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심-봤-다! >
첫 레벨 업 이후,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그런데 스탯이 오를 수가 있나?”
당장 이 기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다.
[오염된 여의주]
문제라고 한다면 바로 이 아이템에 대해선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하...미치겠네.”
전과 달라진 게 과연 뭘까?
‘어쩔 수 없나.’
인벤토리를 열었다.
“초롱아~! 야~호! 초롱초롱초롱아~!”
쉼 없이 목청을 키웠다. 이곳은 개인공간으로 분류되는 만큼, 앞전과 달리 주변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시끄러!
결국 초롱이가 튀어나왔다.
-나 아가야. 잠꾸러기야. 깨우지 마!
“미안. 미안.”
그런 투정에 마루가 슬쩍 미끼를 꺼냈다.
“아가니까 잘 먹어야지. 여기 우유. 이것 좀 먹어봐.”
다행히 통한 것인지, 인벤을 나와 할짝이는 게 보였다. 하지만 만족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실제로 투정도 이어졌다.
-나 육식 좋아해.
우유보다 고기라는 뜻이다.
‘벌레가 아니라?’
귀뚜라미를 잡아올까 하다가 우유를 구해놓은 것인데, 죄다 오답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의문을 풀 시간이었다.
“혹시, 여의주...네 집이 나한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아는 거 없니?”
초롱이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내 집 좋아. 커. 넓어! 냄새도 좋아. 편안해. 최고야! 그러니까 품고 있으면 너도 좋아져.
마지막만 귀담아 들으면 됐다.
“뭐가 어떻게 좋아지는데?”
-막 건강해져. 행복해져.
“아니. 그러니까. 좀 더 상세하게. 어떤 식으로 건강해지고, 행복해지는 건지. 그것 좀 알려주면 안 될까?”
-집이 좋으면, 터도 좋아져.
“아니 그러니까. 후...”
말해봐야 입만 아팠다. 답답함에 가슴만 치고 있노라니, 초롱이가 몇 마디 말을 더 던져줬다.
-너 노력해. 그러면 돼.
여전히 아리송한 내용이었다.
“좀만 더 자세히.”
초롱이가 우유에서 입을 뗐다.
-너 너무 피곤한 사람이다. 나 아기라 더 피곤해. 입맛 없어. 잘래!
그러더니 휙 하니 인벤 속으로 뛰어들었다.
“초롱아~!”
재차 불러보며 소란을 떨어봤지만, 더는 반응하지 않았다.
‘너무 밀어붙였나.’
마루는 제 실수를 인정하며 물러났다.
‘하...뭐가 달라졌을까?’
거듭된 고민에도 마땅한 성과는 없었다.
“GG다 GG!”
결국, 백기를 들어버렸다.
“잠이나 자자!”
혹시 몰라서 레벨 업으로 받은 [스탯 : 5]는 건드리지 않았다.
[수면유도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취침모드로 단잠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찾아온 아침.
“변한 건...없네.”
상태창은 전날 밤 확인한 그대로였다. 혹시 시간이 지나서 달라졌나 싶었더니,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싶었다.
‘하긴, 그러면 밸런스 붕괴지.’
다시금 머리를 굴려봤지만, 여전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방 안에만 틀어박힌 채, 하릴없이 여의주만 관찰할 생각은 없었다.
여기서 시작한 또 다른 이유를 떠올렸다.
“이참에 정보 갱신 좀 해야겠네.”
기억 속 풍경과 달라진 것들을 분류하고자, 토크 아일랜드 탐방에 나섰다.
“여기서 이런 물약도 팔아?”
“이런 고층 건물이 있었던가?”
“연금술 전문 가게도 생겼네?”
“어라? 도서관도 지었잖아.”
“오우야! 스트립...쿨럭!”
게임이라지만 이 안에도 시간의 흐름은 존재했다.
“변하긴 변했네.”
습관처럼 나오는 혼잣말로 정보를 되새기고 정리한 뒤, 과거 기억과 달라진 부분들을 하나 둘 수정해나갔다.
그렇게 점심을 지나 저녁 시간이 되고, 대략적인 정보갱신을 마친 듯, 적당한 휴식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쉬는 와중에 상태창을 관찰했다.
“헬스장에서 빡세게 운동해서 그런가?”
답답함에 헛소리가 쏟아졌다.
“푸핫!”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던지 헛웃음마저 샜다.
‘하! 여의주인지 뭔지, 아이템 검색도 아직 답이 없는데 상태창도 골치를 썩이네.’
뒷목이 살살 뻣뻣해지는 느낌이었다.
‘일단, 밥이나 먹자.’
식사시간도 됐고 머리도 복잡했던 터라, 결국 접속을 종료하며 밖으로 나왔다.
**
헬스 트레이너 김수길은 동료들과 저녁을 먹으러 가다, 생각지도 못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시계를 돌아봐야 했다.
[6시 30분]
그리고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니. 마루 형님? 웬일입니까? 이렇게 일찍 오시다니.”
8시 정각에 칼출근을 하던 마루의 등장이 뜻밖이었던 것이다. 언제 온 것인지 구석에서 런닝 머신을 뛰고 있었다.
