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입문. >
차원방벽!
몬스터들이 다른 세상에서 지구로 넘어올 때, 그 육신에 깃드는 미지의 ‘가호’였다.
어느 박사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유산균이 장까지 살아갈 수 있게, 캡슐을 씌워주는 겁니다. 어때요? 이해가 쏙쏙 되죠?]
저들 세상과 이곳 지구!
그 사이에 있는 ‘차원의 통로’를 건너게 해 주는 보호막, 그게 바로 방벽 현상의 정체였다.
그런 이유로 몬스터들이 현세에 등장할 경우, 일정 시간동안 차원방벽의 보호 아래, 물리력이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보호막이 사라지면?
일반 총화기로도 해치울 수 있었다.
“사라지기 전까지가 문제지.”
이 부분이 각성자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차원방벽을 무시하는 힘!]
기, 오러, 포스 등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기적의 에너지, 각성자들의 힘의 근원은 방벽이 막질 못했다.
[그레이(Gray) 타임!]
방벽타임의 대표적 명칭 중 하나였다.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고 있다고 해서, 잿빛 시간이라 불리는 것인데, 이유는 간단했다.
“각성자는 환영하고, 비각성자는 환장하고.”
명암이 확실히 갈리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하나 더,
‘방벽 타임에는 몬스터가 약화되지.’
모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이랬다.
[데이터를 빠르게 많이 전송하려면 뭘 합니까? 그렇죠. 압축을 해야죠. 바로 그겁니다.]
몬스터는 방벽으로 보호된다.
“봉인도 되고.”
쉽게 설명하자면 그랬다.
그 때문일까?
각성자들이 부르는 명칭은 따로 있었다.
[그레잇(Great) 타임!]
능력으로 방벽을 무시한 채, 한껏 약해진 몬스터를 때려잡는 것이다.
“변신 중엔 건드는 거 아닌데.”
현실에선 패는 게 국룰이었다.
비각성 헌터도 특수 장비를 착용할 경우, 차원방벽을 뚫는 게 가능했는데, 거기에는 또 나름의 고충이 존재했다.
Money!
게임 용어로 치자면?
“과금 요소가 다분해.”
사실, ‘순수’ 물리력도 통하긴 했다.
“전투기쯤 동원하면 중급 몬스터까진 커버 가능하지.”
초창기 던전 웨이브는 그렇게 막아냈었다.
‘가성비가 최악이긴 하지만.’
골 때리는 건, 던전에선 방벽이 상시 유지 된다는 점이었다.
일반화기 사용 타이밍?
1. 웨이브가 발생한다.
2. 방벽 타임이 끝난다.
3. 막판에 잠깐 쏜다.
최악이었다.
[각성과 스킬!]
대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여러모로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일까?
“훅...강권! 후욱...속보! 후훅...”
마루는 현실의 숙련도 노가다가 힘들거나 괴롭지 않았다.
‘좋다! 너무 좋아!’
즐거웠고 행복했으며 감격적이었다.
“반 호흡까진 됐고, 이제 반의반 호흡이다!”
마침 적절한 자극요소도 있었다.
[혜성길드 특수 1팀장 이소희]
쉴 때마다 그녀의 명함을 꺼내봤다.
‘얼음여제!’
시선은 명함에 닿아있으나, 그의 사고는 지난 게이트 사건에 머무른 채, 그녀가 보여줬던 압도적 강함에 빠져 있었다.
‘그게, A등급 헌터.’
동갑이라는 이유만으로 시기하고 질투했던, 그런 철없던 시절도 있기에, 더더욱 의미가 남달랐다.
‘나도 언젠가는...’
상상만으로도 기운이 났다.
벌떡!
휴식은 거기까지였다.
‘...강해진다!’
반복되는 일상 속, 변화는 조금씩 찾아왔다.
**
허파is토스는 성난 얼굴로 씩씩거렸다.
“아니, 이 자식은 초보존에서 뭘 하느라 이렇게 안 나오는 거야?”
