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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헌터 정마루. >

그런 이야기가 있다.

[총기류 각성자는 언제나 한 발 빠르다.]

이는 그들이 자신의 등급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기본적으로 총화기란 무구가 지닌 장점이기도 했다.

맨손보다 칼이 강하고, 칼보다 총이 강하듯, 제대로 된 장비를 장착할 경우, 총기류 각성자는 스킬과의 시너지를 통해, 등급 이상의 파괴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특히, 일반적인 각성자들과 달리, 총기류 각성자는 수준 이상의 장비도 들 수 있었다.

[오버클럭!]

그 때문에 각성 종류가 아무리 허접 하더라도, 총기류 각성자라는 이유만으로 등급에 (+)가 붙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총기류 각성자가 좋다는 건 아니었다.

한 발 빠른 만큼, 그들은 황혼도 빨랐다.

[총기류 각성자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는 그저 소문만 무성한 괴담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명확한 실험 결과에 의해 내려진 결론이었다.

헌터들의 핵심은 분명 각성과 능력이다.

하지만 순수 능력만으로 장기적인 사냥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무기를 든다.

몬스터 사체를 가공해 만들어낸, 아주 특수한 무기를 손에 쥐고 사냥을 하는 것이다.

각성자들의 기운을 더 쉽게 전달시키고, 때론 더 강하게 증폭시켜주는 효과까지 지니고 있어, 몬스터 사체로 만든 무기는 모든 헌터들의 필수품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이는 쉽게 다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든 몬스터의 사체에는 놈들이 죽으면서 남긴 강렬한 사념이 묻어있기 때문이었다.

고통, 울분, 원망, 저주 등등...

그 때문일까?

헌터는 새 무기를 손에 쥘 때면, 나름대로 길들이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바로 이게 총기류 각성자의 문제였다.

그들은 하나의 무기가 아닌, 무수히 많은, 때로는 수백, 수천, 수만 종류의 다양한 무기를 손에 쥐어야 했다.

탄환!

특수탄이라 불리는 그건, 자그마한 크기처럼 담겨있는 사념 역시도 극히 미세할 뿐이지만, 종류 그리고 등급에 따라서 미세함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앞서도 언급했듯 총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수십, 수백 발에서 수천, 수만 발까지도 쏴 갈기는 물건이었다.

그렇게 티끌은 태산이 된다.

[사념폐해!]

정신세계를 뒤틀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헌터 등급이 올라가면, 사용되는 특수탄의 급수도 올라가고, 사념의 위험도 역시 높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총기류 각성자들 중, 고위 등급에 이른 헌터의 수가 극히 희박한 이유?

바로 이런 특수한 사정 때문이었다.

[그들은 쉽게 강해지고, 쉽게 무너진다.]

몇 안 되는 고위 등급의 총기류 각성자들은 모두 같은 소리를 한다.

[여기가 우리의 한계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성직계열 각성자를 찾아 정화작업을 하고, 개별적인 고행으로 정신을 가다듬는 듯, 각고의 노력을 통해 가까스로 현상유지만 할 뿐이었다.

멋모를 땐 자신의 등급 이상의 총화기를 들지만, 차후 사념의 폐해를 실감하고 난 뒤로는 선을 지키기 마련이었다.

그런 이유로 총기류 각성자가 롱런하기 위해선, 철저히 자신이 통제 가능한 수준의 화기류만 다루는 게 필수였다.

하지만,

[몬스터의 사념을 통제 할 수 있다면, 오버클럭도 문제없지 않을까?]

누군가 그런 의문을 내비쳤던 적이 있었다.

‘정말 그게 가능하다면?’

김연희는 그 정답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여겼다.

‘정화...’

마루의 손끝을 타고 새나오는 저 순결한 광채를 보라.

‘사냥을 시작하면 뭔가 변화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설마, 그게 정화의 빛일 줄이야.

‘총기류 각성자 아니었어?’

누군가는 ‘성력’이라 표현하기도 하는 광채가 마루의 손끝을 타고 흘러나오더니, 저격총으로 스며드는 게 보였다.

