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com >
[미국의 히어로 레이널드 방한]
[중국 영웅 금강귀 장량의 공항 패션]
[러시아의 성난뿔곰 이반나의 포차 먹방 컷]
[노르웨이의 수호신 펜리르 알카서...]
이슈가 이슈를 불러오며, 한국이란 나라는 말 그대로 핫플레이스가 되어가고 있었다.
각자 한 단체의 수장 혹은 그에 버금가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었고, 이러한 강자들이 찾았다는 점에서 더더욱 이번 사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게 만들었다.
세계의 관심도 역시 나날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와...정말로 올 줄이야.
-라인업 뭔데?
-한국에서 대격변이라도 나는 건가?
-설마?
-지금이라도 이민 신청해야 하는 거 아니냐?
-안 그래도 해외여행이니 뭐니 하면서 뜨는 놈들 많더라.
-배라도 탈까?
-새우 잡으러 간다.
-쉬파...
이런저런 기사들을 살피던 얼음여제 이소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국을 찾은 랭커들의 명단을 확인했다.
그러다 쓰게 웃어버렸다.
“...역시, 안 왔나.”
어쩌면 한국 최초의 S등급 헌터이자 랭커가 됐을지도 모르는 사내.
허나, 지금은 미국의 3번째 히어로가 된 사내.
그 외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실력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한 채,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때는 그만큼 상황이 안 좋았지.’
사내 역시 이를 알기에 위기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을 한 것이고, 그곳에서 철저한 케어를 받으며 벽을 넘은 것이리라.
이 때문일까?
“레이널드를 대신 보낸 건가.”
사내의 벗이자 미국의 5번째 히어로였다.
곁을 지키던 김연희가 그녀의 중얼거림을 듣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또 그 개자식 생각하는 거야?”
“...동물 비유까지 할 필요 있니.”
“언니 버리고 떠난 새끼는 더 심한 말도 아깝지 않네요.”
이소희가 쓰게 웃었다.
“그 새끼 때문에 우리 언니가 여태껏 시집도 못 가고...”
이소희가 씨게 웃었다.
“...에헷! 실수.”
그 살벌한 미소에 아차 싶었는지 김연희가 잠시 애교를 떨었고, 결국 헛웃음으로 기분을 풀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럴 필요 없어. 애초에 사귀던 것도 아닌데.”
김연희가 살살 애교를 부리며 호응했다.
“맞아맞아. 차라리 잘 된 거지. 재수 없었으면 우리 소중한 언니가 키잡물의 희생양이 될 뻔 했는데, 그런 더러운 꼴을 피했으니. 오히려 잘 된 거지.”
그 와중에도 마무리는 호박씨 까기로 정리되었다.
“키잡? 그건 또 뭐야?”
“굳이 알 필요는 없는 말이야. 신경 쓰지 마.”
“넌 가끔 이상한 용어를 쓰더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소희를 보며 김연희는 미국의 3번째 히어로를 떠올렸다.
‘재수 없는 새끼지만, 그래도 실력은 진짜지.’
그 증거물이 바로 이소희였다.
사내의 뛰어난 가르침이 있었기에, 그녀가 지금과 같이 훌륭한 헌터로 성장할 수 있던 것이 아니던가.
“그나저나 혜미가 올린 보고서도 읽었어?”
“어.”
그것은 혜성 길드 하위그룹과 관련한 내용이었는데, 놀랍게도 거기서 뜻밖의 이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D급 A형 정마루. 여기서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니까. 블록과 용병 계약을 맺다니. 정말 깜짝 놀랐어. 언니도 그랬지?”
“조금, 의외긴 하네.”
블록 길드는 최근 받아들인 하위그룹이었다.
그 때문에 던전 관련 사항에 대한 정보들이 꾸준히 넘어오고 있었는데, 그 안에 마루의 이름이 끼어있던 것이다.
“각성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던전 서포터라니.”
“베테랑이 각성했을 때, 가장 효율이 좋은 게 총기류 각성자니까.”
“그렇긴 하지. 15년 경력이니까. 궁합이야 말할 것도 없겠네.”
문득, 김연희가 입맛을 다셨다.
“아...아깝다! 일찌감치 스카웃을 해 버렸더라면, 그만한 전력을 정말 싸게 부려먹을 수 있었을 텐데. 늦장 부린 게 천추의 한이다. 으아아...”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보다 벌써 던전 서포터를 뛸 정도면 각성한 스킬이 예상 이상으로 좋은 건가 보네. 여러모로 의외야.”
