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0
제 520화
518.
‘아직 그 정도로 강한 건 아닌 건가?’
중요한 자리에 있다고 해서 다 강한 것은 아니다.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경고 메시지가 뜰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마무리 짓죠!”
생각을 마친 수혁은 날씨에게 말했다.
“이제 거의 끝난 것 같은데.”
후계자는 도망갔고 본대는 섬광에 박살이 났다.
남은 잔당을 처리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 * *
기로스는 서류를 내려놓았다.
“역시 가볍게 통과했군.”
서류에는 수혁이 물의 길을 통과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 놀랍지는 않았다.
“지금쯤 환상의 길을 통과했으려나?”
파비앙을 통해 길을 준비한 수혁이었다.
물의 길을 통과한 지금, 파비앙이 미리 준비한 환상의 길을 진행 중일 것이고 보고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쯤 통과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바로 그때였다.
똑똑 끼이익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큰일 났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방금 전 물의 길 통과 서류를 가져다준 카즈락이었다.
‘통과한 건가.’
카즈락의 표정에는 심각함이 가득했다.
물의 길 통과 서류를 가져왔을 때와 같았다.
아무래도 수혁이 환상의 길을 통과한 듯했다.
“무슨 일이지?”
기로스는 모른 척 물었다.
“그것이…….”
카즈락은 말끝을 흐리며 들고 온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기로스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
기로스는 카즈락의 반응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물의 길 통과 서류를 가져왔을 때와 같은 줄 알았는데 달랐다.
혹시 하루에 두 개의 길을 통과한 것에 당황했기 때문일까?
기로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서류를 확인했다.
“……!”
그리고 서류를 확인한 순간 기로스의 표정에 놀람이 나타났다.
기로스는 멍하니 서류를 보았다.
눈을 여러 번 깜빡이고 비비고 몇 번이고 다시 서류를 확인한 기로스는 고개를 들어 카즈락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기로스는 물의 길 통과 서류를 들며 말했다.
“수혁이 게림 공국에 나타나?”
카즈락이 가져온 서류에는 어이없고 놀랍고 당황스러운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방금 전까지 물의 마탑에 있던 녀석이? 환상의 마탑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나?”
서류에 쓰여 있는 이야기는 예상대로 수혁의 행방에 대해 쓰여 있었다.
문제는 물의 마탑에 있던 수혁이 게림 공국에 나타났다는 것.
정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서류에는 수혁의 행방뿐만 아니라 해피의 이야기도 쓰여 있었다.
해피의 이야기와 게림 공국에서 올라온 이야기가 딱 맞아 떨어졌다.
즉, 수혁이 게림 공국에 나타난 것은 진짜였다.
“그게…….”
기로스의 말에 카즈락은 말끝을 흐렸다.
“갑자기 방향을 튼 것 같습니다.”
이어진 카즈락의 말에 기로스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어떻게 알고?”
수혁의 신출귀몰한 이동 능력은 기로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수혁이 게림 공국의 일을 어떻게 알았냐는 것이었다.
게림 공국에서 일을 벌인 이유는 수혁이 활동하는 지역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었다.
수혁이 최대한 늦게 알아차리도록.
“그건 저도 잘…….”
카즈락은 다시 한번 말끝을 흐렸다.
수혁이 어디서 정보를 구했는지 카즈락이라고 어떻게 알겠는가?
“…….”
기로스는 카즈락의 답에 말없이 서류를 보았다.
‘어디서 정보를 구한 거지?’
암당에서도 이렇게 빨리 정보를 전할 수는 없다.
도대체 어찌 정보를 얻은 것일까?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하나…….’
기로스는 아소멜에게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할지 벌써부터 난감했다.
“관련 정보가 들어오면 당주님 방으로 바로 올려.”
“알겠습니다.”
카즈락이 나갔고 기로스는 서류를 챙긴 뒤 아소멜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끼이익
상황이 급했기에 목적지에 도착한 기로스는 노크 후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게림 공국의 상황이 꼬였습니다.”
“……뭐?”
아소멜은 기로스의 말에 놀란 표정과 목소리로 반문했다.
“수혁이 나타났습니다.”
“……!”
그리고 이어진 기로스의 말에 아소멜의 표정에는 경악이 가득 나타났다.
“해피 님은? 해피 님은 어떻게 되셨지?”
아소멜은 목소리에서 놀람을 지우고 심각함을 가득 담아 물었다.
해피는 강하다.
그러나 아직 수혁을 마주하기에는 약했다.
만약 수혁과 해피가 만났다면?
당원들을 보냈고 흑월대에서 둘을 차출하여 호위를 맡겼지만 수혁에게 상대가 될 리 없다.
수혁과 만나면 죽음뿐이다.
“다행히도 수혁과 마주치기 전 본부로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휴…….”
기로스의 답에 아소멜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수혁이 그곳에 나타난 거야? 물의 길 도전 중이었잖아?”
아소멜은 진정한 뒤 기로스에게 물었다.
물의 길, 환상의 길,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바람의 길까지 도전할 것으로 예측됐던 수혁이었다.
심지어 아까 전 물의 길에 도전했다고 보고까지 받았다.
그런 수혁이 갑자기 게림 공국에 나타났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번 작전에 대한 정보를 어디선가 알아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미 아소멜도 수혁의 신출귀몰함을 알고 있으니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기로스는 말끝을 흐리며 말을 마치고 아소멜의 눈치를 살폈다.
“…….”
아소멜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입을 다물고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얼마 뒤 생각을 끝낸 아소멜이 입을 열었다.
“……데뷰타, 로바니아스에 연락 넣어. 철수하라고.”