뒤이어 방아쇠가 당겨졌을 때,

투웅...

저 멀리 리자드맨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

C급 A형.

총기류 각성자라고는 하나, 본연 능력의 한계를 예상했기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잘 쳐줘도 B급 정도는 되려나?”

“막 승급했다며?”

“그러면 B-? C+? 얼추 그 정도겠네.”

“어차피 보조니까. 평타는 치겠네.”

“늦깎이가 그 정도면 선방한 거지.”

“괜히 오버해서 첫날부터 골골대면 어째?”

“설마, 오버클럭까지 할려고.”

“모르지 데뷔전인데.”

각성의 특이성으로 인해, 얼추 등급 이상의 능력을 보여줄 것이고, 이를 생각한다면 보조 저격 및 서포터 역할 정도는 수행할 수 있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잡았다고?’

‘맙소사!’

‘병 걸린 리자드맨인가?’

‘저거, 그냥 도마뱀 아니야?’

리자드맨의 시선을 잡아채기 위한 가벼운 총격이었다. 그들이 준비한 무대 위로 끌어들이기 위한 신호탄이기도 했다.

헌데, 그게 ‘저격’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수 1팀이 넋을 빼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

아직 홀로 오롯할 수 있는 위치까진 아니었다.

‘그래도 슬슬 어깨는 좀 펴도 되잖아.’

B급 헌터라는 위치가 그랬다.

‘대외등급은 C급이지만.’

총기류 각성자라는 특이성에 기대서, 살짝 제 실력을 드러내 봤다. 제대로 된 총기를 들었다는 가정 아래, 그의 수준은 등급 외, B급 헌터와 동급으로 봐도 무관하기 때문이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총기류 각성자’라는 걸 전면에 내세운 게, 여러모로 회심의 한 수였던 것 같았다.

덕분에 B급 같은 C급을 연기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효과가 너무 좋은데.’

리자드맨을 한 발에 잡을 줄이야.

‘이러고도 감출 게 남아있다니.’

아직 여유라는 점에서, 입 꼬리가 올라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원래, 본 실력의 3할은 감추는 거니까.’

언제고 읽었던 무협지가 떠올랐다.

C등급과 B등급의 차이는 3할 그 이상이란 걸 생각해 봤을 때, 여전히 감출 게 남아있고 또 넘쳐난다는 점에서, 마음 속 여유가 늘어가며 느긋함이 깊어지는 걸 느꼈다.

‘한 방에 잡아낸 건 조금 과하긴 하지만.’

데뷔전이라 ‘오버 클럭’ 했다는 걸 변명 삼는다면?

‘문제될 건 없겠네.’

이 타이밍에 반전이라면?

그가 몽크라는 점이었다.

‘기왕 보여준 거.’

이 정도 선에서는 얼마든 더 드러내 보자는 생각으로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투웅...퉁...투우우웅...

타이밍 맞춰 발동되는 고정과 조준 스킬에 의해,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정확한 저격이 쉼 없이 이어졌다.

리자드맨 놈들의 경계심도 커진 만큼, 한 발에 잡아내기가 쉽진 않았지만, 매 저격마다 치명상을 입히기에는 충분했다.

사냥이 한층 순조로워진 것 역시 당연한 수순이었다.

‘보조가 아니라. 그냥 저격이네.’

‘와...이래서 뽑은 건가?’

‘이게, 정말 C급이라고?’

‘오버 클럭이래도...쩌는데!’

‘미래가치가 어마어마하네.’

‘아아...제가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내 눈깔이 해태였구나.’

신입의 평가가 달라지기에 충분했다.

[C급 A형 헌터 정마루!]

그는 혜성에 어울리는 인재였다.

**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성력이라고?”

이소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잘못 본 게 아니라?”

“그건 분명 정화의 빛이었어.”

“확신해?”

“확실해. 백광 중에서도 특히 눈부신 건, 정화의 빛 뿐이야.”

“...총기류 각성자라며?”

