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장난질이냐? >
발토라는 놈들의 외형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멧돼지!
단지, 좀 더 크고 흉악하게 생겼다는 정도일까?
90탄은 열심히 설명을 더했다.
“눈에 띄는 차이점을 살피자면, 이마에 솟아있는 사나운 뿔 정도를 들 수 있습니다.”
-야야! 우리가 몇 회찬데. 그것도 모를까봐.
-됐고, 빨리 사냥이나 시작해.
-다음 턴 넘어가자.
-진짜 초짜들도 있으니까. 주디 다물라.
-여기 초보를 위한 방 아닌가요?
몇몇 지원사격에 힘입에 90탄의 설명이 이어졌다.
“발토가 여기까지 내려오는 건, 현실하고 비슷합니다. 먹을 걸 찾아 민가로 내려오는 거죠.”
산속 몬스터에게 밀려, 산 아래까지 튕겨 나온 것이다.
대다수 하위 몬스터들이 그러하듯, 발토 역시 무리를 지어 행동하는데, 평균적으로 10~20마리 정도가 몰려다니고는 했다.
“저기 보이는 발토는 겨우 두 마리 뿐이지만, 그 숫자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맞아. 맞아.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거든
-땅 까고 눕는 걸 좋아하는 놈들이니까.
-저 주변에 쫙 깔렸을 걸.
드러난 놈들은 일종의 경계병이라고 봐야 했다.
파티원들은 각자 탐색 스킬을 발동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겨갔다.
마루는 입술을 훑었다.
‘18마리인가.’
숫자가 제법 많았다.
‘스타트를 잘 끊어야겠네. 일단 눈에 보이는 놈들을 잘 잡아야지.’
경계병이 울부짖을 경우, 단숨에 나머지 16마리가 고개를 들 터였다. 저 두 마리의 ‘소리’를 제압하는 걸로, 사냥의 쾌적함이 결정될 것이다.
마루가 두 명의 딜러들을 돌아봤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마법사와 창술사!
둘 다 원거리 저격이 가능한 직종이었다.
물론, 창술사의 경우에는 거리에 따라 몇몇 준비물이 필요하지만, 이 정도 거리는 일반적인 투척으로도 충분했다.
아직 전직 전이라고는 하나, 직업 루트에 맞게 성장을 해 왔다면?
‘필요한 스킬 한 둘은 있겠지.’
그거면 발토의 목청을 잡기에는 충분했다.
‘기왕이면 한 방에 멱을 따버리면 좋겠지만.’
그건 스탯 부자인 마루라도 쉽지 않기에, 거기까진 바랄 수 없었다.
본캐가 따로 있는 베테랑답다고 해야 할까?
그저 눈짓만 보냈건만, 두 딜러는 각자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을 준비하며 자세를 잡았다.
“파이어 에로우.”
“투척 공 비격.”
뜨거운 불화살과 큼지막한 장창이 허공을 갈랐다.
꿱! 꾸엑!
짤막한 비명성이 울려 퍼지고, 경계를 서던 발토들이 휘청거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내 자세를 바로잡으며 목청을 높이는데.
쉑...쉑...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이는 정확히 목 부근을 저격한 까닭이었다.
부분 경직에 의해 한동안 울부짖지 못할 터였다.
놈들이 당황하는 사이, 마루를 비롯한 일행들은 수풀을 벗어나 빠르게 내달리며 거리를 좁혀나갔다.
탐색 스킬로 대략적인 분포도를 확인한 만큼, 가장 가까운 놈들부터 사냥을 시작한 것이다.
언뜻 땅바닥으로 보이는 흙더미에 발길질을 하고, 창을 내지르며 화염을 쏟아 부었다.
“싸커 킥!”
“3단 찌르기.”
“파이어!”
하나같이 발토가 숨어있는 장소였는데, 불길이 피어나면 최후방의 90탄이 기름을 끼얹으며, 화마를 한껏 키웠다.
이 와중에 중요한 건 놈들의 비명을 최대한으로 잡는 것인데, 그렇게 소음을 잘 잡아낸다 할지라도 결국 발각될 수밖에 없었다.
1차적으로 경계를 서던 놈들이 경직을 벗어나며 소리를 높일 수 있었고, 2차적으로 화마 속에서 노릇노릇 구워지는 거죽 냄새도 문제였다.
제 동족들의 후각을 자극하는 것이다.
꾸웨에엑! 꿰에엑~!
아니나 다를까. 단잠을 자던 발토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항상 굶주려있는 놈들이라 그럴까?
제 동족의 거죽 냄새에 코를 킁킁대고 있었다.
‘겨우 세 마리인가?’
생각보다 저조한 성적이었다.
‘적어도 다섯 마리는 잡을 줄 알았더니.’
경계를 서던 둘도 살아있었다.
비록 전직 전이라지만 30레벨쯤 되면, 얼추 직업군에 어울리는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마법사와 창술사는 이런 직업군 중에서도, 특히 한 방 위력이 뛰어난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로 펼친 기습이었다. 그래서 제법 기대하고 있었건만, 실망스런 결과라 해야 할까?
