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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더 헌터-26화 (26/325)

< #1. 별장지기. <2권 시작> >

고스트 필드가 골치 아픈 건, 다른 무엇보다 꾸준한 버프 지원의 유무였다.

특히, 제대로 된 속성 공격이 어렵다는 게 치명적이었다. 상점의 조합형 버프로만 감당해야 하는 탓에, 더더욱 골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챙겨올 수 있는 상점 버프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고스트 필드의 모든 몬스터의 경우, 기존 레벨보다 최소 한 단계는 더 윗줄로 평가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버프 부분, 그 중에서도 속성력에 대한 골칫거리를 해결하게 된다면?

신관 버프 하나만 제대로 돌아간다면?

“와...이게 이렇게 쉬운 던전이 아닌데.”

클놈의 탄성에서 알 수 있듯, 필드의 난이도가 급격히 하락되는 것이다.

현재 그들은 속성력 중에서도, 고스트 필드에 특화되었다는 ‘빛’ 속성 버프를 받은 상태였다.

던전이란 장소의 특성상, 필드의 상위 몬스터인 언데드들이 잔뜩 몰려있었지만, 속성력의 영향 덕분일까? 충분히 감당할만한 수준으로 다운되며, 더는 위협적이거나 부담되지 않았다.

이전, 20레벨 고스트 퀘스트에선 걸음아 날 살리라며, 꽁지 빠지게 도망쳐야 했던 놈들이지만, 지금은 당당히 정면으로 깨부수며 돌진할 수 있었다.

우워어어어어...

워어어어...

으어...

“그래도 이 숫자는 좀 버겁다.”

물론, 여유가 있다는 뜻은 아닌지라, 패피가 제법 지친 음성으로 그리 이야기했고, 바로 루띠가 말을 받았다.

“노는 게 제일 좋은데.”

그들의 반응에 마루는 헛웃음을 흘렸다.

저리 투덜대면서도 꾸역꾸역 던전 속으로 들어가는 게 우스웠던 것이다. 정말 맘에 안 든다면? 휴식 시간을 틈타서 발을 뺐을 터였다.

‘하여간 보통 골통들이 아니라니까.’

과거 그의 즐겜러 시절을 되새기게 됐다.

‘나도 저랬나?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깨를 으쓱이며 깊어지려는 상념을 털어냈다. 아직 전투가 한창인 만큼, 잡념에 빠질 타이밍이 아니었다.

“가드 쳤으면 바로 빠져.”

“뒤는 내가 맡을 테니까 밀어붙여.”

“마무리는 내꺼야?”

고인물 파티답다 해야 할까?

‘확실히 호흡은 나쁘지 않네.’

물론, 좋다고 하기도 애매했다.

적당히 필드를 돌며, 한 줌 여유를 둔 채 사냥을 하던 것과 달리, 작정하고 던전에서 빡센 사냥을 하는 건 차이가 컸다.

그 덕분에 그간 보이지 않았던, 미묘한 균열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오함마가 들어간닷!”

마루 곁을 스쳐가며 힘차게 해머를 내리치는 클놈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파티에서 근접 딜러의 포지션을 잡고 있지만, 유심히 지켜본 결과 그의 본래 포지션은 근거리가 아닌 원거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미묘한 거리감이라고 해야 할까?

‘자꾸 발을 빼네.’

여느 근접딜러와 달리 완전히 파고들기보단, 반걸음 혹은 한 걸음 가량의 간격을 뒀다. 안전지대를 설정하며 딜을 넣는 것이다.

그 모습에서 본캐의 직업군이 예상됐다.

‘궁수나 레인저? 그도 아니면...오히려 법사 쪽일지도 모르겠네.’

그와 반대로 원거리 딜러 패피의 경우엔, 오히려 근전딜러가 아닐까 싶은 모습들을 자주 보여줬다.

‘저, 저 봐라. 또 앞으로 나오네. 또!’

포지션상 최대한 안전지대를 지켜야 할 텐데, 자꾸 접전지로 다가드는 것이 아닌가. 본캐의 직업군이 예상됐다.

