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제222화
220.
레몽은 결단을 내렸다.
‘투기 폭발로 일단 헬 파이어를 밀어내고 빠지자.’
후퇴, 레몽이 내린 결단은 바로 후퇴였다.
발록은 전투를 즐긴다.
전투의 종족이라 불릴 정도로 전투를 좋아한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전투가 아니라 일방적 학살이었다.
전투를 좋아하는 것이지, 학살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흐아아압!”
레몽은 포효와 함께 투기를 폭발시켰다.
스아악!
다행히도 헬 파이어는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투기와 함께 흩어졌다.
그리고 레몽은 재빨리 뒤로 빠졌다.
바로 그때였다.
푹!
“……!”
발목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레몽은 발목을 보았다.
검은 창 같은 것이 발목을 관통해 있었다.
‘저건 뭐야?’
레몽은 검은 창을 따라 고개를 내렸고 이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온통 검은색이었다.
그림자가 일어나면 저런 모습일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간이 소환한 존재라는 점이었다.
‘내 피부를 뚫을 정도라니. 보통 소환수는 아니군.’
레몽은 손을 휘둘러 소환수를 향해 투기를 날렸다.
쾅!
소환수는 투기를 피하지 못했고 그대로 투기에 의해 소멸했다.
당연하게도 레몽의 발목을 관통했던 검은 창 역시 사라졌다.
검은 창이 사라지자 피부가 빠르게 아물며 회복되기 시작했고 레몽은 다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한 마리가 아니었군.’
레몽은 방금 전 소멸시킨 소환수의 기운을 똑똑히 기억했다.
후에 또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식으로 공격을 받는다면?
최상의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기억을 했다.
그런데 지금 그 기운이 전방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레몽은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투기를 날렸다.
쾅!
폭음과 함께 소환수의 기운이 소멸했다.
‘허, 또?’
소환수를 소멸시키자마자 또 기운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둘이었다.
앞서 했던 것처럼 레몽은 소환수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투기를 날렸다.
쾅! 쾅!
폭음과 함께 소환수의 기운이 사라졌다.
‘더는 없는 것 같군.’
더 이상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포기한 건가?’
거리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마법도 날아오지 않았다.
‘다행이야.’
마을에서 나온 레몽은 안도를 했다.
그리고 발록의 사원으로 향하며 방금 전 마기를 풀풀 풍기던 인간을 떠올렸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어.’
* * *
수혁은 점점 멀어지는 발록 ‘레몽’을 보며 당황했다.
“뭐야? 왜 도망을 가?”
도망치리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보긴 했지만, 전투 종족이라 불리는 발록이기에 일어날 확률은 0이라 생각했다.
“……허.”
레몽이 빠르기도 했고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추격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내 시야에서 레몽이 사라졌고 수혁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으며 메시지를 보았다.
[어둠의 자식이 소멸됐습니다.]
.
.
[어둠의 자식이 소멸됐습니다.]
나타난 메시지는 총 4개였다.
“어둠의 자식들이 뚫릴 줄이야.”
가능성이 0이라 생각해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수혁은 어둠의 자식들로 퇴로를 막았다.
하지만 레몽은 어둠의 자식들을 전부 소멸시키고 도망갔다.
수혁은 메시지에서 시선을 돌려 드랍 창을 보았다.
-발록의 영혼석 4개
-발록의 피 5개
-발록의 뿔 3개
-발록의 힘줄 7개
-투기의 정 4개
드랍 창을 보며 수혁은 중얼거렸다.
“헬 파이어가 참 대단하긴 해.”
단 한 방으로 발록을 셋이나 죽였다.
오래 걸린 것도 아니고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발록들이 약한 건가?”
수혁은 확인을 눌러 드랍 된 아이템을 습득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발록들에게 처참히 파괴된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서관이 반대편에 있어서 다행이지.”
토토킨 도서관은 마을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발록들의 습격에 피해를 입은 것은 마을 서쪽뿐.
즉, 도서관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비록 한 마리를 놓치긴 했지만 도서관에 피해가 없다는 것에 수혁은 만족했다.
바로 그때였다.
“수혁 님!”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에 수혁은 뒤로 돌아섰다.
‘데헬른?’
뒤로 돌아선 수혁은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외침의 주인공이 에브라탐을 관리하는 상급 마족 데헬른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데헬른이 다가와 인사했다.
그러자 뒤쪽의 같이 온 마족들 역시 따라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발록이 왔다고 해서 왔는데…….”
수혁이 인사를 받아주었고 데헬른은 말끝을 흐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데헬른의 말에 수혁은 방금 전 상황을 그대로 전해줬다.
“총 다섯이 나타났고 넷을 죽였습니다. 상급 발록은 도망갔구요.”
“……!”
수혁의 말에 데헬른이 매우 놀란 반응을 보였다.
“상급 발록이라 하셨습니까?”
놀란 표정으로 데헬른이 물었다.
“네, 레몽이라는 상급 발록인데 전투 중 도망을 갔습니다.”
“…….”
데헬른은 수혁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발록 다섯과 전투를 벌여 넷을 죽이고.’
너무나 놀라웠다.
‘상급 발록을 도망가게 만들어?’
상급 발록이 어떤 존재이던가?
둘이 모이면 최상급 마족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바로 상급 발록이었다.
‘얼마나 강하신 거야?’
그런 상급 발록이 도망을 칠 정도라니?
‘수혁 님이 전쟁을 도와주신다면…….’
데헬른은 생각했다.
