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헌터! >
얼음여제 이소희!
무려 그녀에게 명함을 받은 비각성자가 있었다.
‘혜성에서 만드는 하청부서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일단 그녀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점이 중요했다.
‘친해둬서 나쁠 건 없지.’
그 같은 생각이 번호 교환으로 이어졌다.
돌발 게이트 관리부의 고경석은 사내의 이름을 떠올리며, 당시 교환했던 연락처를 찍었다.
[D급 B형 정마루]
다행히 신호음은 짧았다.
-여보세요?
기억에 있는 음성을 향해 고경석이 말했다.
“돌발 게이트입니다.”
**
예상했던 그대로의 내용이었다.
“게이트 발생인가.”
마루는 급히 장비들을 챙겼다.
그에게 연락이 온 이유?
첫째!
“이 근방에서 열렸단 말이지.”
그의 거처와 가깝기 때문이었다.
둘째!
“관리부에 내 이름이 올라간 모양이네.”
번호를 교환할 때, 이미 이런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 오히려 원하던 바였다.
‘좀 귀찮기는 하겠지만.’
게이트는 평균적으로 D~E급 정도의 몬스터가 튀어나오는데, 그 때문인지 이름 있는 헌터가 아닌, 비주류 비각성의 헌터가 주축이 되어 활동하고는 했다.
‘이소희는, 정말 개 뜬금없었지.’
각성 헌터는 C~D급 정도만 나설 뿐이었다.
“다 챙겼나?”
상념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그의 몸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고, 어느새 집 밖으로 튀어나가고 있었다.
그가 향한 장소는 근처 바이크센터였다.
“아저씨 긴급 출동!”
가게 사장인 ‘김근식’이 키 하나를 던지며 외쳤다.
“CT. GO!”
마루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지만, 친분으로 인해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대여하는 만큼, 납득하고 키를 받아야만 했다.
바이크 기종을 알았으니, 키의 색깔에 맞는 걸 고르면 됐다. 보라색 키와 맞는 건 하나밖에 없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어우...이게 아직도 굴러가다니.’
이제는 단종 된 CT-Back이 눈앞에 있었다.
한 때, 배달마라 불리던 모델이었다.
시동이 걸릴지 의문스런 외형이지만, 그는 녀석의 엔진을 의심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는 김근식의 솜씨를 믿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믿음으로 키를 꽂고 돌렸다.
투할...할할할...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엔진음이 들렸지만, 의심하지 않았다.
잘 굴러갈 것이다.
문제는 없을 것이다.
절대 퍼지지 않을 것이다.
“믿는다!”
굳이 이렇게 강조하는 건, 결코 자기최면 같은 게 아니었다.
분명!
**
“젠장! 대체 언제쯤 오는 거야?”
D급 B형 헌터 박산식은 짜증 섞인 음성으로 투덜거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탕!
갑작스런 게이트 현상에 급히 경보박스를 울린 뒤, 그곳의 무기를 들고 시간 끌기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상점가에서 발생한 게이트인데다가, 발견 시기도 늦어 시민들의 대피가 원활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자리를 피하기도 어려웠다.
‘아니.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사람이 그렇게 많은 거야.’
그 사람들 속에 자신도 포함됐다는 건 생각지 않았다.
“하필이면 E급 ‘카라’인 게 뭐야. 차라리 놀이 낫지.”
놀이 개과의 동물형 몬스터라면 카라는 고양이과의 동물형 몬스터였다.
이족보행이 가능한 몬스터로써, 두발로 걸을 때는 발톱을 휘두르고, 네발로 뛸 때는 이빨을 들이미는데, 날렵함과 유연함이 더해진 탓일까? 변칙적인 방향전환이 매우 까다로운 놈들이었다.
“좀 맞아라. 썅!”
그 때문인지 총구가 쉼 없이 불을 뿜고 있건만, 제대로 들어가는 건 절반이 채 안 됐다.
거의 난사에 가까운 사격이었다.
다행이라 한다면 상점가 경보박스는 관리가 잘 되어있어, 당장 탄이 부족할 일은 없단 점이었다.
‘그래도 개인 무장에 비할 수는 없지만.’
“훅...훅...후욱...”
슬슬 호흡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젠장! 나이를 먹긴 먹었네.’
어느새 30대도 중반을 넘긴 시점이었다. 그 때문에 현장에서 물러나 사체처리 쪽으로 넘어가지 않았던가.
보통은 30대 초반에 넘어가는 루트였으나, 미련이 남아 지금껏 버티다가 이제야 포기하며 현장을 벗어난 것인데, 설마 이런 식으로 다시 현장을 뛰게 될 줄이야.
“훅...후욱...더럽게 힘드네!”
체력이 금세 바닥났다.
미리 봐 놨던 동선으로 움직이며 놈들을 유인하고, 급히 설치해 놨던 함정들로 시간을 끄는 등, 나름의 계획은 화려했다.
