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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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만남. >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골 때리네!”

마루는 레이버 검색어를 보며 고개를 저어버렸다.

1. 환상의 동물 펭기린

3. 생태 파괴종 호로로

5. 18대 1의 전설

Top5를 장악하고 있는 목록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이제 좀 잠잠해지나 싶었더니만.’

시간이 흘러, 지난 유명세에서 벗어날 타이밍에, 새로운 화젯거리가 그를 띄워버린 것이다.

헛웃음만 나왔다.

“하! 초상권 침해로 신고할 수도 없고.”

참으로 골 때리는 부분이었다. 영상 속에는 분명 그가 등장하지만, 이를 주장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이건 가상현실이기 때문이다.

게임일 뿐이었다.

과거 PC게임으로 치면?

[스샷에 캐릭 좀 찍혔다고 신고해?]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아이디가 노출된 것도 아니잖아.]

입맛만 다실뿐이었다.

[게다가 가면까지 썼네?]

더욱 입이 짧아졌다.

‘진짜 얼굴도 아니고.’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본사에 항의하면 영상을 내릴 순 있었다.

허나, 그럴 경우 모자이크를 씌우고 다른 루트로 올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되면 안 좋은 여론이 따를 수도 있었다.

[아주 스타 나셨네.]

[스샷 좀 찍혔다고 지랄을 한다.]

PC게임을 언급하며 뿔내는 이들이 나올 터, 이럴 땐 차라리 상황을 뒤집어서 보는 게 나았다.

‘항의하기 보단, 지분을 주장하는 게 이득이지.’

우스운 건, 이 경우에는 ‘초상권’이 제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다. 이를 내세우면 영상 수입 일부를 취할 수 있게 될 터였다.

[검색어 1위]

돈 냄새가 풀풀 풍겼다.

“피할 수 없으면, 받아야지.”

영상의 파워는 나머지 순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6. BJ 90탄

10. 탈곡기 역관광

18. 몽크의 재발견

마루의 시선이 6위에 고정됐다.

“90탄...으득!”

돈줄을 보는 눈빛이 곱지 않았다.

‘제대로 뜯어주마!’

당시 사건의 현장에는 수많은 유저들이 있었다.

그 때문에 관련 영상도 상당했는데, 전문 BJ는 90탄 한 명뿐이다 보니, 자연히 그의 영상이 인기 순위에 오른 것이다.

일반 유저들의 촬영 영상도 화질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전문 스트리머들의 경우, 과금을 통해 특수 촬영 아이템을 구입하기 때문에, 화질 및 퀄리티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 영상은 마루도 감상했었다.

[환상의 동물 펭기린 - 18대 1의 전설]

제목 그리고 부제까지, 전부 순위권에 오를 만큼 영상은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햐...무슨 영화처럼 편집해놨네.”

덕분에 더욱 화제가 된 것이기도 했다.

나름대로 이름값이 있는 BJ가 혼신의 힘을 다해 제작한 영상이었다. 인기가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펭귄이 이렇게 해로운 동물입니다.

-찐 호로로겠지?

-짝퉁이면 저 액션은 말이 안 되지.

-그런데 찐이면 지금쯤 70레벨 중반이나 후반 아니겠냐? 바바라 필드는 60레벨 놀이터인데, 굳이 저길 갈 이유가 있나?

-탈곡기 놈들 뚜까패러 갔다는 설이 있던데.

-담당 1찐?

-탈 ‘곡기’ 해버렸누.

원치 않는 유명세가 짜증나긴 하지만, 각종 커뮤니티 반응을 살피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상황과는 별개로 이런저런 내용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자신과 관련된 까닭에 더 흥미로운 느낌도 있었다.

물론, 진짜 이유가 따로 있긴 했다.

“여깄네.”

-저거 혹시 지난번에 그 몽크 아닌가? 2회차라던.

-90탄 방송에 몽크 떴다고, 죄다 2회차냐?

-생각 좀 하자.

-족 잡고 반성해라.

-그나저나 몽크가 저렇게까지 강할 수 있나?

-돌연변이의 등장!

-레알 몽크의 재발견이네.

-이렇게 비주류 3대장의 서열에 변화가 생기나.

댓글 반응들을 꾸준히 살핀 결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럭저럭 넘어갔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검색어 순위권 끝자락에 오른 ‘몽크의 재발견’ 때문이었다.

지난 전투에서 호로로가 몽크라는 게 발각되었는데, 이는 전용스킬인 ‘태세전환’이 지닌 특징의 여파였다.

[태세전환 - 터틀]

추가 설명을 살펴보면,

[녹색의 아우라가 발생합니다.]

이 같은 내용이 더해지는데, 이는 비단 터틀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린 터틀, 블루 버드, 레드 울프, 골드 스킨]

이렇게 정의할 수 있었다.

물론, PP에는 다양한 직업 및 스킬이 존재하고, 녹색의 아우라가 터틀 스킬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녹색 아우라를 휘감은 채 맨주먹을 휘두른다?

-빼박 몽크네.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리되면 ‘장관장’이 재차 조명될지도 몰랐다.

