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파티. >
PP라는 게임은 여타 게임에 비해 하드한 면이 있어, 파티로 사냥을 하더라도 적잖은 고역을 치러야만 했다.
이는 상위권의 실력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일까?
팀원 구성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파티 구하기 더럽게 힘드네.”
마루는 짜증 섞인 모습으로 쉼터를 돌아야만 했다.
“겨우 입문 퀘스트인데, 너무 하드한 거 아니냐?”
비주류 3대장 중 하나로 꼽히는 몽크이기 때문인지, 파티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퀘스트나 다름없었다.
“어디서 퀘스트 받으셨어요?”
“신전이요.”
이때까진 분위기가 좋다. 대개 신관이나 성기사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면접에서 분위기는 바로 뒤집어진다.
“희망 직업이 뭐에요?”
“몽크요.”
“......”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정말로 PK가 일어나는 건 아니고, 면접의 최종적인 분위기를 설명하자면 그랬다.
[고스트 정화 퀘스트!]
전직과 관련된 만큼, 파티 면접에서 희망 직업군까지 확인하는데, 그 자리에서 칼 같이 걸러지는 것이다.
그가 파티장을 맡아도 마찬가지였다.
“파장님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몽크요.”
“...파이팅이요.”
그렇게 응원 한 마디와 함께 떠나간다.
“족 같네!”
구인이건 구직이건, 답이 안 나왔다.
‘대충 성기사라고 할 걸 그랬나?’
잠시잠깐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부정해버렸다.
만약 성기사로써 파티에 들어가면?
‘칼 차고 방패 들어야 되잖아.’
차후에 있을 전직 공헌도와 보상을 생각한다면, 철저히 맨몸으로 전직 퀘스트들을 수행하는 게 좋았다.
‘일반 사냥이라면 모를까.’
전직과 관련이 있건 없건, 퀘스트를 끼고 있는 사냥이라면? 무조건 맨몸으로 해결해야 공헌도가 많이 쌓였다.
착용 장비로 직업군 점수가 평가되는 것이다.
“원래라면 손 방패 정도는 들었겠지만.”
사실, 그게 대다수 몽크들의 육성 방식이었다.
1차 전직을 하고 정식으로 몽크로 인정받은 뒤, 관련 스킬을 배우기 전까진, 자그마한 손 방패를 통해 부족한 방어력을 보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20레벨 이상 높은 스탯.
무려 일반등급의 세트템.
200레벨을 찍은 경험치.
말 그대로 완벽한 수준의 전직 공헌도를 쌓을 수 있을 터였다.
‘전직 보상으로 뭐가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되네.’
철저히 맨몸으로 퀘스트를 해결할 생각이었다.
“거지같은 파티 퀘스트. 퉷!”
이후로도 한참을 더 헤맨 뒤에야 겨우겨우 파티를 구할 수 있었다.
“파티 장을 맡고 있는 로렌이라고 합니다.”
“서포터 라시아에요.”
“아스트라~이크입니다. 길면 아크나 이크라고 불러주셔도 되요.”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여기 라시아가 제 동생인데, 이제 막 PP를 시작해서 아크하고 같이 부캐로 지원하는 거예요.”
아크는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일종의 에그 프렌드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둘 다 본캐가 3차 전직을 앞에 둔 실력자였다. 그 때문인지 노련미가 남달라서 파티원도 적당히 구했는데, 마침 마루가 걸린 것이다.
“부담 가지실 것 없이, 적당히 포지션만 잡아주시면 되요.”
파티장인 로렌은 그리 말하며 이야기를 끝냈다.
이에 한 차례 라시아를 바라보던 마루가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보면, 올해로 열다섯인가 보네.’
PP는 15세 이용가였다.
하지만 워낙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다 보니, 그 연령대 아이들이 게임을 하기 위해선 이런저런 절차가 필요했다.
그 기간이 대략 서너 달, 한 계절쯤 걸렸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여러모로 이상한 게임이었다.
‘어쨌든 구성은 괜찮네.’
가장 기본적인 4인 파티로써, 기사 지망의 근접 딜러 로렌, 신관 지망의 서포터 라시아, 레인저 지망의 중거리 딜러 아스트라~이크까지, 짜임새가 상당히 괜찮았다.
거기에 마루가 탱커로 참여하며, 완성도 역시 높아졌다.
“그럼 출발하시죠.”
짧게나마 포지션 및 전투 방식에 대한 의논이 이어진 뒤, 로렌의 지휘아래 일행의 이동이 시작됐다.
쉼터를 벗어나고 얼마나 지났을까.
어린 소녀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을 한 것인지, 라시아가 적잖은 관심을 표하며 접근해 왔다.
“정말 몽크로 전직하실 거예요?”
아무래도 마루의 직업에 꽂힌 모양이었다.
다른 둘도 귀를 기울이는 눈치였는데, 비주류 직업 3대장에게 향하는 자연스런 호기심이었다.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비 보면 알잖아.”