하지만 채 절반을 이어가기도 전에 무릎이 풀려버렸다.
‘하악...흐악...학...몇 분이나 지난거지?’
얼마나 더 버텨야 할까?
숨이 가빠오니 집중력이 크게 흐트러지며 잡생각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튈까?’
시민들의 대피도 얼추 끝난 것 같은데, 이쯤해서 퇴로를 밟아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다른 팔팔한 헌터들도 있지 않은가.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이 없으니까 아직 죽으면 안 된다악-!”
생존욕구가 팔팔 끓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몸이 따라주질 못했다.
캬아아악!
지친 탓에 집중력이 떨어진 것인지, 몸이 무거워지면서 카라 한 놈의 접근을 허락해 버렸고, 결국 팔뚝을 내어줘야만 했다.
“끄윽!”
날카로운 이빨이 파고드는 섬뜩한 감각에 등허리가 쭈뼛 섰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정신은 바짝 조여지며, 흐트러진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타앙!
그렇게 왼팔을 내어주고 한 마리를 더 해결했다.
‘두어 달은 깁스 신세겠네. 젠장!’
욕지거리를 뱉으며 급히 골목길을 튀어나왔다.
다른 골목길로 넘어가기 위함인데, 오래지 않아 그의 걸음은 멈춰야만 했다. 예정된 동선에 잔뜩 깔려있는 카라를 본 까닭이었다.
‘게이트 한 번 화끈하네.’
벌써 이만큼의 몬스터를 쏟아냈나 싶어 헛웃음만 나왔다.
“흐흐!”
최후를 직감한 쓴웃음이기도 했다.
“한 놈, 두시기...육개장인가.”
총 여섯 마리의 카라가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두어 놈 정도면 어떻게 되겠지만. 이건...’
부상으로 전투력도 반절로 뚝 떨어진 상황이 아니던가.
“족 됐네.”
일찌감치 튈 걸, 괜한 정의감에 시간을 끌었다며 후회감이 물밀 듯 밀려왔다.
“뒈져도 두 놈은 끌고 간다!”
그리 각오를 다지며 자세를 잡을 때였다.
투웅!
어디선가 묵직한 총성이 울려 퍼지고,
퍼억!
포위망을 구축하던 녀석들 중, 한 놈의 머리가 박살났다.
투웅...투웅!
놈들이 기겁하는 찰나 연달아 총성이 울리더니 두 마리가 더 무너져 내렸다.
순간 박산식의 동공에 불이 들어왔다.
‘왔구나! 지원군.’
기다리던 이들이 도착했다는 생각과 함께 살았다는 희망의 불씨가 싹튼 것이다.
와중에도 총성은 쉼 없이 울리는데,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투웅! 퍽...투웅! 퍽...
원 샷에 원 킬이었다.
‘이런 미친 솜씨라니...대체, 누가?’
카라도 나름 요란하게 날뛰며, 놈들 특유의 정신없는 무빙을 보여줬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정확히 헤드샷을 꽂아 넣고 있던 것이다.
포위망이 사라지는 건, 그야말로 순간이었다.
꿀꺽...
박산식이 마른침을 삼키며, 총성이 났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눈을 비비고야 말았다.
‘잘 못 봤나?’
순간적으로 환각을 봤나 싶었던 것인데, 재차 확인해 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CT...Back?’
그가 어릴 적에나 봤을 법한 배달마가 털털 거리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색깔은 또 왜 저래?’
옛 향수가 환각마냥 코끝을 스쳐갈 정도였다.
[그~대 모습은 보~랏빛처럼...]
배달부, 아니 라이더가 무장을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자칫 착각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풍경이었다.
[짜장 시키신 분~]
환청이 귀를 때리는 순간,
타앙!
시원한 총성이 정신을 일깨워줬다.
‘깜짝이야!’
다가오는 중간중간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럴 때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카라들이 그대로 박살났다.
저 무장의 진위여부는 그걸로 충분했다.
언밸런스의 극치랄까?
잡념 속에 허덕이는 사이, 배달마를 탄 사내가 코앞까지 다다랐다.
푸륵...푸드득...
이제는 쉬고 싶다. 그만 보내 달라고 애원하는, 배달마의 처절한 엔진소리가 애처롭게 와 닿았다.
이를 들어주기 위함일까?
사내가 시동을 끄고 내리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박산식을 향해 물었다.
“게이트는 어느 방향입니까?”
“저...저쪽입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사내가 박산식의 왼팔을 한 번 바라보더니 바이크 뒤에 묶어놨던 저격총을 건네며 말했다.
“대피소 좀 부탁합니다.”
박산식의 동공이 흔들렸다.
‘부상자한테?’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알기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원군은 아직입니까?”
사내는 개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곧 도착할 겁니다. 그때까지 조금만 더 고생해주십시오. 오면서 저 방향으로 길 뚫어 놨으니까. 그쪽 루트로 걸쳐서 움직이시면 될 겁니다.”
