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
제204화
202.
칼라가 주먹을 휘둘렀다.
쾅!
주먹에 담겨 있던 붉은 기운이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고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에 산산조각이 난 건물을 보며 칼라는 중얼거렸다.
“나오길 잘했어!”
포탈을 지키느라 정말 지루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 그 미칠 것 같았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파괴를 통해 싹 날아갔다.
쾅! 쾅!
이내 모든 건물을 파괴한 칼라는 군데군데 쓰러져 있는 마족들의 시체를 보며 흐뭇한 미소로 마을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시 방향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쩌저적
그러나 그것도 잠시.
“……?”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에 칼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렸다.
소리의 정체는 허리에 달려 있던 구슬이 갈라지며 난 소리였다.
“……!”
칼라는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멈췄다.
“깨져?”
그도 그럴 것이 깨진 구슬은 조장 발록에게 주어지는 구슬로 알칸디움과 라이오디렘을 섞어 만들었다.
칼라가 힘껏 내리쳐도 부수기 힘들 정도로 강도가 엄청났다.
그 정도로 단단한 구슬이 깨지는 경우는 단 한 가지를 의미한다.
“죽었다고?”
조원의 죽음.
구슬과 연결된 조원이 죽으면 구슬 역시 깨지는 것이다.
“엘로타가…….”
구슬은 총 4개가 주어졌고, 지금 깨진 구슬은 엘로타와 연결된 구슬이었다.
“누구한테 죽은 거지?”
10마계에서 엘로타를 죽일 만한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설마 상급 마족들에게?”
혹시나 상급 마족들에게 둘러싸인 것일까?
“아니지, 도망을 쳤겠지.”
그러나 상대하지 못할 정도라면 도망을 쳤을 것이다.
“그럼 아밀레타? 크라노손? 키라드? 헤르타나?”
도망을 칠 수 없을 정도라면 단 넷뿐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칼라는 생각을 접었다.
가만히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칼라는 전투 상태를 해제한 뒤 허리에 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겐과 연락을 할 수 있는 돌을 꺼냈다.
그리고 바로 기운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돌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돌겐이 응답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자식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칼라는 미간을 찌푸린 채 돌을 넣고 이어 타르망과 연결된 돌을 꺼내 기운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돌겐과 마찬가지로 타르망 역시 응답을 하지 않았다.
“…….”
칼라는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돌을 넣었다.
바로 그때였다.
쩌저적
구슬 하나가 또 파괴되었다.
“……!”
파괴된 구슬을 본 칼라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돌겐!”
돌겐과 연결된 구슬이 파괴되었다.
엘로타에 이어 돌겐 역시 죽은 것이다.
“…….”
칼라의 표정에는 더 이상 짜증이 보이지 않았다.
심각함이 가득했다.
칼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발록의 사원이었다.
어서 보고를 해야 된다.
쩌저적
얼마 지나지 않아 타르망과 연결된 구슬 역시 파괴되었다.
“…….”
칼라의 표정에 자리 잡은 심각함이 한층 더 깊어졌다.
* * *
다다닥!
엄청난 속도로 달리던 에니콤이 자리에 멈추어 섰다.
‘……다행이군.’
그리고 전방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과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마족들을 보며 안도했다.
저벅저벅
에니콤은 천천히 마을로 향했다.
안전하다는 것을 안 이상 굳이 급하게 달려갈 필요가 없다.
“헛! 에니콤 님!”
마을에 가까워지자 안에 있던 중급 마족 헬롬이 에니콤을 발견했고 재빨리 다가와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아무 일도 없나?”
에니콤은 헬롬에게 물었다.
“예.”
“……흐음.”
헬롬의 답에 에니콤은 침음을 내뱉었다.
“……?”
침음에 헬롬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에니콤이 이어 말했다.
“체니토는?”
“집에 있을 겁니다.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에니콤은 헬롬의 안내를 받아 체니토의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체니토는 에니콤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가와 인사했다.
에니콤은 자연스레 체니토가 앉아 있던 상석에 앉은 뒤 입을 열었다.
