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레아. >
멀찍이서 확인만 할 생각이었다.
그가 ‘진짜’가 맞는지.
하지만 얼굴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 먼 거리를 날아와서 얼굴만 보고 간다고?’
그저 ‘확인’만 하고 갈 생각이었다고?
‘멍청한 생각이었어.’
VR기기를 쓰고 침대에 누운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그가 일어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렇게 그와 마주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레아 아레나. 바티칸의 프렌차이즈 스타랍니다.”
참 당혹스러운 자기소개와 함께 레아가 손을 내밀고, 마루는 떨떠름한 미소와 함께 이를 맞잡았다.
“D급 A형 헌터 정마루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성녀님께서 저를 찾아오신 이유, 여쭤도 되겠습니까?”
“글쎄요...”
레아는 말꼬리를 늘이며 마루를 관찰하듯 바라봤다.
“사실, 얼굴만 보고 가려 했어요.”
진짜가 맞는지 확인만 할 생각이었다.
“제 존재의미를 찾아준 이를 두 눈에 담고 싶었거든요.”
이해할 수 없는 소리에 마루가 의문을 제기하듯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이를 못 본 것인지 그녀는 흔들림 없는 태도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 당신에 대해 알게 된 건 최근이에요. 그 전까지는 흔적만을 더듬는 정도였죠.”
그러면서 하나의 단어를 입에 올린다.
“백두산 마수지대.”
순간 마루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기적과 조우한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꿀꺽...
저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올 봄에 그곳에 있었죠?”
그녀가 말했다.
“저도 거기 갔었어요.”
눈웃음을 치며,
“누군가를 만나러.”
콧소리를 내며,
“그게 당신이에요.”
그녀가 웃었다.
살짝 혼미해질 것 같은 풍경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팀이 백두산 마수지대를 나온 뒤에 성녀가 방문했었다는 소식이 있었지.’
한 때, 허파is토스도 이와 관련해서 묻지 않았던가.
‘그게 나를 보려고 온 거였다고?’
놀라는 와중에도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저에 대해서 안 건 최근 아닙니까?”
때문에 물었고, 답변은 바로 이어졌다.
“백두산은 ‘누군가’를 찾으러 간 거고, 거기서 발견한 ‘누군가의 흔적’을 통해, 최근에서야 겨우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죠.”
“그게...저입니까?”
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좀 더 정확히는, 당신이 품고 있는 ‘무언가’죠.”
떠오르는 물건 하나.
‘오염된 여의주!’
재차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흔적만 남아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겐 뛰어난 정보원이 있어서, 이렇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답니다.”
그녀는 성녀였다.
레아는 그리 말하며 바티칸에 있을 그녀의 그림자 레베카를 떠올렸다. 그녀 덕분에 ‘흔적’을 ‘정보’로 완성한 것이 아니던가.
‘아니더라도 결국 찾았겠지만...’
시간을 단축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후훗!’
이 시점에서 마루는 바짝 긴장하는 중이었다.
‘여의주를 들켰어!’
그녀가 어떤 루트로 파악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분명한 건 눈앞의 여인이 그의 기적을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분명, 조심한다고 했는데.’
말도 안 되는 기적이며 이능이기에, 홀로 오롯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몸을 사리고 낮추려,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하지 않았던가.
등허리가 서늘해졌다.
‘이렇게 실험실로 끌려가는 건가?’
오랜 세월 헌터로 생활하며, 이런저런 소문이나 괴담들을 건너들었고, 그 때문에 세상 이면의 어두운 이야기들도 제법 꿰고 있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그들 비각성 헌터의 ‘필살기’이자 ‘생존기’로 분류되는 뱀플이 대표적이었다.
[뱀플(Vample)은 뱀파이어 앰플의 약자다.]
[순수 뱀파이어의 피는 독성이 강해, 놈들에게 물려 변이된 일반인을 실험해서 만들어 낸 약물이다.]
[일반인들을 뱀파이어로 변이시켜 만든 약물이다.]
[뱀플을 남용하면 뱀파이어가 된다더라.]
등등, 관련한 괴담들이 제법 있었는데, 마루가 떠올리는 건 저 뱀플이 탄생된 ‘실험실’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면에는 생체실험을 전문으로 하는 연구소가 있다.]
심지어 한둘이 아니라는 등, 듣기만 해도 오싹한 이야기들이 여럿 떠돌고는 했다.
바짝 긴장하며 얼어버린 그의 표정에, 대략적인 생각을 읽어낸 레아가 옅은 실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전 당신의 편이랍니다.”