“그냥 머리도 복잡하고, 이래저래 답답한 일도 있어서, 바깥바람 좀 쐬려고 나왔다가 일찍 와버렸네.”
페이스 조절을 하듯, 속도를 줄인 마루가 그리 답하며 김수길을 바라봤다.
이에 김수길이 어색하며 웃으며 말했다.
“어...지금 애들 데리고 밥 먹으러 가야 해서.”
한편에서 그를 기다리는 다른 트레이너가 보였다.
“됐다. 됐어. 나도 짬밥이 있고 배운 게 있는데. 혼자서도 잘 하니까. 괜히 신경 쓸 거 없어. 시간을 안 지킨 건 난데. 네가 왜 눈치를 보냐.”
“흐...그건 그렇죠. 형님이 잘못 했네.”
“그렇다고 잘못까지야.”
“어쨌든 최대한 빨리 먹고 올 테니까. 가볍게 몸만 풀고 계세요. 괜히 무리하지 마시고.”
“밥이나 먹고 와. 어차피 한동안은 런닝만 할 생각이니까. 신경 쓴다고 급하게 먹지 말고. 그러다가 체할라.”
이에 김수길이 재차 강조하며 말했다.
“무리하지 마시고, 저 오면 같이 하는 겁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훠~이. 훠어~.”
마루는 그렇게 김수길을 쫓아낸 뒤, 기계를 조작해서 다시금 속도를 올렸다.
“머리 복잡할 땐 뜀박질만한 게 없지.”
달리고 또 달렸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때까지, 트레이닝복이 무거운 땀복이 되어 추욱 늘어질 때까지, 그렇게 쉼 없이 뛰고 또 뛰었다.
그 때문일까?
“어휴! 오늘은 근육에 가벼운 자극만 주고 끝냅시다. 괜히 더 무리했다간 몸살 나겠어요. 살살 좀 하라니까.”
“근력 운동은 안 했어.”
“런닝은 전신운동입니다.”
“...기구는 안 들었어.”
김수길은 마루의 운동량을 제어해야만 했다.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마루는 오랜만에 최소한의 기구와 운동량만을 체크하고는 귀갓길에 올랐다.
그리고,
“으음...”
PP에 접속한 마루는 실로 난감한 얼굴이 되어 전면을 바라봤다.
허공중에 떠오른 반투명의 상태 창.
그곳의 한 부분이 그를 당혹스럽게 만든 까닭이었다.
[체력 : 20]
또 다시 하나의 스탯이 오른 것이다.
“이번에는 체력이라...”
앞서 지껄였던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가 떠올랐다.
‘어제는 근력 운동을 빡세게 했더니 힘이 1 늘었고, 오늘은 유산소 운동으로 폐를 쥐어짰더니 체력이 1 붙은 건가?’
그 외에는 답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그 빨간 돌멩이가 게임 속에 있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
문득, 초롱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 노력해. 그러면 돼.]
“이걸 확인할 방법은 하나뿐인가.”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그의 발길이 헬스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빡센 트레이닝!
점심 무렵이 돼서야 귀가한 그는 간단한 건강식만 챙겨먹은 뒤, 바로 PP에 접속했다.
급히 확인한 상태 창.
자그마한 변화 하나가 눈에 띄었다.
[힘 : 19]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올랐네.”
[너 노력해. 그러면 돼.]
이른 아침부터 점심까지, 그의 한계를 쥐어짜내며 살 떨리게 근력 운동을 했다.
그리고 접속한 게임이었다.
“개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뱉은 말이지만, 스스로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정말, 운동으로 스탯이 오르다니.’
인벤토리를 열었다.
[오염된 여의주]
그 안에 담겨있는 단 하나의 아이템이 보였다.
이를 주시하길 한참.
“심-봤-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시끄러. 아가 자!
초롱이의 투정이 이어졌다.
**
여전히 아이템의 정확한 정체는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할 순 있었다.
“진짜 보물이었어.”
마루는 상태 창을 열었다.
레벨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능력치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그의 눈길을 사로잡는 목록이 있었다.
[스탯 : 5]
심장이 뛰었다.
‘저걸, 적용하면?’
현실의 그는 어떻게 될까?
‘아무 변화도 없으면 어쩌지?’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착각일 수도 있었다. 이를 확인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극단적인 확인 방법을 위해,
“힘에 올인!”
다섯 개의 스탯을 한데 쏟아 부었다.
그리고 하루 뒤 헬스장,
“어라?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요즘 시간대 바꾸셨어요?”
김수길의 놀란 음성에 마루가 웃어보였다.
“너야말로 웬일로 이렇게 일찍 출근했냐?”
“대회 일정 잡혀서 슬슬 몸 좀 만들려고요.”
“벌써? 포스터는 안 나왔던데?”
“여유 있게 지금부터 준비해야지. 닥쳐서 빡세게 하면 몸 상하거든요. 저도 슬슬 나이가 차다 보니, 이래저래 준비기간이 길어지네요.”
“고생한다.”