잠시 두 여인 사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미 생각을 정리한 바 있는 김연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건 아니잖아. 항상 그렇듯 유추해서 나온 썰 일 뿐이야.”

“그건, 그렇지.”

하지만 저격 거리나 정확도 등을 생각한다면, 총기류 각성자가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런 시야각을 가지고 일반 각성일까?”

“어쩌면 성력까지 포함한 저격능력일지도 모르지.”

그 시점에서 이소희는 한 가지 가정을 추가했다.

“혹시...더블?”

김연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더블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는데, 이는 ‘가능’과 ‘불가능’으로 구분되었다.

언제고 마루를 언급하며 더블이냐며 농담처럼 이야기를 나누던 날이 있었는데, 당시에 언급했던 건 전자의 더블이었다.

같은 계열의 스킬이 중첩된 종류로써,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신관의 축복+성력의 불꽃]

[신관의 축복+마력의 불꽃]

왠지 이소희가 말하는 건 후자인 듯싶었다. 전혀 다른 성질의 스킬이 연계되는 것이다.

말도 안 된다 여긴 탓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오리지널, 진짜 이중 능력자?”

“그래.”

“여태껏 등장하지 않았던 첫 번째 멀티 능력자가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났다고?”

“일단,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자.”

가정일 뿐이기에 얼마든지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애초에 그런 다채로운 아우라를 지닌 ‘사람’도 처음이었다며?”

“거야...”

‘...그렇지.’

게다가 아우라가 완전히 사라져버리기까지 했다. 여러모로 최초라 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이지 않던가.

“기존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야. 사고의 폭을 넓혀야지.”

그 말에 김연희도 결국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정마루!

그에 관한 관심도는 나날이 증가추세였다.

**

화려한 데뷔전!

그 말이 딱 어울리는 하루였다.

원래라면 밤늦게까지 이어졌어야 할 사냥이며 훈련이었다. 하지만 예상 이상의 실력을 선보인 까닭인지, 일찌감치 상황이 마무리되며, 햇볕 쨍쨍한 시간에 귀가를 이룰 수 있었다.

“눈빛들이 영 거슬려서, 너무 오버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

물론, 그 덕분에 특수 1팀에게 제대로 인정받기는 했다. 괜히 뿌듯하고 으쓱했던 까닭이었다. 목에 힘까지 들어갔다. 입 꼬리도 광대를 터치 중이었다.

어깨에 힘 빡 주고, 보무도 당당하게 거리를 거닐었다. 그렇게 오늘의 목적지에 이르렀다.

간만에 찾은 본가였다.

딩동!

힘차게 초인종을 누르니,

[누구세요?]

뜻밖의 반응이 이어졌다.

“...누구세요?”

설마하니 연락도 없이 이사라도 간 걸까?

생소한 음성에 화들짝 놀라 한 걸음 물러나야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 정씨네 둘째구나. 나야 호식이 엄마.]

“아...안녕하세요.”

낯선 와중에도 묘하게 귀에 익다 싶었더니, 고교 동창의 어머니였다.

[정씨 저 앞에 새로 진, 혜성 아파트로 이사 갔는데, 몰랐니?]

“아...아하하! 제가 깜빡 했네요.”

울컥, 하는 심경이었지만, 애써 웃음으로 마무리 지으며 나와야만 했다.

전화 한 통 없이 찾아온 그의 잘못도 있지만, 설마하니 그에게 연락도 없이 이사를 갔을 줄이야.

‘혜성이라...’

왠지 이리저리 엮이는 것 같아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연락도 없이 이사라니.’

짚이는 게 없진 않았다.

“설마, 저번에 한바탕 하고 나와서 그런가?”

입맛이 썼다.

[언제까지 그 위험한 짓거리를 하고 있을래?]

[네 나이도 벌서 30대 중반이다. 되도 않는 꿈 그만 꾸고, 당장 가게나 도와!]

[아빠 도와서 고기나 썰어.]

[장가는 안 갈 거야?]

그 쉴 새 없는 잔소리에 홧김에 지르고 나와 버린 것이다.

[에잇! 다신 연락하지 마.]

그야말로 미운 30대였다.

