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5
제 535화
533.
정상적인 시스템 메시지가 아니었다.
대화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운영진뿐이었다.
수혁이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던 중 추가로 메시지가 나타났다.
[빛의 마탑, 수혁 님의 방에서 뵐 수 있을까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스악
그리고 수혁의 앞에 창이 하나 나타났다.
‘예, 아니오’ 두 가지 버튼이 있는 창이었다.
“…….”
수혁은 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
메시지에서 다급함이 가득 느껴졌다.
급한 일이 분명했다.
‘설마 흑월?’
방금 전 수혁은 브리니스에게 흑월에 대한 정보를 받았다.
흑월은 판게아의 메인 에피소드와 관련된 조직.
운영자가 하려는 이야기가 흑월과 관련된 게 아닌가 싶었다.
스윽
수혁은 ‘예’를 눌렀다.
[감사합니다.]
[10분 안에 마탑장의 방으로 가겠습니다.]
‘예’를 누르자 메시지가 나타났고 메시지를 본 수혁은 다시 걸음을 옮겨 빛의 마탑으로 향했다.
얼마 뒤 수혁은 빛의 마탑에 도착했다.
그리고 수혁이 왔음을 전해 받은 헥솔이 서류를 가지고 왔다.
수혁은 서류 더미를 보며 생각했다.
‘이것도 물어봐야겠다.’
마침 수혁도 운영자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바로 서류에 대한 것이었다.
서류는 책과 마찬가지로 2가지 종류가 있었다.
빛이 반짝이는 서류, 반짝이지 않는 서류.
반짝이는 서류들은 2장이든 10장이든 읽기만 하면 지혜가 1 올랐다.
그래서 1로 고정이 되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빛이 반짝이는 서류를 읽어도 지혜가 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10장을 읽어도 지혜가 오르지 않았는데 2장을 읽으니 지혜가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서류에 관한 궁금증을 이번 기회에 해결하고 싶었다.
수혁은 인벤토리에서 브리니스에게 받은 상자를 꺼냈다.
운영자가 오기 전 흑월에 대한 정보를 읽어 볼 생각이었다.
‘많네.’
상자 안에는 서류가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단 한 장도 빠짐없이 전부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수혁은 가장 앞쪽에 있는 서류를 꺼냈다.
총 여섯 장으로 이루어진 서류였다.
“……!”
서류를 읽기 시작한 수혁은 한 장을 넘기기도 전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멈칫한 수혁의 표정에는 놀람이 가득했다.
수혁이 놀란 이유.
‘흑월의 위치가…….’
그것은 바로 첫 장에 흑월의 본부 위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르가느 절벽…….’
수혁은 세계 지도 창을 열었다.
그리고 레르가느 절벽을 찾기 시작했다.
‘없네.’
하지만 지도 창에 레르가느 절벽은 보이지 않았다.
‘한번 둘러봐야겠다.’
탐색 된 곳보다 탐색 되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후에 대륙의 모든 곳을 돌아 지도 창을 밝히기로 결심한 수혁은 계속해서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위치를 시작으로 흑월에 머물고 있는 이들에 대한 정보가 가득 나와 있었다.
* * *
“어우…….”
장경우는 피곤에 찌든 눈으로 컴퓨터 앞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좀비처럼 흐느적흐느적 사무실 구석에 설치한 침대로 향했다.
이내 침대에 도착한 장경우는 그대로 침대 위에 엎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피곤함이 극도에 달해 있던 상황에 푹신푹신한 촉감과 마주하자 장경우의 두 눈은 한순간에 감겼다.
띠띠띠띠띠띠띠띠!!!!
하지만 눈을 뜨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에 장경우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장경우의 표정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피곤함이 사라져 있었고 그 자리를 심각함이 차지하고 있었다.
‘무슨!’
지금 이 알림 소리는 보통의 알림 소리가 아니었다.
최악의 상황일 때 울리는 알림 소리였다.
장경우는 침대로 갈 때와 달리 빠릿빠릿하게 컴퓨터 앞으로 돌아갔다.
“……!”
그리고 알림의 정체를 확인한 장경우의 표정에 경악이 가득 등장했다.
“아, 안 돼!”
장경우는 머리를 가득 채우는 단어를 밖으로 뿜어냈다.
‘왜 이런 정보를!’
알림의 원인은 바로 브리니스였다.
불의 마탑장이자 흑월의 핵심인물로, 중요한 순간 유저들을 배신하는 존재.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 있었다.
유저들을 배신한 게 아니라 흑월을 배신해버렸다.
흑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문제는 정보를 제공받은 이가 수혁이라는 것.
‘대화, 대화를 나눠야 해!’
브리니스가 제공한 정보에는 흑월의 본부 위치, 암당의 본부 위치 등 다양했다.
지금 수혁이 암당의 본부 아니, 흑월의 본부에 간다면?
모든 게 다 어그러진다.
게임의 생명을 위협하는 아이템 복사, 골드 복사 버그와 동급의 사태라 할 수 있다.
아니, 그보다 더했다.
아이템 복사나 골드 복사는 일어날 가능성도 0에 가까웠고 만에 하나 일어나더라도 되돌릴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이미 일어났고 진행되면 되돌릴 수 없다.
최악 중의 최악인 것이다.
장경우는 빠르게 키보드를 두들겨 수혁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그리고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수혁의 반응을 살폈다.
“……휴.”
이내 수혁이 답했고 장경우는 깊게 숨을 내뱉었다.
다행히도 수혁이 대화를 수락했다.