그러면서 사내가 하얗게 불태운 배달마까지 함께 건넸다.
“이걸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그 말과 함께 키를 건네준 뒤, 사내는 게이트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홀로 남은 박산식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저격총을 어깨에 맨 채, 바이크 키를 잠시 내려다봤다.
짧은 갈등 끝에 배달마에 꽂고 돌렸다.
푸흐흐흑...
엔진이 서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
그리 큰 상점가는 아니었던 만큼, 마루는 오래지 않아 게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카라 무리.
“휘유...드글드글하네.”
이전의 F급 그라놀 게이트보다 한 등급 높은 게이트에, 한층 더 까다로운 카라였지만, 느껴지는 부담감은 전보다 덜했다.
‘지금은 완전무장 상태니까.’
그 당시에는 거의 비무장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라놀에도 바짝 긴장했던 것이다.
D급 B형이라는 건 비각성 헌터가 오를 수 있는 최고봉의 자리였고, 그는 개중에서도 15년 경력의 베테랑이 아니던가.
게다가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도 존재했다.
‘스킬도 대부분 현실로 옮겨왔고.’
특히, 좀 전 배달마를 타고 올 때 새로운 스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고정]
PP의 궁수가 활을 쏠 때 팔의 흔들림을 잡기 위해 사용하는 기초 스킬로써, 쉼 없이 콜록대는 배달마를 제어해 준 핵심 스킬이었다.
언뜻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흔들림의 여부는 받침대가 있나 없나 수준의 차이만큼 사격의 정밀도에 영향을 줬다.
호흡조절과 격발의 자유도 역시 높았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조준]
궁수들이 전직 전까지 사용하는 기본 스킬로써, 활을 처음 잡아보는 일반인들을 위해 마련된 PP의 배려 스킬이었다.
‘PP의 활에는 따로 조준기가 없으니까.’
그 때문인지 거의 필수 스킬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능력은 정확도 보정에 [원거리 공격 한정]으로 데미지 추가까지, 기본 스킬들 중에서는 수위에 꼽히는 꿀 스킬이었다.
권총으로 전문 저격총 만큼의 정확도와 위력을 낸 것도 이러한 스킬 지원 덕분이었다.
‘뭐...무기가 좋기도 했지만.’
비싼 값을 한다고 해야 할까?
[브레스-13]
보통 권총이 아니었다.
한 자릿수의 네임드 넘버는 아니지만, 두 자릿수 양산형 넘버 중에서는 가장 파괴력이 쎈 녀석이 바로 13번 브레스였다.
‘무게에다 괴랄한 반동이 문제긴 한데.’
스킬로 무장한 마루에게는 크게 상관없었다. 특히, 고정 스킬과의 상성이 좋았다.
이 같은 철저한 준비의 결과?
타앙! 퍽...
경이로울 정도였다.
“자신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원샷 원킬이라니.”
스스로가 한 일임에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타앙...퍽! 타앙...퍽!
카라가 놀에 비해 방어력이 약하다지만, 이렇게까지 압도적일 거란 생각은 못했었다.
‘능력치가 약화된 놈들이라 더 쉬운 건가.’
비각성 헌터라 할지라도 완전 무장을 할 경우, 차원방벽의 ‘보호 장막’은 그 의미가 크게 줄어들고, 역으로 차원방벽의 ‘능력 봉인’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타앙...퍽!
이 시점에서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상위 스킬을 가져온다면?’
관통을 비롯하여 추격, 폭발, 증폭 등등, 상상만으로도 등허리가 짜릿해지는 여러 스킬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 때문인지 당장의 아쉬움도 떠올라버렸다.
“반동제어 스킬이면 완전히 쓸어버릴 텐데.”
고정 스킬의 단점은 사격 순간 경직되어 버린다는 점으로써, 그 때문에 연사가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화력이 반감된단 말이지.’
물론, 이 역시 스킬로 커버할 수 있었다.
캬아아악!
캬악!
양 손에 브레스-13을 들며 새로운 스킬을 발동시켰다.
[사시]
그러자 두 눈이 제멋대로 돌아갔다.
PP의 마법사들이 더블 캐스팅을 익히기 전에 거쳐 가는 스킬들 중 하나로써, 양 손으로 조준하는 지금 상황에 딱 맞는 스킬이었다.
두 눈이 각기 따로 놀며 양쪽의 조준점을 잡았고, 이후 고정으로 반동마저 잡은 뒤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앙...퍼퍽!
그와 동시에 카라 두 마리의 머리가 박살났다.
‘깔끔하네!’
관리부가 그에게 기대한 건, 병력 도착 전까지의 시간 벌이였지만, 상황은 그들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Hunter!
이 순간, 그는 더없이 순수한 사냥꾼이었다.
< #17. 헌터!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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