‘하필이면 이번에도 90열이 방송이네.’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에 긴장하며 반응들을 살폈다.

-왜 터틀 밖에 안 썼대?

-아직 울프는 안 배운 건가?

-저딴 놈들 터틀만으로 충분하단 거겠지.

-제대로 엿 먹였네.

-버드는?

-그건 전투에선 의미 없지 않음?

다행이 그와 관련된 내용은 별로 없었다. 앞서의 내용도 한참을 뒤진 후에야 찾은 것이었다.

‘일단, 다행인가.’

이래저래 탈곡기 입장에선 열 받는 내용만 가득하긴 했다.

“그래도 한동안 몸 좀 사려야겠네.”

호로로가 재차 유명세를 탔지만, 이건 가면을 바꾸거나 적절한 시기에 벗어버리면 될 일이었다.

최선과 차선은 일단 보류였다.

[최선, 캐릭변형 : 이틀~일주일간 대기]

[차선, 얼굴성형 : 하루 동안 사냥금지]

현실에서 장기 파견을 나간다면 캐릭변형을 할 것이고, 마을에서 장기 퀘스트를 진행한다면 얼굴성형을 선택하겠지만, 아직까진 그런 일정이 없었다.

“당장은 가면을 바꾸는 게 베스튼가.”

따로 준비해 놓은 가면을 떠올렸다.

‘가면 바꾼다고 끝은 아니지만.’

루띠처럼 남다른 눈썰미를 지닌 경우도 염두에 둬야 했다.

‘그땐 정말로 캐릭 변형이지.’

일단은 버틸 때까지 버텨 볼 생각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은신계 스킬이나 좀 올려두지 뭐.”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뒤 다시금 커뮤니티를 살피는데, 지금부터는 정말 즐기기 위한 댓글 구경이었다.

**

던전 승급 때문에 몰려왔던 헌터 대부분이 떠나갔다.

여전히 이번 사태에 대해 알아낸 건 없었다. 바로 그 부분이 던전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키웠고, 기존 일상에 균열이 갈 거란 결론과 함께, 황급히 자국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꿋꿋이 남아 ‘관광’을 하는 ‘랭커’가 한 명 있었다.

[러시아의 성난뿔곰 이반나]

바로 그녀였다.

정확한 스케줄은 알 수 없었지만, 수시로 찍히는 먹방 사진으로 인해, 이참에 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게 대중들의 결론이었다.

-굳이 한국에서? 휴가를?

-뭘 모르는 소리하네. 하! 이젠 설명하기도 귀찮다.

-누가 등판 점.

-우리 곰탱이 언니 대학생활 한국에서 함.

-흐...K팝 쫓아서 왔다는 게 매력 포인트지.

-몬스터 때문에 판이 뒤집어져서 그렇지. 예전에는 K팝도 한 가락 했다더라.

-지금도 알아줌.

-그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이돌 그룹도 있었음.

-건너건너 건널목 썰로는 그 그룹 쫓아서 한국 왔다고 하던데.

-쨌든, 베어 누님의 한국사랑은 유명하지.

-곰탱이 언니 우리랑 같이 살아요~!

이반나는 자신을 향한 여러 반응들을 살피며 가볍게 실소했다.

“딱 원하던 만큼의 반응인가.”

마지막으로 남은 랭커라는 점 때문인지, 수많은 관심이 그녀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어그로는 제대로 끈 것 같네.”

옛 추억으로 인해 한국에 적잖은 정을 뒀다지만, 이곳 헌터 업계에 있어 그녀는 결국 타국의 랭커일 뿐이었다.

모두 빠져나가는데 여전히 남아있는 랭커란?

대놓고 표현만 못할 뿐, 여러모로 거슬릴 수밖에 없을 터였다.

‘휴가도 틀린 이야긴 아니지만...’

실질적인 목적 하나가 떠올랐다.

‘지금쯤이면 들어왔으려나.’

그녀의 시선이 잠시 저 먼 하늘로 향했다.

“인천공항이 이쪽인가?”

반대방향이었다.

**

각종 언론매체를 비롯한 여러 시선들이 이반나에게 향해있는 시점, 인천국제공항으로 조용히 들어오는 랭커가 한 명 있었다.

[성녀 레아!]

랭커라는 존재가 이목을 끄는 건 당연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은 관심을 집중시키는 존재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성녀였다.

온다 안 온다 말이 많았지만, 결국 안 온다는 결론과 함께, 관련한 화젯거리가 끝을 맺은 시점이 아니던가.

정말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이었다.

그 때문일까?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스킬 : 빛의 가호]

사실, 이는 빛의 굴절을 통한 은신 덕분이었다.

단순히 시각만 속이는 것이다 보니, 타인과의 접촉을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랭커의 몸놀림으로 그 정도는 충분히 극복 가능했다.

게다가 나름 위장도 하고 있었다.

무사 비행을 할 만큼 완성도 높은 위장으로써, 이 모습으로 당당히 교황청을 벗어나기도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녀가 주변을 둘러봤다.

