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무지개. >
러시아의 성난 뿔곰이라고 불리는 S급 헌터.
이반나 크라포드!
그녀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크게 낯선 곳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10년만인가.”
과거, 한 때는 이곳에서 유학을 하던 시기가 있던 까닭이었다.
길거리 먹방이니 뭐니 하며, 관련한 사진들이 자주 찍히며 기삿거리가 되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더 맛있네.”
그러면서 쉼 없이 들이키는 건 오뎅 국물이요, 열심히 찍어먹는 건 떡볶이 소스였다.
나름 변장도 하고 나왔기에 주변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기에 날아드는 시선까진 피하기 어려웠다.
특히, 유창한 한국말로 주문까지 하는 모습이 신기했던 것인지, 시선이 모여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는 저 멀리서 꾸준히 쫓아다니는 파파라치의 카메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좀 귀찮기는 하지만.’
일상의 적정선만 지킨다면 그녀도 크게 관여하진 않았다.
떡볶이에 오뎅 그리고 순대에 김밥까지, 거하게 분식을 즐기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러다가 배 터져.”
누군가 그리 말하며 곁으로 다가왔다.
“오! 우리 귀여운 멜사 왔네.”
“그렇게 부르지 마.”
“소희 너하고 딱 어울리는데 뭘.”
멜사, 얼음여제 이소희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요즘은 여왕님이라고까지 불린다며? 이참에 능력을 한껏 발휘해서 얼음성도 하나 짓는 거 어때?”
이를 무시한 이소희가 잠시 주변을 돌아보다가 입을 열었다.
“변장을 한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들킨 것 같네.”
그 말처럼 몇몇 사람들이 그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보였다. 이에 이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겠지. 나하고 달리 너는 이곳에서 활동하니까. 그리고 마스크 한 장으로 무슨 변장이야.”
이반나가 랭커라고는 하나, 결국 외부 헌터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소희는 한국 내에서 손에 꼽히는 유명 헌터였다. 얼굴을 꽁꽁 싸매지 않는 이상 정체를 감추기란 어려웠다.
“너 때문에 오늘은 여기까지만 먹어야겠다.”
그러면서도 따로 포장을 하는 이반나의 모습에, 이소희가 그녀가 먹어치운 접시들을 살피더니, 질린다는 얼굴로 재차 고개를 저어버렸다.
간단한 포장 후, 빠르게 자리를 피한 그들은 준비된 차량으로 올라탔고, 기다렸다는 듯 차량이 이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던전 돌아본 소감은?”
이소희의 물음에 포장지를 뜯던 이반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별로, 그렇게 특별한 건 없더라.”
각국의 랭커들은 도착하고 얼마간의 기다림 및 절차를 거친 뒤, 나름의 인맥과 루트 등을 통해서 변화한 던전들을 살필 수 있었다.
이는 이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이상현상에 혹시나 대격변의 징조가 아닐까 싶어서 바짝 긴장했었는데, 너무 밋밋해서 오히려 김이 빠지더라고.”
화제의 던전은 딱 B급 던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여정이 가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정말 별 거 없는 던전이었어.”
그렇지만 변화는 확인했다.
“아직은 여기 던전지대 하나지만, 일단 하나가 확인됐다는 건, 다른 던전지대에서도 이상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거잖아.”
지금이야 C급 던전의 승급현상이라 별 문제 없던 거지, 그 윗줄의 B급 던전이나 A급 던전에서 승급현상이 발생한다면?
‘만약, S급 던전이 변하면?’
이반나는 거기서 생각을 멈췄다.
더 이어가려니 너무도 소름끼치는 결과로 이어지는 까닭이었다.
S급 던전의 승급?
불가해(不可解)의 영역!
이를 일러 ‘대격변’이라 할 것이다.
‘으...생각도 하기 싫네.’
때문에 얼른 화제를 넘겨버렸다.
“넌 따로 조사된 거 없어?
“A급 헌터에게 뭘 바래?”
랭커들의 감각과 비교하긴 부족하단 의미였다.
“에~이. 모른 척 하긴. 내가 물어본 건 다른 거잖아.”
그 말 그대로였다.
단지, 길드 내부의 특수 정보이기에 일부러 외면했을 뿐이었다.
이는 이소희의 최측근과 관련된 것이었다.
김연희!
그녀의 조금 ‘특별’한 스킬이 핵심이었다. 사실 길게 고민할 이유가 없긴 했다.
“우리라고 다를 게 있나.”
그들도 아는 게 전무했던 것이다.
굳이 이를 밝히는 건?
‘숨겨도 결국 알아 낼 테니.’
이반나와 김연희의 관계가 그러했다.
미국의 3번째 히어로!
그가 이소희의 스승 같은 존재라면?
눈앞의 여인은?
김연희의 스승 격이라 할 수 있었다.