가벼운 가죽 방어구만 찬 모습.
“듣기로는 몽크는 육성 난이도가 극악하다던데, 정말 그래요?”
이제 겨우 20레벨 캐릭터에게 물을 이야기는 아니지만, 마루는 적당히 대답해줬다.
“뭐, 그런 면이 좀 있긴 한데, 제대로 키우면 따로 장비 때문에 돈 나가는 일은 적으니까. 현질하기 싫으면 이게 최고지.”
“와...”
소녀는 이제 막 PP라는 게임을 알아가는 만큼 이런저런 궁금증들이 많았던 모양인지, 이동하는 내내 다양한 질문들을 건네 왔다.
초반 통성명 이후 포지션 의논 당시, 마루도 부캐라는 식으로 자신을 다시 소개했던 탓에, 묻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앗! 몬스터다.”
“건들지 마.”
“눈으로만 보는 거야.”
이동하는 와중에 틈틈이 몬스터가 나왔지만, 대부분 중립성향의 동물형 몬스터인 만큼,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문제될 게 없었고, 마치 동물원에 온 느낌으로 적당히 구경하며 지나칠 뿐이었다.
“우와~! 코알라다.”
“저쪽으로 가면 판다도 있을 걸.”
“잘 찾아보면 알파카도 볼 수 있지.”
“동물 같지만, 저거 전부 몬스터야.”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필드 귀곡상잔에 입장하셨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듯, 알람이 떴다.
일순, 기묘한 한기가 밀려들며 일행들의 어깨가 움츠러드는데, 그 타이밍에 맞춰서 라시아가 움직였다.
“에잇! 성수를 받아랏.”
그러면서 뿌린 물방울이 한기를 밀어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거 한 입씩 꼭꼭 하세요.”
축성이 깃듯 빵을 내밀고,
“목도 좀 축이시고요.”
포도주까지 건넨다.
가장 기본적인 버프시스템으로써, 성수를 통해 귀곡상잔 필드의 마기를 방어하고, 빵으로 HP를 상승시키며, 포도주를 통해 MP를 올리는 것이다.
성수의 축복은 HP와 MP를 골고루 소모하기 때문에, 이 셋은 필히 지켜져야 할 조합이었다.
‘준비 좋네.’
마루는 라시아의 적절한 조치에 만족했다.
아직 정식 신관이 아니다 보니, 저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인데, 이런 행동들이 쌓이고 축적된 뒤, 차후 전직 보상으로 환산될 터였다.
몸이 가벼워진 일행이 걸음을 옮길 때였다.
하아아아...
우우우우우우우...
괴이한 울음소리와 함께, 그들 주변으로 희뿌연 무언가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라시아가 움직였다.
“이것 하나씩 쓰세요.”
그러면서 내민 건 안경 형태의 1회성 아티팩트로써, 저 희뿌연 걸 확인시켜 주는 물건이었다.
안경을 쓰자 희뿌연 것들의 형체가 제대로 그려지기 시작하는데, 한 눈에 봐도 각종 동물들의 원혼이었다.
‘제대로 준비 해왔네. 얘도 나중에 전직 보상이 짭짤하겠어.’
짐승형 고스트는 언뜻 개과 형태를 취하고 있었는데, 크기로 짐작건대 늑대보다는 들개 쪽에 가까워보였다.
고스트는 원혼 계열의 몬스터로 분류되다 보니, 기본적으로 공격성향의 몬스터가 많았고, 그 때문인지 마루 일행을 발견하기 무섭게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 숫자가 무려 일곱이나 됐는데, 포위망이 형성되기 전에 움직이는 게 좋다는 생각으로, 마루가 먼저 행동했다.
“롸큰롤 붸이베~!”
돌연, 뜬금없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벙찐 표정으로 파티원들의 사고가 정지 하는데, 그들을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캬아아아아악!
키야하악!
어째선지 고스트들이 마루에게만 달려든 까닭이었다.
‘벽골, 차력, 강건...’
마루가 방어에 특화된 스킬들을 앞세우며 외쳤다.
“지금!”
다행히도 파티원들은 시기적절하게 제정신을 차렸고, 절묘한 타이밍으로 고스트들의 뒤를 노릴 수 있었다.
로렌이 칼을 뽑고, 아크가 화살을 메기며, 라시아는 열심히 응원했다.
“힘내라 힘! 힘내라 힘!”
물론, 입으로만 외치는 건 아니었다.
휙...휘익...휘익...
신전에서 산 향을 양손에 쥔 채 열심히 흔드는데, 이는 주변의 마기를 흩어놓는 향이었다.
크하아아아...
캬학...캭...
마력을 동력으로 삼는 고스트이니 만큼, 그 몸짓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인간으로 치면 갑자기 주변 산소량이 줄어든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자아자! 싸워라! 이겨라!”
응원 속에 로렌과 아크의 공격이 이어졌다.
“맹검!”
“점사!”
