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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더 헌터-19화 (19/325)

< #18. 갱신. >

게이트 방면으로 다가가며 꾸준히 주변을 살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동선 잘 짜놨네.”

박산식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전투 흔적들이 그것이었는데, 그 속에 담겨진 베테랑다운 ‘설계’가 실로 뛰어났다.

‘지그재그로 움직이면서, 놈들의 감각을 제대로 흔들었군.’

카라의 체취를 곳곳에 묻힘으로써 감각의 교란을 주는 속임수로써, 덕분에 대피소 방면으로는 카라 놈들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제 동족의 피만큼 혼란스러운 건 없지.’

가장 좋은 건 갈지(之)자 이동보다 원형 이동으로, 놈들을 길치에 방향치로 만드는 것이지만, 아쉽게도 그건 비각성자의 영역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잘 단련 되었더라도,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기동방식이 아니었다.

“이 정도가 최선이지.”

게다가 최소 C급은 돼야 가능한 수준급의 기술인 것이다. 고개를 젓는 것도 잠시로써, 그는 이 동선과 흔적들을 잘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박산식이 빠져나오던 동선을 역으로 밟아나가는 것인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진짜 동선 잘 짜놨네.’

다시금 감탄을 되새긴 뒤, 이동을 시작했다.

게이트가 가까워짐에 따라 카라의 숫자도 늘었지만, 골목길 곳곳에 묻어있는 놈들의 피와 체취에 흔적을 감출 수 있었다.

그러다 저지선에 보이면?

타앙! 탕!

과감히 방아쇠를 당겼다.

퍽! 퍼억...

폭발하는 총성이 주변 몬스터들 끌어들였다.

캬아아아악!

캬하악!

몰리는 만큼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저쪽으로.’

그 수가 적으면 연달아 방아쇠를 당기고, 수가 많으면 박산식의 동선을 역으로 밟아나가는 등, 이리저리 추적자의 감각을 흔들어 놨다.

도주를 위한 퇴로였다.

그게 진입로가 되면서 오는 괴리감도 충분한 교란 작용을 할 터였다.

‘예민한 놈들이라 이런 속임수가 잘 먹힌다니까.’

물론, 완전히 떨쳐놓는 건 어려웠지만, 갈리고 나뉘는 놈들을 보면, 결국 반절 이상이 떨어져나가는 탓에, 어느새 감당할 만한 숫자가 되어있었다.

그 즈음 브레스가 불을 뿜었다.

타탕! 탕! 타앙...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몬스터들을 보며 견적을 내고, 손을 놀릴지 발을 놀릴지 결정한 뒤, 사냥과 도주를 반복했다.

얼마만큼 이어졌을까?

오래지 않아 그의 발길이 ‘설계도’의 시작점에 이르고, 다시금 게이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앞서보다 한층 가까워진 거리였다.

그의 유인책이 잘 먹힌 것일까?

“많이 빠졌네.”

득시글하던 카라 무리가 반절가량 줄어든 것이다.

‘어째, 할 만해 뵈는데.’

마루는 입술을 핥으며 그곳으로 향했다.

츄릅...

지금부터는 정면 돌파였다.

**

돌발 게이트 발생 시, 관리부는 일단 알람 주변의 헌터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관리부 명단에 올린 몇몇을 제외한다면, 기본적으로 단체 문자 정도였지만, 일단은 공식 요청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거기에 호응하는 이들의 수는 언제나 복불복이었다.

‘절대적인 명령권이 있는 것도 아니니...’

게다가 말 그대로 ‘돌발’ 상황이다 보니 헌터들도 반응하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물론, 순수하게 무시하는 이들도 상당했다.

-귀찮아.

-돈도 안 되잖아?

-도와주고 욕 쳐 먹는 게이트!

-안 가! 왜 가?

헌터들의 호응도가 낮은 이유 중 하나를 굳이 고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제도적인 문제를 꼽을 수 있었다.

