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알람? >
사냥 퀘스트의 시작은 아주 간단했다.
[허수아비를 파괴하십시오.]
그리고 시야 한편에 떠오르는 타이머가 보였다.
[00:01]
당연하게도 빠르면 빠를수록 보상도 좋아지는데, 중요한 건 클리어 타임에 따라서 퀘스트의 ‘연계’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마루의 주먹에는 자비가 없었다.
퍼억!
단 일격에 허수아비가 박살났다.
보통 이 시점에는 퀘스트로 제공되는 목검을 들지만, 일찌감치 진로를 잡은 이들의 경우, 차후 직업에 맞게 움직이고는 했다.
“몽크는 주먹이지!”
장갑 같은 것 없이 맨주먹이었다.
‘그래도 주먹이 낫지. 마법사들은...큭!’
저 한편으로 두툼한 사전을 든 채, 낑낑대며 허수아비를 치는 이들이 보였다.
“푸핫!”
결국, 웃음이 터져버렸다.
‘저것도 아프긴 하지.’
사전 모서리는 정말 아팠다.
[마법사면 지팡이 아닌가?]
이런 의문도 들겠지만, 지팡이는 그 미묘한 형태차이에 의해, 봉 혹은 창으로 분류되다 보니, 저들로써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째서 이런 번거로운 행위를 하는 걸까?
거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부 기록되니까.’
그 정보가 전직 보상의 차이로 이어졌다.
[마법사가 칼을 든다?]
‘감점 요소!’
물론, 모든 행위가 기록되는 건 아니었다.
‘주요 핵심 퀘스트만 기록되지.’
허수아비 퀘는 거기에 포함됐다.
‘사냥 시작을 알리는 퀘스트니까.’
중요도가 높은 것이다.
초보존 팁이지만 제대로 사용되진 않았다. 제법 번거로운 면이 있기 때문인데, 마법사의 사전 촙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물론, 마루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티끌 모아 태산!’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보상 포인트가 상승합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알람과 함께 연계 퀘스트가 시작됐다.
[허수아비를 파괴하십시오.]
앞서와 똑같은 알람이지만 대상이 달랐다.
좀 전의 허수아비는 볏짚으로 만든 것이라면, 지금의 허수아비는 나무로 제작되어 있었다. 한층 단단해진 것이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퍼억!
이번에도 일격이었다.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보상 포인트가 상승합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애초에 10레벨대의 스탯이 아닌 20레벨대의 스탯을 지니고 있지 않던가. 단순 스탯만으로도 허수아비 퀘스트는 압도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번 녀석은 좀 긴장되네.’
[허수아비를 파괴하십시오.]
또 다시 같은 알람이 울리고, 연계 퀘스트의 마지막을 장식할 녀석이 등장했다.
‘강철 허수아비!’
마루는 벽골과 차력을 몸에 두르고, 강권 스킬을 끌어올린 뒤 두어 걸음 물러나 속보를 발동시켰다.
콰앙!
허수아비가 박살났다.
“와...미쳤네.”
“설마, 저거 한 방에 박살낸 거야?”
“강철이 아니라 깡통 허수아빈가?”
“저게 가능한 일이야?”
“누구지?”
주변의 시선이 몰렸다.
‘클리어는?’
소란을 뒤로한 채, 알람에만 집중했다.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보상 포인트가 대폭 상승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보상.
[스킬 ‘순살’이 부여됩니다.]
내용을 확인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순살 - 지속, 발동, 성장]
[지속 : 치명타 확률 증가]
[발동 : 급소 검색]
[성장 : 성화]
이 시점에선 나오기 어려운 스킬이었다.
‘그럭저럭 쓸 만한 칭호나 단일 스킬 같은 게 나올 줄 알았는데, 패시브(지속)와 액티브(발동)가 동시에 걸려있는 스킬이라니.’
2차 전직 이후에나 나오는 중첩 스킬이 뜬 것이다.
‘게다가, 성장형!’
무려 3중첩이었다.
‘이 정도면 3차 전직 보상에도 비비겠는데?’
해본 적은 없지만 들은 건 제법 많았다.
“휘유~!”
성장부분에 ‘성화’라고 되어있었는데, 이는 성장의 조건이었다.
