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프렌차이즈. >
어떻게 찾아낸 걸까?
마루는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고생했다.”
“헤헤!”
“이건 몰래 먹어야 한다.”
“넵. 감사합니다~!”
사원의 꼬마 동자 하나가 다크라켄에게 꼬물꼬물 다가오더니, 고기만두를 건네받는 것이 아닌가.
마루가 사원에 첫 방문하던 당시에 그의 뒤를 쫓으며 관찰하던 아이였다.
물론, 이런 부분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당장 눈앞의 상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대략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얼추 견적 나오네.’
짐작하건대 사원에서 일하는 아이에게 만두하고 용돈 좀 쥐어주면서, 그처럼 생긴 사람이 나타나면 연락하라며 인상착의를 뿌렸으리라.
‘풀뿌리만 먹는 애들이니.’
이곳 사원 내부에선 가면과 같은 위장물품을 사용할 수 없기에, 그를 찾아내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 말고 다른 구역 사원에도 작업을 쳐 놨겠네.’
다크라켄은 3차 전직도 끝낸 상태이니, 사원에서의 발언권도 낮지 않았을 터, 이곳의 아이들과 말을 트는데 여러모로 유리한 면이 있었다.
그렇게 상황유추를 끝낼 즈음, 다크라켄이 아이와 거래를 마무리하며 다가왔다.
“갑자기 웬 부캐요?”
이어지는 질문에 마루가 쓰게 웃었다.
“QM오류.”
“아...”
한 마디만으로도 충분한 답변이 됐다.
잠시 안타까운 눈빛으로 마루를 바라보던 다크라켄이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재차 물었다.
“그러면...그거, 부캐가 아니라...”
“본캐야.”
“아...”
‘설마 설마 했는데.’
친구 목록에서 관장공장공장장 아이디가 사라져서,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걸 진실로 마주하니 충격이 상당했다.
‘맙소사!’
동공에만 머물던 감정의 파문이 눈가를 타고 넘어와 얼굴 전체로 번져버렸고, 이를 본 마루의 미간이 슬쩍 구겨졌다.
“그렇게 짠하게 볼 거 없어. 이참에 우리 커뮤에서만 오갔던 꿀팁들을 전부 활용하는 중이니까.”
“아...그래서 캐릭터 복구 신청 안 하고, 순수 2회 차로 넘어온 거요?”
“뭐, 대충 그렇지.”
진실은 전혀 달랐지만 오해하게 내버려뒀다. 오히려 이를 좀 더 가속화 시키고자 조미료까지 첨가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그냥 취미로 키우는 거라서 굳이 아쉬울 건 없더라고. 그래도 그간 들인 공이 있어서 살짝 빡치기도 했었는데, 누굴 탓하겠냐. 늑장부리다 기기 안 바꿔서 오류 먹은 건데. 내 똥은 내가 치워야지. 에휴!”
안면 가득 안쓰러움을 드러내던 다크라켄이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그래도 커뮤니티 팁을 전부 활용했을 테니까. 육성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했겠네.”
“어. 너도 봤잖아. 그 90열이 영상. 덕분에 전직 전에 ‘성호’ 스킬 얻었다니까. 그걸로 고스트 필드에서 제대로 꿀 빨았다.”
“햐~! 성호 스킬 하나면 고스트 필드는 압살이지. 나도 무직 때 그런 스킬 하나 있었으면 개꿀이었을 텐데.”
“커뮤 팁이 하나같이 주옥같긴 하지.”
“그러면 뭐해.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게 없는데,”
“커뮤 가입 조건이 2차 전직부터니까.”
비주류 3대장답게 1차 전직 구간의 낙오자가 상당했고, 자연히 2차 전직이 커뮤니티 입성 조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팁의 내용 대부분이 1차 전직 구간에 몰려있었기에, 실제 활용도는 0%에 가까운 노하우였다.
“원래라면 커뮤에서 고이다 못해 썩어버릴 팁이지만, 몽크 2회 차가 되고 보니까 이만한 꿀팁이 없더라. 흐...”
거기까지 이야기하던 마루가 의문점 하나를 끄집어냈다.
“그런데, 너 혹시 여기서 나 기다린 거냐?”
“당연하지. 형님과 저 사이 아니요.”
“...미쳤구나.”
“3차 전직도 끝나서 할 일도 없고 시간도 남아돌아서, 적당히 시간이나 때운다는 생각으로 기다린 거요.”
몽크의 사원은 그 수가 워낙 적어서, 이 근방에 있는 사원은 여기밖에 없었다. 기다리다보면 결국 만나겠거니 하며 자리를 지킨 것이다.
사원 내부의 고행길을 돌며 시간을 때웠다.
“애들한테 용돈 좀 주고, 방문객 올 때마다 알리라고 했수.”
마루가 도착하기 무섭게 찾아온 것도 그 덕분이었다.
