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혜성 특수 1팀. >
[혜성 길드]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솟은 건물의 위용에 잠시 오금이 저려왔다.
‘쫄지 말자!’
마루는 널뛰는 가슴을 달래가며 힘차게 걸음을 내딛었다.
“기다렸답니다.”
왠지 모르게 눈에 익은 여인이 그를 맞았다.
‘아...그 때, 게이트!’
과거 C급 게이트에서 마주친 적 있는 얼굴이라는 걸 깨닫고 놀랄 때, 그녀가 자신을 소개했다.
“혜성 길드 스카우트 팀 팀장인 김연희라고 합니다.”
그 순간 마루의 동공이 옅게 흔들렸다.
‘김연희?’
역감시를 통해, 그 이름을 들은 바 있기 때문이었다.
‘얼음여제의 비서가 아니라?’
분명 그렇게 알고 있었건만, 이건 어떻게 된 상황이란 말인가.
‘동명이인?’
그런 생각을 할 즈음, 이어지는 소개가 답을 대신했다.
“이소희님의 개인 비서직도 겸하고 있답니다.”
지금은 스카웃 팀의 팀장으로써 서 있는 거라면서 마루를 안내했다.
‘역시, 아무것도 안 보여.’
김연희는 이동하며 틈틈이 마루를 살폈는데, 이전처럼 아무런 아우라도 비치질 않았다.
‘설마, 능력을 잃어버린 건 아니겠지?’
아주 잠깐 그런 의심도 떠올랐는데, 이에 관해서는 마루가 해소를 해 줬다.
“이번에 승급을 하게 됐습니다.”
“...예?”
“아무래도 알아두셔야 할 것 같아서 말씀 드리는 겁니다. 승급과정 때문에 연락이 늦어져버렸네요.”
그러며 엔트라 데스크 접속으로 측정을 해도 되겠냐며 묻는데, 당장 확인하고 싶었던 김연희는 바로 이를 받아들였다.
[엔트라 데스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급히 접속을 한 뒤, 게시판 하나를 잡고 비밀글을 올린 뒤, 마루에게 비밀번호를 전달하는 순간이었다.
[별점이 등록되었습니다.]
그녀가 올린 비밀글에 점수가 떴다.
‘맙소사!’
입을 쩍 벌리는 그녀의 모습에 마루는 조금 과한 반응이란 느낌을 받았지만, 이는 아우라를 보는 스킬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확인을 위해 몇 번의 게시물을 더 올렸고, 마루는 각 비밀글마다 접속해서 별점을 다는 것으로 승급을 증명했다.
‘내 눈을...스킬을 피해가는 각성자라고?’
김연희는 새삼 눈앞의 사내가 특별하단 걸 느꼈다.
“이거, 아무래도 계약 조건을 좀 수정해야 할 것 같은데. 잠시만 기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녀의 이야기에 마루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바꿀 필요 없습니다.”
“예? 아직 조건을 들으시지도 않으셨는데요. 아니. 그보다 D급과 C급은 차이가 클 수밖에 없는...”
“괜찮습니다. 대신, 조금 까다로운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왠지 모를 불안감이 김연희의 뇌리를 스쳤다.
**
뜻밖의 소리였다.
“용병 계약을 맺고 싶다고?”
이소희의 물음에 김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할 일이 있어서 정식 계약은 무리라네. 게다가 블록 길드하고 맺은 계약 문제까지 언급하면서 발을 빼더라고. 상황이야 어쨌든 이중계약이긴 하니까.”
“으음...”
“그리고 기왕이면 승급 절차를 우리 쪽에서 해결해줬으면 하더라.”
“그건 어려울 것 없지.”
데스크 확인도 했으니, 그냥 협회에 통보만 하면 됐다. 그들 혜성에게 그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역시...용병계약인가?”
골머리가 아픈 듯, 이소희가 양 미간 사이를 비볐다. 그녀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김연희 역시 비슷한 표정으로 한숨을 늘어트렸다.
“그 작자 때문에 영감들하고 얼마나 싸워댔는데, 하...겨우 허락 받아놨더니, 이렇게 나와 버리네.”
김연희의 투덜거림처럼, 정마루를 끌어들이기 위해 그들은 혜성의 간부진과 적잖은 마찰을 빗어야만 했다.
그냥 일반 경계팀이나 새로 창단된 처리팀도 아닌, 무려 혜성의 자부심인 특수 1팀에 D급A형의 헌터를 끌어들인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마찰일 수밖에 없었다.
겨우겨우 허락을 받아놨더니, 이게 웬일?
“용병 아니면 못 하겠대.”
안 한다는 소리로 들렸다.
“...계약해.”
잠시간의 침묵 끝에, 이소희가 겨우겨우 한 마디를 꺼냈다.
“괜찮겠어?”
“해야지. 어쩔 수 없잖아.”
용병이건 뭐건, 일단 한 발이라도 묶어놔야 했다.
