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제148화
146.
* * *
“후…….”
연중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결국 이렇게 되나…….”
월요일에 소집했던 대회의는 월요일에 끝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인지라 회의는 길어졌고 화요일까지 이어졌다.
회의 결과 독고 길드와 전쟁을 하기로 결정 났다.
[아스갈 님이 길드를 탈퇴하셨습니다.]
[레드크레용 님이 길드를 탈퇴하셨습니다.]
[네들 님이 길드를 탈퇴하셨습니다.]
.
.
그리고 독고 길드와의 전쟁은 몇몇 길드원들의 탈퇴로 이어졌다.
전쟁이 결정 난 이상 한 명, 한 명의 전력이 중요한 이때.
길드원들의 탈퇴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일단 알려 줘야겠지.”
연중은 친구 창을 열었다.
이따 공식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기도 할 예정이지만 미리 지인들에게 전쟁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연중 : 도란 님, 저희 독고 길드랑 전쟁할 예정입니다.
도란을 시작으로 연중은 접속 중인 지인들에게 귓속말을 보내기 시작했다.
-도란 : 예? 진짜요?
그리고 도란을 시작으로 지인들에게서 답이 왔다.
그렇게 한동안 지인들과 귓속말을 나누던 연중은 이내 귓속말을 끝냈다.
귓속말을 끝낸 연중은 친구 창을 닫으며 생각했다.
‘수혁이한테도 알려 줘야지.’
독고 길드와의 전쟁 사실을 수혁에게도 알려야 했다.
그러나 수혁은 저녁 약속으로 현재 판게아에 접속 중이지 않았다.
글도 올릴 겸 수혁에게도 현 상황을 전할 겸 연중은 로그아웃을 했다.
그리고 캡슐에서 나오자마자 연중은 컴퓨터를 부팅시키고 핸드폰을 들어 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링
그러나 수혁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연중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나중에 전화 오겠지.”
부재중 전화를 보고 전화를 할 것이다.
연중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 * *
공식 홈페이지를 둘러보던 김석천은 오른쪽 아래에 뜬 알림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글을 올렸어?”
구독 신청을 해둔 연중의 마당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는 알림이었다.
“변경 사항이 생긴 건가?”
내일 야리온의 분노 경매가 시작된다.
혹시나 경매에 변동이 생긴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김석천은 재빨리 연중이 새로 올린 글을 확인했다.
“……음?”
글의 제목을 확인한 김석천은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목 : 독고 길드의 만행
“독고 길드?”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설마 또 뭔 일 저질렀나?”
만행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을 보아 무슨 일을 저지른 게 분명했다.
김석천은 글을 확인했다.
-제목 : 독고 길드의 만행
안녕하십니까.
연중입니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 제가 글을 올린 것은 독고 길드의 만행을 여러분께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
.
인사를 시작으로 이어진 글에 김석천은 미간을 찌푸렸다.
‘리리스 님이 배신을?’
‘독고 길드도 참 대단하네. 부길드 마스터를 포섭할 줄이야.’
‘이야, 그 지인을 찾아냈단 말이야? 하마터면 독고 길드에서 야리온의 분노를 가져갔겠네.’
글을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하던 김석천은 글의 마지막을 읽은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
글을 올린 이유가 독고 길드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라 생각했다.
그런데 연중이 글을 올린 이유는 사과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전쟁을 하겠다고?’
책임을 묻는다고 했다. 글의 흐름상 단순히 말로 무어라 하겠다는 게 아니다. 직접적인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이었다.
‘독고 길드를 상대로? 내가 모르는 사이에 격차가 많이 좁혀졌나?’
독고 길드와 리더 길드가 붙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예전에도 리더 길드와 독고 길드는 전쟁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정확히 말해 리더 길드를 주축으로 한, 반독고 연합과 독고 길드 간의 싸움이었다.
당시에는 독고 길드가 항복을 했다.
아무리 최강의 길드라 하지만 수많은 길드를 상대로는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처럼 연합이 아니다.
순전히 길드 간의 전쟁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선포한 것 같은데.’
일반 길드원도 아니고 길드의 2인자인 부길드 마스터가 배신을 했다.
사과만으로 끝내기에는 상황이 심각했다.
아무래도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선포한 것 같았다.
‘그래도 연중이가 루팅을 잡으면 가능성은 있겠어.’
길드 간의 전쟁은 길드원들의 수, 그리고 수준으로 결정이 난다.
그렇기에 독고 길드가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리더 길드가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0인 것은 아니었다.
길드원들의 수와 수준도 중요했지만, 길드 내 최강자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가도 상당히 중요했다.
리더 길드의 최강자는 당연하게도 길드 마스터인 연중이었다. 그러나 독고 길드의 최강자는 길드 마스터인 햇별이 아니었다.
독고 길드의 최강자는 바로 부길드 마스터 중 한 명인 ‘루팅’이었다.
만약 연중이 루팅을 잡는다면?
리더 길드가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커진다.
‘어쨌든 잘됐어.’
김석천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돈 좀 벌겠구만.’
전쟁은 돈을 버는데 아주 좋은 수단이었다.
* * *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수혁은 우선 핸드폰을 확인했다.
연중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수혁은 곧장 연중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링…….
벨 소리를 들으며 수혁은 생각했다.
‘어떻게 됐으려나.’
부재중 전화가 왔다는 것은 회의가 끝났음을 의미했다.
회의가 어떻게 끝났는지 궁금했다.
-여보세요?
그리고 생각하던 중 벨 소리가 끊기고 연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됐어?”
수혁은 연중이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
-미안하다.
수혁의 물음에 연중이 답했다.
“전쟁?”
연중의 미안하다는 말에 수혁이 물었다.
