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 >
인간형일 때와 달리, 동물형으로 변한 가르마의 방어력은 실로 엄청났다. 게다가 더욱 골치 아픈 건, 비대해진 덩치와 안 어울리게, 날렵함과 유연성 역시 상승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더 단단하고 강맹하며 치명적으로 변했다는 의미로써, 한층 위협적인 공격이 쏟아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루의 긴장감이 바짝 올라갔다.
‘지금부터는 탱킹에 집중!’
물론, 방어에만 전념할 생각은 없긴 했다. 특수한 손 방패를 구입한 것도 공수양면에 있어서 활약하기 위함이지 않던가.
‘수비 8에 공격 2정도...’
클놈의 파괴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틈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할 생각이었다.
[크워어어어어...]
가르마가 포효하며 몸통 박치기를 해 왔다.
[철골]
섣불리 흘려보낼 수 없어 정면으로 받아내는데, 제대로 커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HP가 쭈욱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후...쉽지 않겠네.’
여러 준비를 갖추고 왔다지만, 상대는 무려 던전의 보스가 아니던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들 고인물 3인방이 레벨대 이상의 능력치를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각각의 장비도 심상찮았다.
‘일반등급 세트템.’
혹은 희귀 등급의 개별템으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다각도로 견적을 내린 뒤 도전한 던전이었다.
‘할 수 있다!’
가르마의 할퀴기 공격이 날아들었다.
‘막고, 막고, 막고...’
캉! 카앙! 카앙! 카가가각!
‘튕기고...’
틈을 만들기 위해 크게 튕겨낸 탓에 마루의 몸도 크게 휘청거렸지만, 덕분에 클놈이 들어올 공간 역시 마련할 수 있었다.
마루가 외쳤다.
“지금!”
그 전에 이미 클놈의 해머가 움직이고 있었다.
“함마미야!”
공격 상승의 외침도 이어졌다.
뻐억!
[크워어어...]
가르마의 비명성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한껏 올라간 방어력 덕분인지, 놈은 고통스레 울부짖는 와중에도 군더더기 없는 공격으로 클놈을 내려쳐왔다.
[차징]
그 순간 자세를 바로잡은 마루가 빠르게 커버를 치며 어깨를 들이밀었다. 이에 중심축이 흔들리며 공격의 궤적이 어긋났고, 클놈은 무사히 몸을 뺄 수 있었다.
와중에 이어지는 루띠의 암기술과 패피의 일발 점사.
쉬쉬쉬쉭!
파파팍...
가르마의 고개가 그쪽으로 향하지만, 마루가 빙글빙글 돌며 놈의 시선을 어지럽혔다.
마치 바리케이트라도 된 듯, 다른 파티원에게 다가갈 수 없게 철저히 전방 압박 수비를 했다.
다시금 가르마의 신경이 마루에게 쏠렸다.
[이 거머리 같은 놈!]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사납게 들이쳤다.
‘막고, 막고, 막고...크읍...’
어설피 흘렸다간 놈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어서, 최대한 정면으로 공격을 받아냈는데, 그 때문인지 HP게이지가 쭉쭉 빠지는 게 눈에 보였다.
물론, 루띠가 이를 방관하진 않았다.
푹! 푹!
유령처럼 다가와 포션을 꽂고 빠진 것이다.
등짝의 따끔한 느낌과 함께 HP가 차오르지만, 워낙 가르마의 공격력이 거센 탓인지, HP게이지는 점차적으로 마이너스 곡선을 탈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성호 스킬이 빠질 때까지만 버티면 되니까.’
그 안에 승부를 못 본다면?
결국 전멸이었다.
‘남은 시간 10분!’
이를 알기에 클놈을 비롯한 고인물 3인방도 더욱 열정적으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다행이라 한다면, 1페이즈에서 인간형 가르마를 열심히 다져놓은 덕분에, 2페이즈의 수인형 가르마의 HP가 상당부분 빠졌다는 점이었다.
‘할 수 있다!’
안전지대를 찾아 움직이던 클놈도 이번만큼은 과감히 몸을 들이밀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이었다.
빗맞아도 치명적인 둔기류를 제대로 휘두른다?
뻐억! 빠악!
[끄워어어어...]
가르마의 울부짖음이 공동을 뒤흔들었다.
클놈과 달리 패피는 본캐 습관을 버리지 못한 듯, 여전히 간격 유지를 엉망으로 했지만, 그게 또 뜻밖의 이점을 발휘했다.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화살의 위력이 배가됐던 것이다.
코앞에서 일점 점사?
정확도마저 한껏 올라갔다.
‘때린 데 또 때리는 것만큼 아픈 게 없지.’
게다가 루띠 역시도 적잖은 딜링을 하고 있었다.
‘전문 딜러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꾸준히 지속적으로 날아드는 그녀의 암기들은, 마치 날파리와 같은 귀찮음을 선사하며, 수시로 가르마의 시선을 앗아가고는 했다.
