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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표현할 방법이 없네. >

“헤에...”

막둥이이자 늦둥이이며 집안의 재간둥이인, 여동생 정다솜이 신기한 눈초리로 신분증을 바라봤다.

“이게 정말 혜성길드의 사원증이란 말이지?”

마루는 그 모습에 실소하며 말했다.

“가짜 아니다.”

“앗! 어케 알았지.”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데 어떻게 모르겠냐.”

“헤헤!”

“웃기는.”

거기까지 말한 마루가 슬쩍 가족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뻥 아니라고요.”

“손모가지 걸고?”

두 살 위의 장남, 정가람의 물음에 마루가 발을 내밀었다.

“발모가지도 건다.”

“치워, 냄새난다.”

그 말에 발가락 웨이브를 한 차례 보여준 뒤 회수했다.

“아니. 그런데 갑자기 웬 혜성 아파트? 살던 집은 어쩌고.”

“거기야 전세였으니까.”

“워~! 자가 구입? 돈 많이 벌었네.”

“커험! 형님이 능력 좀 된다.”

짐작건대 모친 때문에 관련 소식을 금하고 있었으리라.

여전한 의심으로 사원증에 이빨을 들이미는 등, 쓸데없는 짓을 하는 정다솜을 밀어내며 물었다.

“갑자기 이사 갔단 소리에 깜짝 놀랐잖아.”

“너도 참, 그걸 또 속냐. 남은 평생을 여기서 살다 가시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 하시는 분들이신데.”

“혹시나 싶었지.”

그러며 슬쩍 막둥이를 바라봤다.

“저 녀석이 허구한 날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니까.”

“씨알도 안 먹힐 소리지. 여기로 이사 온 뒤로 운수가 트였다면서, 웃돈에도 안 파시는 분들이야. 게다가 그 뭐냐. 네가 보안이니 뭐니 하면서, 이것저것 심어놨잖아. 그거 아까워서라도 안 파실 걸.”

그 말 그대로였다.

‘하긴, 다솜이도 여기 와서 보셨으니.’

그와는 무려 열다섯 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었고, 그 때문에 부모님은 더더욱 기적 같은 아이라 말씀하시고는 했다.

특히, 그토록 바라던 딸아이라며 더욱 좋아하셨다.

[시커먼 사내새끼 둘 키워보니까. 딸내미가 최고더라.]

부모님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게다가 가게에 입소문이 나며 장사길이 열린 것도, 이곳으로 이사 온 이후가 아니던가.

형제들이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름의 정을 나누고 있을 즈음, 모친이 한 상 가득 먹을거리를 들고 등장했다.

“밥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와.”

“먹기 싫으면 말어.”

정다솜의 투정에 모친이 눈을 부라렸다.

“안 먹는다는 건 아니고. 힝! 다이어트 해야 되는데.”

“삐쩍 꼴은 게, 뭐 더 뺄 게 있다고. 쯧!”

그 대화를 유심히 지켜보던 마루가 슬쩍 물었다.

“남자친구 생겼냐?”

“뭐?”

순간, 소파에서 손주의 재롱에 빠져있던 부친이 벌떡 일어났다.

“히끅...끅...흑...흐앙~!”

화들짝 놀란 손주의 울음소리가 터지고, 부친이 제 실수에 당황하는 사이, 아직 부엌에서 정리 중이던 마루의 형수, 안미연이 달려와 아이를 받아들며 달랬다.

“이이는 참.”

모친 이미자 여사가 부친 정길한의 등짝을 쳐 쫓아냈다. 시무룩한 얼굴로 라이터를 들고 나가는 부친의 모습에 정다솜이 타박했다.

“오빠는 쓸데없는 소리를 해선.”

“그냥, 농담 좀 한 거지.”

말과는 달리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는 않았다.

“하여간...”

이에 정다솜이 눈을 흘겼고, 마루는 어깨를 으쓱이며 시선을 피했다. 안미연의 노력 덕분에 아이가 울음을 그치면서, 거실의 분위기가 복구될 수 있었다.

“와...우리 오빠가 설마 각성자가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게다가 지금 나이면, 늦깎이 각성자 아니야? 그런데 벌써 C급이라니. 이 정도면 거의 돌연변이 수준이네. 멋지다. 멋져!”

정다솜이 쌍따봉을 날리는 모습에 마루가 실소하며 물었다.

“용돈 필요하냐?”

“헤헤!”

들켰다며 혀를 내미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보통 여동생을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던데, 그들 집안은 좀 달랐다.

워낙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인 탓일까?