“흐...비주류 3대장 포지션이 대단하긴 해. 어째 찾아오는 사람이 뜸해서, 따로 수행하는데 방해되지도 않더라고.”
“하여간에 이놈의 몽크 종자들은.”
고개를 젓는 마루를 향해 다크라켄이 물었다.
“형님, 다시 커뮤로 들어오실 거요?”
“그래야지.”
소소한 꿀팁 외에도 커뮤니티는 일종의 길드 역할도 포함하고 있어서, 몽크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창구처럼 여겨지고는 했다.
비주류라 괄시당하고 그 수도 많지 않다 보니, 커뮤니티를 통해 자연스레 뭉치고 단합되며 길드화가 된 것이다.
따로 길드를 세우지만 않았을 뿐이다.
“2차 전직하면 바로 가입해야지.”
마루의 이야기에 다크라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뒤이어 품 안에서 머리띠를 하나 꺼냈다.
그건 마치 서유기의 ‘긴고아’를 연상시키는 듯한 외형을 지녔는데, 이를 본 마루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너...그거 설마, 증표냐?”
“내가 법관하고 담판을 짓고 받아왔수.”
법관이란 몽크 커뮤니티의 관리자 개념이었다.
“그냥반이 형님 부캐인 거 확실시 되면 주라고 했는데, 부캐나 순수 2회 차나, 솔직히 다를 건 없는 것 같네.”
만약 자신이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또 키울 자신은 없지.’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2차 전직보다 더 희귀하고 애정도도 높은 거니까. 이거 줘도 이상할 게 없잖우. 솔까 다른 행자들도 인정할 거요.”
몽크들끼린 서로를 행자 혹은 도사라 부르고는 했다.
“굳잡! 잘 했다!”
마루는 기분 좋게 이를 받아들었다.
‘QM오류 때문에 공장장이 캐릭터한테 있던 증표도 같이 사라져서 난감했는데.’
그가 이렇게 반기는 건, 바로 이 증표를 통해야만 몽크의 커뮤니티 서버에 접속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출입증이라 할 수 있었다.
“이야~! 진짜 나이스다. 타이밍 굳이야. 기억이 가물가물한 팁들도 많았는데, 이걸로 들어가서 검색하면 되겠다.”
거기다가 한 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법관이 인정했다는 건, 이제 나도 커뮤니티의 일원이란 소리지!’
말인 즉,
‘흐흐흐흐...나도 이제 뒷배가 있다 이거야.’
탈곡기?
‘더 이상 안 무섭다!’
물론, 그렇다고 나댔다간 아웃이긴 했다.
‘어쨌든 쭈구리 시절은 끝이다.’
음흉하게 미소 짓는 그의 모습에 다크라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변태처럼 웃지 좀 마쇼.”
“......”
마루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
먼 거리를 날아왔지만, 큰 목적을 지닌 건 아니었다.
‘그냥...얼굴만 확인하고 갈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하며 상황이 꼬여버렸다.
“설마, 집 밖으로 한발자국도 안 나올 줄이야.”
레아는 멀리 보이는 목표물의 거처를 바라본 뒤, 주변을 잠시 살폈다.
‘게다가 감시망까지.’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제법 뛰어난 요원들이 목표물의 거처를 감시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여러모로 뜻밖이었다.
“이제 겨우 D급 A형 헌터일 뿐인데.”
목표물의 잠재력은 그녀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당장의 능력은 별 볼일 없는 하급 헌터 정도라고 알고 있었다.
‘분명히 그럴 텐데...’
헌데, 저 감시망은 무엇인가?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재차 되짚어봤다.
[정마루 - D급 A형 헌터.]
[공식 13년 비공식 15년의 경력자.]
[각성 경력은 반년도 안 된 초심자.]
[늦깎이 각성자. 발전 가능성 낮다고 알려짐.]
[특이사항 : 상급 총기류 스킬 보유자로 예상.]
가족관계 및 소소한 기본정보 정도가 더 있었지만, 일단 중요한 부분은 이 정도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만한 감시망을 끌어들일 이유가 없어.’
그녀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그를 찾을 이유가 없었다.
수는 적었지만 하나같이 수준급 요원들로 이뤄져 있었고, 그 덕분에 촘촘하진 않지만 새는 곳은 없어보였다.
어느새 사흘이었다.
‘너무 늦으면 레베카가 들킬 수도 있는데.’
성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을 그녀의 그림자를 떠올렸다.
짧은 갈등, 그리고 선택.
‘딱 하루만 더 기다려 보자.’
그래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직접 보러 들어가야지.’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
생각지도 못한 만남으로 인해, 몽크 커뮤니티에 발을 담글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오랜만에 하는 커뮤라서 그런지, 너무 빠져버렸네.”
외출과 호출을 전부 자제하고 무시하며 커뮤니티 탐색에 미쳐버린 것이다.
