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6
제 486화
484.
바로 그때였다.
똑똑
“하이도롬 님이 오셨습니다.”
노크와 함께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병사의 말에 모아쿠이와 쿠레는 약속이라도 한 듯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 뒤 문을 보았다.
수색 이후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하이도롬이다.
갑자기 왜 찾아온 것일까?
설마 지원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일까?
“모시게.”
모아쿠이가 말했다.
끼이익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며 하이도롬이 들어왔다.
모아쿠이는 하이도롬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무슨 이유로 온 것인지 추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어진 하이도롬의 말에 모아쿠이는 어째서 하이도롬이 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지원을 요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물론이지요.”
모아쿠이는 하이도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암당에서는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저희 쪽에서는…….”
하이도롬은 말끝을 흐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모아쿠이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던 하이도롬이 감정을 보이자 불길함을 느꼈다.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
이어진 하이도롬의 말에 모아쿠이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철수? 철수를 한단 말입니까? 지금 와서?”
모아쿠이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연달아 질문을 날렸다.
“예.”
하이도롬이 답했다.
질문은 많았지만 답은 한 번으로 족했다.
“…….”
“…….”
하이도롬의 답에 모아쿠이는 물론이고 같이 이야기를 듣던 쿠레 역시 입을 열지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정적을 깬 것은 모아쿠이였다.
“폐하께서 군선 70척을 보냈습니다. 왕궁 마법단까지 보내셨지요.”
“……!”
하이도롬은 모아쿠이의 말에 살짝 놀랐다.
‘이렇게까지?’
군선 70척이면 로쿤 왕국 전력의 30%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거기다 왕궁 마법단까지 함께한다면 50%나 마찬가지다.
‘심해의 정을 알고 있는 건가?’
암당이 키룬을 찾은 이유인 심해의 정.
그러나 로쿤 왕국에 심해의 정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인원을 보낸 것을 보면 아무래도 심해의 정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상대가 마탑이니 강한 힘이 필요하긴 했다.
그러나 오히려 상대가 마탑이기에 강한 힘을 보이면 안 된다.
마탑과 정면 승부를 하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론 하이도롬은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로쿤 왕궁 전력의 50%가 온다고 해도 마탑에는 수혁이 있다.
페이드 제국 같은 강대국이라면 모를까 로쿤 왕국에는 수혁을 이길 강자가 없다.
어린아이가 계란 수백 개를 던진다고 균열 하나 보이지 않는 바위가 깨질 일은 없다.
더구나 수혁만 있는 게 아니다.
마탑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손을 떼시는 겁니까?”
모아쿠이가 물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하이도롬은 모아쿠이의 물음과 분위기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욕심이 가득하군.’
이내 이상함의 정체를 깨달은 하이도롬은 생각했다.
마탑과의 정면 승부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을 독차지하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음…….”
하이도롬은 침음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로쿤 왕국의 힘이 필요하긴 한데…….’
로쿤 왕국은 다른 국가들과 다르다.
흑월과 아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였다.
만약 마탑과 전면전을 하게 된다면?
두 개 마탑이라고 해도 수혁이 있으니 로쿤 왕국의 필패다.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다.
흑월의 입장에서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존재를 알려야 하나?’
하이도롬은 수혁에 대해 알려줄까 생각했다.
‘믿지를 않을 텐데.’
로쿤 왕국은 흑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흑월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강한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한 사람을 피한다?
믿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수를 쓰는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서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
생각을 마친 하이도롬은 모아쿠이에게 답을 했다.
‘아소멜과 다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
* * *
“후우.”
아소멜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방에서 나온 아소멜은 부당주 기로스의 방으로 향했다.
‘미치겠군.’
기로스의 방으로 향하며 아소멜은 생각했다.
‘심해의 정을 놓치다니.’
방금 전 하이도롬과 이야기를 나눴다.
마탑에서 심해의 정을 가져간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심해의 정을 위해 많은 것을 투자했다.
그런데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에 가슴이 쓰라렸다.
‘수혁만 아니었어도.’
수혁이 보이지 않았다면 흑월대를 동원해 마탑을 공격했을 것이다.
심해의 정은 그 정도로 중요했다.
거기다 마탑장을 둘이나 처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수혁이 있어 흑월대를 동원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철수뿐이었다.
철수가 최선의 선택이었다.
똑똑 끼이익
이내 기로스의 방에 도착한 아소멜은 노크 후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서류에 파묻혀 있는 기로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로스를 보며 아소멜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오셨습니까.”
서류에 집중하고 있던 기로스는 고개를 들었고 아소멜을 발견한 뒤 인사했다.
기로스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심해의 정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아.”
아소멜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대로 자리에 서서 말했다.
재빨리 말하고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예?”
기로스는 아소멜의 말에 의아함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반문했다.
“마탑에서 심해의 정을 손에 넣었어.”
“…….”
아소멜의 말에 기로스는 잠시 침묵했다.
“그럼 계획은…….”
이내 침묵을 깬 기로스가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전부 백지화.”
“…….”
기로스는 다시 침묵했다.
입을 다문 채 멍한 표정으로 아소멜을 바라보았다.
아소멜은 기로스의 멍한 표정에 난감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었다.
“새롭게 계획을 짜야 할 것 같아.”
아소멜의 말에 멍했던 기로스의 표정에 어둠이 가득 나타났다.
