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환상의 동물. >
카잔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사냥감을 바라봐야만 했다.
‘난놈이네.’
마치 설계라도 하는 듯, 계획적으로 필드를 누비며 그들 탈곡기의 사냥터를 어지럽히고, 각 팀들의 동선을 어그러트리고 있었다.
눈치가 좋다고 해야 할까?
‘우리 측 루트를 꿰고 있어.’
대략적인 유추 정도겠지만, 어차피 판을 깨려는 의도를 지녔다면,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수준일 터였다.
‘골치 아프게 됐네.’
토투가와 파르마가 사냥감의 돌발행동에 놀란 듯, 그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지만 그들을 탓하지는 않았다.
‘나도 허락한 사냥감이니,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지.’
게다가 저들의 조합도 나쁘지 않았다.
[토투가의 버프, 파르마의 마법]
은밀함까지 갖춘 저격이었기에 실패할거란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건만, 그걸 피해내 버린 것이다.
‘설마, 저런 고수일 줄이야.’
본캐를 따로 둔 실력자이리라.
‘이 게임은 이래서 골치 아파!’
워낙 연차가 있는 게임이다 보니, 가끔 저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는 하위 유저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독 안에 든 쥐새끼지만.’
개별 팀으로 움직일 때 만났다면 모를까. 지금과 같은 작업장에서 만난 이상, 오히려 놓치는 게 더 어려웠다.
저처럼 활개를 치는 것도 잠시 뿐이리라.
**
마루는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면서도 이리저리 어지럽게 뛰어들며, 탈곡기의 작업장에 각종 훼방을 놓는 걸 잊지 않았다.
대개 그가 끼어들어 판을 어그러트릴 경우, 핀치에 몰려있던 하위 유저들은 만세를 부르며 이리저리 흩어져 도망가기 바빴다.
하지만 아주 간혹, 그가 만들어 놓은 틈을 이용해 반전을 꾀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반쯤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달려드는 통에, 탈곡기의 범법 유저들도 적잖이 당황하고는 했다.
그 같은 변화가 잦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꾸준히 드러나며 쌓여갔고, 이는 조금씩이지만 작업장 내부에 균열을 일으키더니, 의미 있는 반전을 모색하게 만들었다.
“탈곡기도 별 거 없는 거 아냐?”
“이 정도면 할 만 하겠는데?”
“어째, 함 해 봐?
“그럴까?”
남 일이라는 듯이 관망하던 무리들.
길드 마크를 달고서, 작업장에서 한 발 물러나 있던 하위 유저들, 그들이 하나 둘 자극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필드 전체를 아우르는 탈곡기의 영향력 때문인지, 마지막 한 걸음을 선뜻 내딛지 못했는데, 이런 망설임을 헤치며 기름을 붓는 이가 등장했다.
“저 처참한 광경이 보이십니까 여러분! 초보, 저렙, 쪼렙들의 영원한 파트너인 저 90탄. 더는 참지 않겠습니다. 정의를 위해 움직이겠습니다. 저스티스!”
하위 유저들에게 제법 인지도가 있는 스트리머, BJ 90탄이 칼을 빼 든 것이다.
1차 전직 이전, 무직자 캐릭터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였지만, 최근 방송했던 ‘암흑사제’ 캐릭터가 제법 특별했던 까닭일까?
[좀 더 보여주세요.]
[암흑사제 육성 팁이 간절합니다.]
[오랜만에 100렙 좀 찍어 보자.]
[2차 전직은 어떻게 하나요?]
등등의 요청에 의해 오랜만에 전직 이후까지 방송을 하기로 한 것인데, 가끔 발생하는 이벤트인 만큼 반응도 나쁘진 않았다.
당연하게도 팁을 전하되, 핵심까지 밝히지는 않았다.
‘암흑사제 길드에서 척살령 떨어지면 안 되니까.’
물론, 그 와중에도 신규 캐릭 육성을 놓치지 않고 있었는데, BJ 90탄 방송의 핵심은 결국 ‘초보 육성’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암흑사제는 부캐의 부캐 느낌으로 방송 중이었다.
그런 이유로 오랜만에 접속하는 암흑사제였다. 헌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해야 할까?
탈곡기의 작업장에 걸려버린 것이다.
길드 마크를 달고 있어서 저들의 눈을 피할 순 있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눈치를 봐가면서 사냥을 해야 했다.
-야! 지금까지 먹은 짬밥이 아깝다.
-쫄았냐?
-초보, 저렙, 쪼렙들의 영원한 파트너라며? 그 쪼렙들 뒈지는데 강 건너 불구경이네. 부채질도 하지 그래?
