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반전? >
현실과 게임의 스킬 숙련도를 함께 올리고, 거기에 더해 성장까지 겸해야 하는 탓일까?
“와...씨! 더럽게 빡세네.”
마루는 지친 몰골로 상태창을 바라봤다.
[레벨 : 30]
[힘 : 54(+10)] [지능 : 54(+10)]
[체력 : 53+2(+10)] [정신력 : 53+5(+10)]
[민첩 : 54(+10)]
[스탯 : 0]
지난 보름 사이에 올린 레벨과 스탯으로써, 여기에는 현실에서 추가로 올린 스탯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경석과의 인연 덕분일까?
“게이트 출동이 너무 많아졌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죄다 E~F급 게이트여서, 큰 부담 없이 경험치를 불리고 성장치를 높일 수 있었다.
“D급 게이트도 한 번 경험해 보고 싶긴 한데.”
여기서 문제라고 한다면, 출동으로 까먹는 시간이 상당하단 점이었다.
“그렇다고 안 나갈 수도 없고.”
게이트는 추가 스탯의 보고가 아니던가.
‘덕분에 스탯을 15개나 올렸지.’
만족스러운 스탯의 향연 덕분일까? 지친 와중에도 슬며시 입 꼬리를 올릴 수 있었다.
“후우! 어쨌든 꾸역꾸역 30레벨까진 키웠네.”
이 시점에서 슬슬 두 번째 중요 퀘스트를 준비해야 했다.
전직 퀘스트!
20레벨에 마주했던 고스트 ‘입문’ 퀘스트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전직을 위한 ‘진로’ 퀘스트가 기다리고 있는 까닭이었다.
20, 30, 40레벨 이렇게 세 번의 테스트를 거친 후에야 정식으로 전직 퀘스트를 밟을 수 있었다.
전직루트를 교체하고 싶다면?
여기서 다른 방식으로 퀘스트를 완료하면 된다.
“오랜만에 파티퀘인가.”
입맛을 다신 그가 가까운 신전을 향해 움직였다.
**
퍼펙트 플레이는 가장 완벽한 가상현실 게임으로써,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만국 공통의 오락거리였다.
그 때문일까?
당연하게도 이를 무대로 활동하는 게임 스트리머들도 어마어마했는데, ‘BJ 90탄’ 역시 이런 PP스트리머들 중 한명이었다.
그의 게임 특징은 아주 간단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초보, 저렙, 쪼렙들의 영원한 파트너 BJ 90탄 인사드립니다.”
하위 필드를 주 무대로 활동하며, 초보들을 위한 Tip을 다방면에 걸쳐서 풀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거친 캐릭터만 무려 열두 개였다.
“제 열세 번째 캐릭터 90-13이 드디어 30레벨이 됐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번에도 전직을 위한 진로 퀘스트가 있으니, 잘 지켜보시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체크하고 밑줄 긋고 마킹 OK?”
시야 한편에 띄워놓은 창으로 댓글들이 주르륵 달리는 게 보였다.
-하...지긋지긋한 진로 퀘스트.
-이것도 벌써 열세번이나 봤더니. 좀 질린다.
-뭐가 질림? 재밌기만 한데. 매번 새 직업으로 키워주잖아. 덕분에 전직 꿀팁도 얻고 얼마나 좋냐.
-다음 부캐는 신청했음?
-캐릭터 셋 넘어가면 그때부턴 추가요금 오지게 붙는다던데, 레알?
“셋 넘으면 요금 뻥튀기가 심해서, 저도 캐릭 세 개로 돌려쓰고 있습니다. 본캐 하나. 부캐 둘이요.”
BJ 90탄은 댓글에 적당히 응수하며, 가까운 신전으로 향했다. 현재 그의 전직 루트가 신관인 까닭이었다.
-근데 솔직히 이번에 신관 키우기는 별로인 듯.
-화력이 떨어져서 보는 재미가 없긴 함.
-생각해보면 마법사가 제일 웃겼지. 크크크크크크!
-사전 모서리로 허수아비 때리던 게 대박이었는데.
-힘 스탯이 저질이라 낑낑대며 두들기던 게 포인트지.
-허수아비가 허수아비 패는 줄.
-크크크크크크...
90탄은 신전에 발을 들이며 몇몇 불만들을 다독여줬다.
“확실히 신관이 초보구간에서 재미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에요. 저도 그래서 지금까지 신관은 미루고 있던 거고요. 그런데 왜 갑자기 신관을 했냐?”
그즈음 갑자기 소릴 죽이며 분위기를 잡았다.
“오늘 그 이유를 보여드릴게요.”
속삭이는 수준으로 낮아진 음성 때문인지, 기대감이 한껏 증폭됐다.
“짜릿한 반전을 기대해 주십시오.”
그 즈음 몇몇 시청자들이 반응을 했다.
-어라? 너 설마?
-이 자식 이거!
-얼씨구?
-어절씨구?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 챈 것이다.
이에 화들짝 놀란 90탄이 양손을 비벼가며 스포일러를 통제했다.
