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제173화
171.
‘벌써 마지막이네.’
파비앙의 방에 도착한 지 벌써 5시간이 지났고 책장에는 하얀 책 네 권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여기도 정복자 같은 칭호가 뜰까?’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으면 정복자 칭호가 주어진다.
과연 파비앙의 방에 있는 모든 책을 읽으면 어떻게 될까?
도서관처럼 칭호가 주어질까?
수혁은 책 네 권을 들고 책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독서에 집중했다.
[지혜가 1 상승합니다.]
[지혜가 1 상승합니다.]
.
.
책을 읽을 때마다 지혜가 쭉쭉 올랐다.
그리고 이내 수혁은 마지막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지혜가 1 상승합니다.]
[지혜가 1 상승합니다.]
칭호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마탑에 있는 모든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인지, 나타난 메시지는 지혜 상승 메시지뿐이었다.
메시지를 보며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에 책을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업무를 보고 있는 파비앙에게 다가갔다.
“……?”
업무를 보고 있던 파비앙은 수혁이 다가오자 의아한 표정으로 수혁을 보았다. 그리고는 뒤에 있는 책장을 힐끔 보고는 다시 수혁을 보며 말했다.
“다 읽었어?”
“예, 이제 가 보려구요!”
수혁은 파비앙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물론 바로 갈 수는 없었다.
“아, 잠시만. 물어볼 게 있어.”
파비앙이 대화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하드락 지하 수로에 나타났던 키메라들 기억나?”
“네.”
“그때 혹시 오우거랑 트롤이 합성된 키메라는 없었지?”
“오우거랑 트롤이요?”
“응.”
수혁은 파비앙의 말에 하드락 지하수로에서 잡았던 키메라들을 떠올렸다.
기괴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던 키메라들.
그러나 오우거와 트롤이 합성된 키메라는 없었다.
“없었어요.”
“그렇지?”
“네.”
“흐음…….”
파비앙은 수혁의 답에 침음을 내뱉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어, 그래.”
수혁은 파비앙에게 인사를 한 뒤 방에서 나왔다.
‘오우거랑 트롤이 합성된 키메라가 나타났나?’
방에서 나온 수혁은 1층으로 내려가며 생각했다.
갑자기 오우거랑 트롤이 합성된 키메라를 묻는 이유는, 아마도 오우거와 트롤이 합성된 키메라가 나왔기 때문이 분명했다.
‘어떻게 생긴 거지?’
수혁은 오우거와 트롤이 합성된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키메라에 대한 생각을 하며 독의 마탑에서 나온 수혁은 불의 마탑으로 향하며 친구 창을 열었다.
연중의 접속 상태를 확인한 수혁은 연중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수혁 : 연중아.
-연중 : 응.
-수혁 : 2주 뒤에 가자고 했잖아.
-연중 : 그랬지! 왜? 더 늦어질 것 같아?
-수혁 : 아니, 일이 끝나 버려서. 내일도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연중 : 헐! 진짜? 진짜로?
귓속말임에도 불구하고 연중의 격한 감정이 느껴졌다.
-수혁 : 응.
-연중 : 그럼 내일 갈까?
-수혁 : 할 일 많지 않아?
-연중 : 대표 길드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딱히 일이 없네? 오늘 내로 다 끝날 것 같아.
-수혁 : 알았다. 그러면 내일 언제 갈까?
-연중 : 준비할 게 있으니까. 11시쯤? 어때?
-수혁 : 괜찮지. 내가 뭐 준비해야 할 건 없어?
-연중 : 없어. 넌 그냥 몸만 오면 된다.
-수혁 : 알았다. 내일 보자.
-연중 : 오케이! 근데 너 경매 끝날 시간 다 되지 않았어?
수혁은 연중의 말에 시간을 확인했다.
-수혁 : 어, 다 됐지. 3시간밖에 안 남았으니까.
경매가 끝나는 시간은 8시.
연중의 말대로 경매가 끝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연중 : 얼마까지 올랐어?
-수혁 : 글쎄? 확인을 안 해서. 이따 경매 끝나고 가 보려고.
-연중 : 이야, 너도 대단하다. 나였으면 경매장에서 살았을 텐데.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불의 마탑에 도착한 수혁은 연중과의 귓속말을 끝냈다.
‘있으려나.’