-우~우우~!
당연히 각종 비난이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적잖은 갈등을 격고 있던 찰나였는데, 뜻밖의 난입자로 인해 작업장에 균열이 발생 하는 것이 아닌가.
때는 이때가 싶은 마음으로 참전의사를 밝혔다.
“필사즉생필생즉사(必死則生必生則死)!”
시청자를 의식하며 멋진 대사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달려들었고,
빠바바바바박!
“으아아앙! 헬프! 헬프 미!”
피똥을 쌌다.
허나 그 모습은 충분한 자극제가 되었다.
“우와아아아아!”
“할 수 있다!”
“정의는 승리한다!”
“저스티스!”
머뭇거리던 이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며, 탈곡기의 작업장에 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개판 오분 전이었다.
‘됐다!’
마루는 생각 이상으로 화끈하게 변한 무대를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느 정도 의도한 것이긴 하나, 이 정도로 폭발적인 호응을 기대한 건 아니기에, 조금 벙벙한 감도 있었다.
‘적당히 분위기만 흐려도 OK였는데.’
아예 상황을 반전시켜버렸다.
‘소 뒷걸음에 쥐 잡은 격인 것 같긴 한데, 어쨌든 흐름은 넘어왔네.’
하지만 판이 뒤집어질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탈곡기니까.’
무려 한 개 필드를 컨트롤 할 정도의 전력이 몰려있었다.
고르게 퍼져있는 전력을 한데 모으고, 본격적으로 분란 진압을 시작한다면? 빠른 속도로 상황이 정리될 터였다.
‘판이 커졌지만 그래도 딱이네.’
처음부터 저들의 작업장을 어지럽히고, 그렇게 발생한 틈으로 빠져나가는 걸 목표로 잡고 있었다.
‘작업장 범위가 축소되면 샛길도 그만큼 넓어지겠지.’
게다가 그 너머에는 너른 광야가 펼쳐져 있을 터였다.
언뜻, 좁혀지는 공간만큼 촘촘한 경계망이 형성될 것 같지만, 필드 상황이 그렇지가 않았다.
“너희만 터냐? 우리도 턴다!”
“뒈져라 탈곡기 놈들!”
“으아아아아아!”
“저스티스!”
보다시피 필드는 난전 수준으로 어지러웠고, 그에 따른 균열이 곳곳에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이제 빠져나가는 일만 남았나?’
슬며시 뒤를 살폈다.
‘쉽진 않겠네.’
추격자가 상당했다.
“햐...잘만 하면 18대 1 무쌍 전설도 찍겠네.”
적당한 농으로 정신을 케어하며 열심히 발을 놀렸다.
버프 중첩의 영향 덕분인지, 아슬아슬하게 저들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일직선이 아닌 지그재그로 방향을 전환해가며 도주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오래지 않아 따라잡힐 확률이 높았다.
아무래도 휴식시간 없이 뛰어다닌 영향이 컸다.
‘홀리십 버프만 유지됐어도...’
그의 예측이 들어맞듯, 조금씩 거리가 가까워졌고, 종래에는 등 뒤로 직접적인 공세가 밀려들었다.
파앙!
신형을 튕겨 올리며 가까스로 피해낼 수 있었지만, 결국 그 한 번의 회피동작에 의해 덜미를 잡혀버렸다.
“포위! 포위!”
“에워싸!”
허공중에 몸을 비틀며 새로운 퇴로를 밟아보려 했지만, 앞서 몇 차례 비슷하게 당했던 까닭일까?
추격자들이 빠르게 방향을 선점하며 포위망을 구축했다.
“드디어 잡았다. 이 쥐새끼 같은 놈!”
“호로로니까. 펭귄 아니냐?”
“뭔 상관이야!”
“속옷까지 싹 털어주마.”
안광을 번뜩이는 스물 남짓의 범법유저들의 모습에 마루가 슬쩍 입술을 핥았다.
기이하게도 긴장은 되지 않았다.
“웃어?”
“저 자식 지금 웃는 거냐?”
자그마한 호로로 가면이 얼굴 상부만을 가리는 탓에, 슬며시 올라간 입 꼬리가 대놓고 드러나 버렸다.
그건 저들을 폭발시키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이 개자식이!”
“죽여!”
으르렁 거리며 달려드는 탈곡기의 유저들이 보였다.
‘후우우웁...’
마루는 숨을 고르며 자세를 잡았다.
쉼 없이 내달리는 와중에도 수시로 공격을 받아내야 했고, 자잘한 전투 역시 거쳐야만 했다.
겉만 멀쩡할 뿐, 속은 알게 모르게 제법 상해있는 상태였다.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쁘지도 않았다.