“사랑하고 존경하며 찬양하는 우리 ‘탄산’님들 아름다운 반전을 위해서 조금만 참아주세요. 이렇게 두 손 모아 부탁드립니다. 김이 빠지는 걸 원치 않아요. 제발요! 플리~즈!”
그러며 각종 애교를 부리는데, 이 모습에 주변 유저들이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며 멀어졌다.
“신전에선 정숙하십시오.”
물론, 그에 따른 경고도 피할 수 없었다.
보상이라고 해야 할까?
-OK! 다물어 주가써.
-반전을 기대 하가써.
-확실히 해야 할 거시야.
90탄의 시청자 ‘탄산’들 중, 반전을 눈치 챈 이들이 비밀을 지켜주기로 입을 모은 것이다.
“역시 우리 탄산님들이 최고!”
90탄은 기분 좋게 신전 퀘스트를 받았다.
이제 바깥으로 나가서 파티를 구해야 할 차례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신전 안쪽을 서성이며, 무언가를 살피고만 있을 뿐이었다.
-안 나가냐?
-미사라도 드리게?
-신전에 토템 박냐?
“제가 왜 아직도 여기 있냐고요?”
독자들의 물음에 90탄이 웃으며 설명했다.
“오늘 반전을 위한 포인트는 ‘신전 안에서 동료를 얻기’라서, 이렇게 동일 퀘스트 대상자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시야를 공유중이라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저기 진로 퀘스트 받는 사람들 많은데?
-가서 파티 신청 안 하고 뭐 하는 겨?
-마! 또 지나가잖냐.
-내 말 씹냐?
그들의 이야기처럼 같은 퀘스트를 받은 이들이 몇몇 스쳐갔는데, 90탄은 이들을 못 본 척 무시하고 있었다.
“아차! 더 중요한 걸 말씀 안 드렸네요. 아무나 잡는 게 아니라. 반드시 몽크 계열로 보이는 분들과 파티를 맺는 게 중요하답니다. 체크하고 밑줄 긋고 마킹! OK?”
그렇게 얼마나 더 지났을까.
“저기 목표물이 등장했습니다. 검도 방패도 없고. 방어구도 최대한 가볍게 입은 걸 보니. 몽크일 확률이 99.9퍼 아니겠습니까.”
가벼운 차림의 사내가 한 명 보였다.
“손방패도 안 보이는 게 아주 순도 높은 몽크네요. 3번 방으로 들어가길 기대합시다.”
입실 방향으로 퀘스트를 유추할 수 있었다.
“오! 3번방입니다. 같은 퀘스트 확정! 자 이제 우연인 듯 접촉을 해 볼까요?”
-뭘 보여주려고 이리 쬐누?
-기대 이하면 두고 보자.
-그냥 캐삭하고 새로 키우자.
속삭이듯 시청자들과 교류하던 것도 잠시, 목표물이 퀘스트를 받고 나오는 시점에 맞춰서 다가갔다.
**
황당하게도 신전에서 퀘스트를 받기 위해선, 기부가 필수였다.
“최근 알리나 마을에 발토가 출몰해서 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농부들의 근심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는데, 부디 형제님께서 그분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길 바랍니다.”
더 어이없는 건, 봉사 형식으로 신전의 일까지 처리해 준다는 점이었다.
‘아니. 돈 내고 노동까지 해 줘?’
그렇다고 불만을 표시할 수는 없었다.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맡겨만 주십시오.”
[퀘스트가 등록됩니다.]
바로 그 노동이 퀘스트이기 때문이다.
‘전직 관련이라 뺄 수도 없고.’
그렇게 퀘스트를 받으며 물러났다.
‘파티 구하는 것도 퀘스트나 마찬가진데.’
한숨만 푹푹 내쉬며 밖으로 향할 때였다.
“저기, 3번방 나오신 걸 보니 발토 퀘 같으신데. 저하고 같이 파티 안 하실래요?”
신전을 나서기 전, 뜻밖의 동행제안이 들어왔다. 딱 봐도 신관파로 보이는 이가 손을 내민 것이다.
이게 웬 떡이냐고 좋아하기는 일렀다.
“미리 말씀 드리는 건데, 제가 몽크파입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희망직업을 언급하는데, 상대편은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를 내비쳤다.
“정말요? 그럼 더 잘 됐죠. 특이한 직업군이면 더 좋거든요. 사실 제가 방송 중이라서, 이거 오히려 제가 부탁을 드려야겠네요. 함께하는 퀘스트 영상 좀 따도 될까요?”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연달아 이어졌다.
‘방송?’
마루는 잠시잠깐 갈등하는 기색을 내비치다,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붙잡았다.
‘파티 구하려면 한나절이니.’
전직 관련 퀘스트에 몽크계라는 직업 특성이 더해지면, 더더욱 파티 구하기가 어려울 터였다.
‘괜히 시간 낭비하느니, 얼굴 좀 팔리고 말지.’
대다수의 게이머들이 그러하듯, 일정부분 변형된 페이스인 만큼, 현실과 연결될 일도 없었다.
게다가 PP는 외형변형이 가능한 게임이었다.
‘요금이 너무 비싼 게 문제지만.’