“최근에 후니에스와 언제 연락을 했지?”
“후니에스요?”
체니토는 반문을 하며 잠시 생각하더니 이어 답했다.
“3일 전입니다.”
“3일이라…….”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사라졌다.”
“……?”
“마을 자체가.”
“……!”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체니토는 에니콤의 말에 매우 놀랐다.
“아무래도 당한 것 같은데…….”
도망간 것은 아닐 것이다.
죽으면 죽었지 도망을 갈 이들이 아니다. 에니콤은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전부 불러. 명령이 내려왔다.”
“알겠습니다.”
* * *
[에노르 평야에 입장하셨습니다.]
‘드디어 도착했네.’
연중은 메시지를 보고 수혁에게 말했다.
“수혁아, 도착했다. 지도 좀.”
“어, 잠깐만.”
책을 읽고 있던 수혁은 잠시 책 읽기를 멈추고 인벤토리를 열어 지도를 꺼냈다.
“지금 여기니까 이렇게 쭉 돌면서 가면 될 것 같아.”
“오케이!”
지도를 통해 에노르 평야의 지형을 확인한 뒤 연중이 다시 마차를 몰기 시작했고 수혁은 지도를 넣고 책에 집중했다.
‘얼마나 걸리려나.’
마차를 몰며 연중은 생각했다.
에노르 평야는 그리 넓지 않았다.
마을이 있다면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
연중은 마차를 세웠다.
‘찾았다!’
저 멀리 건물들이 보였다.
첩자들의 마을 ‘에보라’가 분명했다.
“수혁아.”
연중은 다시 한 번 수혁을 불렀다.
“응?”
책에 집중하고 있던 수혁이 답했고 연중은 손가락을 들어 전방을 가리켰다.
수혁은 연중의 손가락을 따라 전방을 보았다.
“…….”
그리고 말없이 책을 덮고 인벤토리에 넣었다.
“바로 정면 돌파?”
연중이 수혁에게 물었다.
“응, 굳이 돌아서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어제 첩자들의 마을을 정리하며 느낀 것인데 마을에 있는 마족들은 중급이 끝이었다.
그리고 중급 마족은 수혁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굳이 시간 걸리게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오케이!”
연중은 수혁의 말에 답하며 다시 마차를 몰았다.
당연히 그 목적지는 마을 ‘에보라’의 입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혁과 연중은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용한데?”
연중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입구라 그런 것일까?
단 한 명의 마족도 보이지 않았다.
돌아다니는 이가 없었다.
마치 유령 마을 같았다.
물론 진짜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다.
어둠의 자식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한곳에 모여 있나?”
마차에서 내리며 수혁이 말했다.
어둠의 자식들은 따로따로 움직이지 않았다.
한곳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끼이익
이내 어둠의 자식들이 향하던 방향에서 문이 열리며 마족이 나왔다.
나온 마족의 수는 둘이었다.
그러나 둘이 끝은 아닐 것이다.
어둠의 자식들이 전부 집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아 집 안에 더 많은 마족들이 있을 것이다.
“헬 파이어.”
수혁은 헬 파이어를 시전했다.
스아악!
헬 파이어는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집 밖으로 나온 마족과 집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레벨 업!]
레벨 업 메시지와.
[마을 ‘에보라’의 정리가 끝났습니다.]
정리 메시지였다.
“……?”
메시지를 본 순간 수혁의 표정에는 의아함이 나타났다.
‘진짜 다 몰려있었어?’
한곳에 모여 있을 것이라 말하긴 했지만 그냥 해본 말이었다.
진짜 한곳에 모여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수혁은 퀘스트 창을 열었다.
<내부정리>
비밀 지령에는 키라드 파벌에서 잠입시킨 첩자들이 살고 있는 마을들의 대략적인 위치가 쓰여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아밀레타는 첩자들을 정리할 생각이다.
아밀레타는 당신이 은밀하게 첩자들을 정리해주길 바란다.
첩자들을 정리하고 아밀레타를 만나라!