‘하긴, 셋 정도면 평균이긴 하지.’
좋게좋게 생각하며 남은 15마리를 대비했다.
“포지션!”
마루가 외침과 함께 최전방에서 가드를 올렸고, 비스듬히 뒤로 창술사 오독나무가 자세를 취했으며, 거기서 또 비스듬한 반대편 후방으로 상추도사가 자리를 잡았다.
90탄은 이 삐뚜름한 삼각편대의 중앙에 선 채, 준비한 버프들을 바쁘게 쏟아냈다.
꿰에엑! 꾸엑!
저돌성에 있어서는 손에 꼽히는 발토가 무려 15마리였다.
‘쉽진 않겠네.’
어설피 흘렸다간 옆으로 돌아서 들어오는 탓에, 거의 정면으로 받아내며 버텨야 했다. 그 때문인지 더욱 힘겹게 느껴졌다.
‘벌써 노란불이라고? HP가 쭉쭉 다는구나.’
90탄이 열심히 포션을 부어줬지만, 채워지는 것보다 빠지는 피가 더 많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스 에로우!”
“비살창!”
경력자 파티답게 호흡은 매우 좋았다.
탱커와 딜러의 매끄러운 연계, 버퍼의 적절한 지원까지. 몰려드는 발토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나갔다.
뀌엑! 껙! 꿰에엑!
문득, 마루는 점점 숨결이 가빠지는 걸 느꼈다. 이는 최전방의 탱커라면 얼마든 겪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후욱! 훅...하악...”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건만, 마루의 눈가에는 기이할 만큼 진한 노기가 일렁거렸다.
흘낏!
곁눈질로 파티원을 훔쳐볼 때면, 섬뜩한 안광이 스쳐가곤 했다.
**
신관계열의 역할이 응당 그러하듯, 90탄은 기본적인 버프 부여가 끝나자, 후방으로 물러나 열심히 응원만 했다.
“아자 가자! 그래. 가는 거야!”
양 손에서 흔들리는 약초가 독한 향을 내뿜었고, 후각이 자극된 발토들은 집중력이 흐려진 듯, 수시로 고개를 흔들어댔다.
90탄은 시청자들과의 교류도 놓치지 않았는데, 전투에 악영향을 줄까 우려하는 것일까?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고 있었다.
“자! 여러분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반전의 핵심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죠.”
음흉하게 미소 지으며 꺼내놓는 진실.
“저는 현재 버프가 아닌, ‘디버프’를 걸고 있답니다.”
당연히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What?
-갑자기 디버프라고?
-버프 들어가는 거 분명히 봤는데?
-상황 설명 좀.
90탄이 웃으며 말했다.
“버프 들어간 거 맞습니다.”
대신 반전이 있었다.
“약도 과하면 독이 된다고 하잖아요? 버프도 너무 과하거나 잘못 중첩되면, 역류 효과가 일어나서 디버프가 걸린답니다. 흐흐...”
초반에야 멀쩡한 버프가 들어오는 탓에, 받는 상대도 의문 없이 전투에 들어가는 것이다.
“탱커 포지션이 원래 자주 지치잖아요? 상태이상이 발생해도 이게 디버프 때문이 아니라, 전투 때문이라고 여기면서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는 거죠.”
-이래서 성기사보다 몽크를 잡았구나.
-순탱이니까.
-그런 주제에 장비발도 없으니까.
-초반 방어력 저질이잖아.
-그래서 몽크는 일단 거르고 본다.
-아, 이 순댕이들.
-댕댕이들 어쩔.
당연하게도 지원군으로 온 상추도사와 오독나무는 정상적인 버프를 받고 있었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입니다.”
그의 말에 집중하려는 듯, 채팅창이 잠시간 조용해졌다.
“신관계의 루트는 버프입니다. 그렇다면 디버프는 뭘까요?”
비록 질문을 하긴 했지만 긴 시간을 허락하진 않았다. 해답을 아는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암흑사제’입니다!”
채팅창이 또 한 번 폭발했다
-질문을 던졌으면 생각할 시간은 줘야 할 거 아니야?
-자문자답 오지고 지리네.
-암흑사제가 뭐임?
-특수직 루트가 이렇게 공개되나?
시청자들에겐 특수직 루트에 대해 밝혔지만, 모든 과정을 드러낸 건 아니었다. 게다가 디버프 조합에 대한 팁 역시 공개하진 않았다.
자칫, 암흑사제 랭커들에게 무한 척살이 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정선은 지켜야지.’
그런 이유로 몇몇 정보들은 배제할 생각이었다. 일반직이 아닌 특수직이었다. 핵심 팁까지는 밝힐 필요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여러 의미로 폭발중인 채팅장을 구경하는 한편, 저 최전방에서 열심히 탱킹중인 마루를 관찰하는 걸 잊지 않았다.
‘이쯤하면 슬슬 쓰러져야 하는데. 뭐지?’
황당한 광경이었다.
‘아니. 어렵게 얻은 디버프 조합인데, 그걸 맞고도 아직 버티고 있다고? 저게 가능해?’
가장 가능성 높은 이야기는 하나였다.
‘체력에만 몰빵했나?’
