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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더 헌터-37화 (37/325)

< #12. 태세전환. >

이소희는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단색이 아니라고?”

이에 김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지개가 피는 것 같더라.”

“착각한 건 아니고?”

그리 묻고 있지만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너무도 믿기 어려운 정보에 그냥 튀어나오는 질문일 뿐이었다.

“눈이 뻐근해질 때까지 스킬을 발동시켜서 확인한 거야.”

이번에는 김연희의 질문 차례였다.

“정마루. 그 사람한테 명함을 준 이유가 뭐야?”

“말했잖아. 비각성 헌터답지 않은 실력에 흥미가 간 거라고.”

“그래. 그랬지. 그런데 정말 그것뿐이야?”

[뭔가 특별한 걸 느낀 거 아니야?]

[그래서 명함을 준 건 아닐까?]

대충 그런 종류의 의도가 담긴 질문이었지만, 이소희의 대답은 변함없었다.

“솜씨 좋은 D급 B형 헌터. 딱 그 정도였어.”

비각성 헌터 중에서 손에 꼽힐 수준이라는 결론에 명함을 꺼낸 것이지만, 그 정도는 크게 특별한 내용이 아니었다.

“마침 처리팀을 준비 중인 시점이었으니까.”

“그래서 좀 더 눈이 갔다는 거네.”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에 두 여인은 머리를 맞댄 채, 빠르게 상황파악 및 분석에 나섰다.

“실력을 숨긴 걸까?”

김연희의 의문.

“네 말처럼, 그 정도의 아우라면 S급은 될 텐데, 굳이?”

이소희의 반문.

“확실히...그만한 실력자가 게이트만 뛴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설마, 내가 지금껏 알고 있던 아우라의 개념이 잘못 된 건가?”

뜻밖의 화제 전환.

결론 없이 의문만 가득한 토론 속에서 결국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답답해! 직접 봐야겠어.”

이소희가 자리를 박찼다.

‘이 시간이면 슬슬 저녁 먹을 시간인가?’

김연희는 따로 붙여놓은 요원 덕분에, 마루의 일상 스케줄을 꿰고 있었다.

‘도착하면 딱 운동하러 나오겠네.’

그의 기계적인 일상이 떠오르고, 딱 적당한 타이밍이라 여기며 그녀도 뒤를 따랐다.

그리고,

“언제까지 게임만 할 건데?”

“오늘 중으로 나오기는 하냐?”

크게 후회했다.

**

혹시?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며 찾은 장소가 있다.

[가시밭길]

조금 특이한 간판을 내건 허름한 건물로써, 얼핏 용병 길드를 연상시키는 외형이지만, 그와는 전혀 상반된 이들의 터전이 바로 이곳의 정체였다.

“수행자의 사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마루는 익숙한 인사말을 들으며 마주 예를 취해보였다. PP특유의 성호 긋는 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뜻 깊은 고행길 되십시오.”

뿐만 아니라 몽크 특유의 인사말도 남기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으로 들어온 이유?

[60레벨 전용 스킬]

수호자 보조직업으로 몽크라는 직업과 ‘Holy-sip’스킬을 얻었다. 충분하다 싶으면서도 ‘혹시?’ 하는 마음에 찾았다.

‘또 다른 전용스킬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컸다.

‘홀리-십은 전직할 때 받는 거니까.’

아니나 다를까.

[스킬 ‘태세전환’을 획득합니다.]

몽크의 ‘60레벨 전용스킬’이 등록되었다.

‘그렇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기쁨을 표한 마루가 상태창을 열어 스킬을 확인했다.

[태세전환 - 터틀, 버드, 울프, 스킨]

거북이, 새, 늑대, 도마뱀.

이렇게 4종류의 동물 형태를 앞세운 스킬로써, 각 동물마다 개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방어력 : 터틀]

[회복력 : 버드]

[공격력 : 울프]

[염동력 : 스킨]

스킨 모드의 염동력은 장풍 및 탄강과 같은, 원거리 기공계열의 데미지 증가를 의미했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건 터틀 하나.’