추가적인 제약도 있었다. 이는 PP에서 캐릭터와 관련되면 항시 따라붙는 제약이기도 했다.
[외형변경 기간 : 이틀~일주일]
캐릭터 생성처럼 몇 달씩 걸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간을 잡아먹는 것이다. 기간의 차이는 레벨에 따라 갈렸다.
‘하여간에 이상한 게임이라니까.’
대개 외형 변경은 게임 접속이 어려울 때, 장기 파견을 나갈 경우에나 신청하는데, 이전 캐릭터도 그렇게 몇 차례 변경한 바 있었다.
돈이 아까워서 자주 하진 않았지만, 심각한 마찰이 발생할 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싸게 해결하는 방법도 있긴 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이어지는 통성명.
“90-13입니다. 90탄이라는 개인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장관장입니다. 여러분 잘 부탁드립니다.”
짤게나마 시청자 채팅창을 공유하기도 했다.
-몽크다 몽크!
-그딴 쓰레기 왜 키움?
-지금이라도 자살 추천!
-아직 늦지 않았다. 당장 캐삭해라 애송이.
달가운 내용들은 없어서 채팅창 공유는 해제했다.
일단 90탄의 시청자에게 깔끔히 인사를 올린 뒤, 그들은 파티를 맺고 신전을 나섰다.
알리나 마을까진 그리 멀지 않았기에, 이동수단의 도움 없이 그냥 도보이동을 결정했다. 그 와중에 90탄이 20대라는 걸 알게 되면서 말을 놓기도 했다.
“몽크하면 비주류 3대장으로 유명한데, 부캐로 그걸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계승이라 밝힐 순 없었기에, 그냥 부캐로 몽크를 키운다고 한 것인데, 시청자 때문인지 90탄은 이를 가지고 짧은 대담도 이어나갔다.
“너도 말했잖아. 특이한 직업군이라고. 별 거 없어. 그냥 그래서 한 거야. 내가 원래 특이한 걸 좋아하거든.”
확실히 그 이유로 몽크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후 전직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비주류가 왜 비주류인지 깨달으며 접고는 했다.
물론, 마루의 경우는 그와 달랐다.
‘돈 없어서 했다고 할 순 없으니까.’
“와~! 그럼 본캐도 특수한 건가요? 혹시 다른 비주류 3대장도 건드린 거 아니에요?”
“그건 톱 시크릿으로 남겨두자.”
‘몽크만 두 번째다.’
이런저런 질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저 멀리 알리나 마을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즈음 반가운 소식이 들어왔다.
“형님. 저 발토 퀘스트 친구들이 도와준다고 귓말 왔는데, 불러와도 될까요?”
“그러면 나야 땡큐지.”
평소와는 달리 순식간에 파티원이 구해졌다.
운수 좋은 날이었다.
“안녕하세요. 마법사 상추도사에요.”
“창술사 오독나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마을 촌장을 만나고 나올 즈음, 시기적절하게 두 명의 지원군이 도착했다.
그들, 아니 그녀들은 놀랍도록 화려한 미녀들이었는데, 만약 저 모습이 게임보정이 아니라면? 연예인을 해도 충분하다 싶을 정도였다.
그 때문일까?
“이야~! 저희 탄산님들이 아주 난리가 났네요.”
실제로 환호성이 보통이 아니었다.
-미2녀다!
-오독나무님은 저번에 합방했던 분 아닌가?
-탄이 잘했어. 남탕일 줄 알았더니, 아주 좋은 반전이다!
-오늘은 뭔 짓을 하건, 다 용서하마.
특히 반가운 점이라고 한다면, 그 둘 모두 본캐를 따로 둔 실력자란 점이었다.
파티원들이 플레이 경험치가 제법 돼서, 발토를 찾아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부터 사냥에 들어가겠습니다.”
90탄이 시청자들을 향해 외쳤고, 그에 호응하듯 탱커 포지션인 마루가 앞서 나섰다.
그 뒷모습을 보던 90탄이 작게 속삭였다.
“...인간 사냥을요.”
순간, 상추도사와 오독나무가 검지로 입을 가리며 윙크를 해 보이더니, 마치 모델처럼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뒤태 라인 보소. B-E-A-U~티풀!
-날 가져요. 엉엉!
-어허! 저 여인들은 심장에 해로운 여인들이로다.
-왠지 통수 삘이긴 하드라.
-클리셰가 너무 뻔하지 않냐?
물론, 대부분이 두 여인을 향한 것이었다.
하지만 90탄은 시청자들의 반응에 실망하지 않았다. 진짜 반전은 지금부터이기 때문이었다.
“특수직 루트인데, 반응이 이러면 재미없죠.”
일시지간 채팅창에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2차 환호!
-오오오오오오~!
-왔다! 왔어! 그분이 오셨다!
-누구냐? 누가 감히 탄산의 김을 뽑아 가느냐?
-여기 배덕자가 있다. 90탄을 의심하는 자 당장 트림을 시킬 것이야.
-꺼어어어어억!
-끄르르륵...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그리고 이 시점,
앞서나간 마루의 경우.
히죽...
묘한 미소 한 줄기를 입가에 띄우고 있었다.
< #21. 반전?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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