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2
제 382화
380.
코단은 오렉의 말에 흠칫했다가 이내 표정을 관리하고 답했다.
“……그딴 짓이라니?”
“이미 눈치챘을 텐데?”
오렉은 코단의 말에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 카진의 옆에 서 있는 사내를 가리켰다.
“저자가 누구인지.”
다른 이들은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코단은 아니다.
이미 코단은 저 사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둘의 대화에 카츄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머릿속이 심란했는데 둘의 대화를 듣고 더욱더 심란해졌다.
“저 사내가 누군데? 그리고 짓이라니? 그 편지에 적힌 것들을 말하는 건가?”
연달아 질문을 쏟아낸 카츄는 오렉과 코단을 보았다.
“우선 카진 옆에 있는 저 사내는.”
카츄의 물음에 오렉이 사내를 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에게 편지를 보낸 자입니다.”
“뭐? 그러면…….”
카츄는 오렉의 말에 놀란 표정으로 반문을 했다가 이어 말끝을 흐리며 사내를 보았다.
“예.”
오렉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사내의 모습이 스르륵 흔들리더니 이내 새로운 모습이 드러났다.
“리치 코레몬드입니다.”
사내의 정체는 바로 아크 리치 코레몬드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코레몬드라고 합니다.”
코레몬드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냉소를 지으며 코단을 응시했다.
코레몬드의 등장에 오렉은 히죽 웃었고 코단은 표정을 구겼으며 나머지 마탑장들은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기야 편지를 보낸 장본인이자 리치인 그가 마탑의 중심부에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전 여러분들과 달리 어제 편지를 받았습니다.”
다른 마탑장들은 오늘 코단의 행위를 알았겠지만 오렉은 아니었다.
“편지의 내용도 여러분들과 살짝 달랐죠. 처음에는 함정이 아닐까 싶었지만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증거를 보며 그 말도 안 되는 짓이 사실이라는 걸…….”
“말도 안 되는 일!”
오렉의 말에 마탑장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코단이 오렉의 말을 끊으며 벌떡 일어났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믿는 건 아니겠지요?”
“뭐가 말이 안 된다는 거지?”
“어떻게 저 리치를 만난 거지?”
코단이 물었다.
그러자 마탑장들의 시선이 오렉에게 향했다.
그러고 보니 코레몬드는 리치였다.
리치인 코레몬드를 어찌 만난 것일까?
편지에 무슨 내용이 쓰여 있었기에?
“편지의 내용이 아주 흥미로웠어. 가깝기도 했고.”
“고작 그런 이유로 리치를 만났다고? 함정일지도 모르는데?”
“그래, 너에게는 고작이겠지만 나에게는 고작이 아니었거든. 마탑장과 리치들의 연대!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세상에 퍼지게 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상황이 더욱 악화될 테니까!”
얼마 전 있었던 키메라 사태.
사태를 주도했던 이는 바로 독의 마탑장 자리를 두고 파비앙과 경쟁했던 ‘라모스’였다.
그래서 마탑이 배후에 있던 것은 아니냐? 라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리치들과의 연대가 알려진다면?
그리고 그 연대를 한 이가 마탑장 중 한 명이라면?
난리가 날 것이고 잠잠해진 키메라 사태 또한 다시 불거질 것이었다.
“그리고 날 잡을 정도의 함정? 환상의 마탑장인 날?”
말을 마친 오렉은 피식 웃었다.
“…….”
“…….”
오렉의 말을 들은 마탑장들은 고개를 돌려 코단을 보았다.
코단은 마탑장들의 시선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그 증거라는 것이 뭐지? 설마 리치의 말만 믿고 날 모욕한 것은 아니겠지?”
“당연히.”
오렉이 고개를 끄덕였다.
코레몬드의 말뿐이었다면 이렇게 일을 키우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서 코레몬드를 죽였을 것이다.
“이제 증거들을 볼 차례야.”
스윽
오렉은 품에서 수정구를 꺼냈다.
“여기에 정말 엄청난 것이 담겨 있었지.”
그리고 수정구에 마나를 주입했다.
스아악!
그러자 수정구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허공에 영상이 나타났다.
“……!”
코단은 영상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들이!’
영상에는 플라밍, 올렉플라모스 그리고 코레몬드와 코단이 나와 있었다.
-용의 알 준비는 어떻게 됐지?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다.
.
.
-근데 왜 우리와 손을 잡은 거지? 마탑에는 우리보다 강한 녀석들이 많지 않나?
-흥, 그래서 안 하는 거다.
.
.
-이 일이 끝나고 우릴 배신하지는 않겠지?
-걱정 마라. 어차피 이 일만 끝나면…….
코단이 말끝을 흐리는 것으로 수정구의 영상은 끝났다.
“다른 증거들도 더 보여 줘야 하나?”
오렉이 코단에게 말했다.
“…….”
코단은 오렉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영상이 너무나 선명했다.
거기다 증거는 이게 끝이 아닐 것이다.
‘변명은 해봤자고.’
마탑장들의 표정을 보아 어떤 변명을 하든 믿지 않을 것 같았다.
‘벌써 떠날 생각은 없었는데.’
오기 전 아소멜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코단은 마탑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코레몬드를 잡았다면 모를까 잡지 못한 상황에서 마탑에 머무는 것은 너무나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떠나기로 했지만 당장 떠날 생각은 아니었다.
챙겨야 할 것이 많았기에.
“……코단? 왜 말이 없지?”
카츄가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군요.”
생각에 잠겨 있던 코단은 카츄의 말에 답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말은 편지의 내용을 인정한단 말인가?”
코단의 말과 행동에 카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아, 그건…….”