**
[스킬 : 오라오라오호라]
조금은 우스운 명칭을 지녔지만, 그 능력만큼은 결코 우습지 않은 것.
그게 바로 김연희라는 헌터가 지닌 스킬이었다.
특징은 간단했다.
[아우라를 볼 수 있다]
능력을 아는 소수의 지인들은 그녀를 인간 측정기라 부르기도 했다.
말인 즉,
‘수준을 파악하는 건 일도 아닌데...’
김연희는 목표물을 바라봤다.
‘...모르겠어.’
일상이 아닌 전장에서 실력을 발휘할 때, 본신의 능력을 한껏 내비치는 순간, 아우라는 더욱 명확해진다.
물론, 일상에서도 아우라를 파악할 수 있긴 하나, 눈에 비치는 선명함의 차이로 인해, 전장을 찾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가 굳이 현장을 찾아가며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때문에 의문이 들었다.
‘설마, 실력을 숨기고 있는 건가?’
목표물의 희미한 아우라가 그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 흐릿함에도 불구하고 뇌리에 선명히 각인되는 아우라가 충격적이기도 했다.
‘저런 건...처음이야.’
대개 각성자라 하면 고유의 아우라를 지니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각기 나름의 색깔로 구분되기 마련이었는데, 예를 들자면 얼음여제 이소희의 경우, 설원을 연상시키는 새하얀 순백의 아우라를 품고 있었다.
여기서 특징이라 하면?
[단 하나의 색!]
그녀가 아는 한, 각성자의 아우라는 단색이었다.
여태 봐 왔던 어떠한 헌터도 이 같은 기준을 벗어난 적이 없었고, 그 때문에 이는 변함없는 진리와 같았다.
랭커라고 불리는 S급 헌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게 웬일?
‘저건, 대체...’
목표물이 그녀의 기준을 박살내버렸다.
‘...몇 개야?’
마치 무지개라도 되는 듯, 다양한 색깔들이 사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두 가지 이상의 색상을 지녔다고?’
이런 경우는 그녀 기준에선 하나밖에 없었다.
‘괴물!’
몬스터만이 지닌 특성이었다.
‘저렇게 많은 색상이라니.’
특히, 색상의 수가 많을수록 몬스터의 등급 역시도 높아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의 무릎이 풀릴 수밖에 없던 이유였다.
오늘 계획은 이러했다.
1. 목표물의 아우라를 확인한다.
2. 현 위치와 잠재력을 파악한다.
3. 짧은 만남으로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 움직이잖아. 따라가. 따라가야 하는데...다리가...’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다리가 왜? 어째서?’
굳어버렸다.
아우라에 민감한 능력을 지녔던 탓일까?
첫 인상의 충격적인 여파가 그녀의 다리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려버렸을 정도였다.
가까스로 다리를 폈을 땐?
이미 목표물은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
게이트에 도착한 마루는 최소한의 실력만 내보인 뒤 경계조로 합류했고, 이후로는 후방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냈다.
‘끝났나 보네.’
경험치가 정산되는 걸 느끼며 자리를 정리하는데, 그러다 이상한 걸 발견했다.
‘뭐지?’
웬 아가씨가 몽롱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여기에 있다는 건 헌터라는 소린데...’
굳이 현장 방향이 아닌 그를 보는 이유가 뭘까?
“...나한테 반했나?”
괜스레 턱을 쓸어보는 건, 나름대로 포즈를 취한 거였다.
그러면서 슬쩍 시선을 보내는데, 홱 하니 고개를 돌리는 모습에서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크흠!”
민망함에 황급히 자리를 피해야만 했다.
더욱 당혹스러운 건,
푸흘흘...푸흘...흐...
“빌어먹을 CT-Back!”
서글픈 최후를 맞은 바이크였다.
“택시~!”
여러모로 모양 빠지는 하루였다.
**
[떠나는 랭커들, 안전한 대한민국?]
[이상현상과 격변 사이.]
[연예인 A씨 결혼...]
한 달 남짓 꾸준한 이슈몰이를 해 왔던 사건, 던전 승급의 열기가 슬슬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이는 몰려왔던 고위 헌터들이 자국으로 돌아가면서 만들어진 흐름으로써, 덕분에 이상현상의 위험등급을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단 결론까지 내릴 수 있었다.
-결국 랭커들도 떠나는구나.
-좀 더 조사하겠다면서 남아있는 랭커도 있다던데.
-일단, 이반나 사진은 꾸준히 올라오더라. 흐흐...
-먹방지존!
-던전을 보러 온 게 아니라. 그냥 관광 온 느낌이네.
-관광 온 거야.
이슈는 끝났고 관련한 기사는 하나 둘 내려가고 있었지만 그 불씨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어쨌든 대격변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거의 격변에 가깝지 않나?
-그런가?
-건너건너 듣기로는 이번 사태가 다른 던전에 적용될 수도 있다던데.
-상급 던전에 승급현상 발생하면 우짜노?