이를 통해서 발휘되는 옅은 빈틈.
[철권] [경혈] [순살]
한 번의 주먹질이 전부지만, 최대한 굵직한 한방을 쑤셔 넣으며, 가르마의 호흡을 한 차례씩 잡아 놨다.
[껑...]
던전을 돌파하며 파티의 퀄리티를 높였고, 가르마를 상대하며 연계의 완성도가 정점을 찍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좋아지는 팀워크 앞에, 가르마의 HP는 빠르게 깎여나갔고, 종래에는 놈의 움직임까지 묶어버렸다.
그 시점에서 마루는 승부수를 던졌다.
[동력]
성호 스킬도 막바지에 이른 시점이었기에, 남은 기력을 전부 폭발시키며 공세로 전환한 것이다.
지금부터는 굳이 막을 필요도 없었다.
‘발이 묶였으니까.’
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일종의 그로기 상태로써, 유저들은 지금 이 상태를 한 단어로 정의했다.
“샌드백이다!”
“극딜!”
클놈과 패피가 외쳤다.
가르마의 동작이 굼떠지고 공격력이 약화됐다.
허나 그만큼 방어력이 상승해버리는 게 반전이었는데, 숨을 고르면서 회복 또는 최후의 한 방을 준비하는 것이다.
회복이 어려운 상황에 도달하면?
“자폭하기 전에 잡아야 돼!”
최후의 한 방을 터트린다.
일행은 일제히 달려들며 공세를 퍼부었다.
마루의 탱킹에 의존하기보다, 개개인의 몸놀림으로 가르마의 이빨과 발톱을 피하면서, 쉴 틈 없이 매섭게 몰아쳤다.
공격력이 약화된 만큼, 어느 정도 손해는 감수해가며 과감히 파고들었다.
그 결과,
파스스스스슥...
수인족의 망령은 연기가 되어 날아갔고,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놀라운 보상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
블록(Block)길드 특수 1팀의 팀원들 중, 장현성과 김미애 그리고 진수미는 같은 해에 입사한 동기로써, 아카데미 시절부터 이어진 남다른 인연의 소유자들이었다.
그 때문일까?
유독 그들 셋은 사이가 좋았고, 그 영향으로 팀에서 조를 짤 때도 항시 함께 호흡을 맞출 정도였다.
그들은 휴일에도 적잖이 어울려 다니고는 했는데, 그래서인지 성별여부와 무관하게, 관심사 역시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최근 관심사는 한 사내에 대한 것으로써, 모이기만 하면 관련한 이야기로 수다를 떨기 일쑤였다.
“와...어떻게 그걸 그렇게 패링하지?”
“것보다 거길 클리어했다는 게 더 황당하다니까.”
“역시, 변태.”
평소보다 더 흥분한 듯한 그들의 목소리에, 한편에서 지켜보던 팀원이 물어왔다.
“또 PP이야기냐?”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셋이 고개를 돌리며 썰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저희가 흥분할 수밖에 없다니까요. 아니. 글쎄...”
이어지는 내용이 놀라웠던지, 다른 팀원들도 슬며시 귀를 기울이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허...30레벨대에 던전 클리어?”
“그게 가능하다고?”
“미쳤네!”
만국 공통의 오락거리인 PP가 아니던가. 팀원들도 적잖게 즐겨본 게임이었고 또 여전히 즐겨하는 게임이었다.
그러니 저들 3인방이 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황당무계한지도 알 수 있었다.
“정말, 그게 가능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게요.”
장현성 역시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그리 답했다. 직접 경험하고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반응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보상이 뭔데?”
누군가의 물음에 김미애가 나서서 검지를 까딱였다.
“어허! 귀한 정보를 공으로 얻으려 하시면 쓰나. 점심 정도는 쏴야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끄응...치사한 것. 알았어. 쏜다 쏴.”
진수미가 끼어들었다.
“스떼끼.”
“아주 뽕을 뽑는구나. 그래 오늘 비싼 고기 좀 씹어보자.”
히쭉 웃은 김미애가 비밀을 풀어놨다.
“당연히 고유 칭호죠.”
“와...설마 싶었는데, 정말로 하위 필드에서 고유 칭호라니.”
재차 팀원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옵션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한껏 분위기가 들끓는 찰나, 슬며시 침투하는 테러리스트가 있었다.
“야, 그런데 너희 정말 호로로 가면 쓰고 게임했냐?”
동기 3인방은 왠지 모를 민망함에, 슬며시 시선을 피하며 입을 다물었고, 본의 아니게 무거운 침묵이 찾아들었다.
**
마루는 이른 아침, 눈 뜨기가 무섭게 집 근처의 찜질방을 찾았다.
그리고는 가볍게 몸을 씻어낸 뒤, 바로 사우나 실에 들어가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상태로 세월네월 시간을 보내는 그의 머릿속으로 지난 밤, 놀랍고도 환상적인 기적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30레벨대 던전 클리어!]