그러더니 슬며시 다가온다.
“증명할 수도 있어요.”
점차적으로 가까워지는 거리,
‘서...설마? 안 돼...’
뜨거운 시선이 교차하고,
‘아...앙......되는데...’
숨결이 피부에 와 닿으며,
쪽!
이마 위로 화끈한 열기가 피어났다.
‘...응? 이마?’
의문과 아쉬움이 맞물릴 때였다.
화아아악!
꽃핀 열기는 순식간에 전신으로 뻗어나가더니, 알 수 없는 활력을 끊임없이 생성해냈다.
“성녀의 축복을 받은 기분이 어때요?”
어느새 훌쩍 멀어진 그녀의 물음에 뒤늦은 민망함이 밀려왔다.
“뭘 기대하신 걸까요?”
조금은 장난스레, 짓궂은 미소로 그녀가 물었다.
“크흠...큼...”
이에 시선을 피한 마루가 나직한 헛기침으로 가슴을 진정시킨 뒤, 차분히 몸 상태를 점검했다. 그리고 깜짝 놀라야만 했다.
“...엄청나네요.”
요 며칠 폐인처럼 게임과 커뮤니티에만 전념하느라 차곡차곡 쌓였던 피로감이 마치 씻은 듯 날아가 버린 것이다.
지금 이 상쾌한 기분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
‘축복...’
다시금 떠오른 의문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 프렌차이즈 스타라는 건 위장입니까?”
“어떻게 생각해요?”
그녀가 되물었고 마루는 솔직한 심경을 이야기했다.
“성녀님은 진짜입니다.”
“후훗! 고마워요.”
한 차례 웃어 보인 그녀가 답을 주었다.
“저는 프렌차이즈 스타가 맞아요. 바티칸에서 만들어낸 거짓된 성녀죠. 하지만 지금은, 올해, 올봄부터는 진짜가 되었답니다.”
어째서일까?
그 순간 ‘오염된 여의주’가 떠올랐다. 그녀가 꾸준히 언급했던 둘 사이의 연결고리이기 때문일까?
“당신 덕분입니다.”
그러더니 대뜸 고개를 숙여 보이는 모습에 마루도 화들짝 놀라 마주 고개를 숙였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고마움을 표시한다던데, 맞나요?”
허리를 핀 그녀가 그리 물었고, 잠시 정신줄을 놨던 마루는 헛소리를 지껄여 버렸다.
“그보다는 돈 봉투를...아차!”
저도 모르게 엄지와 검지를 비비면서 속물적인 모션까지 취하고 있었고,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급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큼...크흠...”
민망함에 재차 헛기침만 쏟아졌다.
그 모습이 제법 우스웠던 것인지, 레아는 잠시 시원한 웃음을 쏟아냈다.
“아하핫! 정말 재밌는 분이시네요. 이렇게 직접 만나길 잘한 것 같아요. 멀리서 얼굴만 보고 갔으면 후회했겠어요.”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서 꾸준히 언급했듯, 그녀는 정말 얼굴만 보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얼굴을 볼 수가 없었죠.”
그녀의 시선이 침대 위의 VR기기에 잠시 머물렀고, 그 시선을 쫓았던 마루는 어색하게 웃어야만 했다.
“그래서 이렇게 몰래 들어왔죠. 죄송합니다.”
이 부분에서 작게 고개를 숙이며 이야기를 이었다.
“쉽진 않았어요. 이곳을 감시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거든요. 제 스킬을 이용해서...”
“잠깐만요.”
순간 마루가 손을 뻗어 그녀의 말문을 막았다. 한껏 굳어버려 심각해진 표정으로 그가 물었다.
“감시...라고요?”
“예.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당신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더군요. 하나같이 뛰어난 요원들이라서, 숫자와 무관하게 감시망의 수준이 높았습니다.”
마루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감시대상이 정말 저였습니까?”
“예. 며칠간 지켜본 결과, 이곳, 이 건물, 당신 거처를 중심으로 감시망을 형성하고 있더군요.”
이 건물에 자신 외에 다른 헌터나 특별한 인물이 있는 걸까?
‘그럴 리가.’
마루는 고개를 저었다.
15년차 헌터!
비록 비각성의 D급 B형이었다지만, 그만한 경력의 헌터에게 원한관계가 없을 순 없었다. 그런 이유로 거처를 옮길 땐 주변 조사는 기본이었다.
입술을 짓씹던 마루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느 정도 수준인지,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숫자는 총 열여덟이고, 3개 조로 나눠서 돌아가며 감시망을 구성하고 있더군요.”