장경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에 딸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찬물로 세면을 하며 정신을 차린 뒤 캡슐로 향하며 고민했다.
‘어떻게 딜을 해야 할까.’
마냥 흑월의 본부나 암당의 본부로 가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다.
아니, 부탁이야 할 수 있지만 수혁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현저히 적다.
이내 판게아에 접속한 장경우는 관리 창을 열었다.
그리고 지도를 켜 수혁과의 약속 장소 마탑장의 방으로 워프했다.
‘역시…….’
목적지에 도착한 장경우는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수혁이 이미 서류를 읽고 있었다.
어떤 정보가 담긴 것을 읽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정보이든 장경우의 입장에서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수혁이 정보에 대해 깊이 알수록 거래를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막 읽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자 밖으로 나온 서류는 수혁이 들고 있는 것이 끝이라는 점이었다.
“수혁 님.”
장경우는 수혁을 불렀다.
“아, 안녕하세요. 그때 그분이시군요.”
마침 서류를 다 읽은 수혁은 서류를 내려놓으며 인사했다.
“앉아서 이야기할까요?”
그리고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으로 이동했다.
수혁은 장경우가 반대편에 앉자 입을 열었다.
“하실 이야기라는 게…….”
말끝을 흐린 수혁은 장경우의 표정을 살폈다.
이야기를 꺼낸 순간 장경우의 표정이 굳었다.
보통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긴히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이요?”
“네, 서류를 보셨으니…….”
말끝을 흐리며 장경우는 책상 위에 있는 상자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수혁을 보며 말했다.
“흑월과 암당의 본부 위치를 알게 되셨겠지요.”
“네.”
장경우의 말에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암당 본부도 있구나.’
아직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장경우의 말을 들어보면 상자 안의 서류에는 암당의 위치까지 있는 것 같았다.
“수혁 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혹시 흑월과 암당 본부에 직접 가실 생각이십니까?”
장경우가 물었다.
“…….”
수혁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역시 그것 때문에 온 거구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네, 갈 생각입니다.”
생각을 마친 수혁은 물음에 답했다.
“으음…….”
그러자 장경우가 침음을 내뱉었다.
수혁은 장경우의 침음에서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장경우는 흑월, 암당 본부가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떤 부탁을 하시려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흑월과 관련된 것 같은데.”
시간을 끌기 싫었던 수혁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만약 수혁 님이 흑월에 가시면 앞으로 준비된 모든 에피소들이 어그러지고 말 겁니다.”
수혁의 말에 장경우가 입을 열었다.
장경우의 말을 들으며 수혁은 생각했다.
‘크라스도 쉽게 잡을 수 있나 보네.’
스텟과 장비가 엄청나기도 했고 마계의 마왕들 역시 금방금방 죽어 최종 보스라 할 수 있는 크라스 역시 금방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장경우의 말을 들어보니 예상대로 크라스 역시 쉽게 잡을 수 있는 듯했다.
“그래서 그곳에 가지 않으셨으면 하는 부탁을 드리려 했습니다.”
말을 마친 장경우는 수혁의 눈치를 살폈다.
“…….”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난감한 표정으로 장경우를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혁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장경우의 눈빛에 입을 열었다.
“……퀘스트가 있습니다.”
흑월에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흑월의 수장 크라스를 만나야 했다.
바로 차원 도서관 때문이었다.
차원 도서관을 개방하기 위해 남은 퀘스트는 넷.
이제 곧 중앙 마탑장이 될 예정이니 셋이 남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중 마지막 다섯 번째 퀘스트의 완료 조건이 흑월의 수장이자 1마계의 마왕인 크라스가 드랍할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템 ‘토피앙 크라스의 정수’였다.
“혹시 차원 도서관 퀘스트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장경우는 수혁의 말에 조심스레 물었다.
“네.”
“…….”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고 이번에는 장경우가 침묵했다.
‘도서관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장경우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차라리 아이템이라든가 강자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도서관 때문에 메인 에피소드의 최종 보스를 잡아야겠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나.’
물론 수혁이 책을 좋아하기에 이런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던 장경우였다.
‘이번에 확실히 매듭을 짓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지금 상황에서 수혁의 흑월 방문을 막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바로 퀘스트 조건 수정이었다.
수혁이 흑월에 가려 하는 것은 차원 도서관 개방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다.
조건을 완화하거나 아니면 필요한 아이템을 제공하면 된다.
그러면 수혁은 흑월에 가지 않을 수 있다.
‘완화를 할까 제공을 할까…….’
장경우는 판게아 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퀘스트를 만들고 싶으면 만드는 거고 없애고 싶으면 없앨 수 있다.
조건 수정은 매우 쉬웠다.
아이템 역시 당장 제작이 가능했다.
‘생각을 좀 해봐야겠는데.’
생각을 마친 장경우가 수혁에게 물었다.
“이틀 정도 시간을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 안에 흡족하실만한 제안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네.”
수혁은 장경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바로 흑월에 갈 생각이 없던 수혁이었다.
거기다 다른 이도 아니고 운영자가 시간을 달라는데 유저 입장에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장경우는 수혁에게 감사를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틀 뒤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인사 후 로그아웃을 했다.
장경우가 사라지고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수혁은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서류 안 물어봤네.’
흑월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물어볼 것을 물어보지 못했다.
‘이틀 뒤에 연락 준다고 했으니까…….’
급한 것도 아니고 후에 물어보면 된다.
수혁은 생각을 끝내고 책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상자에서 서류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