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8
제 318화
316.
먼 옛날 에르테는 중간계로 소환을 당한 적이 있었다.
당장 소환사를 죽이고 11마계로 돌아가려 했으나 흥미 돋는 소환사의 제안에 결국 에르테는 소환사와 계약을 하고 중간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곳을 파괴했다.
그러던 중 용을 만났다.
드래곤과 비슷하지만 살짝 다른 용.
쉴 새 없이 독을 뿜어내는 용의 모습에 에르테는 엄청난 흥미를 느꼈고 바로 용과 전투를 벌였다.
용은 강했다.
특히나 뿜어내는 독이 지독히 강력했다.
웬만한 독에 면역이 된 육체임에도 불구하고 투기로 몸을 보호하지 않으면 다가가지 못할 정도였다.
투기로 몸을 보호한 채 에르테는 용을 계속해서 공격했고 결국 승기를 잡았다.
하지만 이어진 상황에 에르테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숨통을 마무리하려 했던 그때 용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 인간…….’
용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이 나타났다.
인간은 매우 화난 표정으로 에르테에게 말했다.
용을 다치게 한 게 네 녀석이냐고.
에르테는 인간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인간에게서 용 못지않은 마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에르테는 인간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용에게 많은 힘을 썼지만 전투가 어렵지는 않았다.
마법이 위협적이긴 했지만 용과 달리 독을 풀풀 풍기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몸을 보호하는 데 투기를 많이 쓸 필요가 없었고 결국 오랜 전투 끝에 에르테는 또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에르테는 당황하고 말았다.
숨통을 끊기 직전 인간 역시 용과 마찬가지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느껴지는 말도 안 되는 마력에 에르테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상대한 인간, 용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마력이었다.
이내 마력의 주인이 나타났고 에르테는 멍한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거대한 마력의 주인.
주인의 정체는 바로 사라졌던 인간이었다.
멍하니 인간을 보던 에르테는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상대하던 것은 인간의 분신이라는 것을.
분신, 용과의 전투에서 많은 기운을 쏟아부은 에르테는 결국 후퇴를 결정했다.
“그 인간은 아니겠지.”
벌써 인간을 만난 지 200년 정도가 됐다.
아무리 인간 같지 않은 마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인간이다.
죽었을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인간이라니?”
에르테의 중얼거림을 듣고 있던 모르테가 물었다.
“아니다.”
모르테의 물음에 에르테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그리고 이어 아르펭에게 말했다.
“코잔이 오는 대로 부대 편성을 할 거다. 준비해.”
“알겠습니다.”
“칼롱.”
아르펭이 답했고 에르테는 이어 칼롱을 불렀다.
“옙.”
“지하에 연락 넣어. 때가 됐다고.”
* * *
“…….”
코잔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전방을 바라볼 뿐이었다.
바로 앞.
아사크가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아사크는 움직이지 않았다.
기절한 것은 아니다.
한 줌의 투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사크가 죽어?’
코잔은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사크가 누구던가?
에르테와 전투를 벌여도 쉽게 지지 않을 정도로 육체가 단단한 아사크였다.
그런 아사크가 인간의 공격에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죽었다.
물론 그 몇 초 동안 느껴진 마력을 생각하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그 마력이라면 죽는 것이 당연했다.
바로 그때였다.
“플레임.”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잔은 인간의 목소리와 심장에서 느껴지는 마력 그리고 열기를 동반한 고통에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투기를 뿜어내 열기를 밀어냈다.
열기를 밀어낸 코잔은 재빨리 인간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열기가 느껴졌던 곳을 보았다.
가슴에 심한 상처가 나 있었다.
코잔은 인상을 쓴 채 고개를 들어 인간을 보았다.
“독의 늪.”
그 순간 인간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발밑에 지독한 독 웅덩이가 나타났다.
코잔은 하늘로 재빨리 뛰어오르며 투기로 전신을 보호하며 생각했다.
‘피해야 하나? 아니면 더 알아봐야 하나?’
이 자리를 피해야 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바로 피할지 아니면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 알아낼지 고민이 됐다.
‘피하는 게 어렵지는 않지만.’
인간의 마법은 엄청난 마력을 동반한다.
마법이 일어나는 위치야 금방 파악할 수 있고 투기로 보호막을 만들었으니 피할 시간을 벌 수 있다.
문제는 실수를 할 때였다.
만에 하나 인간의 마법을 피하지 못한다면?
스윽
코잔은 아사크의 시체를 보았다.
‘맞으면 죽는다.’
계속해서 고민을 할 수는 없다.
코잔은 이내 고민을 끝냈다.
‘조금만 더 알아보자.’
지금 인간에 대해 알아낸 것은 엄청난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둠으로 이루어진 소환수를 부린다는 것, 독을 뿜어내는 용을 다룬다는 것뿐이었다.
아직 보지 못한 특별한 능력이 있을 수 있다.
‘육체가 뛰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캐내야 한다.
코잔은 인간을 주시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인간의 앞에 뭔가가 나타났다.
어둠으로 이루어진 소환수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분신?’
아무래도 분신인 것 같았다.
‘내 시선을 분산시키려고?’
분신을 만든 이유가 궁금했다.
‘아니지, 그럴 거면 내 시야를 가리고 했어야지.’
이미 본체가 무엇인지 분신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마력도 차이가 나고.’
거기다 분신 역시 마력을 품고 있었다.
인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구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인간이 분신에게 무어라 중얼거렸다.
거리가 멀어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중얼거림을 듣자고 다가갈 수는 없었다.
이미 주변 공간은 인간의 마법에 장악당했다.