말끝을 흐린 코단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품에 재빨리 손을 넣어 작은 구슬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쩍! 스아악!
그러자 구슬이 깨졌고 그와 동시에 반투명한 검은색 막이 코단을 감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코단의 발밑에 작은 마법진이 나타났다.
지정된 좌표로 워프를 할 수 있는 마법진이었다.
“코단!”
코단의 도망을 눈치챈 오렉이 재빨리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나 오렉의 마법은 보호막에 그대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오렉의 마법뿐만이 아니었다.
파비앙, 카츄 등 각 마탑장들 역시 마법을 날렸다.
그러나 오렉의 마법과 마찬가지로 전부 보호막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이야, 정말 엄청난 보호막이야.”
코단은 마탑장들의 마법을 흡수했음에도 아무런 변함없는 보호막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쉽게 됐어.”
그리고 이어 마탑장들을 보며 말했다.
“아주 자연스레 마탑을 먹을 수 있었는데 말이야.”
코단의 최종 목적은 중앙 마탑장.
라피드 이후 없었던 2대 중앙 마탑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나를 놓친 이 날. 이날을 후회하게 될 거다.”
스아악!
코단의 말이 끝난 순간 마법진에서 검은빛이 뿜어져 나왔고 코단은 빛과 함께 자리에서 사라졌다.
“…….”
“…….”
그렇게 코단이 사라지고 정적이 감돌았다.
그 어떤 마탑장도 입을 열지 않았다.
무거운 분위기가 회의실 내부를 지배했다.
스아악!
영원할 것 같았던 정적이 얼마 뒤 깨졌다.
정적을 깬 것은 마탑장들이 아니었다.
바로 중앙 부마탑장 코알이었다.
“큰일 났습……?”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코알은 너무나도 무거운 회의실 분위기에 당황했다.
“……무슨 큰일이 났다는 건가?”
카츄가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큰일이 또 머리를 아프게 할지 듣기 전부터 짜증이 났다.
“……빛의 마탑이 폭발했습니다.”
코알은 카츄와 다른 마탑장들의 분위기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뭐?”
“……!”
“이런!”
마탑장들의 표정에 당혹이 나타났다.
* * *
캡슐에서 나온 수혁은 컴퓨터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두 번째 메인 에피소드 ‘마탑의 배반자’가 시작됐다.
에피소드의 이름이 ‘마탑의 배반자’인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다.
도대체 누가 배반을 한 것일까?
한 사람일까?
아니면 여러 사람일까?
혹은 마탑 몇 개가 아예 배반을 한 것일까?
여러 궁금증이 수혁의 머릿속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내 컴퓨터 앞에 앉은 수혁은 바로 판게아의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메인 페이지에 ‘마탑의 배반자’라는 배너가 생겨 있었다.
수혁은 배너를 클릭했다.
“……대박.”
메인 에피소드 ‘마탑의 배반자’ 시작 스토리를 확인한 수혁은 짧게 중얼거렸다.
시작 부분에 배반자가 누구인지 나와 있었다.
‘코단이라면 그때 그 마탑장이잖아?’
마탑을 배신한 이는 빛의 마탑장 코단이었다.
‘배신한 이유가 뭐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최고의 자리가 마탑장이란 자리였다.
코단이 왜 마탑을 배신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내 수혁은 시작 스토리를 전부 읽고 코단이 배신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배후가 있구나…….’
코단에게는 또 다른 세력이 존재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나온 단어들로 보아 마탑보다 더 거대한 세력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 메인 에피소드 ‘마탑의 배반자’는 그 세력을 조사하는 에피소드였다.
‘설마 암당은 아니겠지?’
문득 암당이 떠올랐다.
‘암당도 어마어마하게 큰데…….’
대륙 곳곳에 지부가 있는 암당이었다.
거기다 은밀하기까지 했고 정보의 수준도 높았다.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띠리리리리!
벨 소리가 들려왔다.
연중에게서 온 전화였다.
수혁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봤어?
메인 에피소드 ‘마탑의 배반자’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어, 지금 막 다 봤어.”
-올 거야? 아니면 갈 거야?
수혁이 답하자 연중이 재차 물었다.
“마탑?”
-응.
“일단 마계부터 갈 거야. 확인할 것도 있고 도서관도 보고 싶고.”
마탑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수혁은 바로 갈 생각이 없었다.
실험할 것도 있고 도서관도 두 눈으로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돌아가는 거야 어차피 금방이니까.”
거기다 마탑으로 돌아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다.
아공간을 통해 언제든 이동이 가능했다.
-그럼 바로 접속할 거야?
“어어, 지금 들어가려구.”
-알겠어.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 자세한 건 들어와서 이야기하자!
“응.”
수혁은 연중과의 대화를 끝내고 캡슐로 들어갔다.
그리고 접속과 동시에 펫 창을 열어 풍을 소환해 다시 칼로디안 산맥으로 향했다.
풍의 비행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빨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혁은 12마계 포탈이 있는 ‘미궁의 유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궁의 유적에 입장하셨습니다.]
[이미 탐사가 끝난 유적입니다.]
풍이를 역소환하고 유적에 들어온 수혁은 성큼성큼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기가 그 미궁이구나.’
얼마 뒤 수혁은 미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혁이 미궁에서 헤매는 일은 없었다.
연중과 사냥왕이 출구까지 표시를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표시를 따라 걸음을 옮긴 수혁은 곧 미궁을 벗어났고 세 개의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운데라고 했지.’
수혁은 가운데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수혁은 포탈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포탈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췄던 수혁은 다시 걸음을 옮겨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12마계에 입장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