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더 읽는자-489화 (489/553)

# 489

제 489화

487.

원래 책을 읽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방금 전 오렉이 깨준 브리니스와의 어색함이 아직도 남아 신경 쓰이게 하고 있었다.

‘해결해야 하긴 하는데…….’

수혁은 브리니스를 힐끔 보았다.

브리니스는 흑월에 속한 이였다.

거기다 수혁은 브리니스의 아버지이자 하프 블러드의 수장이었던 클레인을 죽였다.

브리니스와의 관계는 최악 그 자체였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이런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브리니스는 불의 마탑장이다.

마탑 권력의 정점 중 한 명!

이대로 상황을 유지하다가는 큰 위험이 다가올 것이다.

‘이야기를 한번 나눠볼까?’

일단 브리니스의 생각이 어떤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자니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수혁이 고민을 하고 있던 사이 특별 참가자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빛의 마탑 1등급 마법사 레보니스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렉 님!”

“카이오르그라고 합니다. 빛의 마탑 아이코 지부를 맡고 있습니다.”

대기실로 들어온 마법사들은 우선 오렉과 브리니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이어 수혁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레보니스라고 합니다!”

“전 아페니오시스라고 합니다!”

어디에서나 그렇듯 특출난 관심을 받는 이들이 있다.

이번 대회에는 총 셋이 있었다.

셋 중 둘은 이미 하나의 마탑을 이끌고 있는 브리니스와 오렉이었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수혁이었다.

측정불가의 재능이자 수많은 사건의 주인공.

10개 마탑 중 하위권에 위치했던 독의 마탑을 상위권으로 올린 존재.

수혁이 관심을 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수혁은 마법사들의 인사를 받으며 오렉과 브리니스를 힐끔힐끔 확인했다.

브리니스는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오렉은 어째서인지 심기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반 참가자들의 1차 본선이 끝났습니다.”

시간이 흘렀고 이내 대기실 관리를 맡은 오엔이 들어와 말했다.

“먼저 하실 분 계십니까?”

오엔의 물음에 마법사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몇몇 마법사들이 일어나려는 순간.

“내가 먼저 가지.”

오렉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마법사들은 오렉에 의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오렉보다 먼저 하겠다고 의견을 표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옙, 이쪽으로.”

오엔은 오렉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엔이 돌아왔다.

“다음에 치르실 분 계십니까?”

오엔이 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과 달리 그 누구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로 눈치를 볼 뿐이었다.

하기야 마법사들의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다.

오렉의 다음 차례였다.

비교를 당할 것이 분명했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참가 목적이 대회 우승이 아니라 이름을 알리는 것이었다.

수혁은 마법사들이 눈치만 보고 말을 하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하죠.”

“……감사합니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오엔은 수혁의 말에 미소를 지었고 수혁은 오엔의 뒤를 따라 대기실에서 나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 뒤 수혁은 출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출구에서는 오렉이 내려오고 있었다.

오렉은 수혁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수혁을 지나쳐 대기실로 향했다.

수혁은 오렉의 행동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올라가시면 가운데 석판이 있을 겁니다.”

출구를 나서기 전 오엔이 말했다.

“석판을 향해 빛 속성 마법을 시전해주시면 됩니다. 방어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혹시 모르니 광역 마법을 사용하실 때에는 마나 조절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오엔의 말을 듣고 수혁은 출구를 나섰다.

그리고 수혁은 볼 수 있었다.

오엔이 말한 빛의 석판과 주변을 가득 채운 수많은 관중을.

-이번 참가자는 독의 마탑장 파비앙 님의 제자 수혁 님입니다!

사회자가 외쳤다.

“와! 수혁이다!”

“수혁! 수혁! 수혁!”

“수혁 님 사랑해요!”

그리고 사회자의 외침에 관중들이 함성을 내뱉었다.

수혁은 함성을 들으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이 오셨네.’

관중석에는 NPC도 많았지만 유저 역시 많이 보였다.

솔직히 1차 본선은 별게 없다.

빛 속성 마법으로 빛의 석판에 흠집을 만드는 것.

그것이 끝이다.

볼 게 별로 없는 것이다.

NPC들이야 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유저들이 이렇게 많이 올 줄은 예상 못 했다.

‘어떤 마법을 시전할까.’

수혁은 고민했다.

이미 한 번 빛의 석판을 가루로 만든 적 있는 수혁이었다.

당시 라이트 애로우를 시전했다.

라이트 애로우로 가루를 만든다면 분명 엄청난 관심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충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수혁은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

석판 앞에 도착한 수혁은 고민을 끝내고 입을 열었다.

“빛의 심판.”

수혁이 선택한 마법은 바로 빛의 심판이었다.

허공에 마법진이 나타났고 이내 빛이 튀어나와 석판을 강타했다.

그리고 석판은 그대로 가루가 되어 무너졌다.

“…….”

“…….”

석판이 무너지고 정적이 감돌았다.

정적을 깬 것은 사회자였다.

-빛의 석판이 완벽히 파괴됐습니다!

사회자의 목소리에는 놀람이 가득했다.

“와, 미친! 개쩐다!”

“지혜가 몇이에요!”

“템 공개 한 번만 해주세요!”

그리고 이어 함성이 울려 퍼졌다.

수혁은 재빨리 출구로 내려갔다.