조금 더 다가갔다가는 마법에 갇히고 말 것이다.
“……!”
인간과 분신을 주시하던 코잔은 움찔하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스아악!
그리고 코잔이 사라진 자리에 불꽃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뭐야?’
코잔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신이 마법을?’
불꽃에서 느껴진 마력으로 보아 인간이 사용한 마법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분신이 사용한 것인데 분신이 마법을 사용하다니?
‘지켜보길 잘했어.’
바로 갔다면 분신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큰 화로 돌아왔을 것이다.
인간과 분신이 번갈아가며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강한 마력과 상대적으로 약한 마력이 주위에서 계속해서 느껴졌다.
코잔은 마법을 피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인간과 분신의 능력을 파악했다.
‘생각보다 분신의 마력도 강하군. 이 정도면 상급 발록들도 힘들겠어.’
분신의 마법은 분명 인간의 마법과 비교해 확실히 약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약한 분신의 마법도 상급 발록들에게는 아주 큰 위협이 될 수준이었다.
스악!
이내 분신이 사라졌다.
‘시간제한이 있군.’
분신의 약점까지 확인을 한 코잔은 크게 거리를 벌렸다.
더 이상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어 보였다.
‘아사크…….’
코잔은 아사크를 떠올리고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빠르게 본궁으로 향했다.
* * *
-사냥왕 : 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사냥왕은 연중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귓속말을 보내는 사냥왕의 표정에는 당황이 물씬 담겨 있었다.
당황한 이유, 그것은 바로 방금 전 연중에게서 온 귓속말 때문이었다.
-사냥왕 : 포탈이 파괴된다니요?
-연중 : 발록들 정리를 하려고 수혁이가 11마계에 잠시 갔는데 퀘스트를 받았다고 합니다.
-연중 : 그런데 퀘스트 완료 보상이 포탈 파괴라고 하네요.
-연중 : 10마계 포탈은 유지가 되지만 11마계에서 10마계로 돌아오는 포탈이 사라질 것 같습니다.
-연중 : 퀘스트 취소도 안 되고 조건 충족 시 강제 완료라…….
이내 연중에게서 귓속말이 우루루 쏟아져 왔다.
“아…….”
사냥왕은 탄성을 내뱉었다.
탄성을 들은 윤진과 레아, 제왕 길드원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사냥왕을 보았다.
“잠시.”
사냥왕은 눈빛에 답한 뒤 다시 귓속말에 집중했다.
-사냥왕 : 그럼 다시 돌아오려면 죽거나 아니면 새로운 포탈을 찾아야겠군요.
-연중 : 예, 아무래도…….
-연중 : 잠시만요.
-연중 : 다행이네요. 파괴 안 됐다고 합니다.
“……?”
생각에 잠겨 있던 사냥왕은 귓속말을 보고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연중 : 최상급 발록이 도망을 가서 퀘스트가 취소됐답니다.
이어 연중의 귓속말이 도착했다.
“…….”
연중의 귓속말을 본 사냥왕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최상급 발록이 도망가?’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수혁과 최상급 발록이 충돌했고 최상급 발록이 도망을 갔다는 점이었다.
‘최상급 발록이?’
* * *
[코잔이 거점에서 도망갔습니다.]
[퀘스트 ‘거점을 장악한 발록들’이 삭제되었습니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법을 피하던 코잔이 이내 도망을 쳤다.
그리고 코잔이 도망을 치며 퀘스트 역시 취소가 됐다.
포탈이 파괴될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수혁은 메시지를 보며 생각했다.
‘아니면 아쉽다고 해야 하나.’
코잔을 잡으려 끝없이 마법을 시전했다.
하지만 코잔은 마법을 전부 피해버렸다.
맞추고 싶어도 맞출 수가 없었다.
마법으로 공간을 장악해 가두려 해도 귀신같이 거리를 벌렸다.
‘더 강한 녀석들이 있을 텐데.’
최상급 발록이긴 하지만 11마계의 최강자가 코잔은 아닐 것이다.
더 강한 발록이 최소 하나쯤은 존재할 것이다.
‘어떻게 잡지?’
코잔도 마법을 피하는데 더 강한 발록들이 피하지 못할 리 없다.
만약 코잔처럼 거리를 벌린 채 이리저리 공격을 피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동을 막아야 하는데.’
움직임을 봉쇄해야 했다.
‘바로 묶을 수 있는 스킬이 없으니…….’
이동에 제한을 주는 스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람 속성, 어둠 속성 그리고 환상 속성 스킬 중에는 이동에 제한을 주는 스킬이 있었다.
하지만 다들 약점이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야 하거나 아니면 발현 시간이 길다는 점이었다.
코잔의 이동을 제압하지 못한 것도 다 거리가 멀고 발현되기 전 영역을 벗어나기 때문이었다.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발현 시간도 짧은 마법이 필요했다.
‘블랙홀을 배워야 하나.’
수혁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일단 연중에게 현 상황을 알렸다.
-수혁 : 연중아 퀘스트 취소됐다. 포탈 파괴 안 됐어.
-연중 : 엥? 퀘스트 취소?
얼마 지나지 않아 연중에게서 답이 도착했다.
-연중 : 취소 안 된다며?
-수혁 : 도망을 갔어. 최상급 발록이.
-연중 : 뭐? 발록이 도망을 가?
-수혁 : 응, 주변 정리 다 끝나고 다시 귓 할게.
도망간 것은 코잔뿐이다.
아직 주변에는 발록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어둠의 자식, 어둠의 자식.”
수혁은 어둠의 자식들을 재소환했다.
그리고 이어 유령마를 소환해 주변을 돌아다니며 남아 있는 발록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