-응, 전쟁하게 됐어. 아무래도 부길드 마스터가 배신을 하고 적대 길드에 들어간 상황이니까.
-근데 너 지금 어디야?
“나? 지금 라만 왕국에 있어.”
-음, 수혁아.
“응.”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생각?”
수혁은 연중의 말에 반문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연중의 목소리에서 무언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길드 탈퇴하고 당분간 페이드 제국 밖에서 지내는 게 어떠냐?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 전쟁, 아마 질 거야.
질 것이다. 질 것을 알면서도 상황이 어쩔 수 없었기에 전쟁을 선포했다.
-어차피 질 거 너한테만큼은 피해 끼치고 싶지 않다.
어차피 질 전쟁 수혁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연중이었다.
“…….”
수혁은 연중의 말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잠시 입을 다문 채 생각했다.
“연중아.”
이내 생각을 마친 수혁이 연중을 불렀다.
-응.
“혹시 내가 방해되는 건 아니지?”
-아니야, 방해는 무슨. 네가 있으면 엄청 도움 되지. 내가 너무 미안해서 그래. 오자마자 전쟁 겪는 거잖아. 거기다 이길 전쟁도 아니고…….
“미안하다. 연중아. 전쟁 참여해야겠다.”
-수혁아.
“됐어. 설득할 생각하지 마. 이미 결정했어.”
-…….
연중은 수혁의 확고한 목소리에 잠시 침묵했다.
“선전포고는 언제 할 거야?”
수혁이 이어 물었다.
길드 시스템을 이용해 선전포고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선전포고를 할 경우 서로를 죽여도 범죄자 수치가 상승하지 않는다.
그래서 길드 간의 전쟁은 대부분 선전포고 시스템으로 진행됐다.
-내일 점심에 할 생각이야.
수혁의 물음에 연중이 답했다.
-그런데 수혁아, 진짜 난 괜찮아.
“연중아, 이미 결정한 일이다.”
-……고맙다.
그 뒤로 연중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수혁은 통화를 끝내고 생각했다.
‘악마 길드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힘들겠지?’
악마 길드 때에는 위기가 없었다.
너무나도 수월했다.
쉽게 쉽게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독고 길드는 아니다.
지금이야 그 명성이 많이 깎이긴 했지만 한때 판게아 최강의 길드라 불리던 길드가 바로 독고 길드였다.
길드원들 개개인의 수준도 뛰어났고 무엇보다 랭커들이 여럿 있었다.
악마 길드 때처럼 쉽게 생각하면 큰코다칠 것이었다.
‘이거 더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는데?’
책을 읽으면 지혜가 오른다.
그리고 마법사인 수혁은 지혜가 오를수록 강해진다.
즉, 책을 읽는 것이 강해지는 길이었다.
‘전설 무기도 있으니까.’
마침 스텟이 높을수록 높은 효율을 보이는 전설 무기 ‘마술사 라이언의 투명 지팡이’도 있었다.
스윽
생각을 마친 수혁은 시간을 확인했다.
‘9시니까.’
수혁은 캡슐로 걸음을 옮겼다.
원래 오늘은 현실에서 책을 읽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다.
접속과 동시에 수혁은 책장을 돌아다니며 하얀 책들을 꺼냈다.
그리고 책상으로 돌아와 책을 읽기 시작했다.
* * *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햇별은 생각했다.
‘이 녀석이 어떻게 나오려나.’
연중이 과연 어떻게 나올까?
‘슬슬 반응 보일 때가 됐는데.’
어떤 식으로 엿을 먹이려 할지 궁금했다.
바로 그때였다.
-루팅 : 큰일 났습니다.
루팅에게서 귓속말이 왔다.
‘드디어?’
드디어 연중이 일을 낸 것일까?
-햇별 : 무슨 일입니까?
-루팅 : 전쟁인 것 같습니다.
-햇별 : 예? 전쟁이요?
-루팅 : 네, 지금 연중이 글을 올렸는데 아무래도 전쟁을 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
햇별은 루팅의 귓속말에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햇별 :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리고 루팅에게 귓속말을 보낸 뒤 로그아웃했다.
캡슐에서 나온 김현성은 컴퓨터 앞에 앉아 연중이 올린 글을 확인했다.
“미친놈.”
글을 전부 읽은 김현성은 짧게 중얼거렸다.
“전쟁? 어이가 없어가지고.”
당연히 여론을 등에 업고 언론 플레이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여론을 등에 업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언론 플레이가 아니라 무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것일까?
“설마 다른 길드 녀석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혹시나 화랑 길드 같은 다른 길드의 도움을 받으려는 것일까?
“아니지, 그러면 우리 쪽 길드도 참여할 텐데. 그걸 모를 리는 없고.”
예전에 리더 길드를 중심으로 모인 길드 연합에 패배 후 독고 길드 역시 여러 길드와 우호 관계를 만들었다.
리더 길드가 다른 길드를 끌어들이면 독고 길드 역시 우호 길드를 끌어들일 것이다.
서로 덩치를 불린 뒤 싸우면 이기는 것은 독고 길드였다.
즉, 다른 길드를 끌어들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가?”
그렇다면 무슨 자신감으로 전쟁을 하려는 것일까?
“설마 그 수혁이라는 녀석 때문에?”
문득 든 생각에 김현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상황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수혁.
혹시나 연중이 언론 플레이가 아닌 전쟁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수혁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가능성이 있지.”
악마 길드를 해체 직전까지 몰고 갔던 수혁이다.
그런 수혁을 믿고 전쟁을 선포한 것일 수 있다.
“어쨌든.”
김현성은 씨익 웃었다.
“전쟁이라니, 제대로 짓밟아 줄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