‘HP가...30퍼인가.’
입 꼬리가 올라갔던 이유?
[칭호 ‘도전자’가 발동합니다.]
[모든 스탯이 5% 증가합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뜨는 알람이 그 이유였다.
‘이걸로 다시 2중첩인가.’
PRI나 홀리십처럼 스킬 능력치 5%상승이 아닌, 전체 스탯의 5%상승이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
‘기본 움직임이 달라진다는 뜻이지!’
파바바박!
좀 더 빠르고 좀 더 유연해졌으며 좀 더 위력적으로 변했다.
갑자기 달라진 마루의 몸놀림에, 성난 들소처럼 달려들던 탈곡기의 유저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퍼버버벅!
“꺼억!”
“억!”
작지만 선명한 그 차이가 저들의 호흡을 뒤집었다.
시기적절하게 내지른 마루의 반격에 당한 이들도 있지만, 제풀에 꺾여 나가떨어진 이들도 적지 않았다.
‘몰아칠 때는 한 번에!’
[태세전환 - 터틀]
스킬 특성상 몸이 무거워지는 약점이 있지만, 도전자 칭호의 지원과 벙찐 탈곡기의 정신상태가 맞물리며, 적절한 속도감을 새겨주었다.
‘크게 한 방!’
목표물을 잡고 뛰었다.
[철권] [순살]
2중첩의 버프에 무게감까지 실린 일권을 급소에 찔러 넣었다.
빠악!
경직도 없었다.
“헉!”
“뭐야?”
“설마, 로그아웃?”
“뒈졌다고?”
“한 방에?”
터져 나오는 경악성 속에 그들의 심경이 가득 묻어나왔다. 마루는 그 틈을 활용해 재차 자세를 잡은 뒤 스킬을 내질렀다.
뻐걱!
이번에도 한 방이었다.
“미친!”
“저 새끼 뭐야?”
기겁하는 모양새가 만족스러웠다.
‘치명타가 제대로 터졌네.’
복장을 살펴 직업을 유추한 뒤, 무리들 중 가장 취약해 보이는 이들만 노린 게 핵심이었다.
순살 스킬이 열일해 준 것 역시 포인트였다.
[급소검색 및 치명타 확률 증가.]
이를 기대하며 세 번째 일격필살을 노렸다.
“크윽...”
아쉽게도 이번에는 경직 정도로 만족해야만 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긴 했다.
“호로로!”
그 즈음 포위망을 구축하던 이들 사이에 작은 소요가 일었다.
“저거 호로로 아닌가?”
“갑자기 웬 헛소리야?”
“호로로?”
“설마...찐이라고?”
그들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공통된 기억 하나.
[생태 파괴종 호로로]
비슷한 가면을 쓰고 다니는 여러 가짜들이 아닌, 레이버 검색어 순위까지 올랐던 진짜배기 호로로를 상기한 것이다.
‘만약, 진짜라면?’
당시로부터 적잖은 시일이 흐른 상태였다.
‘작정하고 레벨을 올렸다면?’
‘70? 어쩌면 80?’
‘아...쫄린다!’
무거운 침묵이 그들 사이를 맴돌았고, 그 이상으로 숨 막히는 긴장감이 전장을 휘감았다.
그 사이에서 마루가 손짓했다.
“드루와!”
가면 아래, 섬뜩한 미소가 보였다.
**
“와...씨! 지렸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90탄은 포션을 쭈쭈바처럼 쪽쪽 빨며, 저 멀리 보이는 전장의 하이라이트를 넋 놓고 감상했다.
이는 그뿐만이 아니라, 함께하는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장면의 연속인지라, 쉬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미쳤네. 원샷 원킬인가?
-한방맨이네.
-탈곡기가 탈탈 털리는 꼴을 볼 줄이야.
-와...애들 쫄았다. 궁딩이 뺀다.
오히려 눈을 뗐다가는 욕먹을 분위기였다.
-전설의 18대 1을 직관하게 되다니.
-18놈들의 최후!
-직관은 아니지 않나?
-셔럽!
-것보다 찐 호로로인 것 같은데.
-찐이라고?
-찐이겠지. 18놈들 조지는 거 봐라.
-찐 맞네.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던 90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거, 레전드다!’
오랜만에 대박이 터질 거란 느낌이 왔다. 머릿속은 이미 촬영과 편집에 대한 구상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영상 퀄리티를 위해 거리도 좁혔다.
‘날 새고 작업이다!’
그리고,
1. 환상의 동물 펭기린
그의 영상이 검색어를 잡아먹었다.
< #13. 환상의 동물.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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