“영감들은 내가 설득해 볼게. 일단 상황이 마냥 나쁜 건 아니야. 엔트라 데스크에 접속했다면, 승급은 확실하니까. 영감들이 주장하던 D급 문제는 해결된 거잖아.”
“그야 그렇지만...용병인데?”
“계약 조건을 D급 사항으로 유지한다며, 그걸로 비벼 봐야지. 총기류 각성자에 C급이니까. 장비만 잘 갖춰놓고 조건만 맞추면 B급이나 다를 거 없어. 쓸 만한 용병 싸게 사용한다고 하면, 영감들도 적당히 구슬릴 수 있을 거야.”
“...광고도 찍고?”
슬며시 던져오는 물음에 이소희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일말의 양보가 필요할 터, 이를 위해서 오랜만에 혜성의 얼굴마담 역할 좀 해야 할지도 몰랐다.
“주름 생겨. 촬영준비 해야지.”
김연희의 타박에 겨우 표정을 풀지만, 딱딱하게 굳어버린 얼굴이 불편한 심경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일단, 싸인이나 받아와.”
피로한 표정으로 이소희가 손을 휘휘 저었고, 김연희는 안쓰런 얼굴로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밖으로 향했다.
**
[혜성길드 특수 1팀 정마루]
그 밑으로 박혀있는 증명사진 한 장.
“하...”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오는 건, 지금 이 현실이 쉬이 믿기지 않는 까닭이리라.
마루는 연신 신기하단 얼굴로 사원증을 이리저리 살폈다.
용병 계약을 맺었다지만, 대외적으로는 공식 팀원이라는 조건을 앞세웠다. 그 때문에 이런 식으로 정식 사원증을 발급받은 것이다.
덕분에 앞으로는 얼마든 혜성 길드 내부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D급 B형의 하루살이 같은 인생으로 사체 처리나 하던 그가, 이제는 혜성 길드의 특수 1팀에 몸담게 된 것이다.
울컥!
“씨발...”
괜스레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쪽팔리게.”
급히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정류장에 서서 질질 짜고 싶지 않았다.
“후우...하...푸후우우우...”
길게 호흡을 나누고 또 고르며, 애써 가슴을 달래고 진정시켰다. 그게 제법 효과가 있던 모양인지, 눈물 댐이 꾸역꾸역 수문을 닫는 게 느껴졌다.
벌겋게 충혈 된 눈동자에 몇몇 시선이 머물지만, 그저 스쳐가는 정도일 뿐이었다.
“할 수 있다!”
나직한 중얼거림 사이로 감정의 잔재가 흘러내렸다.
**
“D급 A형 정마루?”
광호길드의 길드장 강만기는 눈살을 찌푸리며 정보팀장 구정국을 바라봤다.
“이번에 승급했습니다.”
“그래봤자 C급이잖아. 갑자기 이런 놈 정보를 가져온 이유가 뭔데?”
“이번에 혜성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들 광호와 대척점에 있는 게 바로 혜성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잘한 정보까지 전부 그에게 가져올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를 언급한 이유가 있으리라.
“설마...”
“예. 특수 1팀입니다. 혜성 측에서 정보 보호 신청까지 걸어놨다고 합니다.”
강만기가 다시금 보고서를 살폈다. 한층 신중해진 눈으로 그 내력을 쭈욱 훑는데, 그리 특별할 게 없는 내용으로 한 가득이었다.
‘D급, 아니지. C급 A형인가. 겨우 이런 놈에게 정보 보호를 신청해? 아니. 아니지. 이런 놈이라서 걸어놓은 건가? 쪽팔려서? 그게 아니라면...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그나마 볼 만한 거라면?
‘경력하고 최근 각성했다는 사항 정도인데.’
[베테랑 헌터+총기류 각성=등급외]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봤자 C급이잖아?’
늦깎이 각성자가 1년도 안 돼서 승급을 했다는 점도 특이사항이라면 특이사항일 것이다.
“겨우 C급 헌터를 특수 1팀으로 들였단 말이지...”
놓치고 있는 뭔가가 있으리라.
“이번에도 그년인가?”
강만기의 물음에 구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김연희의 능력이 작용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남들과는 다른 걸 보는 눈!’
아는 이들이 많지 않고, 그나마도 짐작 정도만 하고 있을 뿐이지만, 어쨌든 김연희가 특수한 스킬을 지녔다는 것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 눈깔로 이 놈한테서 뭔가를 봤다는 건가?”
“접근해 볼까요?”
구정국의 물음에 잠시 생각을 하는가 싶던 강만기가 고개를 저어보였다.
“뭔가 있다면, 그쪽에서도 따로 조치를 취했을 거야. 일단 적정거리 유지하면서 지켜만 봐. 그년의 눈깔이 뭘 봤는지 확인도 할 겸.”
그 말에 구정국이 정중히 고개를 숙인 뒤 밖으로 나갔고, 강만기는 다시금 보고서의 내용을 훑으며, 사진 속 하급 헌터를 뇌리에 박아 넣었다.
**
[태세전환 - 울프]
워우우우우우...
