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Death. >
길드 간부로 있는 삼촌의 힘 덕분일까?
칼잠장인은 두 번째 기회를 얻어냈고, 이번에는 한 치의 방심도 없이, 철저하게 움직여 칭호를 획득할 수 있었다.
[피발아귀]
거기엔 여러 의미가 중첩되어 있었다.
[피+발아+아귀]
무려 3중첩 칭호의 발판이기도 했다.
차후 전직 루트를 어떻게 타느냐에 따라, 칭호의 성능이 하나씩 깨어나며 본연의 능력들이 발현되는 것이다.
성장 개방형 칭호였다.
게다가 칭호의 성능에 따라, 직업군의 특수성도 갈리는 탓에, 피발아귀 칭호는 익살자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테스트를 망쳐놨던 그 놈.’
칼잠장인은 자신의 첫 테스트를 망쳐놨던 훼방꾼을 향해 복수의 칼을 갈았다.
“반드시 잡고 만다!”
현재 그의 위치는 회사 인턴과 같은 포지션으로써, 앞으로의 행동에 따라, 길드에서 제공하는 전직 루트가 달라질 수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 훼방꾼을 내버려둔다?
[무능력자!]
그런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복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삼촌의 주장이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필수라는 걸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인턴 ‘개인의 역량’만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길드지원?
화살 몇 발과 미끼 역할이 끝이었다.
‘있으나 마나.’
큰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나는 삼촌이 있으니까.’
그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쪽팔리게 쫄지 마라!]
목표물을 찾아내고 관련 동선 및 계획을 짜는 등, 삼촌의 도움으로 설계도가 탄탄해졌다.
‘역시, 삼촌!’
이 와중에 허무했던 점이라면?
열심히 필드를 뒤지고 다녔건만, 정작 목표물은 도시 안에 콕 박혀있었다는 정도?
‘하필 훈련소에 짱박혀선, 암살도 힘들게.’
이후 그를 감시하다가 밖으로 나올 때, 어느 문을 통하고 어떤 길목으로 들어서는지를 본 뒤, 향하는 필드를 가려낼 수 있었다.
드디어 시작된 복수혈전!
궁수와 그의 위치 그리고 목표물까지, 일직선상에 놓인 순간 화살이라는 미끼를 던졌고, 최단거리에 숨어서 회심의 한 방을 노렸다.
‘쳇! 치명타가 터졌어야 하는데.’
독을 묻힌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묻히면 끝이야.]
삼촌이 구해다 준 독이었다.
‘이 구간에서 가장 비싼 놈이랬지. 흐흐!’
지금부턴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좀 더 화끈하게 몰아쳐도 되지만, 쓸데없이 힘 뺄 필요 없으니까.’
이는 앞전 패배의 잔상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절대로 몸 사리는 게 아니야.’
분명, 그럴 것이다.
**
마루가 습격자를 보며 익살자를 떠올린 이유?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장관장이란 캐릭터의 짧은 역사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묻지 마 PK를 하는 놈들도 많지만.’
[체형+무기+자세]
하나같이 눈에 익었다.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관련한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시야 한편에 노란불이 들어온 까닭이었다.
‘젠장! 독뎀 장난 없네.’
짐작건대 이 레벨 구간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품이 아닐까 싶었다. 당연히 그가 지닌 하위의 포션 한 둘로는 감당할 수 없을 터였다.
‘이런 속도면 금방 딸피 각인데.’
그 때문일까?
슬쩍 한 걸음 다가가면 슬며시 물러나는 습격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쯧! 시간 끌기냐?’
궁수가 신경 쓰였지만, 이런 무의미한 대치로 시간만 허비할 순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건 이쪽이니.’
결국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친다!’
스킬을 발동시켰다.
[가속]
이어지는 직선 대시!
등 뒤의 화살을 염두에 뒀다면, 지그재그로 움직여야 할 것이나, 그는 과감히 최단거리를 택하며 달려들었다.
‘어설피 접근했다간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쓸데없는 동선을 줄인 것이다. 나름 믿는 구석도 있었다.
‘익살자가 맞다면 화살은 없다.’
고인물의 정보력을 믿었다.
‘이래죽나 저래죽나, 이판사판이다!’
물론, 반쯤은 도박이었다. 무모한 돌진에 당황한 것일까?
복면 사이 드러난 동공이 크게 흔들리는 게 보였고, 그 즈음 마루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습격자의 정체를 알았다.
[자신의 실수는 스스로 다잡는다.]
