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3
제 533화
531.
얼마 전 습득한 칠흑의 수정구 때문인지 아니면 수혁의 기본 스텟이 너무나 높기 때문인지 암화와 암운은 일방적으로 분신을 몰아붙였다.
[라피드의 분신[어둠]이 소멸되었습니다.]
[어둠의 길 - 여섯 번째 관문을 통과하셨습니다.]
[어둠의 길 - 보상의 방으로 워프합니다.]
[어둠의 증표를 획득합니다.]
[보상 상자를 선택해주십시오.]
[획득 가능한 상자 : 1]
결국 1분도 지나지 않아 분신이 쓰러졌다.
보상의 방에 도착한 수혁은 바로 범위 상자를 선택한 후 어둠의 마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수혁은 케피르와 대화를 나눴다.
“전기의 길도 무난하게 성공하시겠군요. 축하드립니다.”
대화는 길지 않았다.
전기의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안 케피르가 빠르게 대화를 끝냈고 수혁은 어둠의 마탑에서 나와 전기의 마탑으로 향했다.
* * *
“미리 준비할까요?”
코델이 물었다.
“뭘?”
브리니스는 코델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수혁 님 말입니다.”
“아…….”
그리고 이어진 코델의 말에 브리니스는 탄성을 내뱉었다.
현재 수혁은 각 마탑의 길에 도전 중이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마탑은 치유의 마탑과 불의 마탑.
두 곳뿐이었다.
“아니.”
브리니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미리 준비하지 마.”
“……!”
코델은 브리니스의 말에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혁에게 마음에 있는 브리니스였다.
당연히 코델이 먼저 언급하지 않아도 준비하라고 말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준비하지 말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뿐만이 아니다.
브리니스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수혁, 수혁 노래를 불렀던 브리니스였다.
그런데 요즘 브리니스의 입에서 ‘수혁’이란 단어가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다.
설마 둘 사이에 무슨 큰 문제가 생긴 것일까?
“명상 좀 해야겠어.”
브리니스가 말했다.
“예, 그럼…….”
코델은 브리니스의 말에 인사를 하고 방에서 나갔다.
‘후…….’
홀로 방에 남게 된 브리니스는 속으로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오랜 시간 생각을 했다.
그래서 거의 정리가 됐다고 느꼈다.
하지만 아니었다.
방금 전 코델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또다시 고민이 됐다.
수혁과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떤 모습으로, 어떤 기분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브리니스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드르륵
고민에 잠겨 있던 브리니스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상자가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수혁에게 전하기로 한 상자였다.
상자에는 흑월의 정보가 가득 들어 있었다.
현재 수혁이 보여주고 있는 행보, 그리고 흑월의 상황을 생각하면 상자를 받게 된 이후 흑월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받을 것이다.
‘저걸 전하는 게 맞는 걸까…….’
전하기로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확정이 난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정이 쉴 새 없이 바뀌고 있었다.
이렇게 브리니스가 고민을 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처음 ‘클레인’이 죽었을 때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가정을 버리고 흑월에 모든 것을 맡긴 클레인이기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슬픔이 치솟아 올랐고 수혁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버지였으니까.
하지만 생각을 해보니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다.
‘만약 내가 재능이 없었더라면…….’
클레인이 브리니스를 버린 이유는 바로 브리니스의 재능 때문이었다.
마법사로서의 엄청난 재능.
흑월에서는 재능의 극대화를 위해 클레인에게 브리니스를 버리라 제안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브리니스는 크게 분노했다.
재능이 없었더라면?
버림받지 않았을 것이다.
평범함과 거리가 멀기는 했겠지만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재능이 있어도 흑월이 없었더라면?
버림받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원망의 대상은 수혁에게서 흑월로 바뀌었다.
흑월에 얼마나 많은 강자가 있는지 알고 있는 브리니스는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수혁은 아니었다.
홀로 흑월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 수혁이었다.
흑월의 2인자이자 끝이 보이지 않는 벽이라 생각했던 에리멘도 수혁에게 패배했다.
수혁이라면 흑월을 괴멸시켜줄 것이라고 아니, 괴멸시키지 못해도 그에 준하는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상자를 준비했다.
바로 그때였다.
스아악!
오른쪽 진열대에서 마나가 느껴졌다.
브리니스는 서랍을 닫고 진열대를 보았다.
진열대 위의 수정구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소멜과 연결된 수정구였다.
‘…….’
자신을 버리라 제안한 아소멜.
브리니스는 잠시 수정구를 응시하다가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수정구가 브리니스의 앞으로 날아왔다.
브리니스는 바로 마나를 주입했다.
-브리니스?
그리고 이내 수정구에서 아소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순간 느껴지는 역겨움에 브리니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브리니스는 역겨움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네.”
-하나 부탁할 게 있어서 말이야.
“부탁이요?”
-응, 이제 곧 수혁이 불의 길에 도전하러 올 거야. 혹시 준비를 조금 늦출 수 있을까?
“…….”
아소멜의 말에 브리니스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역겨움이 치솟아 헛구역질이 나오려 했다.
이내 속을 가라앉힌 브리니스가 답했다.
“……힘들어요.”
불의 길은 브리니스 혼자 준비하는 게 아니었다.
시간을 늦추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하루라도 어떻게 안 될까?
“……알겠어요.”
더 이상 아소멜과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브리니스는 빠르게 대화를 끝내기 위해 답했다.
-고마워.
“그럼.”
브리니스는 바로 대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상자가 들어 있는 서랍을 바라보았다.
* * *
[전기의 길 - 지속을 획득합니다.]
[전기의 길 - 지속을 사용하셨습니다.]