벌금!

전투에 쓰인 탄환 및 무구의 값은 정확히 치러주지만, 그 와중에 발생하는 민가의 피해 일부를 벌금으로 환산해버리는 것이다.

‘개 같은 걸 만들어서는...쯧!’

몬스터 사체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사냥 보상으로 이를 메워야 하는데, 등급이 낮은 게이트의 경우에는 벌이가 약해, 간혹 재수 없으면 적자를 볼 때도 있었다.

-요즘은 E급 게이트도 애매해.

-D급 정도는 돼야 뛸 만 하지.

-대기시간 길어도, 차라리 마수지대가 낫지.

-번거롭긴 하지만, 거긴 벌금은 없잖아.

비각성의 비주류 헌터들이 주축이 되어 활약하는 장소가 돌발 게이트건만, 이런 골치 아픈 벌금제의 탄생 이후, 그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잖아도 벌이가 갑갑한데, 이런 식으로 조여 버리니.’

나설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이리라.

그 때문인지, 어느 시점부터는 관리부 자체적인 지원병력 만으로 모든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물론, 변함없는 모습으로 열심히 달려오는 이들도 있긴 했다.

-게이트 공기를 마시면 각성 할 수 있다며? 킁카킁카!

-던전이야.

-게이트로 묻어나온다던데.

-그래? 킁카킁카!

대충, 뭐 그랬다.

“후...”

고경석은 차창 밖 풍경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얼마나 출동해 줬으려나.’

걱정이 앞선 까닭이었다.

나름 열심히 문자를 보냈고, 관리부에 별도 등록된 헌터들에게는 일일이 전화까지 돌렸지만, 지난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개중 1할만 출동해도 감사할 판국이었다.

‘그래도 확답 받은 헌터가 있어서 다행이네.’

마침 게이트 발생지에서 가장 가까운 헌터였다.

‘D급 B형 정마루.’

번호를 주고받으며 관리부 명단에 올린만큼 별도의 조사가 들어갔고, 그 결과 베테랑 중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실력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얼음여제가 괜히 명함을 준 게 아니지.’

그런 이유로 작게나마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제대로 시간을 끌어줬으면 싶은데.’

딱 그 정도까지가 기대하는 전부였다.

하지만 이게 웬일?

“...꿀꺽!”

그는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게이트 주변을 바라봤다.

시산혈해(屍山血海)!

말 그대로 몬스터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었고, 그 핏물이 게이트 주변으로 홍수마냥 넘쳐흐르는 중이었다.

여전히 게이트는 열려있고, 그 너머에서 E급 몬스터 카라가 튀어나오는 중이었는데, 등장과 동시에 육편이 되어버릴 뿐이었다.

타앙...퍽!

그 앞에서 기다리는 한 사내 때문이었는데, 정확히 한 발의 사격으로 한 놈의 머리통을 박살내는 괴력을 보여줬다.

‘정마루?’

놀랍게도 그 사내의 정체는 D급 B형의 비각성 헌터였다.

‘저게...말이 돼?’

게이트 규모가 큰 것인지, 한 번에 두 마리, 세 마리씩도 넘어오지만 다를 건 없었다.

타탕...탕! 퍼퍽...퍽!

쌍권총이 매섭게 불을 뿜고, 그걸로 끝이었다.

E급 카라!

무장한 D급 B형 헌터에게 부담되는 몬스터는 아니라고 하나, 그건 시간벌이에 중점을 둘 때나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저렇게 압도하는 건 말이 안 되지.’

게이트를 정리해버리는 D급 B형?

‘불가능한 일이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각성!’

아무래도 저 사내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기록을 쓴 모양이었다.

최고령 각성자가 서른다섯!

허나 그건 세계 기준으로, 멀리 브라질의 각성자였다.

그렇다면 한국 기준은 몇 살일까?

‘만 나이로 서른둘이었지.’