-상상만 해도 지리겠네.
-어라? 이거, 기존 던전들 좀 정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게.
-청원이라도 해야 하나?
작은 불씨가 그대로 사그라질지, 그도 아니며 잔불로 번져 다시금 거대한 산불로 커질지는 아직까진 모를 일이었다.
**
한동안 던전을 파헤치긴 했지만, 던전의 이해 퀘스트에 중점을 둔 사냥이었고, 퀘스트 해결 이후로는 밀렸던 스킬 숙련도 작업에 전념했던 탓일까?
[레벨 : 60]
[힘 : 90(+10)] [지능 : 90(+10)]
[체력 : 87(+2+10)] [정신력 : 85(+5+10)]
[민첩 : 90(+10)]
[스탯 : 0]
마루는 이제야 겨우 60레벨을 찍을 수 있었다.
“두근두근하네.”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10레벨 간격으로 전용 스킬이 오픈되니까’
계획했던 몽크가 아니지만, 이미 PRI 스킬을 경험해 봤기 때문인지, 적잖은 기대감을 품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몽크계 신전으로 갈 필요가 없는 건 편하네.’
비주류 3대장답게 관련 시설도 몇 없는 몽크와 달리, 수호자는 관련 시설이 전무하다 보니, 그냥 아무 신전이나 찾아서 직업관련 혜택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긴장감과 기대감이 적절히 혼합된 얼굴로 근처 신전을 찾았다.
“신의 가호가 함께하실 것입니다.”
신관의 음성과 함께 기다리던 알람이 떴다.
[보조직업을 선택하십시오.]
헌데, 그 내용이 뜬금없었다.
‘보조...직업?’
잠시 멍하니 있는 사이, 눈앞의 창에 변화가 발생했다.
[사제] [성기사] [몽크]
성직계열을 대표하는 직업군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50레벨...전직할 때 나오는 선택창이잖아?’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해 여전히 정신줄을 놓고 있노라니, 새로운 알람이 울리며 그의 사고를 되돌리고 이해력을 높여줬다.
[보조직업은 수호자의 위장 신분이 될 것입니다. 그에 따라서 성장 방식도 달라질 수 있으니, 신중하게 고민하신 뒤 선택해 주십시오.]
그간 꾸준히 올린 지능 스탯의 영향이라고 해야 할까?
‘이거, 설마...’
느낌이 왔다.
‘기존 육성 루트를 버릴 필요가 없는 건가.’
그렇다면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몽크]
동시에 상태창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직업 : 수호자]
[보조 : 몽크]
이렇게 새로운 문구 하나가 추가된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용스킬 : PRI]
[보조스킬 : Holy-Sip]
보조스킬이라는 새로운 창과 함께, 신성한 한 모금이라 불리는 몽크 전직스킬 ‘홀리십’까지 등록된 것이다.
‘홀리...’
한편에선 ‘홀리쓋’이라 불리며, 부정적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스킬로써, 몽크를 비주류로 만드는데 일조한 스킬이기도 했다.
마루는 이를 확인한다는 생각으로, 급히 필드로 달려간 뒤 짧게 몬스터를 사냥하며 스탯을 낮췄다.
그리고 이어지는 휴식모드.
[Holy-Sip이 발동합니다.]
그와 동시에 몸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타의 연공법이 그저 가만히 앉아 명상하듯 숨고르기만 한다면, 몽크들의 연공법은 좀 달랐다.
지금처럼 꾸준히 몸을 움직이며,
[댄스 댄스 댄스 all night~!]
요란한 춤사위가 이어지는 것이다.
“이 쪽팔린 짓거리를 또 하게 될 줄이야.”
중얼거리는 와중에도 스킬 발동의 효과에 의해 몸은 열심히 비트를 타고 있었다.
무반주라는 게 포인트였다.
‘막춤은 거들 뿐...’
후에 좀 더 상위의 스킬들과 연계하기 전까진, 이 우스꽝스런 춤사위에서 벗어날 수 없을 터였다.
“놀림감 되기 딱 좋은 몰골이네.”
유저들이 뚝뚝 떨어져나간 이유였다.
“꼴은 좀 우습지만, 시너지만 제대로 발휘된다면.”
나직한 중얼거림과 함께 연공 회복을 마친 마루는 바로 사냥터로 뛰어들었고, 이내 경이로운 알람을 들을 수 있었다.
[Holy-Sip 효과에 의해 스킬 위력이 상승합니다.]
[PRI 효과에 의해 스킬 위력이 상승합니다.]
무려 두 가지 전용스킬의 중첩이었다.
연공법 버프가 소소한 수준이지만, 그것도 중첩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는 것이다.
‘각각 5%씩이니까...10%!’
홀리십의 증폭효과는 전투가 이어지는 와중에 그 효과가 끊겼지만, 이는 주기적인 휴식모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유레카!”
< #11. 무지개.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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