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웨이브? >
퍼펙트 플레이를 처음 경험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공감하는 단어가 있다.
“판타스틱!”
말 그대로 환상적인 퀄리티에 압도당하는 것인데, 전율적인 현실감도 그러하지만 일단 눈에 보이는 풍경 자체부터가 남달랐다.
아름답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 만큼, 대자연의 숨결이 생생하게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엉망이네.’
던전의 풍경이란 건 너무 이질적이었다.
‘핏빛 하늘...’
보랏빛으로 물든 대지.
그리고 시야를 가득 어지럽히는 잿빛 안개까지.
너무 이질적이어서 결코 인세의 풍경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 장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P?”
마루는 그와 같은 느낌을 받아버렸다.
어느 하나 닮은 구석이 없음에도, 기이할 만큼 PP와 겹쳐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상념은 거기까지였다.
“뭘 그렇게 멍하니 계셔.”
먼저 들어온 장현성의 음성이 그를 일깨운 것이다. 어느새 뒤따라온 진수미가 그의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오라버니 길막.”
그제야 후다닥 자리를 피해 준 마루가 한층 멀끔해진 정신으로 다시금 던전 내부를 돌아봤다.
‘어라?’
기이하게도 좀 전의 그 감각이 사라진 것이다.
‘분명, PP의 느낌이 났었는데.’
마치 좀 전의 일이 거짓이었다는 듯, 던전이라는 새로운 세상 특유의 이질적 분위기만 넘쳐날 뿐이었다.
‘착각인가?’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혹시 모르니까.’
마루는 좀 전의 상황을 뇌리 한편에 박아놓기로 했다. 다시 되새겨지지 않으니, 일단 정보로써 기억이라도 해 놓자는 의도였다.
‘지금은 원래 목적에 충실해야지.’
김미애가 물었다.
“이건 기본 절차라서 묻는 건데. 던전에 온 이유가 뭐죠?”
절묘한 타이밍의 질문이었다.
“그런 건 원래 입장 전에 묻는 거 아닌가?”
“헤헷! 이런 서류작업은 내 전공이 아니라 깜빡했어요.”
마루가 헛웃음과 함께 답했다.
“관광!”
정말로 별 이유 없었다.
**
던전의 풍경 및 분위기 등, 이런 걸 살피는 것만으로도 입장료의 가치는 충분했다.
‘뭐, 공짜였지만.’
일단 길드에서 손을 대고 정비를 시작할 경우, 던전 입구에 해당하는 공간은 이런저런 시설들이 세워지면서, 언뜻 현실의 풍경과 닮아버리고는 했다.
때문에 아직 정비가 덜 된, 신규 던전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며, 던전이란 공간의 본질을 살필 필요성이 있었다.
“일단 이 주변은 대충 정리가 끝난 상황이에요.”
김미애가 곁을 따라다니며 가이드 역할을 해 줬다.
“사실, 입구 주변은 E급 몬스터밖에 없어서 별로 어려울 것도 없었죠.”
하지만 저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D급 던전에 어울리는 다양한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는데, 많아봐야 두 자릿수에서 겨우 세 자릿수를 넘나드는 게이트와 달리, 이곳은 수백, 수천마리의 몬스터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히든 개체가 있는 중앙 구역은 이제 막 설계 들어가서, 제대로 작업 하려면 몇 주 걸릴 것 같네요.”
던전의 주인이라고 불리는 존재, 게임으로 치자며 보스 몬스터의 포지션을 잡고 있는 게 바로 이 히든 개체였다.
평균적으로 한 등급 위의 몬스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직 서식지 정도만 확인한 거라, 정확한 등급까지 밝혀진 건 아니지만, 어차피 C급 테두리 안에 있을 테니, 그 정도는 여유죠.”
그렇게 말하는 김미애의 음성에는 블록 길드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났다. 아직 규모가 크진 않지만 소수의 정예라는 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녀 본인이 B급 헌터이기도 했다.
“어떻게? 같이 뛰어 보겠습니까?”
문득,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일찌감치 그 기척을 느끼고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놀란 기색을 내비치며 물었다.
“누구...신지?”
“블록 길드의 부길드장 장대수입니다. 그리고 여기 현성이 녀석 삼촌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정말 깜짝 놀랐던 터라, 잠시 벙찐 표정을 하고 있노라니, 장대수가 매끄럽게 이야기를 이어붙이며 분위기를 끌어나갔다.