가람과 마루는 여동생을 거의 딸처럼 키웠고, 그 때문인지 그들 두 형제는 틱틱 대다가도 막둥이의 애교에 살살 녹아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거의 원 패턴이었다.

“축하한다.”

모친이 그러면서 사과 하나를 집어주는데, 말과는 달리 표정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애초에 헌터 자체를 반대하던 모친이었다. 특히, 비각성자가 그 험한 전장을 구른다는 이야기에, 매번 노심초사 하시던 분이 아니던가.

부친 따라서 고기 썰다가 가게나 물려받으라는 게 명절 레퍼토리가 된지 오래였다.

이제와 각성도 하고 대형 길드에도 들어갔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마음이 변할 리야 없을 것이다. 단지, 아들이 그토록 바라던 일이 이뤄졌음에, 마지못해 저처럼 한 마디 던지시는 것이리라.

아들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모정을 알기에 마루는 새삼 죄송스런 마음이 북받쳤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항상 안전이 제일이다.”

어느새 돌아온 것인지, 부친이 그리 말하며 끼어들었다.

“걱정 마세요. 총기류 각성이라서 멀리서 손가락만 까딱이는 게 전부니까요.”

그 말에 가족들의 표정에 옅은 안도의 기색이 맴돌았다. 특히, 모친의 얼굴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는데,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더 현장에서 멀어진다는 부분 때문이리라.

총기류 각성자의 단점.

[사념폐해]

그에 대해선 대외적으로는 알려진 바가 없기에, 가족들의 반응이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이런 반응을 기대하며 언급한 것이기도 했다.

“짜식이 넌 그런 걸 먼저 말했어야지.”

“오빠, 그래서 어떤 스킬이야?”

덕분에 한층 화기애애한 공기 속에서 가족 간의 오붓한 시간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그러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즈음, 마루는 오늘 찾아온 실질적인 목적을 꺼내들었다.

“제가 최근에 건강에 좋은 운동법을 하나 배워왔는데. 이게 정말 괜찮은 거라서. 나 혼자만 알고 있기가 뭐하더라고요.”

바로 ‘스킬의 전수’였다.

혜성길드에 들어가며 자리를 잡았다는 걸 알리는 것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게 바로 이거였다.

[활력의 춤]

신체 회복력 증가 효과를 지닌 성직계열 연공법의 하나로, 전직 후 중간지점인 75레벨에 익힐 수 있는 스킬이었다.

최근에 밖으로 끄집어 낸 스킬로써, 마루는 이를 통해 느껴졌던 감각에 깜짝 놀라야만 했다.

‘기운이 쌓였지.’

마치, 현실에서 사냥 뒤 ‘경험치’를 흡수하듯, 호흡과 몸짓 그리고 그에 따른 흐름을 타고 외부의 기운이 스며드는 걸 느꼈다.

사냥 후 경험치와 비교한다면야 그 양은 극히 미세한 수준일 뿐이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제대로만 익히면, 잔병치레 걱정 같은 건 안 해도 될 거야.”

평소, 오염된 여의주는 반드시 불순물을 걸러낸 뒤에야 경험치를 흡수하고는 했다.

하지만 ‘활력의 춤’으로 끌어들인 기운의 경우, 어떠한 여과작업도 없이 온전히 받아들였었다.

‘걸러낼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티끌만한 기운이긴 하지만...’

어찌됐건 여의주가 인정한 기운이었다.

‘그만큼 깨끗하단 거겠지.’

성직계열 스킬이기 때문이리라.

결정적으로 한 가지 더!

‘익히기도 쉽고.’

내부의 미세 근육 조절이 핵심인 여타 스킬들과 다르게, 활력의 춤은 큼직한 몸동작과 딱 떨어지는 호흡 등, 단순 조합만으로도 발현이 가능했다.

한참을 실험하고 고심해 본 결과, 가족에게 전수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뭐야? 설마, 혜성에서 배운 거야?”

정다솜의 물음에 잘 됐다 싶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지. 이거, 저기, 그 높은 양반들만 익히는 거야.”

혜성의 간판이 새삼 달가웠다.

“따로 외부에 알리지 말고 몰래 익혀야 돼. 알았지?”

그렇게 단단히 자물쇠를 채울 수 있었다.

“윗사람들 익히는 건데, 괜찮겠니?”

슬쩍 걱정하며 거부의사를 밝히는 모친이었지만, 한 마디로 제압 가능했다.

“피부 미용에 좋아.”

그 순간 여동생이 눈을 번뜩이며 달려들었고, 한쪽에서 귀만 기울이던 형수도 슬그머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는 남성진도 다르지 않았다.