‘근딜!’

마지막으로 루띠의 경우는?

‘재는 도통 모르겠네.’

암기를 뿌려대며 서포터 포지션을 잡고 있었는데, 어느 간격이건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 때문에 더더욱 헷갈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느낌으로는 저 위치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미묘했다.

‘그냥 컨트롤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네.’

본의 아니게 잡생각이 길어졌던 탓일까?

“가드!”

클놈의 다급한 외침이 들어왔다.

‘아차!’

한 박자 늦은 포지션 체인지로 인해 클놈이 위기에 빠진 것이다. 마루는 어쩔 수 없이 우악스레 밀어붙이며 달려드는 언데드들을 떨쳐냈다.

‘쯧! 피 깎이는 거 봐라.’

단숨에 HP가 쭉 떨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클놈은 안전하게 자리이동을 할 수 있었다.

푹!

문득, 등 뒤가 따끔해졌다.

‘끄응...’

어느새 다가온 건지, 루띠가 주입형 포션을 등에 꽂은 것이다. 시야 한편의 살살 HP게이지가 차오르는 게 보였지만, 묘하게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왜 자꾸 등짝만 노리는데?’

손도 잘 안 닿는 위치였다.

‘그래도 포인트는 잘 잡네.’

서포터는 중장거리 딜링만이 아닌, 버퍼의 역할도 함께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이처럼 적절한 지원은 필수였다.

단, 전문 버퍼와 달리 곁다리 정도여서, 간단한 포션 지원 정도가 전부였다.

우워어어...

워우...

차오른 HP는 조금 더 무리를 해도 되게 만들었다. 과감한 대시 및 몸통박치기로 전방의 공간을 더욱 넓게 벌리고 찢었다.

“으랏차차!”

그 뒤로 따라오는 클놈의 망치.

“함마미야!”

공격상승 버프도 터트렸다.

쩌억! 쩍! 쩍...

둔기류 특성상 공격 속도는 느렸지만 파괴력은 확실했다. 그 때문인지 언데드의 육신은 금세 곤죽이 되어버렸다.

파파파팍!

그 뒤를 따르는 패피의 속사!

곤죽이 되고서도 꾸역꾸역 고개를 드는 놈들이지만, 정확한 표적사격 앞에, 결국 흙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막타! 막타! 막타!”

루띠는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암기를 푹푹 쑤시며 확인사살까지 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노련함을 앞세운 덕분인지, 일행은 파죽지세로 언데드를 쓸어버렸고, 기어이 던전 심장부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그 여파라고 할까?

“후욱...훅...후우우욱...”

“하아악...학......”

일행들은 한껏 지친 몰골로 마루를 바라봤다.

‘정말 여기까지 왔다고?’

‘지독한 놈!’

‘변태.’

새삼스레 몽크계의 특징이 떠올랐다.

수행자 혹은 수도사!

거의 ‘고행’하듯 게임 하는 변태들!

그것이 바로 몽크계가 아니던가. 그들이 ‘변태’라 불리는 건, 전부 그럴만한 이유가 있던 것이다.

만약, 스킬 쿨타임으로 인한 10분간의 휴식시간이 없었다면?

일찌감치 퍼져버렸을지도 몰랐다.

“이번에는 30분 휴식.”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고인물 3인방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너부러졌다. 10분도 짧은 시간이 아니었지만, 몸 상태를 완벽히 끌어올리기에는 부족했다.

그나마도 보스방의 특성으로 인해, 상급 안전지대가 발동되기에 30분 휴식을 준 것이리라.

‘누가 이 레벨에 보스 도전을 하냐?’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변태.’

그들은 던전 사냥 정도로 생각하며 따라왔다.

[던전 탐험이다!]

적당히 초반부만 돌다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설마하니 ‘클리어’를 목적으로 움직였을 줄이야.

눈앞의 보스방이 그 증거였다.