그 놀라운 업적과 함께 떨어진 특수 보상이 첫 번째 기적이었다.
[칭호 : 도전자]
[등급 : 고유-제한]
[무모하지만 용감했던 당시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HP 30%이하로 떨어질 시, 모든 스탯 5%증가.]
[HP 20%이하로 떨어질 시, 모든 스탯 10%증가.]
[HP 10%이하로 떨어질 시, 모든 스탯 15%증가.]
고유 칭호는 연신 웃음을 새나오게 만들었다.
“흐흐흐흐...”
옵션도 환상이었다.
이전 캐릭터인 ‘관장공장공장장’으로도 구경한 적 없던 것, 그게 바로 고유 칭호가 아니던가. 입이 귀에 걸렸다.
물론, 마냥 만족하는 건 아니었다.
“기왕이면 상시 적응형 칭호면 더 좋았을 텐데.”
현실에까지 영향을 주는 점 때문일까? 그런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배부른 소리라는 걸 알기에, 고개를 휘휘 저으며 털어버릴 수 있었다.
“일단, 고유 칭호가 생겼다는 게 중요하지.”
현실의 정마루는 모르겠지만, 게임 속 장관장을 키우는 건 한층 더 수월해질 터였다.
‘제한 옵션이라니.’
상황이 맞물리면 칭호의 능력이 발동되는 것으로써, 설명란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가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위력이 발휘되는 칭호였다.
특히나 마음에 드는 부분은 전 스탯 상승이라는 점인데, 차후 레벨이 오르고 전체 스탯이 한껏 올라간다면?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돌변하게 될 터였다.
‘일종의 성장형 칭호인가.’
“뒷심 쩌는 스킬이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쉬움을 털어냈다.
“로그-아웃!”
이후 게임을 나온 그는 엔트라넷을 열었다.
“퀘스트 창이 어떻게 변했으려나...”
상태창을 본 마루의 눈가에 이채가 스쳐갔다.
[정마루]
[각성 등급 : C]
[컨디션 : 7]
[스킬 : 오염된 여의주] [#] [*]
알림창의 [?]가 사라지고 [*]라는 새로운 창이 생성된 까닭이었다.
묘한 기대감 속에 창을 눌렀다.
[*도전자]
짧은 단어였다.
“꺽!”
하지만 충분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숨넘어가는 격한 반응으로 경악성을 대신한 마루가 쉼 없이 [*도전자] 창을 눈에 담았다.
환상인가 싶었다.
“맙소사!”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은 그가 제대로 된 탄성과 함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칭호라니! 현실에서, 그것도 고유 칭호라니.”
PP에서 특수 스킬 못지않은 파급효과를 지닌 게 바로 고유 칭호의 존재감이건만, 그런 특별한 칭호가 현실세계로 넘어온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한밤중인 것도 잊은 채, 침대 위를 방방 뛰면서 미친 듯 소리를 질렀다.
거기서 상념이 끊겼다.
지난 밤, 유일한 오점이 떠오르며 속이 쓰려왔다.
‘애들도 아니고 너무 방방 뛰었어.’
침대의 최후였다.
“후...새로 하나 사야겠네.”
불필요한 지출을 상기하니 미간에 주름이 올라왔다.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은 그가 자신의 상태창, 그 중에서도 컨디션 부분을 확인했다.
[컨디션 : 5]
어느새 점심이 가까워진 시간, 이른 아침에 들어왔던 사우나도 어느새 6시간가량이 흐른 상태였다.
‘슬슬 몸이 무거워지네.’
침대가 아닌 맨바닥에서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밤 뜻밖의 성과로 인해 한껏 기분이 업 됐던 덕분일까?
“아침에 확인했던 컨디션이 8점대였지.”
생각보다 높았었다.
이를 억지로 다운시키기 위해 이처럼 사우나에서 몸을 축내는 중이었다.
뜬금없이 컨디션을 낮추는 이유?
‘으음...칭호 효과를 확인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으니.’
컨디션이 하나 떨어질 때마다 스킬을 발동시키며 변화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앞서 [컨디션 : 6]까지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거기까진 마루도 예상하고 있었던 바,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첫 번째 분기점에 도달한 만큼,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HP가 바닥을 쳐야 데미지가 증가하는 거니까.”
“경상급으로 분류되는 5점대부터가 포인트.”
“물론, 예상 기대지점은 4점대지만.”
“어쨌든 지금부터가 진짜!”
각성자의 강건한 육신으로 인해 여기까지 오는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철권]
마루는 스킬을 발동시킨 뒤, 근처에서 구입한 각성자용 완력기를 움켜쥐었다.
꾸구구국...
점차적으로 휘어지는 완력기와 확장되는 동공.
‘쉬워졌어!’
슬며시 입 꼬리가 올라갔다.
[컨디션 : 5]
대박이었다.
< #2. [*].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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