[성화 - 2차 전직 공용 축복!]
그의 성장이 스킬의 성장으로 이어질 터였다.
‘알려지지 않은 특수 보상이겠지?’
어쩌면 아는 이들만 아는 비밀 보상일 가능성도 있지만, 느낌상으론 그럴 확률이 낮다고 여겨졌다.
‘강철 허수아비 박살내는 게 얼마나 힘든데.’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그처럼 하긴 어려우리라.
‘초보 존에서 20레벨대 스탯 지닌 놈이 나 말고 또 있으려고.’
다른 신화템 계승자들이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버렸다. 짐작건대 빠른 랭킹 복구를 위해, 이 구간은 평타만 치고 넘어갔을 확률이 높았다.
‘계승으로 잃어버린 고유 칭호 복구하려면, 이런 구간에서 시간 낭비할 틈은 없겠지.’
3중첩 스킬이 대단하긴 하지만, 200레벨에 이르면 얼마든지 획득 가능한 보상이기도 했다.
‘천상계 놈들은 그놈들만의 보상 루트가 있으니까.’
상념은 그쯤에서 마무리 지었다.
“이제부턴 진짜 사냥이네.”
밖으로 향할 시간이었다.
**
“으헉! 이게 깨졌다고?”
PP 관리 5팀의 주인우 팀장이 깜짝 놀란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 소란에 뒤편에서 작업 중이던 장이수가 관심을 표했다.
“왜 그러세요?”
그러다 화면에 뜬 초보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 놀랄 게 있나?”
혼잣말이었지만 주인우는 질문으로 받으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있지. PP가 얼마나 잘 만든 게임인데.”
그러면서 화면 구석에 반짝이는 창 하나를 띄웠다.
“이거, 허수아비 퀘스트.”
“기본 사냥퀘요?”
“여기에도 사실 특수 보상이 숨어있거든.”
“억! 그런 게 있었어요?”
“몰랐지? 직원들도 잘 모르는 비밀 보상이야.”
“...저희가 모르는 게 한둘인가요.”
“나도 예전에 우연히 알게 된 보상목록 중 하나다. 그런데 그게 드디어 깨진 거야. 햐...게임 내릴 때까지 안 깨질 줄 알았는데.”
이쯤 되니 호기심이 솟구쳤다.
“그렇게 특별합니까?”
“당연하지. 이거 깨려면 얼마나 노가다를 해야 하는지 아냐?”
“노가다요?”
“버프 서비스 알뜰히 챙겨야 하거든.”
“그 정도는 기본이잖아요.”
“기본도 모르는 놈들 많아.”
“필드 사냥이 최고인 줄 아는 거죠.”
중요한 건 여기부터였다.
“버프 기간을 뻥튀기까지 시켜야 돼. 알지? 원래 버프 서비스는 제작계열 위해서 마련해 놓은 거.”
“저 무시합니까? 신입 딱지 뗀지가 얼만데, 그 정도야 당연히 알죠. 제작계열이 워낙 노가다라 흥미 떨어지지 말라고, 퀘스트 중간중간 추가 버프 심어둔 거잖아요.”
“그래. 제대로 알고 있네. 그리고 너 아직 신입 맞아. 얼마나 됐다고 벌써 기어올라? 진짜. 고모만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쳐내는 건데.”
“드럽고 치사해서...”
“뭐?”
“The Love! 사랑한다고요. 것보다 그걸로 뭘 해요?”
한 차례 눈을 흘긴 뒤,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했다.
“...빤하지. 버프 서비스로 스킬 숙련도 작업하고 스탯도 쌓는 거지.”
“얼마나요?”
“제작퀘 보상 맥스로 찍을 만큼.”
최소 보름에서 최대 한 달, 어마어마한 노가다였다.
“미쳤네요.”
“말했잖아. 버프 서비스 ‘알뜰히’ 챙겨야 한다고.”
“아......”
말문이 턱 막혔다.
“제작 퀘스트로 레벨 올라가도, 스탯은 찍으면 안 돼. 스탯 100은 넘기면 안 되니까.”
그 순간 서비스 버프도 끝이었다.
“차곡차곡 쌓아만 두는 거지.”
