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
제221화
219.
메시지를 본 수혁은 당황했다.
‘발록?’
갑자기 발록이 웬 말인가?
‘잠깐, 레몽?’
하지만 당황도 잠시, 이내 발록의 이름을 본 수혁은 인상을 썼다.
‘이 새끼…….’
연중을 죽인 발록이 바로 레몽이었다.
‘잘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전쟁 중 만나길 바랐다.
수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긴가?’
저 멀리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수혁은 유령마를 소환했다.
그리고 재빨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서쪽을 향해 움직였다.
쾅! 쾅!
연기와 가까워지자 굉음이 들려왔다.
“으아! 어서 피해!”
“워프 게이트로 도망가!”
그리고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마족들을 볼 수 있었다.
“……?”
“……?”
마족들은 수혁을 발견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발록 때문에 그대로 수혁을 지나쳐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수혁 역시 마족들을 지나쳐 계속해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향했다.
바로 그때였다.
스아악!
전방에서 붉은 기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발록이 날린 기운이 분명했다.
“성스러운 보호막.”
공격을 최대한 맞기로 결정한 수혁이었지만 데미지가 얼마나 되는지, 어떤 특수 이상 상태를 가져올지 알 수 없기에 수혁은 보호막을 시전했다.
스악
투명한 보호막이 나타나 수혁의 몸을 감쌌다.
쾅!
그리고 이내 붉은 기운이 보호막에 작렬하며 굉음을 뿜어냈다.
‘단단하네.’
물론 굉음이 터졌을 뿐 보호막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실금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주 매끈했다.
‘지혜가 높아서 그런가.’
아무래도 지혜가 높아 보호막의 방어력 역시 높은 것 같았다.
-인간?
이내 붉은 기운을 날린 발록이 도착했다.
‘저 녀석이 레몽인가?’
수혁은 발록을 보며 생각했다.
연중은 레몽을 포함해 발록이 5마리나 나타났다고 했다.
물론 본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레몽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혁이었다.
‘다 똑같이 생겨 가지고…….’
발록들끼리는 알아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인 수혁에게는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기서 거기였다.
“네가 레몽이냐?”
수혁은 발록에게 물었다.
-뭐? 네 녀석의 주둥이에 담길 분이 아니시다!
발록이 성난 목소리로 답했다.
‘레몽이 아니네.’
혹시나 레몽이 아닐까 생각했던 수혁은 입을 열었다.
“플레임.”
헬 파이어를 사용할까 했지만 발록들의 보스라고 할 수 있는 레몽을 위해 남겨두는 게 낫다고 생각한 수혁이 선택한 마법은 헬 파이어의 하위 마법 플레임이었다.
스아악!
-크아아아악!
플레임으로도 충분했다.
발록이 비명을 내뱉었다.
-이 자식이!
그리고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수혁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빠르게 거리를 좁혀오는 발록을 보며 수혁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파이어 월.”
스르륵!
그러자 발록과 수혁의 사이에 뜨거운 불의 벽이 나타났다.
수혁에게 달려가던 발록은 순간 고민했다.
불의 벽을 뚫고 수혁에게 갈 것이냐, 아니면 불의 벽을 피해 갈 것이냐.
고민은 찰나에 끝났다.
발록의 선택은 불의 벽을 뚫고 가는 것이었다.
지금 몸에 달라붙은 불 ‘플레임’은 매우 뜨거웠다.
우회할 시간이 없었다.
-크합!
발록은 포효를 내뱉으며 파이어 월을 뚫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수혁은 볼 수 있었다.
파이어 월을 뚫고 나오는 발록과.
-발록의 영혼석
-발록의 피
-발록의 뿔
-발록의 힘줄 2개
-투기의 정
드랍 창을.
쿵.
파이어 월을 뚫고 나온 발록은 그대로 쓰러졌다.
드랍 창을 보던 수혁은 고개를 내려 발록을 보았다.
‘두 방이라.’
플레임과 파이어 월.
고작 두 번의 마법에 발록이 죽음을 맞았다.