말도 안 된다고 여기면서도 흐름에 휩쓸려버렸다. 그렇게 발 뺄 타이밍을 놓쳐버렸고, 꾸역꾸역 이곳까지 와 버린 것이다.

사실, 일말의 욕심도 섞여있었다.

‘정말로 클리어 할 수 있다면?’

‘업적이다!’

‘최초.’

40레벨이 되면 던전에 도전할 수 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냥 정도가 한계였다.

[던전 클리어!]

전직 이후에나 가능했다.

하지만, 만약, 현 시점에 보스를 잡는다면?

그들 레벨을 떠올렸다.

[마루 35, 3인방 37]

30레벨대 최초의 던전 클리어였다.

[업적과 보상!]

심장이 뛰었다.

그 때문인지 그들은 즐겜러 모드를 지운 채, 최대한 진지하게 상태회복에 집중하며, 휴식시간을 100%활용했다.

30분이란 시간이 뚝딱 지나갔다.

“쉴 만큼 쉬었다. 슬슬 일어나자.”

마루가 그리 말하며 먼저 엉덩이를 털었고, 나머지 셋도 마지막으로 상태를 점검하고는 뒤를 따랐다.

“긴장 바짝 하고.”

그 말을 끝으로 마루가 보스방의 입구에 손을 댔다.

화아아악!

빛과 함께 문이 열리고,

[라쿠마의 아홉 번째 별장지기, 가르마의 방에 입장합니다.]

알람이 울려 퍼졌다.

방 너머 거대한 공동 중앙, 거구의 사내가 보였다.

[감히,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들 주제에 이곳까지 그 더러운 발자국을 남기려 하다니. 그 목숨으로 죄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외침과 함께 사내가 손을 휘두르니, 큼지막한 창 하나가 생성되었다.

그 모습에 마루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알지? 쉽게 가려면 지금 최대한 조져놔야 하는 거.”

고인물 3인방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며 마루가 먼저 뛰어나갔다.

그의 손에는 자그마한 손방패가 하나씩 들려있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다.

가르마의 창이 움직였다.

아직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루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까앙!

아니나 다를까. 거짓말처럼 쭈욱 뻗어오는 창격을 확인할 수 있었고, 마루는 손방패를 들어 이를 막아낼 수 있었다.

‘늘어나는 창!’

혹은 고무고무창이라고도 불리며, 최대 두 배까지 길어지는 특성을 지닌 탓에, 가르마의 창술을 더욱 까다롭게 만드는 무기였다.

괜히 견제한다며 거리를 두면 고역만 치를 수 있기에, 과감히 저돌적으로 달려들어야 했다.

[제법!]

가르마가 눈가에 이채를 띄운 채 본격적인 창격을 내질렀다.

카카카카카캉!

마루의 양 손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날아드는 모든 공격들을 막아내고 또 흘려보냈다.

다른 파티원도 주변을 빙빙 돌며 공세를 취하는데, 개중 특히 위력적인 건 속사를 쏘는 패피의 공격이었다.

파파파팍!

데미지 자체는 높지 않았다.

[크흠! 이런 날파리 같은.]

하지만 번거로움은 컸다.

근접 딜러인 클놈의 경우, 마루와 동선을 겹친 채 움직이는데다가, 느릿한 둔기류의 특성 때문인지, 당장 큰 도움을 주긴 어려웠다.

[우워어어어어!]

마루와의 거리가 좁혀지고, 그에 따라 가르마의 창술이 더욱 현란하고 또 위력적으로 변해 가는데, 이 시점에서 가르마의 얼굴에선 한 점의 여유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이놈, 보통 놈이 아니구나.]

그의 창격이 철저히 커트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았다. 막을 건 막고, 받을 건 받으며, 맞을 건 맞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가르마의 동공이 흔들렸다.

‘내 스탯에 성호 스킬까지 있는데, 1페이즈부터 피똥 싸서야 쓰나.’

게다가 추가적으로 한 가지 더,

손방패!

허파is토스에게 손발이 닳도록 부탁해, 어렵사리 받아낸 무구였다. 이 역시 일반 등급의 세트 아이템이었다.