현재 10마계는 전쟁 중이었다.
수혁이 도와준다면?
발록들을 가볍게 죽인 수혁의 힘이 아밀레타 파벌에 실린다면?
‘압승이다.’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것도 별 피해 없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전쟁 상황은 어떤가요?”
수혁이 물었다.
“……전쟁이 시작됐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예, 지금 할 일이 있어 가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오늘 내로 마무리가 될 것 같고 내일 오전. 아일롬으로 출발할 생각입니다.”
“아…….”
데헬른은 탄성을 내뱉었다.
“현재…….”
그리고 이어 현 상황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 * *
“흐음, 이상하군.”
아이클은 침음을 내뱉었다.
“올 때가 됐는데.”
캐슈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복귀해야 할 도그라가 복귀하지 않고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할 아이가 오지를 않았다니…….”
다른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이들은 전부 복귀를 했다.
오직 도그라만 복귀를 하지 않았다.
“이것 참…….”
아이클은 난감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어라 보고를 드려야 할지.”
라모스에게 보고를 할 시간이었다.
“끙.”
아이클은 앓는 소리를 내뱉으며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라모스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아이클입니다.”
방 앞에 도착한 아이클은 노크와 함께 외쳤다.
“들어오시게.”
이어 라모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아이클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스악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아이클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자인가?’
순식간에 사라져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이전부터 라모스를 찾아왔던 이가 분명했다.
‘도대체 누구일까?’
아이클은 방금 전 사라진 인영에 대해 생각하며 라모스의 반대편에 앉았다.
“그건 어떻게 됐나?”
라모스는 아이클이 앉자마자 물었다.
“그것이…….”
아이클은 라모스의 물음에 말끝을 흐리며 눈치를 살폈다.
말끝을 흐린 것에 부정적인 답변을 예감한 것일까?
라모스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실패인가?”
미간을 좁힌 채 라모스가 물었다.
“죄송합니다. 아직 단원 한 명이 복귀를 하지 않아…….”
아이클은 또다시 말끝을 흐린 뒤 라모스의 표정을 확인했다.
좁혀졌던 미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나타났다.
“한 명? 그럼 다른 곳들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현재 지하 창고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좋군, 아주 좋아.”
라모스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남은 한 곳이 어디인가?”
끄덕임을 멈춘 라모스가 물었다.
“캐슈입니다.”
아이클은 라모스의 흡족한 표정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캐슈?”
그리고 이어진 라모스의 목소리에 아이클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일리인 공국의 캐슈?”
“……예.”
“책과 조각상이 있는 그 캐슈를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이클은 침을 꼴깍 삼키며 답했다.
방금 전까지 흡족해하던 라모스였다.
갑자기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닐 텐데…….’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들은 앞으로의 계획에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마을 ‘캐슈’에 있는 것은 계획에 필요 없는 것이었다.
왜 가져 와야 하는 것인지도, 이유도 모르는 물건들이었다.
“끙…….”
라모스가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 그런데…….”
“……넵.”
좋지 않은 분위기에 아이클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라모스에게 인사를 한 후 방에서 나갔다.
스악
아이클이 나가자마자 방 안에 누군가 나타났다.
방금 전 아이클이 들어 올 때 사라졌던 그 존재였다.
“캐슈라면 그것들이 있는 곳 아닙니까?”
몸을 숨긴 채 대화를 전부 듣고 있던 존재가 라모스에게 물었다.
“그렇지. 그것들이 있는 곳.”
“마스터께서 아끼시는 것들입니다.”
“알고 있어.”
“알고 계신다니 다행이군요.”
“에리멘!”
“혹시나 잊으셨을까 봐요.”
라모스의 외침에 에리멘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이번에는 진짜 가보겠습니다.”
“…….”
에리멘의 말에 라모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서 에리멘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라모스였다.
“아참!”
에리멘은 가기 전 문득 떠오른 것이 있다는 듯 탄성을 내뱉으며 말했다.
“암당에서 이걸 전해드리라 하더군요.”
그리고 품에서 작은 스크롤을 꺼내 라모스에게 내밀었다.
라모스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을 지을 뿐 스크롤을 받지 않았고, 에리멘은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이며 책상 위에 스크롤을 내려놓았다.
“독의 마탑에서 추적을 하고 있답니다. 어디까지 추적을 했는지 쓰여 있습니다. 독의 마탑장에 관한 정보도 있구요.”
스크롤을 내려놓은 에리멘은 라모스에게 말하며 그대로 자리에서 사라졌다.
‘파비앙에 관한 정보?’
에리멘이 진짜 갔다는 것을 확인한 라모스는 책상 위의 스크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스크롤을 펼쳤다.
“호오…….”
스크롤을 보며 라모스는 탄성을 내뱉었다.
“벌써 이 부분까지 추적을 했다니.”
그리고 씨익 웃었다.
“대단하군.”
다른 국가들은 키메라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아무리 키메라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하지만 지원 때문에 정신없이 바쁠 텐데 이 정도로 추적을 하다니?
과연 마탑이었다.
“암당이 아니었으면 벌써 꼬리가 잡혔겠어.”
라모스는 스크롤을 태워 없앴다.
“이걸 나한테 알려줬다는 건…….”
그리고 말끝을 흐리며 생각했다.
현재 마탑에서 어디까지 추적을 했는지.
파비앙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움직일 예정인지 쓰여 있었다.
이런 것들을 알려준 이유는 뻔했다.
“흐흐.”
라모스는 음흉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