‘헬 파이어면 단숨에 죽일 수 있겠어.’
플레임과 파이어 월은 제일 강력한 마법이 아니었다.
수혁에게는 헬 파이어를 비롯해 두 마법보다 강력한 마법들이 더 있었다.
강력한 마법을 쓴다면 지금처럼 충분히 발록들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거기다 보호막도 단단하고.’
보호막을 본 수혁은 미소를 지은 채 다시 발록들을 향해 말을 몰아 움직였다.
* * *
“뭔가 수월해진 것 같지 않아?”
마을 ‘롤롤’의 마족들을 전부 죽인 후 수색을 끝낸 윤진이 다가와 말했다.
한 번의 죽음 이후 마을을 습격하는 것이 너무나 수월해졌다.
“여기가 작은 마을도 아닌데 말이야.”
마족과의 전투가 익숙해져 그런 것도 있겠지만 온전히 익숙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습격한 마을 ‘롤롤’은 여태껏 습격했던 마을들보다 배 이상 큰 마을이었다.
당연히 마족들의 수가 더 많았다.
난이도가 더 높아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보다 마을 습격의 난이도가 쉽게 느껴졌다.
“……중급 마족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어.”
윤진의 말에 사냥왕이 중얼거렸다.
더 많은 마족들이 있음에도 전투가 수월했던 이유.
그것은 중급 마족이 한 마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네가 다 잡은 거 아니었어?”
윤진이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당연히 사냥왕이 중급 마족을 다 죽인 것이라 생각했던 윤진이었다.
사냥왕은 윤진의 반문에 답하지 않았다.
생각에 잠긴 사냥왕의 귓가에는 애초에 윤진의 말이 들리지도 않았다.
“이 정도 마을이면 중급 마족이 있어야 하는데…….”
전부는 아니었지만 이보다 더 작은 마을에도 중급 마족이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재미난 걸 발견했어!”
레아가 다가오며 말했다.
“……뭘 발견했는데?”
때마침 생각을 끝낸 사냥왕은 레아의 말에 반문했다.
“왜 중급 마족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는지 알아냈어!”
레아는 마법을 통해 마을 중앙 게시판에 붙어 있는 글을 읽었다.
그리고 어째서 중급 마족이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전쟁 중이라는데?”
“전쟁?”
“응, 그래서 다 떠난 것 같아.”
레아의 말에 사냥왕은 생각했다.
‘이거 상황이 너무 괜찮은데?’
아주 좋았다.
‘이러면 도시도 슬금슬금 노려볼 수 있겠어.’
대도시는 힘들어도 작은 도시는 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흐.’
사냥왕은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윤진과 레아에게 말했다.
“가자.”
* * *
쩌저적!
주변을 파괴하고 있던 레몽은 귓가에 들려온 불길한 소리에 고개를 내렸다.
‘……!’
고개를 내린 레몽의 인상에 험악함이 가득 나타났다.
‘라스큘이 죽어?’
라스큘과 연결된 구슬이 파괴되었기 때문이었다.
‘녀석들이 온 건가?’
이곳 10마계에서 라스큘을 죽일 수 있는 자는 많지 않다.
1대1로 라스큘을 죽일 수 있는 자는 10마계 전체를 통틀어 넷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다 지금 파괴하고 있는 마을에 올 수 있는 것은 넷 중 둘뿐이었다.
‘말이 안 되는데?’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그 둘 또한 올 수가 없었다.
‘전쟁 중에 이렇게 빨리?’
서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최강의 전력이라 할 수 있는 그 둘이 이곳에 나타난다?
말이 되지 않는다.
‘설마 다른 누가?’
그래서 레몽은 그 둘을 제외한 새로운 자가 나타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였다.
‘흐음, 이 기운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강력한 마기가 느껴졌다.
‘둘 중 하나군.’
새로운 자가 나타난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둘 중 하나가 온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레몽은 고민했다.
‘후퇴? 아니면 힘을 빼 놔?’