“요놈이 그렇게 눈독 들이고 있는 분이 방문하셨다고 해서, 호기심을 못 참고 찾아왔습니다. 혹시 방해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손사래를 치는 마루를 향해 장대수가 재차 물었다.
“저도 호기심이 차서 그러는데, 어떻게 한 번, 저희와 손발을 맞춰보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오늘도 저 안쪽에서 사냥이 있을 예정인데. 방아쇠 한 번 당겨보시죠.”
“오오! 삼촌.”
장현성이 옆에서 엄지를 세우는 게 보였다.
‘나이스 제안!’
마치 그렇게 말하는 표정이었다. 곁으로 김미애와 진수미가 눈을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녀들 역시 말로만 듣던 마루의 저격 솜씨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겨우 D급 헌터에게 무슨 기대를 그리 할까도 싶었지만, 그들이 아는 장현성의 눈썰미란, 그 가벼운 입과 달리 매우 무겁고 또 신중한 것이었다.
‘자격증 이상의 무언가가 있겠지.’
장대수는 조카의 눈을 믿었다. 그리고 마루의 경우에는 이 뜻밖의 제안에 흔들리는 중이었다.
‘던전 사냥이라...’
솔직히 끌리는 게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선뜻 받아들이기도 어렵네.’
현재 외출용 기본 장비만 장착 중이다 보니, 이런 던전 사냥에 어울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괜한 민폐만 끼칠 확률이 높았다.
이런 심정을 읽기라도 한 걸까?
“제가 제안하는 거니, 장비는 저희 측에서 제공하겠습니다.”
‘투자를 할 거면 제대로 해야겠지.’
장대수는 그리 생각하며 마루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마루는 자신의 저울추가 확 기우는 걸 느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지!”
뒤편에서 장현성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
과연 길드 수준의 장비지원이라고 해야 할까?
‘브레스-5!’
마루는 네임드의 중간급 넘버를 손에 쥐며 바르르 떨어야만 했다.
‘어...억...’
무려 0이 8개나 붙는 총기의 위엄이었다.
‘B급 특수탄도 문제없이 소화하는 놈.’
때문에 그냥 만져만 보고 끝냈다.
그의 현 자격증은 D등급이었고, 이는 브레스-7까지가 마지노선이기 때문이었다. 이마저도 총기류 각성자란 프리미엄 덕분에 가능했다.
눈으로 보고 만지기까지 했으니, 오늘은 그걸로 충분했다.
‘게다가 이것도 3천만원짜리니까.’
그는 브레스-7을 골라서 주무기로 착용하고, 몇몇 보조 장비까지 장착한 뒤 차량에 올랐다.
“오라~이.”
장대수가 차량을 두드리며 외쳤고, 이내 트럭이 이동을 시작했다.
‘트럭보단 경운기에 가깝지.’
조금 우스꽝스런 외형만으로 가볍게 여길 수는 없었다. 이래봬도 던전 물품으로 제작된 특수 차량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속도감 죽이네.’
털털 거리며 달릴 것 같지만, 부왕 거리며 쾌속한 질주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단단하기로는 탱크가 부럽지 않았다.
간단한 사냥터를 잡아 움직이는 만큼, 일행의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았다. 장대수를 비롯하여 고인물 3인방까지, 마루 포함 총 다섯 명의 소규모 파티였다.
아직 정리가 덜 된 던전이다 보니, 짧은 이동만으로도 금세 장소를 잡을 수 있었다.
망원경을 들고 주변을 살피던 장대수가 외쳤다.
“3시 방향.”
D급 던전에 딱 어울리는 몬스터가 보였다.
‘고블린인가.’
무리를 지어 다니는 놈들답게 20마리 남짓이 어울려 돌아다니고 있었다.
‘방어력이 약한 편이었지.’
총기 사냥에 용이한 녀석들이었다.
“몸 풀기 딱 좋은 숫자군.”
그러면서 마루를 바라본다.
“먼저 한술 뜨겠나?”
짧은 시간이나마 이동 중에 거리감을 좁힌 덕분인지, 말투가 제법 편해져있었다.
마루는 거절하지 않은 채, 브레스-7을 견착 했다.
[고정] [조준]
그리고 여기에 최근 현실로 끌어올린 스킬 하나를 추가했다.
[성호]
차량이 멈춰 섰을 때 이미 발동을 시킨 상태였다.
투웅...
이어지는 저격.
퍼퍼퍽! 퍽!
일행의 동공이 확장됐다.
그건 마루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
단 한 발의 총알에 고블린 네 마리가 무릎을 꿇었다.