‘익살자구나.’
그들이 신입을 키우는 방식이었다.
뒤가 활짝 열려있건만, 화살이 날아들지 않는 게 결정적 증거였다.
‘딱 미끼역할로 끝이라는 소리지.’
덕분에 부담감이 날아갔고,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복면인에게 달려들 수 있었다.
‘칫!’
혀를 찬 복면인, 칼잠장인은 물러나기 애매하단 결론 아래, 아귀검을 곧추세운 뒤, 달려드는 마루를 향해 매섭게 휘둘렀다.
[비삵]
그 와중에 끼워 넣은 스킬이 궤적을 나누더니, 검로를 한층 어지럽게 만들고, 속도와 위력까지 상승시켰다.
파바바박!
검광이 분산되며 마루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보통 이 정도로 화려한 검광을 보면 몸을 빼기 마련이건만, 마루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더욱 가속하며 파고들었다.
‘어차피 진짜는 하나.’
저 어지러운 검광에 현혹되면 안 된다.
[최초의 궤적!]
그거 하나만 기억하면 충분했다.
‘나머지는 그냥 눈속임.’
아니라면?
‘어차피 이판사판!’
느긋이 견적 낼 시간이 없었다.
[뱀춤]
스킬을 연계하며, 직선적 움직임에 곡선적인 변화구를 집어넣었다.
마치 구렁이 담 넘듯, 슬그머니 검광을 넘었다.
‘뭐...뭐야?’
복면 너머, 칼잠장인의 얼굴 가득 당혹감이 깃들었다.
‘왜 안 맞는 건데?’
연달아 검광을 뿌려 보지만, 마루는 그 첫 출발점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 뒤, 예상 궤적을 뽑아냈다.
피하고 또 파고들었다.
어느새 그들 사이의 간격은 역전되어 있었다.
검의 아닌 권의 거리였다.
‘내 차례다!’
마루의 주먹이 춤을 췄다.
[순살] [경혈] [잔격]
조합법 덕분일까? 전보다 더 위협적으로 변한 스킬이 칼잠장인을 덮쳐갔다.
‘히익!’
칼잠장인은 지난 악몽이 떠올랐다.
일방적인 패배!
물론, 그 굴욕감을 기억하기에, 나름의 준비는 해 왔다.
‘삼촌이 준 장비라면.’
익살자가 제공하는 무구도 대단하지만, 따로 구한 이 장비는 그보다 더 위력적인 거였다.
‘이전 건 그냥 희귀 등급이었지만, 이건 세트 템이라고!’
한층 단단해진 것이다.
‘수십, 수백 대를 맞아도, 한 대만 쑤시면 돼!’
애써 지난 악몽을 떨쳐내며 아귀검을 휘둘렀다.
그게 실수였다.
[순살-급소 검색]
마루에겐 특수 장비 대신, 등급외의 사기 스킬이 있기 때문이다.
희귀등급 장비의 세트템?
‘등짝...약점을 보자!’
방어구의 취약점들이 드러나고, 이를 요란히 두드리는데, 한층 강화된 장비의 성능 때문일까?
[치명타가 터집니다.]
[치명타가 터집니다.]
쏠쏠한 딜량 속에서도 후속 경직은 없었다.
‘아니, 대체 방어구 등급이 뭐야?’
마루는 눈살을 찌푸리며, 바쁘게 손발을 움직였다.
파팍! 팡! 빠악...
그 와중에 반격을 꾀하려는 듯, 칼잠장인이 맞으면서 카운터를 쳐 왔다. 스킬은 위력적이나, 타이밍이 부족했다.
‘마음만 급했네. 어설퍼!’
현실 속 현장감이 발동됐다.
‘이렇게 피하고, 빡!’
마루는 이를 역 카운터로 받아치며, 굵직한 한 방을 선사했다.
[철권]
그 순간 기다리던 알람이 떴다.
[경직상태에 빠집니다.]
복면 너머로 아차 싶은 불안한 눈빛이 비치고, 마루의 입 꼬리가 눈에 띄게 올라갔다.
[동력]
단기 결전용 버프와 함께, 요란한 춤사위가 시작됐다.
투두두두두두...
기껏해야 한 호흡 혹은 반 호흡, 아주 짧은 경직일 뿐이지만, 조합을 통해 한층 강화된 스킬들은, 그 짧고 작은 빈틈을 여유롭게 비집고 들어가, 넓고 환하게 찢어발겼다.
‘쇼-타임!’