“그러게. 늦깎이 각성자라 한계가 명확할 테지만, 그래도 좀 기대가 되긴 하네. 어디까지 성장 할 수 있을지. 또 언제쯤 벽을 마주칠지.”
이소희가 의아한 듯 바라봤고, 그 눈빛에 김연희가 웃어보였다.
“관심 있어서. 아니 생겼다고 해야 하나. 놓친 물고기가 마냥 잡어는 아닌 것 같아서.”
“그래봤자 D급이야.”
“알아. 그래도 좀 더 지켜보려고. 그러다가.”
“그러다가?”
“쓸 만 하다 싶으면, 경계팀으로 끌어들여 볼까 생각중이야.”
“처리팀은?”
“에~이. 던전 서포터 뛸 정도면 C급 언저리는 된다는 건데. 처리팀은 무리지. 장비만 제대로 갖추고 경험치만 좀 더 먹이면, C+급까진 충분히 커버 가능할 것 같으니까.”
특히, 매력적인 요소가 있었다.
“비공식 경력까지 더하면 무려 15년이던데. 솔직히 등급만 맞추면 경계팀에는 차고 넘치지.”
그런 이유로 결론은 이러했다.
“못 먹는 감인지 아닌지, 찔러 보게.”
**
마루는 자신의 왼손을 바라봤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고 했는데...”
물론,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살짝 꺼려지는 감이 있었다.
“엄마가 알면 난리 나겠네.”
그가 이처럼 당혹감을 드러내는 이유인 즉,
“문신이라니.”
왼손에 작게 새겨진 문신 하나가 보였다.
‘그래도 손바닥이라 다행인가.’
굳이 내보이지만 않는다면 평생 감출 수 있으리라.
‘내보이고 싶은 문양도 아니고.’
언뜻 소용돌이를 닮았는데 그 모양이 꼭,
“...골뱅이냐?”
메일 주소를 부르게 생긴 문신이었다.
‘기왕이면 좀 더 멋진 문신으로 줄 것이지.’
신체발모니 뭐니 하지만, 결국 문양이 맘에 안 들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일단 아이템은 아이템이니까.’
맘에 안 들어도 소중히 안고가야 할 문신이었다.
“흐흐흐흐~!”
문신의 능력을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실소가 새나왔다.
“아공간이라니. 흐흐...”
게임으로 치면 ‘인벤토리’와 같은 개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아이템을 받던 당시를 떠올렸다.
[특수 보상이 지급됩니다]
생각지도 못한 알람과 함께 눈앞의 허공이 일렁이더니 작은 주머니 하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마침 게임에서 막 나온 참이라, 오른손은 접속기를 들고 있어서, 왼손을 뻗어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슈우우우욱...
주머니는 왼손바닥 안으로 흡수되듯 빨려 들어갔고, 지금과 같이 @문양 하나만이 남은 것이다.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섬뜩했다.
“만약, 실수로 손등으로 쳐내려 했으면 어쩔 뻔 했어.”
그랬다간 평생 왼손을 봉인하고 살았으리라.
‘요괴선생 누보처럼.’
뱃속엔 여의주, 왼손엔 흑염...
잠시 몸서리를 치던 그가 화제를 돌려, 아이템의 긍정적인 부분으로 생각을 옮겨갔다.
“성장형이란 말이지.”
그리 중얼거리며 손 안의 문신을 꾸욱 눌렀다.
[아공간 - 성장형]
[수납장 - 8]
[게이지 - 8]
관련한 정보가 떠올랐다.
‘흐흐...앞으로는 무기를 덕지덕지 싸매고 다닐 필요가 없겠네.’
수납장의 숫자만큼 무구를 담을 수 있었다.
게다가 게임의 인벤토리와 비슷한 성능을 지닌 덕분에, 총탄을 수백 수천발 이상 들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한히 많은 총탄을 들고 다닐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이템 정보창의 맨 밑의 내용이 그와 관련 있었다.
‘저 ‘게이지’가 처음에는 0이었지.’
그러다가 총알을 한껏 들이부으니 어느 순간 1, 2, 3...점점 올라갔고,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묘한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게 딱 9점부터였다.
짐작건대 수납장의 숫자와 관련이 있을 거라 여겼다.
[게이지 = 무게]
대충 이런 공식이 완성됐다.
‘10점 넘어간 순간부턴 무게감이 확 붙었었지.’
두 자릿수가 되어서?
2점 오버라서?