“그 덕분에 육성 팁은 제대로 뽑아냈네.”
잊어버렸거나 어설피 떠올리던 팁들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고, 거기에 더해 모르고 있던 노하우까지 새롭게 수확하며, 기존 육성 루트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커뮤에 빠져버린 것이다.
“역시 기억에 의존하는 것보단, 이렇게 직접 팁을 보면서 짜는 게 확실하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 좋게 게임을 나왔다.
“로그-아웃!”
그리고 깜짝 놀라야만 했다.
“누구...세요?”
웬 예쁘장한 미녀, 그것도 금발의 백인 미녀가 그의 방 안에, 바로 눈앞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헌데, 기이할 만큼 낯설지가 않았다.
“누굴까요?”
금발 여인의 입이 열리고, 너무도 유창한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거기에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번역기를 썼나?’
말도 안 되는 기술들이 쏟아지는 시대다 보니, 실시간 번역기 정도는 한참 전에 개발되어 상용화된 상태였다.
PP에서 최초로 발표된 기술이기도 했다.
초기 버전은 기계음으로 고정됐지만 시간이 흐르고 발전을 거듭하면서, 사용자 본인의 음성 및 패턴을 그대로 따라하는 게 가능해졌다.
‘입 안쪽에 넣고 사용하는 건가? 비싼 거 쓰네.’
그렇게 잡념으로 머리를 환기시키며 정신줄을 다잡고 나자, 눈앞의 여인이 누구인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레아 공주?”
낯설지 않은 게 당연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 중 한명인 성녀이기 때문이었다.
‘아차!’
마루는 뒤늦게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공주라고 부르면 안 되는데.’
헌터 바닥에서 제법 굴러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성녀는 가짜다.]
바티칸이 계획하고 만든 홍보모델이었다.
그렇다고 프렌차이즈 스타라거나 얼굴마담이라 놀릴 수 없으니, 공주라고 부르며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것이다.
물론, 좋은 의미도 있었다.
순수하게 그녀의 외모나 위치 등을 보며, 한 국가의 공주와 같다면서 그리 부르는 건데, 마루의 경우도 이쪽에 가까웠다.
‘실수했네.’
급히 레아의 표정을 살피는데, 의외로 그녀의 표정은 밝아보였다. 사과할지 말지 고민하는 사이,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상하네요. 평소라면 그렇게 불리는 게 싫었을 텐데. 당신에게 듣는 건, 어째선지 불쾌하지 않네요.”
그러며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허윽...’
심쿵한다고 해야 할까?
성녀 레아는 세계적인 아이돌 같은 포지션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몸을 떨어버리고 말았다.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정신줄을 다잡은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성녀님이십니까?”
레아가 웃으며 되물었다.
“가짜 같아요?”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한 때는 핸드폰 배경화면을 차지했던 얼굴이지 않던가. 몰라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만큼, 확인이 필요했다.
“아얏!”
제 볼을 꼬집어 짠 뒤에야 이게 꿈이 아니고, 눈앞의 여인이 진짜 성녀라는 걸 인정할 수 있었다.
환각 계열의 스킬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하지 않았다.
‘결계석이 멀쩡하니까.’
저 한편에 돌하르방으로 위장시켜놓은 물건을 흘낏 쳐다보는 걸로 충분했다. 만약 환각이었다면 색깔이 붉게 변했을 것이다.
자리고비를 일상으로 삼던 그가 유일하게 큰 투자를 했던 물건. 그게 바로 저 돌하르방 형태의 ‘결계석’이었다.
“닮은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그녀의 물음에 마루가 잠시 주춤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요?”
마루가 잠시 제 피부를 쓸었다.
‘이 분위기, 아우라!’
어느새 그의 방 전체를 감싸 안고 있는 신성하고도 상쾌한 공기가 느껴졌다. 스탯 상승에 따라 나날이 예리해지는 오감이 외쳐댔다.
[진짜다!]
때문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프렌차이즈 스타라고?’
얼굴 마담이라 치기에는 너무 성스럽고 또 너무 고귀한 존재감이지 않은가.
“만약, 당신이 닮은 사람이라면...바티칸에 있는 여인이야 말로 가짜일 겁니다. 오히려 그쪽이 당신을 닮은 거겠죠.”
다시금 펼쳐지는 싱그러운 미소.
“감미로운 소리를 할 줄 아시는군요.”
레아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불법 침입자한테 너무 친절하신 거 아닌가요?”
이에 마루도 웃으며 답했다.
“성녀님 이시니까요.”
정말로 성녀라면?
‘몸 사려야지.’
친철? 그보다는 공손에 가까웠다.
‘랭커에게 이를 드러내라고?’
미친 짓이었다.
‘그러다 강냉이 털릴라.’
쭉 짜지기 싫으면?
열심히,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활짝 웃었다.
< #15. 프렌차이즈. > 끝
ⓒ 주작(朱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