불의 마탑에는 과연 책이 있을까?
수혁은 이내 안으로 들어가 코델의 방으로 향했다.
“죄송합니다만…….”
당연하게도 앞을 막아서는 마법사가 있었고 수혁은 브리니스의 증표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법사의 안내를 받아 코델의 방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똑똑똑
“부마탑장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마법사가 노크와 함께 외쳤다.
끼이익
얼마 뒤 문이 열렸고 코델이 나왔다.
“누…… 헛, 수혁 님!”
“안녕하세요.”
수혁은 놀란 코델의 표정에 미소를 지은 채 인사했다.
“들어오시죠!”
코델은 수혁을 방으로 안내했다.
수혁은 코델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으며 생각했다.
‘없네…….’
아쉽게도 방에는 단 한 권의 책도 보이지 않았다.
“여긴 어쩐 일로…….”
반대편에 앉은 코델이 물었다.
“혹시 필요하신 게 생기셨나요?”
“예, 혹시 불의 마탑에 책을 모아둔 곳이 있나요?”
“책이요?”
“네!”
“책을 좋아하신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진짜였군요.”
코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고서를 모아둔 곳이 있긴 한데…….”
“고서요?”
“예, 한번 가 보시겠습니까?”
“네!”
코델의 물음에 수혁은 활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고서라면 분명 새 책이겠지.’
도서관에서 읽은 책들 중 고서는 거의 없었다.
수많은 도서관을 정복했지만 고서는 손가락을 접어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방에 모아둘 정도라면 한두 권이 아닐 것이고 분명 빛을 뿜어내고 있을 것이다.
코델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내를 시작했고 수혁은 코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저벅!
그리고 얼마 뒤 코델이 걸음을 멈췄다.
걸음을 멈춘 코델의 앞에는 자물쇠로 잠겨 있는 문이 있었다.
끼이익
코델은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수혁 역시 재빨리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4개의 책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책장에는 책들이 가득했고 수혁의 예상대로 책들은 전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응?’
그러나 빛을 뿜어내는 책들을 보면서도 수혁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색?’
몇 권을 제외하고는 전부 검은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의 색이 검은 것을 착각한 게 아니다.
분명 검은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저는 아직 밀린 업무가 있어 올라가 보겠습니다.”
코델이 말했다.
“아, 네.”
수혁이 답하자 코델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 방에서 나갔다.
코델이 나가고 홀로 방에 남게 된 수혁은 책장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검은 빛을 뿜어내는 책을 집어 제목을 확인했다.
“……?”
제목을 확인한 수혁의 표정에 물음표가 등장했다.
‘뭐야? 이 문자는.’
처음 보는 문자가 쓰여 있었다.
제목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수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책을 펼쳤다.
[스킬 ‘엘프어’가 필요합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
수혁은 메시지를 보고 고개를 내려 책을 보았다.
제목에서 보았던 기묘한 문자가 가득했다.
읽기 위해서는 메시지에 나온 엘프어가 필요한 것 같았다.
‘읽을 수 없는 책은 검은빛이구나.’
검은빛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검은색은 다른 색들과 달리 퀘스트 종류를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수혁은 책을 넣고 다른 책을 꺼내 확인하기 시작했다.
[스킬 ‘드워프어’가 필요합니다.]
[스킬 ‘오크어’가 필요합니다.]
[스킬 ‘마족어’가 필요합니다.]
책을 읽기 위해 필요한 언어는 엘프어 말고도 참으로 다양했다.
“후…….”
수혁은 검은빛을 뿜어내는 수많은 책들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언어가 필요할 줄이야…….’
아무리 고서라고 하지만 언어가 필요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냥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떻게 하지?’
수혁은 고민했다.
경매장에는 수많은 스킬북들이 올라와 있고 그중에는 엘프어, 오크어 같은 언어 스킬북들이 있었다.
아니, 경매장뿐만 아니라 마탑만 가도 언어 스킬북을 판매하고 있다.
‘스킬북을 사용 못 하는데…….’
하지만 수혁의 직업 대마도사의 후예는 스킬북으로 스킬을 배울 수 없는 직업이었다.
즉, 스킬북을 이용해 언어를 배울 수 없다.
엘프나 오크에게 직접 배운다?
