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無... >
어떤 식으로든 연락이 올 거라 예상하긴 했다.
“그래도 설마, 이렇게 스트레이트로 치고 올 줄이야.”
마루는 입맛을 다시며 핸드폰을 바라봤다.
[얼음여제 이소희]
통화목록에 올라와 있는 이름이 너무도 어색했다.
-만나죠.
생각지도 못한 찌르기에 당황하는 사이, 순식간에 약속까지 잡혀버렸다.
“허...”
거리도 멀지 않았다.
[카페 베레모]
집 근처 카페였다.
사장이 군복, 베레모, 선글라스를 쓰고 주문을 받는 게 나름의 특징인 가게였다. 언뜻 특전사 출신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밤이 깊은 시각.
약속시간은 모두가 잠자리를 준비할 시간이었고, 그 때문인지 카페로 향했을 땐, 손님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이 시간에 웬일이냐?”
나름의 친분이 있는 사장 장만석이 그를 반겼다. 그러더니 슬쩍 다가와 속삭이듯 말한다.
“저기 봐라. 이소희야 이소희.”
평소의 진중한 태도와 달리 호들갑을 떠는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시꺼먼 선글라스를 끼고 있건만, 그 어둠을 뚫고 반짝이는 눈빛이 전해졌다.
‘하긴, 스타들의 스타니까.’
여제의 위상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오셨습니까.”
이소희 측에서 먼저 다가오며 말문을 건네 왔다.
생각 이상으로 정중한 태도였는데, 이곳이 전장이 아닌 일상이기에 첫 만남 당시와 달리, 여러모로 말투를 조절하는 듯싶었다.
한 차례 겪어봤기에 놀라진 않았다.
“어...어라?”
그와 달리 화들짝 놀란 장만석이 뒤로 물러났고, 이에 한 차례 더 실소한 마루가 간단한 주문을 남긴 뒤, 이소희와 함께 자리로 향했다.
“명함. 잃어버린 건 아니겠죠?”
착석하며 던져진 물음에 마루가 어색하게 웃었다.
[왜 연락 안 했냐?]
그런 의미가 숨어있는 까닭이었다. 뭐라 답하기 어려웠던 터라 웃음으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이소희가 돌직구를 던졌다.
“감시망은 죄송하게 됐습니다.”
연달아 터진 당혹스런 내용에 미소가 굳어버렸다.
‘빙빙 돌릴 것 없이, 정면 돌파인가.’
마루는 정신줄을 다잡으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혜성에서 붙인 사람들이었습니까?”
일단 번트를 대 봤다.
“아니요. 제가 붙인 사람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또 다시 안쪽 꽉 찬 직구를 던져버린다. 뜻밖의 내용과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까지, 그 어지러운 조합에 잠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당혹감에 호흡이 흐트러진 사이, 이소희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며 대뜸 머리를 숙여 보이는 것이 아닌가.
“죄송합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헌터가 바로 이소희였다. 모르쇠로 일관하며 힘과 지위로 찍어 눌러도 이상하지 않을 판이건만, 대뜸 머리를 숙여버린 것이다.
무려 얼음여제의 사과였다.
“괘...괜찮습니다.”
황망한 와중에 반사적으로 그녀를 막아 세웠다.
“굳이 이러실 필요까진 없는데...”
솔직한 심경이었다.
요 며칠 역감시로 꾸준한 관찰을 한 결과, 자그마한 정보 몇몇 개를 수집할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감시팀의 주인이었다.
‘얼음여제 비서의 개인팀이라고 들었는데.’
그녀와 관련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분명 그녀가 보낸 게 아니라는 것까진 파악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이소희의 태도가 더욱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제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궁금하실 겁니다.”
“솔직히...좀, 그렇네요.”
이소희는 품속에서 언제고 본 적 있던 명함을 꺼내들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혜성길드 특수 1팀장 이소희라고 합니다.”
갑자기 이건 또 뭘까?
이런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한 방!
“D급 A형 헌터 정마루씨. 당신을 저희 혜성 길드에 스카웃하고 싶습니다.”
