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9
제 539화
537.
책상 앞에 앉아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던 아소멜은 해피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군요!”
“예, 전부 처리했습니다.”
“오오, 역시 해피 님이십니다. 이렇게 빨리 처리를 해주실 줄이야! 감사합니다.”
아소멜이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퀘스트가 완료되며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퀘스트 ‘아소멜의 부탁’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을 획득합니다.]
[암당 창고 열쇠를 획득합니다.]
“또 처리할 녀석들이 있나요?”
메시지를 본 해피는 흐뭇한 미소로 아소멜에게 물었다.
“예, 방금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말끝을 흐린 아소멜은 책상 위에 있던 서류를 뒤적였다.
그리고 이내 서류를 하나 들고 해피에게 다가갔다.
“로비아 산맥에 블랙 오우거들이 나타난 이유는 자신들의 서식지에서 밀려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블랙 오우거를요? 어떤 녀석들이죠?”
해피는 아소멜의 말에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해피가 상대했던 블랙 오우거는 저레벨이 아니었다.
레벨 700이 넘는 고레벨 몬스터였다.
더구나 블랙 오우거는 동레벨의 일반 오우거보다 50% 더 강하다.
레벨 700대에 블랙 오우거를 밀어낼 정도의 몬스터는 많지 않다.
“아이언 트롤입니다.”
“……?”
아소멜의 말에 해피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언 트롤이 강하긴 하지만 일반 오우거라면 모를까 블랙 오우거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설마 레벨이 200~300 정도 차이 나나?’
물론 아이언 트롤이 블랙 오우거를 이기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압도적인 레벨 차이.
그러나 이어진 아소멜의 말에 해피는 레벨 차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평범한 아이언 트롤은 아닙니다. 최소 트리플 헤드가 셋, 더블 헤드가 열이나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더 있을 가능성도 있구요.”
“아…….”
해피는 탄성을 내뱉었다.
블랙 오우거들이 아이언 트롤에게 밀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변종은 흔히 중간 보스, 보스라 불린다.
그런데 변종이 하나도 아니고 열이 넘는다면?
그것도 변종 중의 변종이라는 트리플 헤드가 최소 셋이었다.
변종이 없는 블랙 오우거들이 밀리는 게 당연했다.
“그럼 부탁하실 일이란 게…….”
“녀석들을 잡아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호위로 흑월대가 붙을 겁니다. 위급한 상황에서만 움직이겠지만요.”
<아르파나 초원의 새로운 지배자>
블랙 오우거들이 로비아 산맥에 나타난 이유는 자신들의 서식지 아르파나 초원에서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강하디강한 블랙 오우거들을 쫓아내고 초원을 차지한 몬스터의 정체는 아이언 트롤이었다.
문제는 하나 보기도 힘든 변종이 여럿 존재한다는 것.
아이언 트롤들은 계속해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변종들을 퇴치하고 아이언 트롤들의 수를 줄여 영역 확장을 막아라!
[트리플 헤드 아이언 트롤 : 0 / 3]
[더블 헤드 아이언 트롤 : 0 / 7]
[아이언 트롤 : 0 / 200]
퀘스트 보상 : 암당 창고 열쇠 3개
퀘스트를 확인한 해피는 아소멜에게 말했다.
“한번 해보죠!”
[퀘스트 ‘아르파나 초원의 새로운 지배자’가 생성되었습니다.]
해피는 퀘스트를 수락한 뒤 이어 말했다.
“호위를 할 흑월대는 언제 준비되나요? 먼저 출발해도 되나요?”
“아, 이미 이곳에 있습니다. 출발하실 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아소멜의 말에 해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금 이따 다시 오겠습니다.”
해피는 아소멜에게 말한 뒤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창고로 향했다.
전설 등급 하의를 얻으러 갈 차례였다.
이내 창고에 도착한 해피는 인벤토리에서 열쇠를 꺼내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암당 창고에 입장하셨습니다.]
[암당 창고 열쇠를 사용하셨습니다.]
[현재 획득 가능한 아이템 : 1]
앞서 수없이 보았던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해피는 메시지를 힐끔 보고는 쭉쭉 걸음을 옮겼다.
이미 봐둔 전설 등급 하의가 있었다.
곧 해피가 걸음을 멈췄다.
해피의 앞에는 검은색 바탕에 붉은 장미가 수놓아져 있는 가죽 바지가 진열되어 있었다.
<레비오니스의 바지[전설]>
제한 : 레벨 700
물리 방어력 증폭 : 5
마법 방어력 증폭 : 5
착용 시 생명력 -30000
3마계를 지배하는 공간의 마왕 레비오니스가 만든 바지다. 강력한 공간 지배력이 담겨 있다.
바지의 정체는 바로 ‘레비오니스의 바지’였다.
착용 시 생명력을 늘려주기는커녕 3만이나 감소시키는 해괴한 옵션의 바지였다.
그럼에도 해피가 레비오니스의 바지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아이템 설명 때문이었다.
레비오니스는 3마계의 마왕이자 공간의 마왕이었다.
‘3마계면 난이도가 엄청나겠지.’
지금 리더 길드와 제왕 길드에서 힘을 합쳐 상위 마계와 천계를 모험 중이었다.
그리고 난이도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었다.
즉, 3마계는 엄청난 난이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런 3마계를 지배하는 레비오니스가 제작한 바지라면?
전설 등급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아이템일 것이라 해피는 확신하고 있었다.
거기다 설명에 강력한 공간 지배력이 담겨 있다고 쓰여 있었다.
공간 지배력이 뭘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엄청난 것이라고 해피는 추측하고 있었다.
[레비오니스 바지를 획득합니다.]
[현재 획득 가능한 아이템 : 0]
해피는 레비오니스의 바지를 획득했다.