나머지 3종류의 형태는 각기, 70레벨과 80레벨 그리고 90레벨에 오를 때에야 오픈되는 것이다.

‘얻을 건 얻었으니.’

지금부터는 노가다의 시간이었다.

띠띠띠띠...

그 타이밍에 알람이 울렸다. 식사와 운동의 시간이었는데, 오늘은 왠지 거르고 싶어졌다.

‘흠...빼먹으면 안 되는데.’

복권이 무려 3장이나 터진 까닭일까?

[보조직업 몽크, 연공법 중첩, 태세전환!]

그 열기가 아직 가슴에 남아 들끓고 있었다.

‘오늘 하루쯤이야.’

결국, 식사를 걸렀고 운동도 빼먹었다. 이날은 오랜만에 게임에만 미쳐버렸다. 광란의 밤이었다.

**

마루가 ‘가시밭길’을 나설 때, 멀찍이서 그를 쫓는 시선이 하나 있었다.

싸악...싸악...

사원을 돌며 빗질을 하던 동자였는데, 아이는 청소를 하는 틈틈이 마루를 훔쳐보더니, 그가 사원을 나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후다닥 어딘가로 뛰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푸드드득...

작고 날렵한 새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

PP에는 다양한 범법 유저들이 존재했다.

그 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건, 하위 유저들을 사냥하면서 그들의 주머니를 털어먹고 사는 이들이었다.

탈곡기 길드 역시 그런 무리들 중 하나였다.

대개 3~4명이서 따로 팀을 이뤄 행동하는데, 때때로 이런 팀들을 여럿 모아서 대규모 작업장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 한 개 필드 전체를 컨트롤하며, 내부의 하위 유저들을 통째로 털어먹고는 했다.

자주 발생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길드의 신입들을 교육한다는 명목 아래, 꾸준히 주기적으로 판을 벌이고는 했다.

오늘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다.

본의 아니게 신입 교육을 담당하게 된 카잔은 그가 담당하는 두 신입을 바라봤다.

파르마와 토투가!

대개 1명을 맡는 것과 달리, 2명이나 맡았다는 점에서 뿌듯한 한편, 번거로움이 배로 늘었다는 부분에서 짜증도 함께 뒤따랐다.

‘맘 같아서는 이놈들을 털어버리고 싶지만.’

아무리 막돼먹은 범법 길드라도, 그건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앞서 두 차례의 사냥을 통해 확인한 바, 신입들의 솜씨가 제법이라는 점이었다.

‘하긴, 부족한 실력이었으면, 다른 조와 합을 맞췄겠지.’

머리가 둘이 되는 꼴인데, 그렇게 되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차라리 혼자서 둘을 감당하는 게 나았다.

“지금까진 내가 사냥감을 잡아줬는데, 이번에는 너희들이 한 번 사냥감을 골라봐라.”

이에 토투가와 파르마가 눈을 빛내며 필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60레벨 유저들의 사냥터인 바바라 필드.

토투가와 파르마는 65레벨 유저였고, 그의 경우에는 무려 80레벨로써, 1차 전직의 중부능선을 넘어선, 소위 말하는 ‘꺾인’ 유저였다.

‘필드 수준에 비하면, 차고 넘치는 전력이지.’

게다가 이런 무리가 대규모로 필드를 컨트롤하는 상황이었다.

필드와의 레벨대가 안 맞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PP의 특성상 문제되는 부분이 아니었다.

PP는 각 사냥터를 비롯한 시설마다 레벨 제한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무직자들의 경우.

[1~15, 15~30, 30~50레벨!]

이렇게 3가지 구간으로 나뉜다.

별도로 15, 30레벨은 위아래 구간 모두 진입할 수 있는, 일종의 교차구간이었다.

전직 이후로는 이런 구간 제한이 훨씬 넓어진다.

[50~100레벨, 100~200레벨!]

간단히 1차, 2차 전직구간이었다.

이곳이 비록 60레벨대 필드라지만, 50~100레벨의 1차 전직자에 한해서는 얼마든 개방되어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PP에서는 갓 전직한 유저들이야말로 가장 맛좋은 사냥감이란 말이 나돌고는 했다.

