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신체변화. >
출발지로 칭해지는 토크 아일랜드.
그곳에서도 진정한 시작점이라 불리는 장소가 하나 있었다.
훈련장!
이 안에서 교관들이 내려주는 기본 퀘스트를 클리어 했을 때, 유저들은 사냥터의 개방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교관 중 한명인 케인은 흥미로운 얼굴로 연무장 외곽지대를 바라봤다.
“훅...훅...훅...훅...”
구보가 한창인 사내가 보였다.
‘일주일짼가?’
사내가 하는 행위가 스킬 숙련도 작업이라는 걸 알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저 번거로운 걸 굳이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대개 지망 직업과 어울리는 기초 스킬만 작업하는데, 그 기간도 기껏해야 하루나 이틀 남짓이 평균이었다.
‘엄청나네.’
하지만 저 사내는 버프 기간인 일주일을 꽉꽉 채워가며, 다양한 스킬의 숙련도를 작업하고 있었다.
저리 고생하는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다.
‘몽크 키우려면 저 정도는 해야 되는구나.’
일주일의 시간동안 나름의 친분을 쌓은 덕분인지, 사내의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려운 직업이니 그만큼 고생하는 것이리라.
‘몽크를 키운다는 건, 이해 안 되지만.’
취향이라는데 어쩌겠는가.
‘아이디가 장관장인 걸 보면, 어디 체육관 관장인 모양인데. 설마, 그래서 몽크를 하는 건가?’
어깨를 으쓱이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있을 때였다.
“헉...헉...으아, 지친다!”
사내, 마루가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끝났습니까?”
“어으...아직 다 끝난 건 아니고. 좀 쉬려고.”
이에 고개를 저은 케인이 물었다.
“형님도 정말 대단하시네요.”
마루가 실소하며 말했다.
“우리 직업군이 이 정도는 기본이야.”
그리고는 물었다.
“넌 교관 퀘스트 언제까지냐?”
케인은 현재 기사들의 전용 퀘스트 중 하나인 교관체험 퀘스트를 진행 중이었다.
“아직 35시간 남았습니다.”
“그럼 내일도 나오나?”
“예. 그런데 내일은 일 때문에 저녁에나 늦게 나올 것 같은데요.”
“기왕이면 너한테 사냥퀘 받을까 했는데. 안되겠네. 오전 중으로 해치워버릴 생각이라.”
몇몇 시간제 퀘스트가 끼어있어서 미리 받기는 어려웠다.
“어차피 보상은 똑같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기분이 다르잖아.”
어깨를 으쓱인 마루가 제 팔과 다리에 달려있는 모래주머니를 풀었다.
“해방이다!”
스킬 속보와 강권을 위해 채워놓은 것으로써, 좀 전의 구보를 통해 숙련도를 맥스로 올린 상태였다.
“이제 사냥터로 가서 적당히 써먹기만 하면 마스터로 넘어가겠네.”
모든 스킬의 완성은 실전이었기에, 숙련도 작업과는 별도로 사냥터의 실전 활용은 필수였다.
“드디어 가는 겁니까?”
“말 했잖아. 아직 다른 스킬 남았다.”
그리 말하며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물건을 꺼내드는데, 언뜻 몽둥이처럼 보이는 물건이 그의 손에 들려나왔다.
벽골 스킬과 차력 등, 방어계열 스킬을 위한 재료로써,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또 때려드려요?”
“그래. 혼자서 두드리는 것보다. 기왕이면 누가 쳐주는 게 보기에도 좋고, 숙련도도 잘 오르니까.”
이 때문에 유저 교관과 친분을 다진 것이기도 했다.
“보기에 좋진 않은데...”
“혼자 두들기면 변태처럼 보이잖아.”
“......”
방법은 간단했다.
몽둥이로 제 몸을 두드리면 되는 것이다. 초반에는 마루 혼자서 두드려야 했지만, 케인과 친분을 다진 후에는 그의 도움을 얻어 숙련도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케인이 몽둥이를 쥔 손에 침을 탁 뱉으며 말했다.
“그럼 갑니다.”
그 모습에 마루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어우야. 너무 분위기 살리는 거 아니냐?”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죠.”
“살살 플리즈...”
“예. 살만 치겠습니다.”
“아니. 그 뜻이 아니라.”
“어차피 여긴 안전지대라서 죽을 일도 없잖아요.”
“대신 사경을 헤매겠지.”
“움직이지 마세요. 뼈 나갑니다.”
그리 중얼거린 케인은 FM대로 강하게 마루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숙련도를 위해 통증 제어를 낮춘 까닭일까?
“억! 윽! 악! 끅...Ang!”
짜릿한 통증과 함께, 숙련도가 팍팍 오르는 게 느껴졌다.
**
[버프가 사라집니다.]
알람 소리가 귓가를 맴돌며 초심자를 위한 일주일의 서비스 기간이 끝을 맺었다.
“휘유...알차게도 써먹었네.”
마루는 그 많던 스킬 숙련도 대부분을 MAX로 찍을 수 있었다. 뿌듯함에 입 꼬리가 살살 올라갔다.