예측치 못한 각도에서 들어온 변화구였다.
이전처럼 그냥 명함만 건네고 끝내는 게 아니라, 제대로 그를 원한다는 걸 내비치고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처리팀이나 경계팀으로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제 팀으로 모셨으면 합니다.”
얼음여제의 팀이라면?
‘특수 1팀?’
마루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기본 B급 이상의 던전만 뛰는 게 바로 혜성길드의 특수 1팀으로써, A급 던전도 수시로 드나드는 팀이었다. 그야말로 혜성 길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파티에 그를 부른다는 것이다.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를? 왜?’
평정을 유지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총기류 각성자라고 들었습니다. 저희 분석실에서는 현재 등급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거기에 더해 지난 경력과 게이트에서 보여준 솜씨들까지.”
그 모든 것들을 총합해 본 결과,
“마루씨는 저희 팀에서도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을 거란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팀 차원에서 육성을 지원할 생각입니다.”
아니다. 분명 오류가 넘쳐나는 답변이었다.
[총기류 각성자? 결국 한 등급 위까지만 커버 가능할 뿐이다. 그나마도 장비발이 중요했다.]
[경력? 그만한 베테랑은 의외로 흔한 편이다. 비각성 헌터라는 테두리에서만 드문 경력일 뿐이다.]
[솜씨? 게이트에서 보여준 솜씨로는 제대로 된 던전의 커버 능력을 판단할 수 없다.]
[육성? 젊은 신예도 아닌 그 같은 중고 늦깎이를?]
여러모로 틈이 많았다.
하지만 연달아 터진 꽉 찬 직구와 방심 중에 훅 들어온 변화구 앞에, 사고가 정지되어버린 탓일까?
마루는 제대로 된 스윙을 하기가 어려웠다.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며 내려온 길이었다. 카페에 이를 때까지만 해도 요란하게 따져 볼 생각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한 거라고는?
멍청히 마운드만 본 게 전부였다.
**
짝짝짝짝...
“브라보~!”
김연희는 열렬한 박수로 차에 타는 이소희를 맞았다.
“와, 설마 그렇게 다이렉트로 찔러버릴 줄은 몰랐네. 어찌나 놀랐는지, 저쪽에선 아예 반응도 못하던데.”
“역감시로 얼마만큼 정보가 샜을지 모르니까.”
괜히 빙빙 돌리느니 그냥 지르고 본 것이다.
“고개까지 숙인 건 맘에 안 들지만.”
“그게 결정타였어. 그리고 실제로 실수한 건 우리야.”
이후로 완전히 이소희의 페이스였다.
“할 말 없게 만드네. 그런데 정말 1팀으로 부를 생각이야?”
김연희의 물음에 이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모르겠어서.”
“뭐를?”
“네 말을 듣고 유심히 살펴봤어. 그런데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더라.”
S급에 한 발 걸친 감각을 최대한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잡아놓고 관찰하려고.”
거기까지 이야기한 그녀가 역으로 물었다.
“너는 뭐 좀 봤어?”
이소희가 카페 안에서 오감으로 마루를 살폈다면, 김연희는 밖에서 두 눈과 스킬을 통해 마루를 관찰했다.
“아무것도...”
전과 다를 게 없는 걸까?
“이번엔...아무것도 안 보였어.”
“...이번엔?”
김연희가 차창 너머, 저 멀리 가로등 불빛을 짊어진 채, 터덜터덜 걸어가는 마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전혀 안 보이더라.”
“뭐?”
“아우라가 없었어.”
“......”
이소희의 시선도 창밖으로 향했다.
**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허...”
마루는 헛웃음을 참지 못했다.
“...제대로 당했네.”
아무 말도 못한 채 마냥 두드려 맞기만 하다 왔다는 걸 깨달았다.
“거 참, 정수리 본 뒤로 완전히 넘어가 버렸네.”
머리까지 숙이며 저자세로 나온 게 결정적이었다. 고개를 저으며 새로 받은 명함을 꺼냈다.