카탈룬 이후 추가로 일을 벌이려 했던 데뷰타, 로바니아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일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예.”
“수혁은 아직도 카탈룬에 있나?”
“아마도…….”
기로스가 답을 하려던 찰나.
똑똑 끼이익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카즈락이었다.
“수혁의 위치가 파악됐습니다!”
카즈락이 외쳤다.
“환상의 마탑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 * *
[암당 당원을 처치하셨습니다.]
[퀘스트 ‘암당의 습격!’의 보상이 강화됩니다.]
[암당의 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했습니다.]
[퀘스트 ‘암당의 습격’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을 획득합니다.]
[게림 공국 자작의 보물 상자를 획득합니다.]
[습격 방어 기여 1위입니다.]
[특별 보상을 획득합니다.]
[게림 공국 국왕의 보물 상자를 획득합니다.]
[게림 공국 왕비의 보물 상자를 획득합니다.]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끝났구나.’
당원들이 어디에 또 있을까 생각하며 당원을 죽였던 수혁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3개의 상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수혁은 차근차근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자작의 보물 상자는 평범, 특별, 유물 등급의 아이템이 나오는 상자였고 왕비의 보물 상자는 특별, 유물, 영웅 등급의 아이템이 나오는 상자였으며 국왕의 보물 상자는 유물, 영웅, 전설 등급의 아이템이 나오는 상자였다.
‘나중에 선물로 주면 딱이겠네.’
제일 좋은 상자라 할 수 있는 국왕의 보물 상자에서 가장 높은 등급이 ‘전설’ 등급의 아이템이었다.
거래 불가도 아니고 전설 등급 아이템이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굳이 수혁이 개봉을 할 필요는 없다.
수혁은 후에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거나 필요한 뭔가가 생길 때 사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고생하셨습니다!”
날씨가 다가와서 말했다.
“아니에요. 날씨 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따라다닌 것밖에 없는걸요.”
수혁과 날씨는 약속이라도 한 듯 미소를 지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저는…….”
날씨의 물음에 수혁은 말끝을 흐리며 생각했다.
‘끝내겠지.’
후계자가 도망을 갔고 흑월대와 암당은 큰 피해를 입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모를까 오늘 당장은 일을 또 벌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생각을 마친 수혁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날씨에게 답을 해주었다.
“이만 돌아갈 생각이에요. 마탑에서 할 일이 있어서.”
“길에 도전하시는 건가요?”
수혁의 말에 날씨가 주변을 힐끔힐끔 쳐다보고는 조용히 물었다.
“네.”
날씨의 물음에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돌아가서 환상의 길을 통과할 때였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날씨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뵐게요.”
“옙!”
“아공간으로.”
[대마도사의 아공간으로 워프합니다.]
아공간에 도착한 수혁은 바로 워프 마법진을 이용해 마탑으로 워프했다.
스윽
마탑에 도착한 수혁은 환상의 마탑으로 걸음을 옮기며 시간을 확인했다.
‘바람까지 가능하겠네.’
시간은 환상의 길뿐만 아니라 바람의 길까지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남아있었다.
이내 환상의 마탑에 도착한 수혁은 오렉의 방으로 향했다.
“길에 도전하기 위해 왔겠지?”
다행히도 오렉은 방에 있었고 오렉이 물었다.
“네.”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앙 마탑장 자리를 노리고 있는 건가?”
“예.”
오렉의 물음에 수혁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
수혁의 답에 오렉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인상을 살짝 구긴 채 수혁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기야 오렉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오렉의 목표 역시 중앙 마탑장이었기 때문이었다.
“……환상의 길은 앞서 통과한 길들과는 완전히 달라.”
이내 오렉이 입을 열었다.
“쉽게 봤다가는 큰코다칠 거다.”
“알겠습니다.”
수혁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오렉은 찌푸린 인상을 풀지 않았다.
“따라와.”
오렉은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얼마 뒤 오렉이 걸음을 멈췄다.
“이용 방법은 알겠지?”
“물론이죠.”
수혁은 오렉의 말에 답하며 워프 마법진 위로 올라갔다.
스아악
이내 빛이 나타났고.
[환상의 길 - 첫 번째 관문에 입장하셨습니다.]
[진짜 문을 찾아 탈출하십시오.]
첫 번째 관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메시지를 본 수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수많은 문이 있었다.
수혁은 가장 가까운 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화르륵!
문을 열자마자 불꽃이 튀어나왔다.
수혁은 생명력을 확인했다.
‘호오, 닳고 있네?’
환상이 아닐까 싶었는데 생명력이 깎이고 있었다.
수혁은 다시 문을 닫았다.
그러자 문이 스르륵 사라졌다.
‘확인하면 사라지는 건가.’
혹시나 그대로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수혁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노가다로도 깰 수 있겠네.’
시간제한이 있는 게 아니다.
문이 많기는 했지만 하나하나 직접 열다 보면 언젠가는 진짜 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방법은 압도적인 마법 방어력과 높은 회복력을 갖고 있는 수혁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치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지금, 수혁이 아니라면 문을 열다가 함정 마법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문제지만.’
가장 중요한 시간.
수혁은 진짜 문을 찾기 위해 일일이 문을 열 생각이 없었다.
굳이 노가다를 하지 않고도 진짜 문을 찾을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의 눈.”
바로 스킬 ‘진실의 눈’.
환상을 구별해주는 스킬이었다.
진실의 눈을 시전하자 수혁의 눈에 은은한 빛이 서렸다.
그리고 수혁은 볼 수 있었다.
전과 확 달라진 배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