“이제 사냥으로 실전 숙련도만 채우면 마스터인가.”
그러면 스킬조합으로 새 스킬을 만들 수 있었다.
“오랜만에 개 폐인처럼 해봤네.”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시절 이후로는 이렇게 미쳐서 게임을 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서비스를 알차게 이용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숙련도 작업에 몰두했던 것이다. 취침시간 마저도 최소한으로 제한했을 정도였다.
당장은 게임 속에 있어서 멀쩡하지, 접속을 종료하기 무섭게 피로감이 눈꺼풀을 짓누를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헬스장도 일주일이나 쉬었네.”
운동량이 부족했지만 상태창에 변화는 없었으므로, 일단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기에, 집안에서 최소 운동량은 채워놓고 있었다.
“내일은 빡세게 기구 좀 들어야겠네.”
그리고는 버프 서비스를 위해 미뤄놓았던 [스탯 : 50]으로 시선을 돌렸다.
“슬슬, 이것도 분배를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할지는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예전 그대로.”
몽크라는 직업이 파이터와 비슷하여 순수 육체파로 보이지만, 의외로 균형이 중요한 직업군이었다.
[균형의 수호자!]
아는 이들만 아는 농담이었다.
“성기사보다 방어에 특화됐을 뿐, 맷집이 나은 건 아니지.”
그 핵심이 바로 스탯과 스킬의 균형이었다.
‘장비발이 없으려면 두루두루 섭력해야지.’
그런 이유로,
“이렇게 가면 되겠네.”
[장관장]
[레벨 : 12]
[힘 : 30] [지능 : 30]
[체력 : 28+2] [정신력 : 29]
[민첩 : 30]
[스탯 : 0]
각기 힘에 +6, 지능에 +15, 체력에 +8, 정신력에 +9, 민첩에 +12를 더해서, 최대한 스탯의 균형을 맞춰놓았다.
누군가는 ‘잡캐’라 부를 수준으로 스탯 분배를 마치는 순간이었다.
“커헉!”
갑작스레 밀려든 아찔한 통증이 그의 사고를 방해했다.
“...이게 무슨...끄억! 악!”
전신을 치고 드는 아픔도 아픔이지만, 두개골이 박살나는 것 같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크흐으흡...”
통증 제어를 낮춰놨다지만, 지금 이건 그마저도 아득히 벗어나는 수준의 고통이었다. 아니, 고문이었다.
골을 열어, 뇌에 직접 바늘을 쑤시는 것 같았다.
[가드 시스템이 발동합니다.]
사용자의 안전을 위해 마련된 장치가 작동 알람을 울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끄어으흑...”
그렇게 신음과 비명성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속을 헤매이길 한참, 결국 까무룩 정신줄을 놓으며 기절하고야 말았다.
**
다시금 눈을 떴을 때, 마루는 자신이 로그아웃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끄응...강제 종료인가?”
신음성 섞인 중얼거림과 함께 기기를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전신에서 불쾌한 냄새가 피어나며 후각을 자극했다.
“이건, 또 뭐야?”
땀이라도 한바가지 흘린 것일까?
“어욱! 찌린내.”
그 불쾌한 냄새와 감각에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일단 정신을 차리고 기분도 환기시키기 위해, 그는 즉시 샤워실로 향했다.
쏴아아아...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상황을 되짚어봤다.
‘갑자기 대가리가 빠개질 것 같더니, 가드 시스템까지 발동됐었지.’
사용자의 신경망에 접속한 뒤, 게임 감각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시스템인 만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안전장치 한 둘은 있기 마련이었다.
가드 시스템 역시 그런 장치였다.
‘그런데도 고통은 사라지질 않았고.’
안전장치가 제 역할을 못한 부분 이전에, 어째서 그런 사태가 발생했는가? 그에 대한 의문이 먼저였다.
‘스탯을 올린 뒤였지.’
그와 동시에 밀려든 통증이었다.
‘설마...스탯 때문인가?’
합리적 의심이었다.
‘유독 두개골이 빠개질 것 같았던 것도, 어쩌면?’
몸뚱이를 두드리는 통증도 있었지만, 개중에서도 손을 꼽으라 한다면? 역시나 두개골에 가해지던 압력이 압권이었다.
‘지능을 뻥튀기 했었지.’
기존 능력의 배에 달하는 스탯을 올린 게 문제였을까?
끼릭...
샤워기를 끄고 몸을 닦던 중이었다.
“...어?”
거울에 비친 무언가가 시야를 자극했다.
잘 못 봤나 싶어서 거울을 닦고 눈을 비비는데, 다시금 확인해도 달라진 건 없었다. 오히려 더욱 선명히 시야에 박혀들 뿐이었다.
“복근이...왜 이래?”
헬스장을 찾아가며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지만, 육체미를 위한 게 아니었다. 근력을 키우기 위한 운동이었다.
각종 화기에 발골 작업을 위한 장비들까지, 힘쓰는 일이 워낙 많다 보니, 근력을 주로 단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민첩성도 챙겨야 하는 터라, 적정근육을 유지하는 게 포인트였다.