마루에게서 새 캐릭터로 귓속말을 받고난 뒤, 늦어도 일주일이면 찾아올 거라 여기며 장비를 준비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
“이러다가 한 달 채우겠네.”
벽면에 걸린 초보자 세트가 눈에 거슬렸다.
“저걸 고철로 만들 수도 없고.”
마루를 위해 손수 제작한 ‘세트’템이지만, 완성도와 무관하게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무구였다.
‘내 대장간에 초보세트라니. 으득!’
나름 랭킹에 이름을 올린 대장장이였다. 적어도 2차 전직은 해야 이곳에서 무구를 구입할 수 있었다.
‘하...그런 명장한테 무직자용 장비를 만들게 해?’
구석에 걸어놓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래놓고 늦어?”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대체 언제 올 생각이야?”
뭘 하는 건지 귓속말을 걸어도 잘 받지 않았고, 어렵사리 연락이 닿으면, 곧 나간다는 말만 반복될 뿐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벽면에 걸린 초보 장비가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망치질을 하기도 애매했다.
“해체해 봤자 쓸 데도 없고. 미치겠네!”
각 무구들은 등급에 어울리는 재료가 필요했다. 그 말인 즉, 초보 무구 세트를 분해하더라도, 초보용 재료만 쏟아진단 의미였다.
상위 무구를 제작하는 이곳에선 쓸 게 없었다.
“고철 값이나 나올지 모르겠네.”
한숨만 나왔다.
“오늘까지만 기다린다.”
안 오면 처분이었다.
“재료값, 반드시 받아낸다!”
이런 부분을 잘 강조해서 귓속말을 보내고, 따로 우편까지 붙인 덕분일까?
“나 왔다!”
반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기다리던 손님이 찾아왔다.
“정. 마...”
“장관장이라고 불러야지.”
어찌나 흥분했는지, 아이디가 아닌 본명을 입에 담는 허파is토스의 모습에, 마루가 급히 입을 열어 조정했다.
“손님도 없는데 무슨 상관이야!”
이글거리는 눈빛이 마루를 관통했다.
“뭐...그건 그렇지.”
마루가 뒤늦게 안쪽을 살피고선, 조용히 후회하며 눈을 깔았다.
“뭐하다가 이제 왔냐?”
이어지는 물음에 마루가 어깨를 으쓱였다.
“20렙 찍느라 좀 늦어버렸네.”
“뭐.하.다.왔.냐.고.물.었.다!”
재차 이어지는 질문, 거기에는 헛소리 하지 말라는 강한 경고가 담겨있었다.
마루가 헛기침을 하며 답했다.
“크흠! 스킬 좀 마스터하다 보니, 사알짝 늦어져버렸네.”
“...설마, 전부 마스터하고 온 거냐?”
허파is토스는 질문과 동시에 답을 알았다.
“이만큼 시간이 걸렸으면, 마스터했겠네.”
그러면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아니. 그래도 너무 오래 걸린 거 아닌가? 이렇게 오래 걸리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스킬을 배워야 하는 건데? 이참에 아주 제대로 잡캐로 만들 생각이냐?”
“잡캐라니. 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발끈하며 반발했지만, 타인의 시선에는 확실히 잡캐였다.
“그러면 망캐라고 할까?”
“어후...말을 말자.”
물론, 그렇다고 진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현실 숙련도 작업까지 하다 보니, 시간이 배로 들어버렸네.’
상황이 이러하니 적당히 화를 받으며 달래야했다. 그 같은 노력이 통한 듯, 오래지 않아 화제를 전환할 수 있었다.
“옜다. 초보 무구 세트. 경갑으로 할까 하다가. 가죽으로 기본 베이스 깔고, 그 위에 철판 덧씌운 형태로 갔다.”
“오오...적당히 초보 무구로만 맞춰줘도 충분한데. 수련 등급도 아니라, 일반 등급에 무려 세트템이라니. 땡큐. 아리가또. 당케, 쎼쎼...”
“1절만 하랬지.”