출구에 도착한 수혁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참가자가 브리니스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어색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고 어색함이 커지기 전 수혁은 재빨리 걸음을 옮겨 브리니스를 지나쳤다.

지나치던 그 순간.

“다음에…….”

브리니스가 말했다.

“이야기 좀 해요.”

“……네.”

수혁은 브리니스의 말에 답했다.

그리고 대기실로 향했다.

대기실로 향하던 중 연중에게서 귓속말이 왔다.

-연중 : 미친, 대박. 마탑장보다 확실히 세구나?

-수혁 : 그게 무슨 소리야?

브리니스를 언제 만나러 가야 할까 고민하던 수혁은 반문했다.

-연중 : 응? 대기실에는 화면 없어?

-수혁 : 아니, 화면 있기는 한데 나오느라 못 봤어.

-수혁 : 어떻게 됐는데?

-연중 : 반파.

* * *

-환상의 마탑장 오렉 님입니다!

“와아아아!”

“사랑합니다. 마탑장님!”

오렉은 관중석에 있는 환상의 마탑 마법사들과 그 외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석판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석판 앞에 도착한 오렉은 석판을 향해 지팡이를 겨눴다.

스아악!

지팡이 끝에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내 바위만큼 커진 빛의 구체가 지팡이를 떠나 석판으로 날아갔다.

쾅!

석판에 작렬한 빛의 구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석판을 돌파하고 뒤쪽으로 날아갔다.

쩌저적!

빛의 구체는 관중석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마법 방어진에 막혀 지지직거리고는 얼마 뒤 사라졌다.

오렉은 빛의 석판을 보았다.

반파였다.

‘역시 빛 속성으로는 한계가 있는 건가.’

빛 속성에 강한 빛의 석판을 반이나 날렸다.

대단한 성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렉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했던 것은 완파.

완전히 날리는 것이 오렉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오오오, 엄청납니다! 그동안 흠집밖에 나지 않았던 빛의 석판이 반이나 사라졌습니다!

-이게 바로 마탑장의 힘!

사회자의 외침에 오렉은 미소를 지으며 출구로 향했다.

출구에 도착한 오렉은 수혁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현재 수혁에 대한 평가는 엄청났다.

마탑장보다 더 대단하다는 평가를 하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오렉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문이란 과장되기 마련이었다.

오렉은 드디어 그 거품을 걷어낼 때가 됐다는 것에 피식 웃으며 수혁을 지나쳐 대기실로 갔다.

대기실에 도착한 오렉은 중계 화면을 보았다.

마침 수혁이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

그리고 이어진 상황에 오렉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렉뿐만이 아니었다.

대기실에 있던 수많은 마법사들도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빛의 석판이 완전히 가루가 되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렉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혁은 마법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지금처럼 성장이 가능할까?

오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재능이 뛰어나다 해도 성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설마…….’

문득 든 생각에 오렉은 미간을 찌푸렸다.

‘배신자가…….’

빛의 마탑장이었던 배신자 코단.

코단 말고 배신자가 더 있다.

혹시나 수혁이 배신자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간 수혁이 보여온 일들을 생각하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 * *

빛의 부마탑장이자 이번 빛의 대회의 총괄을 맡은 헥솔은 인상을 구겼다.

“복원이 안 된다고?”

“예, 교체 후 원인을 파악하고 있는데 파악이 안 됩니다.”

헥솔의 반문에 데모닉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빛의 석판이 복구가 되지 않아 확인해 보았다.

왜 복구가 되지 않는 것인지.

그러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이따 직접 확인해 보지. 지하 3층 연구실로 옮겨놔.”

헥솔이 말했다.

아무래도 빛의 석판을 직접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예.”

데모닉은 헥솔의 말에 답하고 방에서 나갔다.

“도대체…….”

헥솔은 데모닉이 나가고 창가로 다가갔다.

마법사들이 빛의 석판을 향해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마법이 작렬했고 빛의 석판에 커다란 흠집이 나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흠집이 사라지고 빛의 석판이 원상태로 복구가 됐다.

헥솔은 복구가 된 빛의 석판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걸까.”

수혁이 시전한 마법은 ‘빛의 심판’이었다.

빛의 심판이 약한 마법은 아니지만 최상위 마법도 아니었다.

그런데 빛의 석판이 파괴된 것도 모자라 가루가 되었다.

거기다 복원도 되지 않았다.

“오렉 님도 못한 일인데…….”

환상의 마탑장 오렉도 반파하는 데 그쳤다.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마나를 쏟아부었다는 것을 헥솔은 알고 있었다.

“라이트 애로우로 파괴한 것도 진짜인 건가?”

문득 예전에 파비앙과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파비앙과 거래했던 빛의 석판이 박살 났다.

복원도 되지 않았다.

당시 파비앙은 라이트 애로우로 파괴했다고 했다.

대회를 대비한 거짓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설마 관문도 다 통과하는 건 아니겠지?”

빛의 마탑장이었던 코단 역시 끝까지 통과하지 못했을 정도로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하는 빛의 길.

본선 2차는 빛의 길에서 진행된다.

물론 끝까지 통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3번째 관문까지만 통과하면 된다.

“이거이거…….”

그러나 그간 들어 온 수혁의 소문.

그리고 이번에 보여준 빛의 석판을 생각하면 모든 관문을 통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청난 분을 모시게 될 수도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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