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9
제 499화
497.
“예?”
베바는 헥솔의 말에 반문했다.
“그러다가 오렉 님과 수혁 님이 첫 대결에 걸리면…….”
브리니스의 기권으로 우승 후보는 수혁과 오렉 둘뿐이었다.
만약 둘이 첫 대결에서 만난다면?
흥행에 큰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아니.”
베바의 말에 헥솔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이미 기권자가 26명이야.”
헥솔의 생각은 베바와 달랐다.
“추첨이라도 해서 시간을 좀 끌어야지.”
기권자가 많아도 너무나 많았다.
인원이 적으니 대결은 금방 끝날 것이다.
허무하게 보일 수 있다.
마탑장이 선출되는 마지막이 허무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
“거기다 직접 추첨을 보게 되면 더 열광할 거야.”
시간을 벌기에도 좋지만 당일 추첨은 관중들에게 더 많은 흥미를 가져다줄 것이었다.
베바는 헥솔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끄덕임을 멈춘 베바가 물었다.
“방식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직접 추첨으로 가자고.”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헥솔의 답에 베바가 방에서 나갔다.
베바가 방에서 나가고 헥솔은 3차 본선 참가 명단을 확인했다.
-수혁
-오렉
-아이보니브
-레바니온
.
.
* * *
“수혁 님을 포함해 10분이 끝입니다.”
오엔의 말에 수혁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10명이요? 더 많이 통과하지 않았나요?”
수혁은 당황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반문했다.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공식 홈페이지에서 보았다.
통과자는 30명이 넘었다.
“26분이 기권을 했습니다.”
“아…….”
오엔의 말에 수혁은 어째서 10명뿐인지 알 수 있었다.
“이곳이 수혁 님의 대기실입니다.”
이내 수혁은 대기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
오엔이 말끝을 흐리며 손을 내밀었다.
손에는 서류가 들려 있었다.
수혁은 의아한 표정으로 서류를 받아 읽기 시작했다.
일대일 대결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였다.
“여기요.”
수혁은 서명을 한 뒤 서약서를 다시 건넸다.
“이따 추첨 시간에 뵙겠습니다.”
서약서를 받은 오엔은 수혁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대기실에서 나갔다.
수혁은 대기실에 비치되어 있는 탁자 앞에 앉았다.
그리고 캐릭터 창을 열었다.
직업 : 대마도사
레벨 : 1000
경험치 : -
생명력 : 643800
마나 : 2809600
포만감 : 75%
힘 : 1530
민첩 : 1519
체력 : 4088 [2044]
지혜 : 140480 [70240 (+2550)]
맷집 : 10
모험 : 5
마기 : 10
보너스 스텟 : 2490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가장 강한 상대로 추정되는 환상의 마탑장 오렉.
오렉과 일대일 대결을 한다고 해도 지금 지혜라면 질 수가 없다.
가만히 맞아주기만 해도 오렉의 마나가 먼저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 수혁이었다.
그 정도로 지혜는 높았다.
수혁은 캐릭터 창을 닫았다.
그리고 이어 인벤토리를 열어 책을 꺼냈다.
추첨이 중계되고 있었지만 관심 없었다.
누가 상대가 되든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중계 소리를 줄이고 독서를 시작했다.
똑똑 끼이익
얼마 뒤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노크의 주인공은 오엔이었다.
“추첨 시간입니다.”
오엔의 말에 수혁은 인벤토리에 책을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오엔과 함께 방에서 나와 대회장으로 향했다.
“사회자의 말에 따라 움직이시면 됩니다.”
“네.”
오엔의 말에 답한 뒤 수혁은 대회장으로 올라갔다.
-수혁 님입니다!
“와아아아!”
사회자의 외침에 관중들이 환호를 내뱉었다.
앞서 환호를 여러 번 받아 적응이 된 것일까?
표정에 민망함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수혁은 손을 흔들며 환호에 화답했다.
‘저 통에서 뽑으면 되는 건가?’
대회장 위로 올라온 수혁은 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통을 볼 수 있었다.
-수혁 님! 통에서 구슬을 하나 꺼내주시길 바랍니다!
사회자의 말에 수혁은 통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안에 손을 넣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손에 잡힌 구슬을 바로 꺼냈다.
‘1.’
구슬에 적힌 숫자는 1이었다.
-구슬에 적힌 숫자가 제 쪽으로 향하게 들어주시겠습니까!
사회자가 외쳤다.
수혁은 사회자의 말대로 구슬을 들었다.
그러자 중계화면에 수혁이 쥔 구슬이 나타났다.
-1번! 1번입니다!
사회자가 구슬에 적힌 숫자를 외쳤다.
어째서인지 사회자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흥을 돋우기 위해 일부러 흥분하며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어진 사회자의 말.
“대박, 미친 거 아니야?”
“헐, 처음부터 빅매치!”
관중석에서 쏟아져 나오는 외침에 수혁은 이유가 있음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빅매치군요!
-1번 수혁 님과 2번 오렉 님!
-우승 후보끼리의 대결입니다!
-사실상 결승전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엄청납니다!
사회자의 말에 수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2번을 뽑았어?’
오렉과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바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수혁 님,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상대가 오렉이라는 것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수혁은 사회자의 말에 놀람을 가라앉히고 사회자를 보았다.
-처음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인 오렉 님과 대결이 성사됐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그리고 사회자가 물었다.
사회자의 물음에 수혁은 잠시 생각을 하고는 답했다.
“힘이 빠지지 않은 상태서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오오, 자신이 있으십니까!
“예, 자신이야 항상 있죠.”