“아니. 그렇게 개고생해도 겨우 15~6렙 밖에 안 될 텐데, 차라리 레벨 작업이나 하는 게 낫지 않나요? 그 시간이면 전직도 하겠네.”
일찌감치 나가서 상위 스킬을 익히는 게 효율적이었다.
“제정신으로 할 작업이 아닌데요?”
“그래. 그냥 미친 짓이지.”
“클리어 방법은요?”
“허수아비 세 개를 전부 10초 안에 박살내는 거지.”
입이 쩍 벌어졌다.
“와...두 번째 허수아비까진 어떻게 되도, 세 번째는 진짜 빡세겠는데요. 강철 허수아비 그거 사실 초보존 끝판왕이잖아요. 사냥터에도 그놈보다 단단한 건 없을 텐데.”
“그게 골 때리는 부분이야.”
스탯에 스킬 조합까지 잘 이뤄져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계열 스킬로는 클리어가 어렵거든.”
“반전에 함정까지, 최악이네.”
“뭐, 제작계열은 허수아비 칠 이유가 없지만.”
“...반전이 뭐 이리 많아.”
그런 이유로 전투 계열이 일부러 제작퀘를 해결해야 하는, 말 그대로 가성비 최악의 루트만이 해법이었다.
“보상은 뭔데요?”
“몰라.”
“예?”
“클리어 방법까지만 들었어.”
모니터로 확인할 수도 없었다.
“특수 보상은 팀장 권한으로도 못 봐.”
“으...싸다 끊으면 어쩝니까?”
“비유 참, 더럽게도 한다.”
“어쨌든 제정신으로 할 짓은 아니네요.”
장이수가 혀를 내둘렀다.
“그래. 그래서 미치지 않고선 이 짓거리를 할 이유가 없는 거지. 게다가 이건 나도 ‘암실’에서 우연히 들은 정보야.”
“암실이면, 정보가 밖으로 샌 건 아니네요.”
“내가 지금까지 괜히 비밀로 했겠냐.”
퀘스트가 깨진 상황이기에 편하게 밝힌 것이다.
“결국, 이걸 깬 유저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노가다만 하다가 깼다는 거 아니겠냐?”
“...변태 아닙니까?”
“나도 그 생각 좀 했다.”
장이수의 시선이 주인우의 화면으로 향했다. 이 미친 짓의 주인공이 궁금했던 까닭이었다.
아이디를 살핀 장이수가 나직이 말했다.
“어디 체육관 관장인 모양이네요.”
주인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도라도 닦는 양반이거나.”
“하긴, 그 정도 노가다면, 수양록 좀 썼겠네요.”
“개그냐?”
“......”
임팩트가 컸던 까닭인지, 그들은 화면에 뜬 아이디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뇌리 깊숙이 입력시켰다.
[장관장]
**
필드 퀘스트는 조금 가혹하게 시작된다.
깡총. 깡총...
귀여운 얼굴로 토실한 엉덩이를 흔들며,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저 깜찍한 동물을 보라.
“토끼 사냥이라니.”
개중에서도 최약체인 방울토끼로써, 몸 전체가 동글동글한 게 매우 인상적인, 슈퍼 귀염둥이를 잡는 것이다.
뀨? 뀨우? 뀨잇뀨?
심쿵 요소가 다분한 게 함정이었다.
그 때문일까?
“나...난 안 돼! 못해! 못 잡아.”
“엉엉! 미안해. 언니가 미안해 토순아.”
“아프지 않게. 한 방에 죽여줄게. 아악! 아직 살아있어. 아악! 아직도! 맷집이 너무 좋은 거 아니니? 그만 죽어줘! 죽어...좀, 뒈지라고옷!”
“난 그냥 안고 있을래. 이 푹신함에 파묻혀 죽는다면, 환영이야!”
좌절하는 몇몇 유저들과 눈물을 흘리며 몽둥이를 휘두르는 유저 등, 아주 다양한 인간군상을 살필 수 있었다.
퍽...퍼억...뿌직...
그 와중에 맨주먹으로 방울 토끼를 짓뭉개는 마루의 위용이란, 가히 치명적이었다.
“살인마!”
“악당!”