한껏 성이 난 나머지, 그 길로 장기 파견을 신청했고, 그렇게 찾아간 곳이 바로 백두산 마수지대였다.

자연스레 핸드폰이 끊길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래도 이사를 했으면 소식은 남겨야지. 문자 한 통이 어렵나?”

그 역시 성과를 이루기 전엔 찾아올 생각이 없었기에 이제야 찾아온 것이지만, 원래 사고란 게 본인 위주로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형은 뭘 한 거야?”

그러며 신경질적으로 큰형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아빠 이사했다며? 왜 연락 안 했어?

-뉘십니까?

-장난 말고.

-우리 집에 아들은 저 하나 뿐인데요? 여동생이 한 명 있긴 한데, 설마 저 모르는 새 TS 하셨습니까?

마루의 이마 위로 힘줄이 바짝 섰다.

-셔럽! 헛소리 말고, 주소나 찍어라. 회사 쳐들어가기 전에.

-집이냐?

-어. 호식이 어머님이 반겨주시더라.

-크크크크크크

-지금 혜성 아파트 앞이니까. 동, 호수 불러.

-부모님 이사 안 했는데.

-뭐?

-너 당한거야. 순진한 놈. 아니, 멍청한 건가.

뒤늦게 좀 전 들렸던 주택의 대문 너머 풍경이 떠올랐다. 기억 속 집안 모습과 꼭 닮아있지 않던가. 집주인이 바뀌었으면 마당 풍경도 달라져야 할 것 아닌가.

‘아...!’

깨달음 속에 이어지는 문자 한 줄.

-혜성 아파트는 내가 들어왔다. 나중에 들려라. 306동 203호.

“아오~!”

결국, 독이 바짝 오른 채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만 했다.

**

“호호호! 미안해.”

“아...아니에요.”

성질이 바짝 나서 찾아왔지만, 친구 어머님이 반겨주시니 애써 화를 누르며 미소를 앞세워야만 했다.

“그럼 가볼게. 다솜이 엄마.”

“조심히 가. 호식이 엄마.”

모친이 친구 어머니를 배웅하고, 그렇게 손님이 저 멀리 자취를 감추는 순간, 마루의 입 꼬리가 야차처럼 내려갔다.

“엄마!”

버럭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모친이 대문을 쾅 하니 닫아버렸다.

“엄마?”

급격히 톤이 다운됐다.

“뉘신지?”

“아, 장난하지 말고.”

“그러고 보니까. 연 끊겠다던 아들놈이 하나 있던 것 같기도 한데. 하아...이래서 자식새끼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고, 옛말 그른 거 하나도 없네.”

“아니. 말을 또 이상하게 하시네. 누가 연을 끊었다고 그래. 바쁘니까. 그냥, 한동안 연락 좀 자제한다고 말한 거지. 이야기가 왜 또 그렇게 돼?”

언제 성질을 냈냐는 듯, 약자 포지션이 된 마루가 급히 변명거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선물까지 들고 왔는데, 이렇게 문전박대 할 거야?”

그러며 품 안에서 꺼낸 건?

두툼한 봉투 하나!

“흐음...”

이를 게슴츠레 바라보던 모친이 한숨을 푹 내쉬며 대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봉투를 받아 확인하는데, 내용물이 심상찮아 잠시 두 눈이 동그래졌다.

“웬 일로 우리 짠돌이가 돈을 다 썼대?”

그러며 던지는 질문에 마루가 급히 문지방을 넘으며 말했다.

“좋은 일이 있으니까 그렇지.”

그 순간 모친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여자 생겼구나?”

“......”

마루가 눈살을 찌푸리며 모친을 바라봤고, 그 눈빛에 모친이 짜게 식은 눈으로 반격했다.

“생긴 건 멀쩡한데. 에휴~!”

한숨을 푹푹 내쉬며 돌아 들어가는 모친의 뒷모습에, 마루는 그저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었다.

분명, 금의환향의 순간이건만,

‘뭐지?’

그림이 요상했다.

< #21. 헌터 정마루.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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