거기에 몇몇 특수 칭호나 스킬 정도가 얹힌다면? 아주 불가능한 맷집은 아니라고 여겼다.
자연히 그의 시선은 지원군에게 향했다.
상추도사와 오독나무.
‘PK보다 사냥 중 사망이 모양새가 좋을 텐데. 어쩔 수 없겠네.’
그녀들과 힘을 합쳐, 직접 사냥을 해야 할 듯싶었다.
‘형님, 너무 원망하진 마십쇼.’
**
발토 사냥은 순조롭게 끝을 맺었다.
한 무리를 처리하고 밭 하나를 개방했다. 촌장은 충분히 만족할 것이고, 신전 퀘스트도 완료시켜 줄 터였다.
“후욱...훅...후우우욱...”
마루는 가까운 나무에 기댄 채 호흡을 고르는 중이었는데, 90탄이 그의 곁으로 오더니 말문을 건네 왔다.
“와~! 발토 열여덟 마리를 이렇게 쉽고 빠르게 잡다니. 이게 전부 형님의 탄탄한 탱킹력 덕분입니다.”
상추도사와 오독나무의 칭찬도 이어졌다.
“어쩜 그렇게 포지션을 잘 잡으세요?”
“덕분에 너무 편하게 딜을 넣었어요.”
지친 탓일까? 마루는 대답 대신 희미한 미소만 비친 채, 힘없이 서서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의 모습에 90탄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렇게 서서 뭐 하세요? 힘드실 텐데 앉아서 편히 쉬시지. 여기 포션으로 힐링 타임도 좀 가지시고요.”
그러며 물약을 건네올 때였다.
“동작 그만!”
돌연 마루가 그를 멈춰 세웠다.
“...예?”
90탄이 의문을 내비치는 찰나,
덥썩!
마루가 대뜸 그의 손목을 움켜잡더니, 그대로 비틀고는 강하게 찍어 눌렀다.
뻐걱!
“끄아악!”
단말마의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이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듯, 일행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90탄이 고통 속에서 의문을 내비쳤다.
“혀...형님? 왜 그러세요?”
힘겹게 돌아보는 그의 어깨 너머로, 하얗게 웃고 있는 마루의 모습이 비쳤다.
“이 씨발놈이 어디서 약을 팔어?”
“그게, 무슨...”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새끼야.”
그러더니 비틀린 와중에 땅에 떨어진 포션을 주워들며 말했다.
“허허! 어이 90열이.”
“예?”
저는 ‘탄’인데요? 라는 의문을 내비칠 틈도 없었다.
“너는 막판까지 장난질이냐?”
“대...대체 무슨 말씀을...”
“이게 회복약이 아니라는데 내 골드 모두하고 내 손모가지를 걸것다. 너는 뭣을 걸래?”
그 시점에서 직감했다.
‘들켰구나!’
어떻게? 라는 의문에 앞서 일단 발뺌을 하고 봤다.
“시나리오 쓰고 있네. 이 미친 새끼가.”
더 이상 존대는 없었다.
“으허허허허허허허허허...”
격한 반응에 마루가 웃어 제꼈다.
“왜 들켰는지 궁금할 것이여. 아까 본캐가 뭐냐고 물었제?”
마루는 히쭉 웃었다.
“따라란 따라란 따라란 딴, 쿵짝짝 쿵짝짝 따라리랴라리...”
화면 너머,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시청자를 염두에 두기라도 한 듯, 잠시 뜸을 들이더니 굵직한 한 방을 던졌다.
“몽크 2회차다. 이 새끼야!”
“이런, 미친!”
욕지거리가 절로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채팅창도 난리였다.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몽크가 둘? 레알 하드코어 변태네.
-진성 몽빠다!
-하다하다 몽크 2회차라니. 소름!
-상상만 해도 토 나온다.
-히야~! 오늘 반전 찰지네.
마루는 90탄의 팔을 비튼 포지션을 유지한 채, 상추도사와 오독나무를 연신 경계했는데, 그러는 한편으론 꾸준히 자신의 호흡량을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현재 각인된 디버프의 축적도를 체크하는 것으로써, 호흡의 안정화에 따라서 몸 상태도 조금씩 나아질 터였다.
‘뭐, 당장 붙는다고 해서 질 것 같진 않지만.’
디버프로 인해 능력치가 떨어졌다고는 하나, 본연의 능력차이가 워낙 컸다.
10레벨 이상 높은 스탯!
랭킹권 장인의 세트 장비!
이 구간에서 놀 짬밥이 아니었다.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상태를 회복하고자 했다.
이런 그의 의도를 읽은 것일까?
상추도사와 오독나무가 서로 눈짓을 나누더니,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는 게 보였다.
더 버티기는 어렵다고 여긴 듯, 마루가 바로 도발을 시전 했다.
“언니들은 살살 어루만져 드릴 게.”
여기서 포인트는 음흉한 눈빛과 손짓이었다.
“살만 보드랍게 터치! 알지?”
발끈하는 기색을 보이는 두 여인을 향해 마무리를 던졌다.
“드루와!”
< #22. 장난질이냐?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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