물론, 하위레벨 유저도 나름의 생존방법이 있었다.

[길드가입!]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다.

이후, 길드 마크를 장비에 새김으로써, 탈곡기와 같은 범법 유저들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잘 살펴야 돼. 가끔 빡대가리들이 길드 마크를 이상한데 새겨놓는 경우도 있으니까. 코딱지만한 길드면 상관없지만, 재수 없어서 대형 길드 루키라도 건드렸다간, 즉각 잠수 타야 되니까.”

최악의 경우에는 탈곡기에서 문제 길드원을 제물로 내놓는 경우도 있었다.

경고 때문일까? 파르마와 토투가는 최대한 신중하게 사냥감을 탐색했다. 그러다가 어렵게 목표물을 하나 찾아냈다.

“저놈으로 하겠습니다.”

홀로 필드를 뛰는 유저가 보였다.

‘호로로?’

조금 특이한 가면 때문인지, 유독 눈에 들어왔다.

**

아차, 싶었다.

‘작업장이구나.’

새 스킬을 확인하고자 사냥터로 향했다.

그렇게 필드 깊숙이 발을 들이밀었을 즈음, 직감적으로 똥 밟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빌어먹을!’

마루는 입술을 짓씹으며 수풀로 몸을 숨겼다.

그러면서 상황을 되짚었다.

유독 눈에 띄지 않는 몬스터라거나, 간혹 보이던 몬스터들이 길을 안내하듯 동선을 고정하던 것 등등, 이래저래 걸리는 부분들이 많았다.

‘실수했네.’

보조직업을 비롯한 여러 요소들에 의해서 너무 흥분해버렸고, 그 때문에 시야가 좁아져버린 것이리라.

‘그냥 밥이나 먹으러 갈 걸.’

운동도 거른 결과가 이거라니.

‘하...’

빠르게 주변을 훑고 작업장의 주체를 살폈다.

[알록달록]

은신 스킬을 발동시킨 뒤 조심스레 자리도 옮겼다.

[피치]

눈치코치 탐지계의 형제 스킬로써, 촉각을 통한 정보수집이 가능했다. 발끝으로 타고 올라오는 진동으로 주변을 살피는 것이다.

그렇게 이동과 탐색을 반복하던 중, 직감을 확인시키는 광경들을 몇몇 목격할 수 있었다.

“꺼억! 사...살려...주....”

“이...개자식들아! 죽어! 죽...억!”

“으아아악!”

소수로 움직이는 몇몇 유저가 일단의 무리들에게 습격당하는 모습으로써, 마루는 습격자의 복장을 유심히 관찰하며 결론을 내렸다.

‘저 복면...원통에 갈퀴 문양, 탈곡기구나.’

하위 유저들을 사냥하는 범법 길드 중 하나였다.

‘골치 아프게 됐네.’

마루는 눈살을 찌푸리며 탈곡기 길드의 움직임을 살폈다. 저들 동선을 알아야지 작업장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고, 이를 파악해야 탈출 루트를 짜낼 수 있기 때문이다.

‘탈곡기에서 움직인 거면, 필드 전체일 수도 있겠네.’

하위 레벨 필드 대부분이 규모가 작은 만큼,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였다.

‘밥 먹고 운동이나 할 걸.’

다시금 후회가 밀려왔다. 괜스레 일정을 빼서 스텝이 꼬인 것 같았다.

‘젠장!’

다행이라 할 건, 아직 저들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벌름!

방심은 금물이라는 듯, 멋대로 콧구멍이 움직였다.

[코치]

눈치코치의 탐지 스킬이 경고성을 보냈고, 그 순간 다급히 수풀 바깥으로 몸을 굴렸다.

파파파팍!

그와 동시에 떨어진 화살 세례에 등허리가 서늘해졌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그 증거로 몇 발은 몸을 스치고 지나가지 않았던가.

‘마법인가.’

스친 자리로 진한 한기가 어리는 게 느껴졌다.

‘귀찮게 됐네.’