그리 계산하면 결국 6명일뿐이지만, 겨우 한 명, 그것도 하급 헌터를 감시한다는 걸 생각해 봤을 땐, 차고 넘치는 숫자였다.
“수준은 C급과 D급 헌터들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헌터 등급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 된다. 헌터 등급이 감시망의 수준과 직결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감시라는 건 전투와 무관한 부분이었다.
하위 등급의 헌터들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충분한 경험치를 쌓는다면, 그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상위 헌터들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전투와 달리 현대 장비의 혜택을 제대로 받기 때문이다.
‘아니. 대체 어떻게? 분명히 조심했는데. 하! 대체...’
굳어버린 와중에도 새나오는 헛웃음이란, 믿기 어려운 현실과 상황 때문에, 절로 비집고 튀어나오는 것이리라.
그는 확인을 위해 레아를 바라봤다.
“성녀님께선 저를 어떻게 찾아내신 겁니까?”
분명, 따로 정보원이 있다고 했다.
‘그 부분을 파고들 수 있다면, 감시망에 대한 힌트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계시를 받았답니다.”
“......예?”
벙찌는 내용이었다.
**
새삼스럽다고 해야 할까?
“세상 참 좋네요.”
장철수는 그리 중얼거리며 화면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그들 ‘팀’이 감시중인 대상의 주변 풍경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함께 자리를 지키던 사수 김호수가 웃으며 물었다.
“막둥아 던전에서 원시인처럼 생활하다가 이런 거 쓰니까 신기하냐?”
“하...하핫! 좀 그렇네요.”
장철수의 미소가 어색한 건, 실제로 던전을 들어가 본 적은 없는 까닭이었다. 기껏해야 마수지대 정도가 전부였다.
[D급 B형]
그가 이룬 최종성적으로써, 비각성 헌터에게 던전이란 머나먼 별세계나 다름없었다.
사실, 이는 그의 사수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급 A형의 각성자란 위치 때문인지, 매번 단 둘이 있을 때면 던전에서 활개라도 친 듯, 수시로 던전을 입에 담으며 뻐기고는 했다.
실제로 들어간 건 사실이었다.
‘기껏해야 2~3번 정도면서.’
그나마도 짐꾼으로 들어갔던 걸 알지만, 모른 척 하며 존경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건, 그간 몸에 새긴 직장생활의 노하우였다.
괜히 관련한 이야기를 하면 속만 쓰리기에, 급히 화제를 돌려야만 했다.
“목표물이 도통 나올 생각을 안 하네요.”
의도가 통한 모양인지, 김호수가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게임 폐인이네.”
“직접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하는 건 어려울까요?”
“힘들어. 짬밥 똥구멍으로 처먹진 않았는지, 집 주변 경계가 제법 철저하더라고. 팀장님들 모이면 억지로 밀고 들어갈 순 있겠는데, 그랬다간 결국 흔적이 남겠지.”
“확실히...15년 경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네요.”
“그래. 그쯤 되면 각성여부 떠나서 이래저래 마찰이 제법 있었을 테니까. 저만한 경계망이 이상한 건 아니지. 집 안에서 게임만 하고 있단 정보도 1팀장님이 투시로 살펴서 알아낸 거야.”
그나마도 장시간 관찰은 어려웠다.
“뭘 그리 바리바리 깔아놨는지. 잠깐 엿보는 것도 쉽지 않다더라.”
“그래도 1팀장님 덕분에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배달 음식도 안 시켜 먹으니...”
“아무래도......”
장철수와 김호수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봉고차, 그 위로 은밀히 스며든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그림자는 둘의 대화를 엿들으며 안광을 번뜩였다.
‘설마설마 했더니만, 성녀님이 했던 말이 전부 사실이었네.’
그림자, 마루는 레아가 짚어줬던 포인트를 살펴가며 자신을 살피는 감시자와 감시망을 전부 파악할 수 있었다.
지난 일주일!
새롭게 구현한 탐지 및 은신 스킬의 도움이 컸다.
[귀치]
현재 사용 중인 스킬은 눈치코치의 형제격인 청각계열의 스킬로써, 이를 통해 봉고차 내부 대화를 깔끔히 도청할 수 있었다.
그 덕분일까?
필요한 정보 역시 얻어낼 수 있었다.
‘혜성 길드?’
감시자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아낸 것이다.
‘이소희!’
얼음여제의 명함이 떠올랐다.
< #16. 레아.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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