고스트들이 화들짝 놀라며 딜러들에게 발톱을 드리우는데, 그럴 때면 마루의 함성이 터져 나오며, 놈들의 시선을 재차 끌어 모았다.
“롸큰롤 붸이베~!”
고스트의 발톱과 이빨이 마루에게로 돌아갔다.
크어으억?
캬학?
놈들의 동공 가득 당혹감이 드러났다.
저 황당한 함성을 무시하고 싶건만, 저도 모르게 호응을 해버리니, 도통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더 큰 분노로 이어졌고, 더욱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뽑아내게 만들었다.
‘속보, 율동, 경감, SM...’
각종 스킬의 중첩과 연계, 그리고 스탯과 방어구의 힘을 빌려, 마루는 각종 위협 속에서도 깔끔한 탱킹 능력을 보여줬다.
“흐! 앙! 핫! hot! 핰!”
그 덕분일까?
딜러들은 어렵지 않게 공격을 쏟아냈고, 몰려든 고스트들을 손쉽게 퇴치하고 정화할 수 있었다.
이후로의 전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롸큰롤 붸이베~!”
옥에 티 정도라면 마루의 기괴한 함성과 묘한 신음성 정도랄까?
“으, Ang~!”
**
로렌 파티는 체력이 바닥을 칠 즈음, 한 구석에 ‘임시’ 안전지대를 마련하고 휴식에 들어갔다.
이 부분에서 라시아가 고생했는데, 안전지대 구축 역시도 신관의 역할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신전에서 구입한 몇몇 기물을 통해 결계를 구축했다.
간이쉼터!
그녀가 홀로 설치해야 전직 공헌도가 올라가는 만큼, 로렌과 아크는 뒤에서 입으로 지시하는 게 전부였다.
“아니. 거기 말고, 옆에다 세워야지.”
“모양이 삐뚤잖아. 에헤이~!”
“거 참, 그게 아니라니까.”
“시정합니다!”
시오라비들 등쌀 덕분인지, 생각보다 빠르게 완성시킬 수 있었다.
이어지는 휴식시간, 포션을 물처럼 부어대며 체력을 회복시킨 라시아가 마루를 향해 물었다.
“그거, 그거, 롸큰롤 붸이베. 그 함성 뭐에요?”
‘끄응...’
앓는 소리가 올라왔지만, 애써 삼킨 마루가 힘겹게 답했다.
“스킬. 그리고 함성이 아니라 기합.”
“헤...그런 스킬도 있었구나.”
호기심 많은 소녀가 눈을 반짝였다.
“고성방가라고. 어그로 계열의 하위 스킬이야.”
“원래 그렇게 특이한 거예요?”
마루가 쓰게 웃으며 답했다.
“선점형 스킬이라서 그래.”
“선점?”
고개를 갸웃대는 라시아의 모습에 설명을 얹어줬다.
“캐릭터 생성할 때, 아이디 중첩 제한 있는 거 알지?”
“예. 같은 아이디가 너무 많아지면 안 되니까 그렇게 만든 거잖아요.”
“그거하고 비슷해.”
고성방가 스킬은 기합으로 발동하는 스킬로써, 사용자가 직접 기합을 등록하는 방식이었다.
헌데, 이 기합을 선점 형태로 만들어버린 탓에, 뒤로 갈수록 기괴한 기합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 대신 중첩제한의 폭이 상당히 넓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인 게임이다 보니, 선점에 밀리고 밀려 기괴한 기합성이 쏟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야, 운이 좋았지.’
마루의 경우에는 이전 캐릭이 사용하던 기합성을 고스란히 가져올 수 있었는데,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기합성이 배는 더 길어지고 또 기괴해졌을 터였다.
‘그래도 이거 유니크한 기합이라고!’
락큰롤 베이비, 록큰롤 베이베, 로큰롤 베베 등등, 수많은 락커들 틈에서 겨우 찾아낸 귀한 기합성이었다.
물론, 속으로만 토해내는 외침으로써, 입으로는 열심히 부가설명을 더하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개발진의 장난 같은 거라더라.”
다행이라고 한다면 몇몇 스킬 정도만 이럴 뿐, 대다수의 스킬은 별 문제 없단 점이었다.
“헤에...재밌는 장난이네요.”
“글쎄다.”
‘누구 생각인지. 취미 한 번 고약하단 말이야.’
그 때문일까?
유저들은 점차적으로 고성방가 스킬을 제외한 채, 윗줄의 어그로 스킬부터 익히게 되었는데, 마루는 스킬 조합을 위해 고성방가를 익혀놓은 상태였다.
‘이게 얼마나 개꿀 스킬인데.’
어그로 계열 중에서도 특히 비주류지만, 초반의 굴욕만 잘 견뎌낼 수 있다면, 차후에 충분한 가치를 보여 줄 터였다.
고성방가 스킬의 최종형태가 떠올랐다.
[사자후!]
‘거기까지 가면 끝장이지.’
물론, 아직은 먼 이야기였다.
< #14. 파티.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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