뭔가를 발견한 듯, 김수길이 놀란 얼굴로 마루를 바라봤다.
“어라? 이거 무게가...그새 늘리신 거예요?”
“확인해 볼 게 있어서.”
“이제 막 적응하셨을 텐데. 벌써 증량하시면 위험한데.”
“정말로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런 거라, 너무 무리할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신경 쓰이면 옆에서 보조 좀 해주던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김수길은 그리 말하며 바로 옆으로 붙었고, 그의 보조 속에서 마루가 기구를 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어라?”
놀란 듯 동공을 키우는 김수길의 모습과, 왠지 모를 희열에 들뜬 마루의 표정이 대비되었다.
“허...이게 이렇게 쉽게 들리면 안 되는데?”
당혹스런 음성으로 김수길이 물었다.
“형님 어디서 산삼이라도 하나 드셨습니까?”
그 물음에 대한 마루의 대답은?
엄지 척!
심플하고 간단했다.
“우왓! 정말로 산삼입니까?”
이어지는 김수길의 반응에 웃음까지 터져버렸다.
**
커다란 가능성을 손에 쥐었다.
“이거라면...”
그가 바라던 목표에 이를 수 있었다.
‘아니지. 이미 이룬 거나 마찬가진가.’
과거, 그가 그토록 바라던 소망이 하나 있었다.
[각성!]
능력을 손에 쥐는 것!
이를 위해서 상품의 마석을 구하고자 했고, 그 때문에 더러운 똥물을 헤집어가며 별빛을 손에 쥐려 발악한 게 아니던가.
“아...괜히 울컥하네. 킁!”
분명, 그 시작은 작은 불씨였다.
하지만 모종의 사건들을 겪으며 큰 불길로 번졌고, 시간이 흐르며 고집이란 화마가 되어버린, 소망이자 갈망이었다.
‘슬슬 포기하고 있었는데.’
세월과 현실!
그 큰 장벽 앞에 풍화되던 로망이기도 했다.
특히, 치명적이던 현실의 벽!
일반인에게 허락된 마석은 보라색과 남색의 하품까지였다.
‘헌터 자격증도 있어야 되고.’
경력과 D급 자격증을 강조하면?
‘파랑색까진 구할 수 있으려나.’
이는 중급 마석으로써, 비각성 헌터의 사냥터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등급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하품에 걸친 중‘하’급 마석이었다.
마루는 쓰디쓴 미소 한 모급과 함께, 이 바닥의 유명한 도시괴담을 떠올렸다.
[던전으로 가면 각성을 할 수 있다.]
[마정석을 곁에 두면 각성한다더라.]
이 바닥에 오래 몸담았기에 알 수 있었다.
[던전과 마정석 괴담은 진짜다!]
허나 두 가지 모두 마루에게는 불가능했다.
‘꿈도 못 꿀 괴담이지.’
그 때문에 ‘진짜’ 괴담을 노렸다.
[상품의 마석으로도 각성할 수 있다더라.]
마정석 괴담의 하위버전!
그가 꾸준히 똥물을 뒤집어쓰며, 조금이라도 더 높은 등급의 마석을 노렸던 건, 미약한 가능성에 닿기 위한 나름의 발악이었다.
물론, 순수 괴담은 이외에도 더 있었다.
[몬스터 고기를 먹으면 된다.]
[몬스터 피를 주입하면 된다.]
[몬스터하고 살림을 차리면...]
하나같이 괴이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몇몇은 정말 짐승이 되었다는 소문을 끼고 있는 터라, 일찌감치 귀에서 털어내 버린 괴담들이었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비각성자가 중급 이상의 마석을 손에 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냥!
돈으로는 살 수 없었다.
‘나야 뭐, 채집 쪽에 가까웠지만.’
이 역시 ‘수렵행위’로 인정됐다.
‘혹시라도 상급 마석이 나올까 싶어서 모아놓은 돈도 아낄 수 있겠네. 흐흐...’
통장에 담긴 억 단위의 금액?
비각성 헌터는 상위 마석에 대한 세금이 어마어마했다.
“개 같은 차별도 이젠 끝이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각성이었다.
‘지금 이게 각성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기회를 손에 쥐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각성보다 더 대단한 걸 수도 있어. 그래.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야. 그렇다면? 관련사례 검색도 멈춰야지. 정말 각성보다 대단한 거라면?’
질의문답을 반복하며 상황을 정리했다.
“흔적을 남겨선 안 되지!”
몸 사리기는 전장에서 새긴 본능이었다.
[게임 캐릭터를 키우면?]
[현실의 내가 강해진다!]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스탯 : 5]
이미 헬스장에서 변화를 확인했다.
[각성자는 몬스터를 잡고 성장한다!]
때문에 그들은 던전으로 향한다.
“하지만 난, 꿀꺽...”
[게임을 통해 성장한다!]
그렇기에 그는 게임을 켰다.
‘내겐 게임이 던전인 거야.’
두근...
“오직, 나만의 던전!”
떨리는 마음으로 외쳤다.
“로그인!”
낙원이 문을 열었다.
[퍼펙트 플레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5. 심-봤-다!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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