“그렇다고 그냥 한 말은 아닐 테고.”
정말 그를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왠지 스카웃 제안이 진짜처럼 느껴졌다.
‘착각이래도 상관없지.’
직접적인 제안을 받았다는 게 중요했다.
“혜성 길드 특수 1팀이라.”
솔직한 말로 욕심이 났다. 블록 길드와의 관계를 생각하더라도, 혜성 길드의 제안은 혹할 수밖에 없었다.
‘상위 던전을 들어가 볼 기회인데.’
과연, 그곳에서 주는 경험치는 어느 정도일지,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널뛰고 있었다. 내심 혹했지만 그는 주제파악 하나만큼은 확실한 남자였다.
‘지금 내 꼬라지로는 무리지.’
D급 A형 헌터.
실제는 C급으로 승급하여, 상황에 따라 B급 헌터에도 비빌 수 있다 자신했지만, 아쉽게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조건이나 상황 가릴 것 없이, 제대로 B급은 넘볼 수 있어야지.’
하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다 보니, 자꾸만 명함을 뒤적이게 만들었다.
특히, ‘혜성’이라는 간판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들어간다면...’
그의 남다른 성장을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1년차도 되지 않은 초짜 각성자였다.
그 때문에 승급을 밝히기 어려웠다.
자칫 불필요한 시선과 관심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혜성이 관리하는 상위 던전을 들락거리며, 고위 몬스터들의 수준 높은 경험치들을 변명으로 삼는다면?
‘좀 더 일찍, 세상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명함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던전...상급 몬스터...경험치...’
이 기회를 잡으려면?
“빡성장이 답인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위해, B급까진 맞춰놔야 할 것 같았다. 1차 전직 스탯인 300을 채웠을 때, 첫 승급을 이뤘었다.
“그렇다면...”
2차 전직 스탯이 떠올랐다.
‘...600스탯을 채우면 어떻게 되려나?’
왠지 두 번째 승급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될 것도 같은데.’
확인할 방법은 하나였다.
“로그-인!”
꿈과 환상의 세계가 그를 맞이했다.
**
귀지가 찼다.
“쌍검술의 달인이라며?”
“좀 뜬금없긴 하네. 쌍검이라니.”
“어지간한 피지컬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다루기도 어려울 텐데.”
“이 시점에서 나올 만한 재주는 아니지.”
“그러니까 검귀 아니겠냐.”
곳곳의 쑥덕거림에 귀가 간질거렸다.
검귀 나바!
마루는 자신의 새로운 유명세를 떠올리며 열심히 귀를 후빈 뒤, 그길로 상점에다 차고 있던 검 하나를 팔았다.
“편법도 이젠 끝이네.”
기본 검술을 마스터하면서, 더 이상 쌍검으로 숙련도 노가다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괜히 검 두 개 들고 다니면서 관심 끌 필요도 없고.”
어깨를 으쓱이며 필드로 나선 뒤, 여느 때처럼 직업구분 없는 비정석 파티를 찾아 움직였다.
그 와중에 잡힌 파티 하나.
“같이 하실래요?”
의외로 상대측에서 먼저 제안을 건네 왔다.
‘얼씨구?’
그 면면을 살펴보던 마루는 직감할 수 있었다.
‘뻑치기인가.’
비정석 파티의 장점이자 단점이 뭘까?
[장점 : 정석적이지 않다.]
[단점 : 직업구분이 없다.]
몽크와 같은 비주류 직업군도 얼마든 참가 가능한 파티지만, 반대로 암살자와 같은 문제적 직업군과 팀을 이루는 상황도 자주 발생했다.
‘마법사. 궁수. 탱커. 레인저.’
얼추 눈에 보이는 복장으로 상대편의 직업군을 유추해 봤다. 비정석 파티인 만큼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닐 것이기에, 일단 염두에 두는 선에서 그쳤다.
캐릭터 가면까지 쓰고 있어서 위장도 편해 보였다.
[마법사 쿠크몽, 궁수 꼬봇, 탱커 호로로, 레인저 돌리]
일을 저지르고 뒤를 닦기 딱 이었다.