이후 수혁은 사회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대회장에서 내려와 대기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인벤토리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 * *
-힘이 빠지지 않은 상태서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계화면을 보고 있던 오렉은 수혁의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결승에서 만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바로 만나게 됐다.
‘조작을 안 할 줄이야.’
흥행을 위해 조작을 할 줄 알았는데 조작을 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 녀석 말대로 바로 상대하는 게 낫겠지.’
수혁의 말대로 다른 이들을 상대하다가 힘이 빠질 수 있다.
힘이 빠지지 않았을 때 상대하는 것이 가장 나을 수 있다.
-오오오, 자신이 있으십니까!
-예, 자신이야 항상 있죠.
바로 그때 들려오는 수혁과 사회자의 대화에 오렉은 인상을 구겼다.
그리고 손을 휘둘렀다.
파스슥!
그러자 중계화면을 띄워주던 수정구가 박살이 나며 중계화면이 사라졌다.
“이런 망할 자식이. 날 능멸해?”
수혁이 강한 건 알고 있다.
솔직히 불안하기도 했다.
파멸의 빛을 통과하고 분신까지 이겨낸 수혁이다.
힘이 빠지지 않은 수혁을 이길 수 있을까?
그것도 빛 속성 마법만을 사용해서? 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혁의 말을 들으니 분노가 솟구쳤다.
강하긴 해도 수혁은 마탑장의 제자일 뿐이다.
신분상 아래에 있는 녀석이다.
그런데 겸손이 아니라 자신감을 보이다니?
“후…… 후…….”
분노에 부들부들 떨던 오렉은 심호흡을 내뱉으며 분노를 가라앉혔다.
얼마 뒤 분노를 완전히 가라앉힌 오렉은 싸늘한 눈빛으로 수혁을 떠올렸다.
‘후회하게 해주마.’
바로 그때였다.
똑똑 끼이익
노크 후 문이 열렸다.
“출발하실 시간입니다.”
* * *
“출발인가요?”
수혁은 노크한 후 들어온 오엔에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오엔이 고개를 끄덕였고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오엔과 함께 대회장으로 향했다.
입구에 도착한 순간 오엔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수혁에게 말했다.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
수혁은 오엔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렉 님이 먼저 입장하기로 되어 있어서.”
“아…….”
이어진 오엔의 말에 수혁은 이해했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얼마 뒤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 함성이 들려왔다.
반대편 입구에서 오렉이 입장한 것이다.
-오렉 님의 상대이자 강력한 우승 후보!
-빛의 마탑 역사상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던 빛의 길의 정복자!
-수혁 님! 입장하시겠습니다!
사회자의 외침에 수혁은 대회장으로 올라갔다.
대회장으로 올라가자 다시 한번 환호와 함성이 귓가를 강타했다.
환호와 함성을 들으며 대회장 위로 올라온 수혁은 오렉을 볼 수 있었다.
오렉은 지독히도 차가운 눈빛을 짓고 있었다.
-당연히 알고 계시겠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빛 속성을 제외한 다른 속성은 사용 불가능합니다!
-사용 시 자동 탈락입니다!
-명심하시길 바라며 10초 뒤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허공에 떠 있던 거대한 수정구에 숫자 10이 나타났다.
수혁은 숫자를 주시했다.
그리고 이내 숫자가 0이 된 순간 수정구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대회장을 둘러싼 보호막이 나타났다.
보호막이 나타난 순간 함성과 환호 소리도 사라졌다.
수혁은 오렉을 보았다.
오렉의 주변에서 빛의 창, 빛의 구슬, 수많은 빛 마법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곧 수혁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수혁은 날아오는 빛 마법을 보며 생각했다.
‘얼마나 아프려나.’
오렉의 마법을 한번 맞아 볼 생각이었다.
굳이 맞으려는 이유는 마탑장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마탑장들의 수준을 확인하려는 것은 브리니스 때문이었다.
브리니스와 전투를 하게 될 수 있다.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브리니스 역시 마탑장.
오렉과 큰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내 오렉의 빛 마법이 수혁에게 작렬했다.
쾅! 쾅! 쾅! 쾅!
그리고 폭음이 울려 퍼졌다.
수혁은 생명력을 확인했다.
‘호오.’
생명력을 확인한 수혁은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생각보다 안 아프네?’
감탄을 내뱉은 이유는 생명력이 많이 깎여서가 아니었다.
많이 깎이지 않아서였다.
수많은 마법을 맞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깎인 생명력은 고작 7%였다.
‘아무리 주속성이 아니라고 해도…….’
물론 오렉의 주속성은 ‘빛’이 아니라 ‘환상’이었다.
그러나 빛의 대회를 준비한 만큼 환상만큼은 아니어도 빛 속성 역시 어느 정도 숙달이 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7%라면 브리니스와 전투를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니, 마법 공격은 아예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마탑장이 누구인가?
마법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이 정도 데미지라면?
마법 공격에는 백날 맞아봤자 죽지 않을 것이다.
이내 빛 마법이 끝났다.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빛 마법이 갑자기 끝나자 생명력을 보고 있던 수혁은 오렉을 보았다.
오렉은 인상을 구긴 채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렉의 머리 위로 빛의 구슬이 보였다.
아니, 구슬이라고 하기에는 크기가 너무나 컸다.
지름 1m는 이미 가볍게 넘었고 지금도 빠르게 크기가 커지고 있었다.
이내 오렉이 지팡이를 뻗었고 빛의 구슬이 움직였다.
수혁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빛의 구슬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실험은 끝났다.
맞아주는 것 역시 끝이었다.
“라이트 스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