아직까지 명확한 정의를 내리긴 어렵지만, 일단 거기까지만 확인한 뒤, 다시 특수탄들을 빼내며 게이지를 8점대까지 낮춘 것이다.
‘10점부턴 무게감이 확 늘어서, 너무 무겁기도 했고.’
무한의 공간을 상상했기에 일말의 실망감도 있었지만, 생각을 달리하고 난 뒤로는 오히려 달가울 지경이었다.
“스킬 숙련도 작업에 딱이잖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떠올린 스킬이 하나 있었다.
[PRI]
최근 현실로 끄집어낸 스킬이었다.
던전의 이해 퀘스트로 인해 던전을 헤집고 다닌 효과라고 해야 할지, 전용 스킬임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빠르게 숙련치를 채운 것이다.
‘헛다리를 제대로 짚은 거긴 하지만.’
“그래도 성과가 없진 않았네.”
물론, 휴식으로 숙련치를 올리는 기존 연공법과 달리, PRI의 경우 사냥으로 숙련치가 채워진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긴 했다.
‘현실 숙련도 올리는 게 고민이었는데.’
PP처럼 몸을 막 굴리면서 혹사시킬 순 없기 때문이다. 이곳엔 게임과 같은 회복력이나 포션과 같은 기적의 물약이 없기에, 현실 숙련도 작업이 쉽지 않으리라 봤었다.
사실, 포션 비슷한 게 있긴 했다.
“너무 비싸!”
그걸로 숙련치 올렸다간 길바닥 나앉기 딱 이었다. 때문에 타이밍이 좋다 여겼다.
‘@...아공간 무게로 육신을 혹사시키면?’
PRI 숙련치도 쭉쭉 올라갈 게 분명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기쁨을 표출할 때였다.
우웅...
핸드폰이 울리고 문자가 떴다.
[고경석]
게이트였다.
“어라? 또 C급? 요즘 왜 이래?”
이전과 달리 크게 달갑진 않았다.
승급여부를 감추기 위해 적당히 몸을 사려야 하는 탓에, 오히려 C급 게이트에선 활약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등급이 있어서 경험치가 짭짤하긴 한데.’
짧은 갈등의 끝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배가 불렀네. 벌써부터 이런 고민이라니.’
고개를 저으며 장비를 챙겨 입었다.
“티끌 모아 태산!”
내심으로는 사용하고 싶은 게 있기도 했다.
“아공간 수납!”
그와 동시에 준비한 장비들이 왼손으로 흡수되는 게 보였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흐흐흐흐...”
미소가 사라지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또 이겁니까?”
“싫으면 말고.”
“하...”
바이크점 사장 김근석이 외쳤다.
“출동이다! CT-헌터.”
“모냥 빠지네.”
바이크의 엔진이 울부짖었다.
푸흘...푸흘흘흘...
**
별 거 아닌 하급 헌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왔다.
‘소희 언니의 명함을 받았으니까.’
얼음여제가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언니 명함을 싸구려로 만들지 않으려면, 실력이 가짜여도 진짜로 만들어야지.’
김연희는 그리 생각하며 안광을 번뜩였다.
길드로 끌어들일 수 없더라도, 다른데서 욕먹는 행동을 하는 건 용납 못했다. 그 때문에 방관하면서도 한쪽 귀는 열어놓고 있었다.
그 결과,
‘정마루...역시 우리 언니는 대단해!’
얼음여제의 눈썰미를 칭송하는 것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물론, 거기서 끝은 아니었다.
“한 번쯤 직접 ‘보고’ 싶은데.”
지금까진 그저 정보로써 접한 정도였지만, 다시 낚시질을 생각하는 시점이니 만큼, 이번에는 두 눈으로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전엔 괜히 배려한다고 놔뒀다가 놓쳤으니까.’
그 시기에 일정이 꼬여서 바쁘기도 했다. 물론, 요즘도 바쁜 건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잠깐의 짬은 낼 수 있었다.
‘기왕이면 확인도 할 겸...’
그녀의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제일이었다.
우우우웅...
딱 좋은 타이밍이라고 해야 할까?
[목표물 출동]
마루에게 붙인 요원의 문자였다.
‘실력 확인은 역시 현장이지.’
길드를 나선 그녀는 요원이 보낸 정보를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현장에 도착하고, 드디어 확인한 목표물.
풀썩...
저도 모르게 무릎이 풀려버렸다.
경악감에 물든 눈빛.
“뭐야, 저게?”
그녀의 동공에 비친 건,
“괴물...”
전율 그 자체였다.
< #10. @.com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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