칼잠장인에게 새 악몽이 싹트는 순간이었다.
**
멀찍이서 지켜보던 미끼 역.
궁수 사내 ‘구르미’는 눈살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쯧! 겨우 저 정도인가?”
그 역시 익살자의 길드원이었다.
‘간부의 친척이라더니. 낙하산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고개를 젓고 있을 때였다.
“끝났네.”
저 멀리 승부의 결말이 내려졌다.
“복수 실패.”
익살자의 신입, 칼잠장인이 치명타와 함께 로그아웃 당한 것이다.
‘크큭...이건 간부 빽으로도 답이 없겠네.’
복수를 실패하면?
“퇴출 아니면 하위 조직원 루트인가.”
간부와의 혈연여부와 무관하게,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그런 별 볼일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어?”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게, 무슨...”
승리한 목표물이 포션을 목구멍에 들이붓는가 싶더니, 이내 씁쓸히 고개를 저으며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그러더니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
로그아웃이었다.
“...뭐야?”
멍청하니 바라보던 것도 잠시, 오래지 않아 그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들 익살자의 본질이 무엇이던가.
암살자!
제 목숨도 미끼로 던져가며, 목표물을 저격하는 게 그들의 일상이지 않던가.
고로 표적의 죽음이란?
“하...”
복수 미션은 성공이었다.
“어이가 없네.”
실로 황당한 결말이었다.
**
마루는 허탈한 표정으로 FM-7을 벗었다.
“와...독뎀 장난 없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승부가 끝난 뒤 다급히 포션을 털어 넣었건만, 그가 지닌 하위 포션으로는 축적된 데미지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부은 듯 보였지만, 중간중간 아귀검이 그를 스쳐갔고, 그렇게 독 데미지가 중첩되며 그의 무릎을 꺾은 것이다.
“제대로 들어온 건 하나도 없는데, 뭐가 이러냐?”
스쳐도 사망이라고 해야 할까?
‘대체 얼마나 비싼 독을 쓴 거야?’
헛웃음만 나왔다.
“싸구려 물약으로는 한계가 있네.”
괜히 후회가 됐다.
“저레벨 구간이라고, 괜히 포션값 아꼈다가 똥 됐네. 쯧!”
이 시점에 사용할 수 있는 고급 포션이란, 위쪽 필드에서 나오는 재료들을 일부러 약화시킨, 가성비 최악의 물약밖에 없었다.
포션값을 아끼는 건 오히려 당연했다.
“그래도 두어 개쯤은 들고 다닐 걸.”
내심 아쉬웠다.
‘버텨냈으면 제대로 엿 먹이는 건데.’
[복수미션!]
“동귀어진이니, 결국 성공인가.”
덕분에 익살자 ‘길드’의 관심은 사라졌을 터였다.
“개인적인 원한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에게 2킬이나 당한 익살자의 신입 입장을 생각해 봤을 때, 마냥 안심하긴 어려울지도 몰랐다.
“너무 질척거리지만 말자. 제발!”
말과는 달리, 3차전이 벌어진다면?
‘작살을 내 주마.’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그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돌아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몸이 너무 무거운데?”
마치 몸살이 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엔트라넷을 연 뒤, 현실의 상태창을 확인해봤다.
[정마루]
[각성 등급 : D]
[컨디션 : 4]
[스킬 : 오염된 여의주] [#]
컨디션이 일상 최하점인 6점대 밑으로 내려간 걸로도 모자라서, 능력치 하락의 시작이라는 5점대마저 뚫고, 아예 바닥을 치고 있었다.
“중상 바로 전단계인가.”
분명히 게임 시작 전에는 일상 평균인 7점대였다. 헌데, 그게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4점대가 착시는 아닌 듯, 시간이 흐를수록 몸 상태가 나빠지는 걸 느꼈다.
불현 듯 떠오르는 게 있었다.
[또 다른 삶!]
과도하게 무거운 육신 때문일까?
‘설마?’
급격히 피로감이 몰려들더니, 그의 눈꺼풀을 무겁게 내리눌렀고, 오래지 않아 수마가 밀려들었다.
이후, 사흘을 앓아누웠다.
“쥐엔장!”
새삼 게임과 현실의 연결고리를 되새겨야만 했다.
“앞으론 게임 속 데스도 가볍게 보면 안 되겠네.”
경계심도 한층 강화되었다.
“익살자 이 썅노무 쉐끼들!”
작게, 원한도 키웠다.
< #20. Death.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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