그의 예상처럼 마루가 정말 각성을 한 것이라면, 대한민국 기준으로는 새로운 기록이 될 터였다.

‘아시아 기준은 어떻게 되더라?’

거기까지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상념을 털어내며 급히 게이트로 향했다.

“빨리 오셨네요.”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등장한 만큼, 이미 지원부대의 등장을 알고 있던 듯, 마루가 그의 접근에 맞춰 게이트에서 물러났다.

“차가 막히는 시간이 아니니까요.”

가벼운 인사말을 나눈 뒤, 고경석이 물었다.

“최초 신고자 분은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대피소 방면에서 대기 중일 겁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고경석이 게이트 주변을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덕분에 수색 범위는 많이 좁힐 수 있겠네요.”

게이트를 통해 튀어나온 몬스터들의 경우,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습성이라 할 만한 게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게이트 보호였다.

제 동족이 넘어오는 통로이기 때문인지, 게이트 주변에는 항시 일정 숫자의 몬스터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만약 그 수가 줄어든다면?

사방으로 퍼졌던 동족들이 돌아오고는 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주변의 과한 핏빛 물결엔, 유턴한 녀석들까지 포함되었단 걸 예상할 수 있었다.

마루가 웃으며 말했다.

“청개구리들만 잡으면 될 겁니다.”

“얌전히 한 자리로 모여주면 참 고마울 텐데. 참 골치 아픈 놈들입니다.”

“사춘기인가 보죠.”

“하핫!”

개중에도 반항아나 돌연변이 같은 놈들이 있어, 게이트 보호를 무시하며 멀어지는 놈들도 있지만, 이는 극히 소수일 뿐이었다.

멀어진 놈들이 있지만 놓칠 걱정을 하진 않았다.

[게이트 소멸과 차원방벽 해제!]

이 두 조건이 해결되기 전까진, 출현지로부터 일정범위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마루의 쌍권총은 쉬지 않았다.

타앙! 퍽...타앙...

그 와중에도 넘어오는 녀석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이트 관리부와 지원부대가 도착한 이상, 적당히 뒤로 빠져서 쉬어도 될 것이나, 마루는 그리하지 않았다.

‘정산비율 높이려면 쉴 수 없지.’

오염된 여의주를 통해 불순물 ‘여과작업’이 이뤄지는 만큼, 최대한 많이 사냥을 해서 획득 경험치를 높여놓을 필요가 있었다.

이 같은 모습에 고경석이 눈을 빛냈다.

‘보통 짬밥이 아닐 텐데, 이렇게 열심히 노력해 주시다니.’

그의 머릿속으로 정마루라는 헌터에 대한 평가가 수직 상승하고 있었다.

경험치 때문일 거란 생각도 했지만, 아직 각성여부도 확실치 않고, 이미 콩깍지가 씐 탓인지, 마냥 마루가 예쁘게만 보였다.

‘눈빛이 어째.’

단지, 받아들이는 마루 입장에선?

‘요상한데.’

오해의 여지가 충분했다.

**

지원부대가 경계선을 치고 탐색 및 게이트 정리에 들어갈 즈음, 마루는 고경석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여기서 더 욕심 부리는 건 아니지. 좀 더 자리를 지키면서 정산 경험치를 높이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건 욕먹기 딱 좋은 포지션이었다.

‘콩고물이 있어야 쟤들도 뛸 맛이 나지.’

열심히 달려와 준 지원부대 헌터들의 몫은 남겨놔야 하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라 그가 게이트 주변을 처리할 때, 늦게나마 도착한 다른 헌터들도 적지 않았기에, 그들을 위한 배려도 필요했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건 경험치 만이 아니라, 몬스터의 사체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노나 먹어야지.’

외곽으로 빠졌던 카라 상당수를 몰아준 것도 그들의 노고가 아니던가.

‘그나저나...’

마루는 서류를 준비하는 고경석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눈치 챈 모양이네.’