[영구적으로 전기 속성 스킬 지속시간이 5% 증가합니다.]
‘드디어 끝이네.’
수혁은 바로 워프 마법진을 통해 전기의 길로 워프했다.
그리고 전기의 마탑장 헤르멘과 빠르게 이야기를 끝낸 뒤 전기의 마탑에서 나와 인벤토리를 열었다.
‘이제 두 개…….’
남은 것은 치유의 길과 불의 길 두 개뿐이었다.
치유의 길은 이미 파비앙이 준비를 도와주었고 이틀 뒤 도전할 예정이었다.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은 불의 길뿐.
‘내일 들르자.’
수혁은 내일 불의 길 도전을 전하고 브리니스와 이야기를 나누기로 결정을 내렸다.
“아공간으로.”
[대마도사의 아공간으로 워프합니다.]
그리고 아공간으로 워프했다.
아공간에 도착한 수혁은 워프 마법진으로 걸음을 옮기며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충분하고.’
시간을 확인한 수혁은 황궁 도서관에 남아 있는 책들을 떠올렸다.
자정 전에 충분히 정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워프 마법진에 도착한 수혁은 페이델리아로 워프해 황궁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황궁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수혁은 바로 책들을 가지고 책상 앞에 앉아 독서를 시작했다.
[지혜가 1 상승합니다.]
.
.
수혁은 쭉쭉 책을 읽었다.
그리고 자정이 되기 20분 전.
.
.
[페이드 제국 황궁 도서관을 정복하셨습니다.]
[칭호 : 페이드 제국 황궁 도서관 정복자를 획득합니다.]
[도서관 일흔두 곳을 정복하셨습니다.]
[칭호 : 책을 좋아하는 자 71을 획득합니다.]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후.”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도서관 내부를 둘러보았다.
오랜만에 오랜 시간 도서관을 옮기지 않고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수혁은 책들을 반납한 뒤 황궁 도서관에서 나왔다.
그리고 황궁 밖 워프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어디로 가야 하나.’
단지 남아 있을 책들이 부족할 뿐이지 아직 정복하지 못한 도서관은 많다.
‘천마서고를 어서 찾아야 하는데…….’
어떤 도서관부터 갈까 생각하던 수혁은 천마서고를 떠올렸다.
끊임없이 새로운 책들이 제작되는 천마서고.
지금쯤 얼마나 많은 책이 새로 만들어졌을지 기대가 됐다.
한시라도 빨리 암당에게서 귀계의 입구를 되찾고 싶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도페르니아요.”
“7골드입니다.”
“여기요.”
이내 워프 게이트에 도착한 수혁은 도시 ‘도페르니아’로 워프했다.
그리고 도착함과 동시에 수혁은 도페르니아 도서관으로 향했다.
‘크네.’
도페르니아 도서관은 4층으로, 황궁 도서관과 비교하면 작았지만 다른 도시급 도서관과 비교하면 매우 컸다.
‘꽤 있겠어.’
수혁은 도서관 크기에 안도하며 로그아웃을 하기 위해 도서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페르니아 도서관을 정복하셨습니다.]
[칭호 : 도페르니아 도서관 정복자를 획득합니다.]
[도서관 일흔세 곳을 정복하셨습니다.]
[칭호 : 책을 좋아하는 자 72를 획득합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온 순간 나타나는 메시지에 수혁은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입가에 지어져 있던 미소 역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
이내 수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큰 도서관이…….’
도페르니아는 도시급 도서관이었다.
그런데 입장 정복이라니?
‘그럼 마을 도서관들은 끝났다고 봐야 하나…….’
도시급 도서관에 없는 책이 마을급 도서관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0에 가까웠고 있다고 해도 마을과 관련된 한, 두 권이 끝일 것이었다.
‘후…….’
수혁은 속으로 깊게 한숨을 내뱉으며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나와 워프 마법진으로 걸음을 옮기며 제국 내 도서관 목록을 떠올렸다.
‘일단 마을부터 싹 돌아야겠다.’
상황을 보아 아마도 입장 정복이 시작될 것이었다.
원래 도페르니아 도서관에서 로그아웃을 하려 했던 수혁은 자정을 넘기더라도 정복되지 않는 마을이 나올 때까지 도서관들을 확인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워프 마법진에 도착한 수혁은 마을 ‘베곤’으로 워프했다.
[베곤 도서관을 정복하셨습니다.]
[칭호 : 베곤 도서관 정복자를 획득합니다.]
[도서관 일흔네 곳을 정복하셨습니다.]
[칭호 : 책을 좋아하는 자 73을 획득합니다.]
예상대로 베곤 도서관은 입장함과 동시에 정복이 됐다.
수혁은 바로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다음 마을 ‘아피라치’로 향했다.
[아피라치 도서관을 정복하셨습니다.]
[칭호 : 아피라치 도서관 정복자를 획득합니다.]
[도서관 일흔다섯 곳을 정복하셨습니다.]
[칭호 : 책을 좋아하는 자 74를 획득합니다.]
아피라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후 수혁은 계속해서 제국 내 마을 도서관들을 방문했다.
그리고 방문하는 족족 정복 메시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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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 도서관을 정복하셨습니다.]
[칭호 : 퀀텀 도서관 정복자를 획득합니다.]
[도서관 여든세 곳을 정복하셨습니다.]
[칭호 : 책을 좋아하는 자 82를 획득합니다.]
마지막 마을급 도서관이었던 ‘퀀텀’ 도서관 역시 입장 정복이었다.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책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단 하나도 없었다.
모든 마을급 도서관을 정복한 수혁은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막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다.
‘설마 도시급 도서관들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새로운 책이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