[수상한 마을 ‘에보라’ : O]
[수상한 마을 ‘오니카트’ : X]
[수상한 마을 ‘올레니엄’ : X]
퀘스트 보상 : ???
X였던 에보라가 O로 바뀌어 있었다.
‘마족만 죽이면 되는 거네.’
건물까지 파괴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었다.
“와, 저기에 진짜 다 모여 있었던 거야?”
퀘스트는 수혁만 받은 게 아니다.
연중 역시 수혁 덕분에 퀘스트를 받은 상황이었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어, 그런가 봐.”
수혁은 연중의 말에 답하며 퀘스트 창을 닫았다.
그리고 조수석에 올라 인벤토리를 열어 지도와 쪽지를 꺼냈다.
“이번에는 초원이네.”
다음 목적지는 마을 ‘오니카트’였다.
오니카트는 토갤 초원 어딘가에 위치해 있었다.
“이렇게, 이렇게 가면 될 것 같지?”
“어, 그렇게 가면 되겠다.”
수혁은 연중과 동선을 짠 후 마을을 가로질러 반대편 입구로 나왔다.
그리고 곧장 방향을 잡아 토갤 초원으로 향했다.
수혁은 지도와 쪽지를 넣은 후 『아론의 일기』를 꺼냈다.
‘이제 2번!’
앞으로 2번만 더 읽으면 된다.
10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수혁은 『아론의 일기』를 읽기 전 드랍 창을 확인했다.
-상급 마족의 영혼석
-중급 마족의 영혼석 12개
‘응?’
드랍 창을 확인한 수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상급?’
당연히 중급 마족의 영혼석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상급 마족까지 잠입을 했단 말이야?’
그런데 아니었다.
‘근데 헬 파이어 한 방에 죽을 정도면…….’
상급 마족이 있는지도 몰랐다.
앞으로도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수혁은 확인을 눌러 아이템을 습득하고 바로 『아론의 일기』를 펼쳤다.
‘됐다.’
예상대로 10분도 지나지 않아 수혁은 목표했던 2번을 읽었고 퀘스트 창을 열었다.
<아르헨의 반지2>
아르헨의 반지에는 숨겨진 옵션이 있다. 아래 조건을 달성해 ‘아르헨의 반지’의 숨겨진 옵션을 개방하라!
[책 읽기 : 300 / 300]
퀘스트 보상 : 아르헨의 반지 두 번째 옵션 개방
퀘스트 ‘아르헨의 반지1’을 완료해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퀘스트 ‘아르헨의 반지2’를 보며 수혁은 뿌듯한 표정으로 완료 버튼을 눌렀다.
[퀘스트 ‘아르헨의 반지2’를 완료하셨습니다.]
[아르헨의 반지 두 번째 옵션이 개방됩니다.]
메시지가 나타났고 수혁은 장비 창을 열어 아르헨의 반지 옵션을 확인했다.
<아르헨의 반지[전설]>
제한 : 지혜 3000
모든 종족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모든 언어를 읽을 수 있다.
대지의 마도사 아일로니아가 대학자 아르헨의 부탁으로 만든 반지다. 반지에는 2개의 마법이 각인되어 있다.
“……!”
두 번째 옵션을 확인한 수혁은 그대로 굳었다.
‘모든 언어?’
굳은 표정으로 두 번째 옵션을 바라보던 수혁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번에 개방된 아르헨의 반지 두 번째 옵션은 수혁에게 있어 정말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는 옵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혁은 직업 특성으로 인해 스킬북 사용이 불가능했다.
당연히 언어 스킬북도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떻게 언어를 습득해야 할지 수혁은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런데 해결이 됐다.
이제 다른 언어로 쓰여 있는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든이라니!’
거기다 첫 번째 옵션과 마찬가지로 ‘모든’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즉, 마족어뿐만 아니라 천족어, 드워프어, 오크어 등 그 어떤 언어든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내 입꼬리가 귓가에 걸린 수혁은 아밀레타에게서 받은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