그리고 획득함과 동시에 바로 착용했다.
[퀘스트 ‘레비오니스의 바지1’이 생성되었습니다.]
.
.
[퀘스트 ‘레비오니스의 바지5’가 생성되었습니다.]
착용 후 개방 퀘스트가 주르륵 생성됐다.
해피는 퀘스트 창을 열어 개방 조건들을 확인했다.
“오?”
조건을 확인한 해피는 반사적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아이언 트롤?”
퀘스트 ‘레비오니스의 바지2’의 조건이 아이언 트롤 200마리 사냥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언 트롤을 잡으러 가야 하는 상황.
“이거 내가 주인공이라고 밀어주는 건가?”
해피는 퀘스트를 보며 웃었다.
아직 전직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곧 얻게 될 직업 ‘검은 달의 지배자’는 누가 뭐라 해도 판게아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해피는 자신이 눈치채지 못하게 운영자가 몰래 밀어주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퀘스트 창을 닫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수혁!”
지금 상황에서도 수혁을 이길 자신이 있었지만 압도하며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장비들을 전부 개방한다면?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을 것이다.
해피는 수혁을 죽일 생각에 히죽히죽 웃으며 창고에서 나왔다.
그리고 아소멜의 방으로 향했다.
어서 출발해서 옵션을 개방하고 싶었다.
* * *
페이드 제국의 도시 ‘칼람바’의 도서관.
도서관에는 사서 둘을 제외하고도 여러 사람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입구에 서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수혁이었다.
‘후…….’
수혁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메시지를 보았다.
[칼람바 도서관을 정복하셨습니다.]
[칭호 : 칼람바 도서관 정복자를 획득합니다.]
[도서관 아흔두 곳을 정복하셨습니다.]
[칭호 : 책을 좋아하는 자 91을 획득합니다.]
입장함과 동시에 정복이 됐다.
‘이제 넘어갈 차례인가.’
문제는 칼람바 도서관이 페이드 제국의 마지막 도서관이라는 점이었다.
더 이상 페이드 제국에는 수혁이 정복하지 못한 도서관이 존재하지 않았다.
즉, 이제 새로운 책을 읽기 위해서는 페이드 제국을 떠나야 했다.
‘마탑장이라 다행이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수혁이 빛의 마탑장이라는 점이었다.
마탑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리였다.
페이드 제국뿐만 아니라 어느 국가를 가도 왕과 동급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존중해주는 게 바로 마탑장이란 자리였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데에는 조건이 필요하지만 마탑장이란 자리는 그 조건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수혁은 도서관 내부를 둘러보고는 도서관에서 나왔다.
그리고 워프 게이트로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어서 내일이 와야 하는데…….’
하루, 하루만 지나면 계승식이다.
계승식을 통해 중앙 마탑장이 되는 순간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고 차원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더 이상 책을 찾아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쭉 읽으면 된다.
수혁은 문득 연중의 말을 떠올렸다.
칭호 ‘책을 좋아하는 자’에 대해 알고 있는 연중은 최대한 많은 도서관을 정복해 좋아하는 자 칭호를 확보하고 차원 도서관에 가라고 했다.
더 많은 지혜를 올리기 위해서는 연중의 말대로 하는 게 옳았다.
그러나 수혁은 연중의 말대로 할 생각이 없었다.
처음에는 연중의 말대로 할까 생각했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어차피 지금도 지혜는 충분히 높았다.
최종 보스라 할 수 있는 크라스도 쉽게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귀찮게 도서관들을 돌아다니며 정복을 해야 할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어디로 가십니까?”
이내 워프 게이트에 도착한 수혁은 마법사의 물음에 생각을 끝내고 입을 열었다.
“모나스 공국 수도 모나피아요.”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바로 페이드 제국과 붙어 있는 모나스 공국이었다.
이미 모나스 공국 국왕의 증표를 가지고 있는 수혁이었다.
못 들어갈 도서관이 없는 것이다.
“13골드입니다.”
마법사의 말에 수혁은 인벤토리에서 골드를 꺼내 건넸다.
그리고 곧 수혁은 빛과 함께 목적지 모나피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나피아에는 국립 도서관이 존재했다.
모나스 공국의 자랑 중 하나로 수혁은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다.
워프 게이트에서 나온 수혁은 기억을 더듬어 모나피아 국립 도서관으로 향했다.
처음 가는 것이었지만 찾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괜히 자랑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표지판에 가는 길이 아주 친절히 설명되어 있었다.
수혁은 기억과 표지판을 통해 막힘없이 쭉쭉 걸음을 옮겼고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모나피아 국립 도서관을 본 수혁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진짜 예쁘게 지었네.’
자랑스러워하는 이유가 있었다.
건물을 보고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얼마 만이던가?
한동안 자리에 서서 도서관 외관을 구경하던 수혁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내부 확인을 위해 걸음을 옮겼다.
‘여기는 이용하는 사람도 많네.’
수많은 사람이 도서관에서 나오고 있었다.
여태껏 수혁이 방문했던 도서관들과 너무나 달랐다.
“죄송합니다만…….”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사서가 길을 막아섰다.
수혁은 인벤토리를 열어 증표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미 인원이 가득 차서 입장이 불가능…….”
증표를 본 순간 사서의 말이 끊겼다.
그리고 수혁은 사서의 말에 생각했다.
‘아, 가득 찼구나.’
사서가 길을 막은 것은 이용 조건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입장 인원 때문이었다.
‘다른 곳부터 들러야겠네.’
인원이 가득 차서 이용이 불가능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수혁은 다시 인벤토리에 증표를 넣으며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바로 그때 사서가 이어 말했다.
“……하지 않습니다. 입장 가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