이대로 빠질지 아니면 마주해 힘을 빼놓을지.
‘그래,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레몽은 고민을 끝냈다.
후퇴는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기의 주인공이 얼마나 강한지 알아보고 싶었다.
“대장!”
근처에서 마을을 파괴하던 뚜르와 리오스, 히오도 강력한 마기를 느끼고는 레몽에게 다가왔다.
“이 기운 꽤 강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뚜르가 물었다.
묻는 뚜르의 눈빛에는 기대와 흥분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강력한 마기의 주인과 싸우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라스큘을 죽일 정도로 강한 자다.
혼자서 싸우게 할 수는 없다.
“다 같이 간다.”
레몽이 말했다.
뚜르 혼자 가면 라스큘과 마찬가지로 죽을 것이다.
하지만 다 같이 간다면?
10마계의 지배자라 하더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다 같이요? 왜요? 저 혼자서도…….”
뚜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스윽
레몽은 뚜르의 말을 들으며 라스큘과 연결되어 있던 박살 난 구슬을 보여주었다.
“라스큘이 죽었다.”
“……!”
“……!”
레몽의 답에 뚜르는 물론 리오스와 히오 역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밀레타, 혹은 그의 아들이 분명해.”
셋의 놀란 표정을 보며 레몽이 말했다.
“적당히 싸우다 빠진다.”
끝을 볼 수는 없다.
애초에 볼 수도 없고 봐서도 안 된다.
전쟁의 균형을 위해서였다.
아밀레타든 그의 아들 크라노손이든 둘 중 하나가 죽음을 맞이하면?
반대 파벌인 키라드 쪽으로 승기가 기울 것이다.
아무리 레몽이 개입을 한다고 해도 균형을 맞추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알겠습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뚜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 리오스와 히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셋의 끄덕임을 본 레몽은 강력한 마기의 주인공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앞장서 달려갔다.
그 뒤를 뚜르와 리오스, 히오가 따랐다.
얼마 뒤 마기의 주인공과 마주하게 된 레몽은 이동을 멈췄다.
마기의 주인공 역시 레몽을 발견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
레몽은 의아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마기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뭐야? 아밀레타가 아니야?’
아밀레타 혹은 크라노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렇다고 새롭게 등장한 마족도 아니었다.
“어? 저거…….”
뒤이어 도착한 뚜르가 말했다.
강력한 마기의 주인공.
“인간 아닙니까?”
그 주인공은 바로 인간이었다.
레몽은 뚜르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인간이 저런 마기를?’
인간일 것이라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마기 때문이었다.
약한 마기도 아니고 아주 강력한 지배자급의 마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간이 어찌 이런 마기를 뿜어낼 수 있단 말인가?
거기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인간이 라스큘을?’
바로 라스큘의 죽음이었다.
라스큘이 인간에게 죽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넷. 딱 맞네.”
귓가에 인간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뭐가 맞다는 거지?’
레몽이 인간의 말에 또다시 의아함을 품은 그 순간.
“헬 파이어.”
또다시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레몽은 볼 수 있었다.
화르륵
자신의 근처에 나타난 뜨거운 열기를.
‘……위험!’
레몽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투기를 뿜어내 막을 형성했다.
그러나 투기로 막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상급 이상이었다.
“크아악!”
“크윽!”
뚜르와 리오스, 히오는 투기의 막을 형성하지 못했고 뜨거운 열기에 거침없이 유린당하기 시작했다.
유린의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쿵. 쿵. 쿵.
뚜르와 리오스, 히오가 차례대로 쓰러졌다.
기절을 한 게 아니었다.
쩌저적 쩌저적 쩌저적
연달아 구슬이 박살 났다.
‘보통 헬 파이어가 아니다!’
레몽은 구슬이 박살 난 것에 신경 쓸 수 없었다.
투기의 막을 살금살금 녹이고 있는 헬 파이어 때문이었다.
보통의 헬 파이어였다면 가볍게 막았을 것인데 보통 헬 파이어가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
투기의 막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빨리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