효과음과 함께 붉은빛 아우라가 피어나며 전신을 휘감았다.
[레벨 : 80]
드디어 몽크 전용의 세 번째 전환스킬을 익힌 것이다.
터틀 그리고 버드의 경우, 방어력과 회복력 상승으로 전장의 유지력을 높여줬다면, 지금부터는 속도감까지 더해줄 터였다.
‘3번째 전환기를 익혔으니까. 이걸로 9%인가.’
태세전환 스킬은 연계 스킬을 하나씩 익힐 때마다 각기 3%씩 증가 효과가 더해지고는 했다.
터틀의 경우, 최초 3%의 추가 방어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3개 스킬을 개방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9%의 방어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총 4개의 스킬이니 12%가 완성형이라 착각할 수도 있으나, 2차 전직 후 태세전환 최종형태가 되면 추가 3% 더해지면서, 최종형태는 15%라는 놀라운 증가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현실로 가져간 건, 터틀 밖에 없네.”
아무래도 최근 성장에 중점을 두고 있다 보니, 스킬 숙련도 작업에 더딘 느낌이었다.
‘승급해서 B급도 찍었으니까. 한동안은 숙련도 노가다 좀 해야겠네.’
최소한 버드까지는 꺼내야 하지 않겠는가.
‘회복력만한 생존기가 없지.’
혜성길드 특수 1팀에 한 발 담근 시점이니 만큼, 더더욱 절실해진 스킬이기도 했다.
“가능하면 울프도 꺼내고.”
그런 이유로,
[가시밭길]
발길이 사원 내부로 향했다.
‘숙련도는 역시 고행이지.’
이곳 몽크의 신전을 수행자의 사원이라 불리는 건, 전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몸뚱이 단련하기에는 이만한 데가 없지.’
육체파 직업군에 특화된 훈련장이 즐비한 탓에, 비슷하게 투사나 파이터들 역시 간간히 사원을 찾아오곤 했다.
그렇게 사흘의 시간이 흘렀고,
우우우웅...
용병 첫 출전의 알람이 울렸다.
**
혜성길드 특수 1팀!
그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헌터 팀 중 하나였고, 그 때문인지 이들의 자부심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 때문일까?
‘C급이라고?’
‘우리 팀에 저딴 놈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저런 노땅이 필요한가?’
새로운 신입을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 못했다.
‘살벌하네.’
첫 소개 이전부터 이어져 온 꾸준한 눈초리로 인해, 마루는 슬쩍 어깨를 움츠렸다.
[C급 A형 헌터 정마루.]
가장 늦게 들어온 막내마저도 B급의 실력자인 팀이었다. 최초의 C급 헌터가 들어온 상황이다 보니, 팀의 수준이나 평가를 낮출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 터였다.
실제로 혜성의 고위 간부들은 이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이소희의 스카웃 요청을 반발하며 거절하지 않았던가.
팀원들 역시 이런 흐름을 모를 수 없었고, 그만큼의 불만도 쌓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팀장 이소희가 눈을 부라리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일찌감치 시비를 걸며 신고식을 하려 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신입 바로 옆에는 김연희까지 붙어 있었다.
‘뭐 하는 놈이야?’
‘어디 재벌 3세라고 되나?’
‘정보록은 분명 평범했는데.’
‘일단, 얼마나 하는지 지켜보자.’
‘엉터리기만 해 봐라.’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연희가 나섰다.
“간단하게 합도 맞춰 볼 겸, 오늘은 모의 훈련을 할 거다.”
부 팀장으로써 하루 일정을 설명하는데, 내용을 들은 마루는 말만 모의 훈련일 뿐, 실상은 실전이라며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북한산 마수지대에서 사냥이라니.’
각 길드마다 작업 포인트가 따로 있는데, 혜성의 작업장에서 상급 몬스터를 잡으며 합을 맞춰 본다는 것이다.
“신입은 저격조로 배치되고, 코드네임은 파이(Pi)다.”
“업실론(Upsilon)이 아니라요?”
“그 자리가 비었으니까. 채워야지.”
“그럼 파이(Phi)로 하시지.”
마루의 선임 타우(Tau)가 작게 투덜거리는 순간, 김연희의 눈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고, 팀원들은 얌전히 합죽이가 되었다.
팀장 이소희는 눈빛으로 조지지만, 그녀는 실제로 조지기 때문이다.
“신입은 저격조의 제타(Zeta)가 받아야겠지만, 베타(Beta)가 따로 관리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라.”
이소희의 말에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타, 김연희가 신입 곁에 붙어있는 시점에서 이미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탑승!”
그렇게 준비된 차량에 올라타고, 북한산 마수지대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이어지는 집요한 시선들.
‘얼마나 잘 하는지 보자.’
‘맘에 안 들면, 들이받는다.’
‘확, 담가블라.’
‘블라블라...’
이들의 이런 반응은 오래지 않아 반전하게 된다.
투우우웅...
신입의 가치가 재평가 되는 건?
총알 한 발로 충분했다.
< #20. 혜성 특수 1팀.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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