그래도 나름의 가락이 있는 만큼, 복근이라 할 만한 게 있긴 했다.
“그게 이렇게 선명하진 않았는데?”
이전까진 그저 굴곡만 비친 정도였다면, 지금은 완벽한 테두리를 나눈 형태로써, 초콜릿 복근이 새겨져 있던 것이다.
“허...신기하네.”
각도와 자세를 돌려가며 확인하던 것도 잠시, 어느새 몸의 물기가 싹 말라버릴 즈음, 그는 앞서의 의문에 확신이 더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게임하고 현실이 연결돼서, 스탯 분배가 현실에 영향을 주는 건가.”
그 증거로 신체적인 변화까지 나타났다.
“힘이나 체력, 어쩌면 민첩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네.”
전날 민첩량을 12나 올렸던 만큼, 민첩 스탯이 복근에 영향을 준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살도 좀 빠진 것 같고.”
두개골이 부서질 것 같던 통증은?
“역시, 지능 스탯 때문이겠지?”
유독 많은 스탯을 투자한 종목이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스탯을 올려버렸고, 그게 과부하현상을 일으키며 말썽을 피운 것이리라.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째 평소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역시 지능 스탯의 영향이지 않을까?
“스탯을 몰빵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의문과 동시에 최악의 상황이 떠올랐다.
“한 방에 훅 갔을지도...꿀꺽!”
몸 어딘가가 터졌을지도 몰랐다.
“...좀 더 신중해야겠네.”
지난 통증이 떠올라 몸서리를 치는 것도 잠시, 샤워실을 나온 그는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향했다.
스탯의 상승과 신체의 변화!
이젠 그 실체를 확인해 볼 시간이었다.
“일주일이나 쉬었으니.”
저 멀리 헬스장의 간판이 보였다.
**
트레이너 김수길이 의아한 듯 물었다.
“벌써 끝내시게요?”
마루가 정리 스트레칭을 하며 답했다.
“말했잖아. 오늘은 그냥 가볍게 몸만 풀러 왔다고.”
“일주일 만에 나오셔서 제대로 봐 드리려고 했는데.”
“몸살 앓다가 온 거라, 무리하면 안 돼.”
그 말에 김수길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상태가 너무 멀쩡하신데...”
물론, 완전히 납득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하여간 감이 좋다니까.’
가벼운 몸 풀기라는 말과 달리, 제법 무게를 올린 상태가 아니던가. 게다가 마루는 아직 여유가 넘쳐보였다.
“새로 일거리가 잡혀서, 지금은 근육에 자극 주는 걸로 충분해.”
그렇게 말하며 마루는 자리를 정리했다.
“요즘 막 몸이 올라오시던데, 몸살에 새 일거리까지. 이래저래 아쉽네요.”
“어쩌겠냐. 다음 기회를 노려야지.”
“또 한동안 못 뵙겠네요.”
김수길의 아쉬운 소리에 마루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형 없다고 심심해 말고. 대회 준비 잘 하고. 틈틈이 문자로 궁금한 거 물어봐도 씹지 말고.”
“에~이. 저 비싼 남잡니다.”
“소고기면 되냐?”
“대회 끝나고 연락드리면 됩니까?”
“트로피 들고 오면 거하게 쏜다.”
그렇게 가벼운 농담 속에서 이별이 이뤄졌다.
**
밖으로 나온 마루는 아쉬움에 뒤를 돌아봐야만 했다.
“헬스장은 접어야겠네.”
어쩔 수 없었다.
“하...이용권 아직 남았는데.”
각성 자격증 발급이 어려운 지금, 그가 능력이 있다는 걸 드러낼 수는 없었고, 그 때문에 스스로를 증명하기 전까진 최대한 몸을 사려야했다.
“여기도 헌터들 깨나 다녔었지.”
동네의 흔한 헬스장 같지만, 인근에선 제법 유명한 곳이었고, 그런 만큼 저기에도 각성자가 상당수 등록되어 있었다.
“쓸데없이 노출될 필요도 없고.”
오늘 운동을 하며 그 부분을 인지했다.
“재수 없으면 비등록 각성자로 오인 받을라.”
스탯 상승 확인을 하며, 평소 수준의 중량을 평소보다 가볍게 들어 올렸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각성자로 의심받을지도 몰랐다.
“자격증도 없고, 특수한 케이스니까.”
‘힘을 얻기 전까지는 사려야지.’
각성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세상 이면에서 각종 범죄를 일으키는 능력자들이 상당했다. 그 때문에 자칫 오해라도 받으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었다.
“이제부터 운동은 집에서 해야 하나?”
간단한 도구 정도만 있는 만큼, 몇몇 기구는 새로 구입해야 할 듯싶었다.
“코딱지만한 방이 더 비좁게 생겼네.”
이 와중에도 이사 생각을 하지 않는 건, 뇌리 깊숙이 새겨진 자린고비의 정신 때문이리라.
< #8. 신체변화.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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