“냉혹한!”
“변태!”
치명적인 만큼 귀지도 팍팍 쌓였다.
결국, 시끄러운 소란과 시선을 피하고자, 필드 깊숙이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잡았을까?
[레벨 업!]
반가운 알람이 터져 나왔다.
몇 마리 잡아라가 아닌, 사냥을 통한 레벨 상승이 클리어 조건이기에, 이 시점에서 필드 사냥퀘는 끝났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기왕이면 스킬도 전부 마스터 해야지.”
스킬들을 최대한 다양하게 활용했지만, 너무 많은 스킬을 익힌 부작용일까? 숙련 마스터를 찍은 건 몇 없었다.
“일단 스탯을...힘하고 지능에 1씩 올리고, 체력에 2, 정신력에 1을 추가.”
그리고,
“어라?”
[장관장]
[레벨 : 13]
[힘 : 30] [지능 : 30]
[체력 : 28+2] [정신력 : 30]
[민첩 : 30]
[스탯 : 4]
당혹스런 결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뭐야?”
정신력 외에 오른 스탯이 없었다. 이를 증명하듯 상태창 아랫부분에 [스탯 : 4]라고 떠 있는 게 보였다.
“뭐가...어떻게 된 거야?”
등허리가 쭈뼛 서는 걸 느꼈다.
‘이럴 때는.’
미안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초롱아!”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물었다.
-노력해.
언제나와 같은 대답만 할 뿐이었다.
“아니. 노력해도 스탯이 안 오르는데, 무슨 노력을 하냐고?”
-노력했어? 그러면 좀 쉬어.
골 때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으아아아!”
-건물주. 층간 소음이 너무 심해!
복장 터지는 소리까지 추가됐다.
**
다급히 로그아웃을 한 뒤, 현실에서 한계치까지 육신을 혹사시켰다.
“으아아아-!”
게임 스탯이 오르질 않으니, 현실의 육신으로 스탯 상승을 노린 것인데, 구토가 올라올 만큼 몸을 굴렸음에도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오히려 컨디션만 나빠져 몸살기만 올라왔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차라리...이럴 거면, 희망을 주지 말던가!”
기적을 만났다고 여겼건만, 더 큰 절망이자 나락으로 떨구기 위한 함정이었던 걸까?
“으득!”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아니야.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15년의 세월, 그 오랜 시간을 이 바닥에서 버티며, 겨우겨우 맞이한 ‘변화’가 아니던가.
‘찾아낸다. 반드시 찾아낸다!’
절망 속에서도 고개를 들었다.
“방법, 방법이 있을 거야. 방법이...”
무리한 운동과 충격적 상황으로 인해, 육신과 정신이 한계에 이른 까닭일까?
결국,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쿠우우우...”
**
쏟아지는 햇빛이 눈꺼풀을 두드린 탓일까?
그도 아니면 고막을 울리는 알람 때문일까?
‘아침인가?’
슬며시 꿈나라가 멀어지는 걸 느꼈다.
‘으으...시끄러!’
비몽사몽 중에 몸뚱이를 움직여 알람을 껐다.
분명, 껐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시끄러?’
자꾸 귓구멍을 후비는 이 알람은 뭔가?
‘그러고 보니...’
평소 알람과는 좀 다른 느낌도 들었다.
전날의 충격 때문일까?
진한 피로감이 남아, 눈꺼풀을 들어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어렵사리 눈을 뜨니, 멍멍하던 정신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듣게 된 온전한 알람.
[Entranet에 접속하시겠습니까?]
“어...?”
피로감이 싹 날아가는 걸 느꼈다.
“...뭐?”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알람은 변함이 없었고, 이내 그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기 시작했다.
[Entranet에 접속하시겠습니까?]
[Entranet에 접속하시겠습니까?]
쉼 없이 고막에 노크하는 저 알람.
‘엔트라넷...’
저것은 분명,
“...각성 알람?”
조금은 갑작스럽게, 한편으로는 당혹스럽게, 그렇게 두 번째 기적이 그를 찾아왔다.
[노력했어? 그러면 좀 쉬어.]
환청마냥 초롱이의 음성이 스쳐갔다.
< #9. 알람?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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