“흐...고마워서 그러지.”
마루는 1차 전직인 50레벨까지 이 무구 하나로 버텨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나 둘 착용을 시작했다.
“네 육성방식 생각해서 스탯도 균일하게 분배시켰다.”
“무게감도 전혀 안 느껴지네.”
뿐만 아니라 옵션도 매우 훌륭했다.
[오류난 쪼렙 방어구 세트 - 상의, 하의, 신발]
[상의 - 힘 : 10] [하의 - 체력 : 10]
[신발 - 민첩 : 10]
[세트옵션 - 정신력 : 10]
장비의 명칭이 살짝 거슬리긴 했지만, 재료값만 내고서 이 좋은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다면?
충분히 웃어넘길 수 있었다.
‘여기다가...’
[오류난 쪼렙 귀걸이 세트 - 좌, 우]
[좌 - 지능 : 4] [우 - 지능 : 4]
[세트옵션 - 지능 : 2]
이렇게 착용을 완료하면?
[힘, 지능, 체력, 정신력, 민첩]
모두 10스탯씩 추가되며, 총합 50스탯이나 올려주는 것이다.
‘한 2~30스탯만 올려도 땡큐인데. 흐흐!’
무려 50스탯이었다.
“굳! 굳!”
레벨제한도 지금과 딱 맞았다.
‘이 정도면 전직해도 한동안을 쓸 수 있겠네.’
등급은 비록 일반이지만, 세트 장비인 만큼 반 등급은 올려도 됐다.
“여윽시 명장!”
양 손으로 쌍 엄지를 날려줬다.
“귀걸이에 세트옵션 넣느라 눈깔 빠질 뻔했다. 그런 악세사리는 내 전문도 아닌데. 쯧!”
“그라~씨아스! 당케...”
“적당히 하라고. 확 전부 고철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흐흐!”
마루는 기분 좋게 웃으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레벨 : 20]
[힘 : 40(+10)] [지능 : 40(+10)]
[체력 : 40+2(+10)] [정신력 : 40+5(+10)]
[민첩 : 40(+10)]
[스탯 : 0]
토크 아일랜드를 벗어나기 전, 추가 획득한 [근면성실] 칭호로 정신력에 5가 더해졌고, 현실에서 육체단련으로 추가한 9스탯까지.
그렇게 총 스탯이 무려 257이었다.
‘얼추, 41레벨대 스탯인가.’
상태창을 보고 있자니 웃음만 나왔다.
“흐흐흐흐...!”
“뭘 그렇게 헤벌레 하고 있어? 손님 오니까 그만 꺼져.”
축객령에도 웃던 마루가 밖으로 나서며 외쳤다.
“메르시!”
그러면서 휙 사라져버리는 모습에, 허파is토스가 고개를 저었다.
“하...애국가도 5절까지 지어 부를 놈일세.”
길잡이 요정 루미가 과연 뽑기 미스일까?
의심을 해 봐야 할 시점이었다.
따아아앙...땅...따앙...
객을 보낸 대장간이 뜨거운 일상을 시작했다.
**
스킬 북!
PP의 시나리오 내에서, 명성깨나 떨친 이들의 공부가 전승이란 명목을 지닌 채, 하나의 서적으로 완성된 형태였다.
때문에 각 서적마다 개별적 의미가 있었다.
그건 하위의 기초 스킬이라 해도 다를 게 없었고, 그 때문에 스킬들을 하나로 합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적당한 상성이 필요했다.
-합당한 숙련도도 필수죠.
그리고 마지막 포인트.
-아주 약간의 기적!
마루는 눈살을 찌푸리며 루미를 바라봤다.
“다 아는 사실, 굳이 시끄럽게 떠들래?”
-불쌍한 초짜를 돕는 게 제가 할 일이니까요.
“......”
할 말을 없게 만들었다.
-초롱이는 언제 불러 줄 거에요?
“애기 자는데 깨우고 싶냐?”
-치! 귀염둥이 보고 싶다.