일반 화살과 달리 마법화살의 경우에는 방향 전환이 가능했다. 그 때문에 날아든 방향만으로 사냥꾼을 찾아내긴 어려웠다.

‘쯧!’

이런 저런 생각으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육신은 바쁘게 이동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이는 게임의 경험치보다 실전 헌터의 감각적 움직임이었다.

수풀을 튀어나오며 위장 스킬이 풀렸기에, 더더욱 바삐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이라 한다면, 앞서 잠시간의 휴식을 통해서 홀리십 스킬이 발동한 상태였고, 그로 인해 소소하게나마 버프가 발동 중이라는 점이었다.

[질주]

스킬들이 좀 더 위력을 얻었다.

파바박!

달리면서 생각했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끄아아악!”

“으아악!”

“이...개 자식들아!”

“사람 살려!”

멀리 들리는 비명성을 향해 뛰었다.

‘판을 깨야지!’

탈곡기의 여러 팀들이 모여서 만든 무대지만, 그 내부를 살펴보면 결국 개별적인 팀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대부분이 각자 사냥을 하는 것인데, 합을 맞추는 것도 소수 몇 팀 정도였다.

바로 그 부분이 공략 포인트로써, 마루는 이를 어그러트리며, 놈들의 동선을 어지럽게 꼬아 놓을 생각이었다.

등 뒤로 날아드는 화살을 요리조리 피하며 금세 목적지에 다다랐고, 한껏 스킬을 발동시키며 저돌적으로 뛰어올랐다.

[가속]

거기에 오늘 막 얻은 따끈따끈한 스킬을 얹었다.

[태세전환 - 터틀]

낮은 숙련도가 일말의 아쉬움이었다.

순간적으로 몸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지만, 스킬이 제대로 발동했단 증거이기에 당황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그 무게감만큼 가속도가 더해지면서, 그의 신형을 포탄처럼 만들었다.

몸을 둥글게 말며 정말 포탄이 되어 날아갔다.

퍼억!

그리고는 PK현장에 난입했다.

“이 새끼는 뭐야?”

수풀을 가로지른 탓에 발견이 늦은 것일까?

탈곡기의 범법유저들이 화들짝 놀라며 그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마루와 부딪힌 탈곡기의 유저는 발을 빼기 어려워 바삐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마루는 반격할 생각을 잊은 듯, 마치 허수아비마냥 이를 받아내기에 정신없었다.

“뭐야?”

“도시락인가?”

“누가 배달시켰냐?”

“하하하하!”

지켜보던 다른 탈곡기들 경계심이 일부 흐트러졌다. 당하고 있던 일반 유저들의 경우, 지원군이 아니라는 생각에 한층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마루의 돌발행동 때문일까?

뒤를 쫓던 얼음화살도 잠시 냉기를 죽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마루의 귓가를 울리는 알람.

[PRI 효과에 의해 스킬 위력이 상승합니다.]

기다렸다는 듯, 마루가 반격했다.

[철권] [경혈] [순살]

굵직한 한 방의 주먹질!

라쿠마의 아홉 번째 별장지기이며, 던전의 주인이기도 한 가르마를 샌드백으로 만들었던 일권이 아니던가.

게다가 PRI와 홀리십의 중첩 버프까지 더해졌다.

“꺼헉...”

버텨낼 재간이 없는 듯, 한 방에 경직되는 탈곡기의 요원 하나가 보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동력] [잔격]

순간적인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공격 속도를 극한까지 뽑아냈다. 뒤이어 영화의 한 장면마냥 마루의 양 손이 요란한 춤을 췄다.

타타타타타탁...

경계를 풀던 탈곡기의 다른 요원들이 깜짝 놀란 듯, 급히 자세를 반전하며 매섭게 달려들었지만, 이미 한 놈을 맘껏 물고 뜯은 마루는 미련 없이 몸을 돌리고 있었다.

와중에 놈들을 흥분시키기 위한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ㅗ]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주는 와중에, 36계가 빛을 발했다.

“What the f...!”

“이런, 썅!”

“저 새끼 뭐야?”

“잡아!”

광란의 밤은 그렇게 시작됐다.

< #12. 태세전환.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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