[오류난 쪼렙 손방패 세트 - 좌, 우]

[좌 -  힘 : 10] [우 - 체력 : 10]

[세트옵션 - 민첩 : 10]

[1회용]

단지, 급조된 거라 내구도가 엉망이었고, 한 번의 전투로 사라질 물건이었다.

‘아깝지만...그래도 퀄리티는 나왔으니까.’

게다가 이건 특수한 옵션도 지니고 있었는데, 가르마와의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마루가 이를 드러냈다.

방패 안쪽의 엄지손가락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철컥!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방패 주변으로 유선형의 칼날이 솟아났고, 그 순간 재빨리 양 손을 교차시켰다.

까각!

[어헉!]

화들짝 놀란 가르마가 급히 몸을 빼려 하는데, 아쉽게도 그게 쉽지 않았다. 그의 창날이 교차된 칼날 사이에 걸려든 것이다.

“지금!”

그 순간 터져 나온 외침과 함께 클놈이 움직였다.

“함마미야!”

[크윽!]

선택의 순간, 가르마는 몸을 빼기보다 전진했다. 안광을 번뜩이며 걸음을 내딛었다.

아슬아슬하게 해머를 흘리며, 매섭게 양 팔목을 비틀었다.

파라라락!

그러자 창날이 매섭게 회전하며 마루의 가슴을 관통할 듯 찌르고 들어왔다.

헌데, 이 모습에 마루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렇지. 너는 뺄 줄 모르는 놈이지.’

이미 짐작했던 반응이기 때문이다.

가르마를 비롯하여 라쿠라의 아홉 별장 모두, 한 때는 지긋지긋하게 돌아봤던 장소가 아니던가.

창을 놓고 피한다는 선택지는 가르마에게 없었다.

올 걸 안다면?

‘카운터지!’

마루 역시 전진했다.

그 와중에 팔을 살짝 올리며 스킬을 하나 발통시켰다.

[고정]

궁수의 자세제어를 위한 기본 스킬과 함께, 창격의 비틀어진 궤적이 강제고정 되었다.

[이...이놈이...]

가르마가 경악성을 터트리며 한껏 힘을 쓰니, 스킬이 바로 파훼되며 창날의 궤도가 다시 한 번 변화하는데, 그 시점에서 이미 창날은 빈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목과 승모근의 경계지점, 그곳에 상흔을 남겼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랄까?

히쭉!

급속도로 좁혀진 간격 속에서 마루가 웃었다.

초 근접전?

몽크의 간격이었다.

빠바바박...

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가르마의 육신이 너울너울 춤을 췄다.

마치 마리오네트라도 되는 양, 마루의 손짓 발짓에 따라 이리저리 춤사위를 펼치는데, 그 사이사이 내어주는 절묘한 빈틈에 맞춰 클놈의 해머가 들어왔다.

“함마미야!”

가르마는 급속도로 엉망이 되어갔다.

하지만 방심해선 안 된다.

이곳 던전은 ‘고스트 필드’에 속해있었고, 눈앞의 가르마 역시 멀쩡한 외형과 달리 망자의 일원이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가르마가 광폭화 모드에 돌입합니다.]

알람이 이를 알려줬다.

파아아앙...

가르마를 중심으로 강대한 파동이 발생하고, 마루와 클놈이 크게 밀려났다.

촤아아악!

촤아악!

겨우 신형을 멈춰 세우며 자세를 바로잡았을 때, 그들 앞으로 뜻밖의 동물이 등장했다.

‘곰!’

거대한 곰 하나가 가르마의 자리에 서 있었는데, 녹색빛이 감도는 특이한 털이 인상적이었다.

그 정체는 이어지는 알람으로 확인됐다.

[베어 그린스(Bear-Greens) 일족의 망령 가르마가 포효합니다.]

[크워어어어어!]

마루가 외쳤다.

“2페이즈 들어간다.”

지금부터가 진짜 빡센 시간이었다.

< #1. 별장지기. <2권 시작>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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