엘프들이 사는 곳은 철저히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오크들에게 언어를 배우겠다고 찾아가면 도끼나 방망이가 날아올 것이다.
드워프들은 마음을 여는 데에만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마족들은 엘프들과 마찬가지로 만나는 것이 불가능했다.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
검은 책을 바라보던 수혁은 하얀 책들을 꺼내 책상으로 돌아왔다.
‘아홉 권이라…….’
책장에 있는 하얀 책들의 수는 총 아홉 권이었다.
‘이거 다 읽고 경매장 가면 되겠다.’
1시간에 다섯 권씩 읽는 수혁이었지만 그것은 책의 두께가 얇을 경우였다.
고서들은 책의 두께가 매우 두꺼웠다.
전부 읽는 데에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수혁은 책을 펼쳤다.
[지혜가 1 상승합니다.]
.
.
책을 읽을 때마다 무수히 많은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이미 메시지가 많이 나타나는 것을 알고 있는 수혁은 메시지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다음 책을 읽는 데 집중했고 얼마 뒤 마지막 책을 읽고 나서야 메시지의 수를 확인했다.
메시지의 수를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지혜가 얼마나 올랐는지 확인하면 된다.
‘105나 올랐네?’
캐릭터 창을 열어 상승한 지혜를 확인한 수혁은 미소를 지었다.
책이 두꺼웠기 때문일까?
고작 아홉 권을 읽었을 뿐인데 지혜가 대폭 상승했다.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수혁은 캐릭터 창을 닫고 시간을 확인했다.
‘끝났네.’
현재 시각은 8시 5분.
경매가 끝나는 시간은 8시였다.
‘얼마에 팔렸으려나.’
과연 야리온의 분노는 얼마에 낙찰됐을까?
기대가 됐다.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읽은 책들을 원래 자리로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검은 책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대로 가도 되나?’
고서들을 모아둔 곳이었다.
꽤나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었다.
과연 이대로 그냥 가도 되는 것일까?
바로 그때였다.
저벅…… 저벅…….
고민을 하고 있던 수혁의 귓가에 발소리가 들려왔다.
수혁은 문밖을 보았고 코델을 볼 수 있었다.
‘잘됐네.’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수혁은 방에서 나와 코델을 마중 나갔다.
“오셨어요.”
“엇, 다 읽으신 겁니까?”
코델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예, 읽을 수 있는 건 다 읽었습니다.”
수혁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인 뒤 이어 말했다.
“나중에 또 보러 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수혁 님이 원하신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코델은 문을 닫은 뒤 앞장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수혁은 코델의 안내를 받아 불의 마탑 1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럼 이만.”
수혁은 코델에게 인사를 한 뒤 불의 마탑에서 나와 워프 게이트로 향하며 생각했다.
‘어디 경매장으로 갈까?’
이제 야리온의 분노가 얼마에 낙찰되었는지 확인할 차례였다.
그러나 아무 경매장이나 갈 수는 없다.
많은 유저들이 야리온의 분노의 주인이 수혁이라는 것과 수혁이 리더 길드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리더 길드 마크를 달고 있는 수혁이 나타난다면?
분명 다가오는 유저들이 있을 것이다.
수혁은 그런 상황을 원치 않았다.
‘그래, 거기로 가면 되겠다.’
이내 한적한 경매장을 떠올린 수혁은 결정을 내렸다.
“어디로 가십니까?”
“아이미스 왕국의 에리앙이요.”
도서관 때문에 에리앙에 갔었던 수혁은 정말 놀랐었다.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이 정말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말인데도 사람이 없던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 역시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었다.
“50골드입니다.”
“여기요.”
수혁은 50골드를 건넸고 아이미스 왕국의 에리앙으로 워프할 수 있었다.
‘역시 한적해.’
워프 게이트에서 나온 수혁은 주변을 둘러보며 히죽 웃고는 경매장으로 향했다.
“와, 진짜 부럽다.”
“뭐가? 야리온의 분노?”
“응. 그게 내 거였으면 회사도 때려치울 텐데.”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혁은 경매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매장에서 나오는 유저들의 대화에 수혁의 기대감은 더욱더 증폭됐다.
수혁은 경매장으로 들어가자마자 경매장 NPC에게 다가가 경매창을 열어 야리온의 낙찰 금액을 확인했다.
“……!”
낙찰 금액을 확인한 수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