 재미있는 거지.’
파이어 스톰을 바라보던 수혁은 드랍 된 아이템을 습득 후 캐릭터 창을 열었다.
‘경험치는 얼마나 올랐으려나?’
경험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중간 보스로 추정되는 키메라를 죽였다. 일반 몬스터보다 중간 보스는 당연히 더 많은 경험치를 준다.
일반 키메라 역시 어마어마한 경험치를 주는 상황에 중간 보스인 키메라는 과연 얼마나 경험치를 줄까? 기대가 됐다.
‘……!’
경험치를 확인한 수혁은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92%?’
190이 된 이후 고작 2마리를 잡았다.
‘대박 많이 주네.’
레벨을 올리는데 남들보다 더 많은 경험치가 필요한 수혁이었다. 그런데 92%라니?
“수혁 님!”
경험치를 보고 있던 수혁은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에 캐릭터 창을 닫았다. 그리고 뒤로 돌아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이야기는 잘 나누셨나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카미안이었다.
“네, 근데…….”
카미안은 수혁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끝을 흐렸다.
“……?”
그리고 그런 카미안의 반응에 수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에 죽은지 모르겠답니다. 그냥 나오려고 한 순간 사망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