루미의 투정에 한숨이 푹 나왔다.
‘그래. 전부 내 탓이지.’
혼자서만 돌기에 심심해서 꺼냈더니, 그 부작용이 너무 심했다. 귀지가 고막을 포위하는 기분이 이러할까?
어쨌든 루미의 이야기처럼 ‘스킬 조합’에는 기적이 필요했고, 그 때문에 신전을 찾아 퀘스트를 받았다.
“저기 저 뒷산에 고스트가 나온다는 소문이 있다네. 여행자여 부디 그 불쌍한 원혼들을 해방시켜 평온의 땅으로 이끌어주게나.”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맡겨주십시오!”
[퀘스트가 등록됩니다.]
신전에서 기적을 얻으려면, 합당한 공헌도가 필요했다.
‘몽크 전직 전까진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한 가족이라고, 전직 후에는 작은 기적 정도는 공짜로 받을 수 있었다.
‘2차 전직까지 하면, 직접 해결할 수도 있고.’
자잘한 스킬 조합은 혼자서도 가능해진다.
단지, 여기서 함정이라면, 상위 스킬 조합은 작은 기적으로는 어렵기에, 결국 신전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랄까?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짤막한 인사말을 나눈 뒤 신전을 나왔다.
“얼마만의 고스트 사냥이냐.”
-꺄악! 유령 싫어.
뒷산으로 가는 길은 한적했다. 하지만 멀리 산의 초입에 다다르니, 조금씩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고블린 부락 정찰 퀘스트 공유합니다.”
“원딜 구해요!”
“장비 수리 합니다.”
“구급키트 팔아요.”
“약초 대량 소량 구분 없이 삽니다.”
이 앞으로 여러 필드가 펼쳐지는 만큼, 이곳에 쉼터를 마련한 뒤, 다양한 커뮤니티가 이뤄지는 것이다.
마루 역시 이곳에 머물 필요가 있었다.
‘이 퀘스트는 무조건 파티로 가야 한다는 게 번거롭다니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스킬 조합을 위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전직!]
캐릭터의 향후 육성 방식을 결정하는 첫 번째 분기점, 그게 바로 이 퀘스트로 결정 되는 까닭이었다.
“실제 전직은 50레벨이지만.”
-일종의 수습기간이죠.
“게임 참, 번거로워.”
-그래서 세계 최고가 된 거랍니다!
마치 제 일이라는 듯이 콧대를 세우는데,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워 헛웃음이 나왔다. 밉다가도 저런 모습 때문에 사르르 녹는 것이다.
“그래도, 무슨 전직에 ‘입문’ 퀘스트가 있냐.”
고스트의 정화 퀘스트는 전직의 시작점이었다.
‘입문 퀘스트가 이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가장 가까운 퀘스트라서 고른 것뿐이었다.
‘겸사겸사 스킬 조합도 하면 좋고.’
흥미로운 점이라면, 고스트 퀘를 받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라는 건데, 이 부분이 또 재미있었다.
“누구한테 받느냐에 따라서 전직 루트도 바뀌니.”
-그게 이 게임의 오묘한 점이죠.
“묘한 점이겠지.”
기사들의 경우에는 경비대를 통해 퀘스트를 따오고, 마법사들은 도서관의 사서에게 부탁을 받는 등, 여러 장소를 통해서 직업 루트가 정해지는 것이다.
“설정 참 복잡하게도 해 놨다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 퀘스트가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중간마다 갈아타라고 분기점도 두고.”
이를 통해 직업군을 바꾸는 것이다.
-언제든지 다른 직업으로 환승하셔도 되요.
루미가 두 눈을 반짝이며 그리 이야기하지만, 되도 않는 소리였다.
“어디서 공헌도를 깎아먹으려고.”
-히잉...몽크 싫어!
버럭 성질을 내더니 멋대로 사라져버린다.
“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쉼터로 향했다.
“파티 구합니다!”
“팀원 구해요!”
구인구직의 시간이었다.
< #13. 입문.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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