‘조합이 작정하고 날 선두로 세우겠다는 건데.’
근거리 딜러는 그밖에 없었다.
‘탱커 녀석은 미끼역할인가.’
이 정도로 의심이 간다면 다른 파티를 구해야 하지만, 사실 비정석 파티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다가, 솔직한 심경으론 지금 이 상황이 매우 마음에 들기도 했다.
‘전문 뻑치기면, 카르마깨나 쌓여서 경험치도 짭짤하겠지?’
군침이 돌았다.
‘평소라면 최대한 마찰을 피하겠지만.’
최근 상황이 좀 바뀌어버렸다.
‘상황이 좀 달라져서...츄릅!’
그 때문인지 내심으론 제발 저들이 범법 유저이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고, 그런 이유로 굳이 파티를 바꿀 이유도 없었다.
“제가 머드 오크 사냥퀘가 있어서, 파티분들 전부 공유했는데, 아직 안 하셨으면 받으실래요?”
파티장 쿠크몽이 그리 물어왔고, 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머드 오크 사냥퀘는 저도 있네요.”
그 외에도 인근 사냥퀘는 전부 수집해 놓은 상태였다.
“정비 끝나셨나요?”
“출발하시죠.”
적당히 자리조정만 한 뒤, 바로 이동을 시작했다.
**
머드 오크.
놈들은 늪지대에서 살아가는 특이한 오크들로써, 땅속에 굴을 파고 생활하는 습성이 있어, 두더지 오크라고도 불리고는 했다.
일반적인 오크들보다 덩치는 작지만, 더 단단하고 날렵한 탓에 발견한다고 해도 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놈들은 현실 속 던전 정보를 토대로 업데이트 된 몬스터라는 점이었다.
‘C등급 몬스터.’
그 중에서도 제법 상위에 꼽히는 놈들이기도 했다.
‘리자드맨하고 자리다툼을 할 정도니까.’
B급 몬스터인 리자드맨과 늪지대를 두고 다툴 정도인 만큼, 결코 가볍게 볼 놈들이 아니었다.
때문에 한 마리씩 끌어들여 사냥을 하는 게 정석이었다.
“시간대는 딱 좋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게 보였다. 머드 오크가 한참 단잠을 취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일단, 약초 피워서 굴에서 나오게 만들어야지.”
파티장 쿠크몽이 탐색 스킬로 머드 오크의 땅굴 하나를 발견해낸 뒤, 그 안으로 연기를 흘려보냈다.
이는 일종의 환각초로써, 연기에 취한 시점에서 오크들의 전투력은 일부분 하락하기 마련이었다.
주변을 탐색한 결과, 인근에 땅굴은 이곳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만큼,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사주경계를 확실히 했다.
이 와중에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마루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두 눈 가득 한기가 맺혔다.
그러는 사이 환각초에 취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 못 한 채, 비몽사몽하니 몽롱한 모습으로 꾸역꾸역 땅굴을 기어 나오는 머드 오크 한 마리가 보였다.
“호로로!”
쿠크몽의 외침에 냅다 달려든 탱커 호로로가 머드 오크 한 마리를 그대로 덮쳤다.
“나바!”
이어지는 명령에 마루가 움직였다.
촤악!
“...어?”
핏물이 튀고, 꼬봇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거짓말 같은 반전 속에서 마루의 검격이 궁수 꼬봇을 베고, 그대로 쭈욱 내지르며 레인저 돌리의 복부를 꿰뚫었다.
‘선빵필승!’
곡선과 직선, 두 줄의 검광!
“어억!”
단말마의 신음성과 함께 꼬봇과 돌리가 무릎을 꿇고, 쿠크몽이 대노하며 외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
마루는 쓰러진 둘에게 재차 검격을 날리며 말했다.
촤좌좌좍!
“뭐긴, 뭐야. 뽀록났단 거지. Fuck치기 쉐이들아.”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주며 마저 두 유저를 마무리했다.
푸푹!
< #18. 無...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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