“틀이 잡히면 알려줄게.”
말을 마친 아소멜은 재빨리 방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으로 돌아온 아소멜은 책상 위에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수정구를 보고 멈칫했다.
하이도롬과 연결되어 있는 수정구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소멜은 재빨리 수정구로 다가가 마나를 주입했다.
“예, 하이도롬 님.”
-지금 상황이 좀 난감해졌습니다.
말을 함과 동시에 하이도롬이 답했다.
“……무슨 일인가요?”
-로쿤 왕국에서 군선 70척에 왕궁 마법단을 보냈다고 합니다.
“아…….”
아소멜은 탄식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이런 멍청한…….’
어리석고 또 어리석었다.
“그냥 내버려 두시고 바로 철수해주십시오. 로쿤 왕국 쪽은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예, 그럼 돌아가서 뵙지요.
수정구에서 빛이 사라졌다.
“후…….”
깊게 한숨을 내뱉은 아소멜이 중얼거렸다.
“그래, 어차피 한 번 겪어야 할 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로쿤 왕국은 앞으로도 흑월과 함께 갈 곳이었다.
가장 큰 적이라 할 수 있는 수혁의 힘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 * *
“이제 돌아가나요?”
수혁이 물었다.
모든 건물을 수색했다.
더 이상 나올 아티팩트는 없었다.
이제 키룬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돌아가야겠지.”
파비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남아 있는 아티팩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심해의 정 제작서를 없앴다.
남은 아티팩트가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심해의 정 제작서를 없앤 것만으로도 키룬에 온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근데 문제가 하나 생겼어.”
파비앙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수혁은 파비앙의 말에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로쿤 왕국의 군선들이 몰려왔어.”
“아…….”
파비앙의 말에 수혁은 탄성을 내뱉었다.
바로 그때였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오렉이 들어왔다.
“로쿤 왕국 녀석들이 뭐 어쨌다고?”
오렉은 들어오자마자 수혁을 힐끔 보고는 파비앙에게 물었다.
“우리 앞을 막을 것 같다.”
파비앙이 답했다.
“우리 앞을?”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을 듣게 된 오렉은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어, 일단 보이는 군선만 50척, 얼마나 더 올진 알 수 없고.”
“로쿤 왕국의 왕이 드디어 미친 건가?”
파비앙의 말에 오렉이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현재 키룬에는 로쿤 왕국의 공작이 와 있었다.
그러나 군선 50척은 공작의 입김으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 아니었다.
왕이 움직인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할 거야? 바로 싸워?”
“일단 이야기를 해봐야겠지.”
가장 좋은 것은 이야기로 해결하는 것이다.
굳이 피를 볼 필요는 없었다.
“만약 아티팩트를 넘겨 달라 하면?”
“싸워야겠지.”
“그럼 전투를 준비해야겠군.”
오렉이 말했다.
이야기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필히 전투가 일어날 것이었다.
* * *
“모아쿠이 공작님을 뵙습니다.”
“와주셔 감사합니다. 호빌 님.”
모아쿠이는 로쿤 왕국의 왕궁 마법단장 호빌의 인사에 활짝 웃으며 답했다.
“자세한 상황을 듣지는 못해서 그런데 어떤 상황인지…….”
호빌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탑과 분쟁이 생겼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단지 군선이 70척이나 된다는 것 그리고 왕궁 마법단이 전부 나선 것.
이 두 가지로 보통 분쟁이 아니라는 것만 예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모아쿠이는 호빌의 물음에 주변을 슬쩍 보았다.
방 안에는 호빌의 뒤를 따라 들어온 마법사들이 있었다.
“잠시 나가 있어.”
모아쿠이의 시선을 본 호빌이 말했다.
호빌의 말에 왕궁 마법사들이 방에서 나갔다.
왕궁 마법사들이 나가자 모아쿠이는 키룬, 상위 아티팩트 그리고 안쪽을 장악한 마탑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상위 아티팩트는 전부 마탑에서 가지고 있겠군요.”
“예.”
바로 그때였다.
똑똑 끼이익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을 연 이는 바로 쿠레였다.
쿠레가 다급히 외쳤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떠나려 하는 것 같습니다!”
“……!”
“……!”
모아쿠이와 호빌은 쿠레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곤 기사단장을 불러주고 시간을 좀 끌게.”
“옙.”
쿠레는 모아쿠이의 말에 답하고 다시 방에서 나갔다.
“저도 준비하러 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호빌 역시 방에서 나갔고 홀로 남게 된 모아쿠이는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마탑의 마법사들이 장악했던 키룬의 안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놓고 가야 할 것이다!’
암당이 손을 뗐다.
즉, 마탑이 얻은 아티팩트들은 전부 로쿤 왕국의 것이 될 수 있다.
마탑과 크게 척을 지게 되겠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흑월과 함께하기로 한 순간부터 마탑과의 관계는 포기했다.
바로 그때였다.
끼이익
문이 열렸고 모아쿠이는 뒤로 돌았다.
“……?”
뒤로 돈 모아쿠이는 살짝 당황했다.
아이곤 기사단장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문을 연 것은 아이곤 기사단장이 아니라 호빌이었다.
“호빌 님?”
준비를 하러 떠난다 했던 호빌이 갑자기 왜 다시 돌아온 것일까?
“고, 공작님.”
호빌은 말을 더듬으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허공을 힐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