‘...랍쇼?’
셋은 관통에 즉사요, 남은 한 놈도 치명상에 꿈틀거리며 헐떡이는 중이었다.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이었다.
**
비록 D급 몬스터인 고블린을 상대로 한 저격이라지만, 한 번의 총격으로 넷을 처리한다?
과해도 너무 과했다.
브레스-7이라는 네임드 넘버 총기를 사용했다고는 하나, 거기에 쓰인 총탄은 D급 특수탄일 뿐이었다.
잘 쳐줘도 두 마리까지였다.
놈들의 약한 방어력까지 고려한 계산이었고, 그 때문에 마루는 첫 저격과 동시에 바삐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이는 사냥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
“허어...설마 B급 특수탄을 가지고 있었다니. 구입루트는 당연히 비밀이겠지?”
“비상용으로 몇 발만 가지고 다니는 거라서요. 브레스-7을 써보는 건 처음이라서 호기심에 한 발만 장전한다는 게 이런 결과를 내버렸네요. 하하...”
장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루의 탄을 바라봤다.
‘몇 발 챙겨놓은 게 요래 쓰일 줄이야.’
단야의 마크가 찍히지 않은 것으로만 챙겨왔기에, 살펴본다고 해서 발각될 이유도 없었다.
‘변명거리로 딱이긴 했는데...깔끔하진 않네.’
D급 특수탄으로 넷은 과했다. 하지만 B급 특수탄으로 넷이라면?
납득할 순 있지만, 일말의 찝찝함은 남는다.
“처음 써보는 거라 손에 안 맞는데도 이런 파괴력이라니. 역시 브레스-7이 대단하긴 하네요.”
때문에 변명에 변명을 끼얹어야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명중률일세.”
첫 저격 이후로 이어진 사냥에서도 마루는 말도 안 되는 명중률을 보여주며 고블린들을 쓸어버렸다.
이때에는 스킬 캔슬로 [성호]를 제거했고, 그 덕분에 과한 파괴력은 감출 수 있었다.
“역시 현성이가 극찬한 이유가 있었어.”
장대수는 그리 말하며 장현성을 한 차례 바라봤다.
“나도 자네 실력이 탐나는군.”
그러더니 품 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여기, 정식으로 스카웃 제안을 해 볼까 하네. 자네만한 솜씨의 저격수라면 장비만 제대로 갖추면 C급 정도는 충분할 테니까.”
“아...그게...”
“걱정 말게나. 자네가 아직 길드에 들 생각이 없다는 건 현성이를 통해 충분히 전해 들었으니까. 단지, 앞으로 생각이 바뀐다면 우리 블록을 먼저 떠올려 줬으면 하는 정도라네.”
제안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네 정도 솜씨면 용병으로라도 한 발 걸쳐놓고 싶으니, 언제든 던전 사냥에 마음이 동하면 연락 하게나.”
실로 뜻밖의 제안이었다.
“던전을 뚫긴 했지만, 우리 길드가 아직 그리 큰 규모는 아니라서, 따로 서포터들을 구해야 하거든. 자네라면 거기에 딱 이라고 생각하네.”
장현성도 한 팔 거들었다.
“게이트 사냥보다는 경험치 획득이 수월할 거야.”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PP 육성 때문에 자주는 무리겠지만, 용병으로 잠깐씩 거드는 거라면...’
“잘 부탁드립니다.”
마루와 장대수가 손을 맞잡았다.
일행들은 하나같이 만족스런 결과를 얻은 채 던전을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마루가 바깥으로 나온 그 시각.
그곳 던전 지대의 중심지, 혜성 길드 경계조는 뜻밖의 사태와 함께, 급히 비상벨을 누르고 있었다.
**
블록 길드의 경계 1팀 팀원 김익수, 그는 뜻밖의 소식을 전달 받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
함께 경계를 서던 고일문이 묻자.
“비상!”
김익수가 버럭 외쳤다.
“혜성 경계조에서 관리하는 중심 던전 파장값이 C에서 B로 올라갔어.”
“젠장!”
고일문도 벌떡 일어났다.
던전 파장 상승?
거기에 어울리는 사태는 단 하나뿐이었다.
“몬스터 웨이브!”
“던전이 열린다!”
블록 길드에 비상이 걸렸다.
“빌어먹을! 이제 막 던전 하나 뚫었나 싶었더니.”
“염병!”
욕설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인근 던전지대 전부 비상이 걸리며, 수많은 헌터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 #8. 웨이브?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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