압도적인 사냥을 보여줬으니 모르는 게 이상했다. 애초에 어느 정도는 보여줄 생각으로 나선 상황이었다.

‘일단, 자격증은 따 놔야지.’

원활한 사냥과 경험치 축적을 위해, 일부분은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때문에 먼저 운을 띄었다.

“말씀하십시오.”

“자격증 갱신을 좀 하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아...역시!”

옅은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고경석의 모습에, 마루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앗싸! 공짜 측정이다.’

무의식중에 나온 자린고비 본능이 날뛰었다.

‘아차! 표정관리. 포커페이스.’

애써 풀어지는 표정을 바로잡고 있을 때, 고경석이 물어왔다.

“각성하신 겁니까?”

확실히 하기 위한 절차였다.

“얼마 안 됐습니다. 운이 좋았죠.”

“혹시 등급이 어떻게 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D급입니다.”

“아...”

고경석의 눈가로 옅은 의문이 떠오르는 게 보였다.

‘그 실력이?’

비록 E급 카라일 뿐이라지만, 제법 규모가 큰 게이트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전장을 압도했다.

D급 A형의 각성 헌터라도 쉬운 일은 아니기에, 자연스레 상황 자체에 대한 의문을 느낀 것이다.

‘C급일 줄 알았는데.’

뜻밖이라고 해야 할까?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지.’

고경석은 그리 생각하며 마루를 바라봤다.

‘특별한 스킬을 얻은 건가?’

호기심이 샘솟았지만 등급과 달리 스킬을 묻는 건, 약점을 내비치라는 의미와 같기에, 그저 입안에서 굴리다가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마루가 웃으며 힌트를 던져줬다.

“총기류 관련 재능이라 수월했습니다.”

“아...”

갑작스런 고백에 고경석이 화들짝 놀라는데, 그제야 제 표정관리가 실패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가 당황한 얼굴이 되는 게 보였다.

이에 마루가 괜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어차피 이 정도는 나중에 밝혀질 부분이잖아요. 스킬 목록도 아니니까. 크게 부담 가지실 것 없어요.”

[재능 그리고 스킬!]

그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봐야 하는데, 이해하기 쉽게 게임으로 비유를 하자면, 재능은 계열이고 스킬은 직업이라 할 수 있었다.

[성직자 계열의 성기사!]

대충 이렇게 보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사냥 기록을 살피면, 대략적인 스킬 정보가 드러나는 만큼, 재능을 알리는 건 크게 문제될 게 없었다.

‘기록으로 밝혀지냐 아니냐. 그 차이가 크긴 하지만.’

측정기는 각성자 파동을 감지해서, 각성 여부와 등급 여부만 구분할 뿐, 스킬의 상세정보는 밝혀내지 못했다.

‘뭐, 일부러 밝힌 거니까.’

덕분에 고경석은 작게나마 죄책감을 느낄 것이고, 그걸 잘 이용한다면? 나름의 혜택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지만.’

이걸로 이제 그의 재능은?

[정마루 : 총기류]

이렇게 굳혀질 것이다.

‘총기 재능은 페인트지.’

PP의 ‘장관장’을 떠올렸다.

몽크!

실제로는 순수 육체파가 아니던가.

‘밑장은 이래 빼는 거지!’

속임수라 하기엔 오늘 모습이 너무 압도적이었고, 그 때문에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터였다.

갓 각성한 D급이 게이트를 씹어 먹는다?

‘총기 재능이면, 얼추 아귀가 맞지.’

게다가 13~5년 경력의 베테랑이 아니던가. 비각성 헌터 대부분은 총 깨나 쓰는 이들이었다.

[경력+재능]

상성이 너무 좋았다.

누군가는 첫판부터 장난질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리 답해 줄 것이다.

‘원래 장난질은 초반에 걸어야 제 맛이지.’

고경석의 반응을 보라.

츄릅...

스며든 감칠맛이 아주 고소했다.

< #18. 갱신.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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