‘공항의 감시망이 별로 두텁진 않네.’

굳이 스킬까지 쓸 필요는 없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반나가 잘 해주고 있는 건가.’

랭커 한 명이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니, 자연히 그쪽으로 이목이 쏠린 것이리라.

게다가 던전 승급으로 인해, 기존 던전들의 경계망도 재점검 중일 터, 이래저래 감시망이 허술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항 밖으로 나섰다.

“여기가 한국...”

첫 방문하는 나라인 만큼, 이를 충분히 만끽하며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교황마저 속이고 움직이는 비공식 방문이다 보니, 즐길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녀를 대신하고 있을 ‘그림자’를 떠올렸다.

‘레베카가 언제 들킬지 모르니까.’

최대한 빠르게 볼 일만 마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스킬 : 빛의 가호]

그러며 재차 스킬을 발동했다.

시야 한편에 빛의 물결이 요동치며 그녀가 가야 할 방향을 지시해줬다.

‘저쪽인가.’

빛의 굴절 속에서 바람이 된 그녀가 물결을 쫓아 움직였다.

**

이미 한 차례 경험했기 때문일까?

“야~호로로다.”

“안녕 친구들~안녕 친구들~!”

“모두 함께 놀자.”

“호로호로~!”

“이런, 호로!”

필드를 누비는 호로로들을 보면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을 맞이한 바 있기에, 충분히 짐작하고 있던 광경이었다.

‘검색어 1위까지 했으니까.’

반기는 풍경이기도 했다.

‘굳잡!’

탈곡기를 건드린 참이건만, 그런 와중에 홀로 호로로 가면을 쓰고 돌아다닌다?

‘뒈지기 딱 좋은 사이즈지.’

유명세를 쫓아 움직이는 저 많은 호로로들을 보라, 저들도 우르르 뭉쳐 다니지 않는가. 저 틈에 끼는 걸로도 몸을 숨기기에 충분할 터였다.

거기에 달가운 소식 하나 더.

[호로로는 80레벨대 유저다!]

그런 소문까지 도는 탓에, 이곳 하급 필드는 탈곡기의 감시망에서 제법 자유로울 수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

설마, 그가 문제의 ‘바바라 필드’에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할 터였다.

탈곡기의 요원들은 중급 필드에 집중적으로 자리를 잡고, 매서운 안광을 번뜩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오늘부터는 신상 가면을 뒤집어썼다.

호로로가 화제가 되긴 했지만, 전부 펭귄 가면만 쓰고 다니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그의 신상 가면이 어색할 이유도 없었다.

‘안전제일!’

몸조심을 되새기며 슬며시 저들 무리에 발을 담갔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다가...’

적당한 무장으로 위장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검사 계열로.’

대표적으로 허리춤에 걸린 검을 예로 들 수 있었는데, 스킬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기본 검술 스킬은 필수!’

박투스킬과 조합하면 [손날검] 계열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이전 캐릭터도 검을 든 적이 있었고, 현실에서도 검을 잡아본 경험이 꽤 됐다.

이래저래 무장이 어색하지 않았다.

물론, 전용스킬에 비한다면야 위력이 떨어지겠지만, 이는 압도적인 스탯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한동안 좀 빡세긴 하겠네.’

완벽 위장을 위한 밑밥도 깔았다.

“파티 구합니다~!”

“파티 구해요~!”

솔플은 잠시 접어둘 생각이었다.

검사계열로 ‘위장’해야 하는 만큼, 본 직업은 밝힐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면접 허들이 낮은, ‘비정석 파티’를 중점적으로 돌아다니며 면접을 봐야 했다.

‘2차 전직 전까진, 몸 좀 사려야지.’

그 시점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몽크 커뮤니티!]

그곳의 가입조건을 충족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만 들어가면 탈곡기 놈들 쯤이야.’

이를 위해선 하루 빨리 레벨을 올릴 필요가 있었는데, 의외의 방향에서 관련한 해법이 그를 찾아왔다.

스킬 숙련도를 위해 사원 ‘가시밭길’에 들렀을 때였다.

“형님~!”

생각지도 못한 만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켄?”

마루가 깜짝 놀란 얼굴로 전방을 바라보니, 한 눈에 봐도 미형으로 보이는 사내가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네가...어떻게?”

사내의 아이디는 ‘다크라켄’으로써, 몽크들의 비밀 커뮤니티를 통해 맺어진 인연이었다.

“몽크-로스(Monk-Ross)!”

대뜸 이상한 외침을 내뱉는 다크라켄의 모습에 마루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놈의 암어도 좀 바꿔야 하는데.”

이에 다크라켄이 어깨를 으쓱였다.

“흐흐! 화랑 담배 수준의 전통을 어떻게 바꾸겠수.

그러면서 다크라켄이 팔을 쭈욱 뻗어왔다.

“몽-크로스!”

그 시원한 외침과 강렬한 눈빛 앞에, 마루가 한숨을 푸욱 내쉬며 팔을 뻗었다.

“몽...크로스.”

두 사내의 팔이 교차했다.

< #14. 만남.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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