“남자에게 참 좋은데. 정말 좋은 건데. 허...”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거 참, 표현할 방법이 없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

단야 대장간의 주인, 강하나는 뜻밖의 정보를 접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떠야만 했다.

“혜성길드 특수 1팀?”

올해 막 각성한 늦깎이 능력자가 그 대단한 길드의 간판 팀에 들어갔다는 것이 아닌가.

“마루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오랜 지기가 그 주인공이라니.

“그렇다더라.”

부친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어떻게, 괜찮은 선물 하나 해야 하지 않겠냐?”

그 말에 강하나가 최근 만들고 있는 물건을 하나 떠올렸다.

“이미 작업 착수했어.”

“어? 언제?”

“전에 왔을 때. 각성했단 소리 듣고, 심심파적 삼아서.”

“뭐냐?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하자.”

강철이 급 호기심을 드러냈고, 강하나는 잠시간 갈등하다가 물건을 보여줬다.

“호...”

제작중인 무구를 확인한 강철의 눈이 빛을 발했다.

“...이거, 새로운 도전이구나.”

그 말에 강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어렵네. 좀 도와줄 수 있어?”

“호~!”

딸아이의 요청에 강철의 입 꼬리가 쭈욱 올라갔다.

“아빠가 필요해쪄요? 그래쪄요?”

그에 맞춰서 강하나의 눈초리가 매섭게 변하지만, 한 번 올라간 입 꼬리는 쉬이 내려올 줄을 몰랐다.

강하나의 이마 위로 힘줄이 불룩 솟았다.

“도와줄 거야 말 거야?”

“...어째 도와주는 태도가 영 아니다? 어? 망치는 왜 드는 건데? 꼭 내려칠 것처럼.”

“대답하는 거 봐서 결정하려고.”

그제야 입 꼬리를 내린 강철이 거북목이 되어선 답했다.

“당연히 도와줘야지. 어? 도와준다니까? 그 투척 자세는 뭔데?”

“나 혼자 한다!”

성난 외침이 터지고, 대장간에 망치질이 시작됐다.

**

활력의 춤!

무려 75레벨에 익힐 수 있는 스킬이긴 하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은 스킬이었다.

그 이유는 스킬 자체의 활용도 때문이었다.

‘단순하게 회복력 증가로 끝이니까.’

스킬 버프 효과 같은 건 없었다.

“그래도 회복 속도 하나는 제법 괜찮은데.”

대다수의 유저가 신속한 사냥을 중시하는 만큼, 물약으로 대체할 수 있는 부분에 굳이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없었다. 유저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휴식 시간을 투자하기엔 아까운 스킬인 것이다.

하지만 몽크들에게는 중요 스킬로 인지되고는 했다.

Holy-Sip스킬과의 연계 때문이었다.

‘개 같은 춤사위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활력의 ‘춤’이라고 불리지만, 실제 외형은 마치 무예의 품세처럼 단정하며 격식이 있어, 보는 맛이 있던 것이다.

막춤 같은 홀리십 스킬의 우스꽝스런 특징을 생각해 봤을 때, 활력의 춤은 반드시 거쳐 가야만 하는 스킬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말만 성직계열 스킬이지, 몽크 전용 스킬처럼 분류되는 스킬이기도 했다.

“활력의 춤. 활력의 춤. 활력의 춤...”

마루는 연신 그 이름을 읊조렸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다른 스킬들은 이런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연공법으로 분류되는 PRI나 홀리십 스킬 역시 현실에서 사용한 바 있지만, 활력의 춤 같은 감각은 전혀 없었다.

‘굳이 구분하자면...’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 할까?

활력의 춤이 여의주가 기운을 흡수하는 느낌이었다면, 앞의 두 스킬들은 역으로 여의주가 기운을 발산하는 느낌으로써, 이는 다른 일반 스킬들도 마찬가지였다.

‘게임에선 일단 홀리십하고 조합은 끝냈는데.’

말이 조합이지 홀리십에 ‘흡수’시켰다고 봐야 했다. 직업 전용스킬과 일반스킬의 격차로 인한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그로 인해 회복력이 장점인 활력의 춤 효능이 거의 사라졌지만, 그 대신 홀리십의 춤사위가 절도있는 품세로 변형되는 것이다.

이후로도 비슷한 과정들을 거듭할 경우, 이전 캐릭터가 사용하던 수준의 멋드러진 품세의 홀리십을 완성시킬 수 있을 터였다.

문득, 궁금해졌다.

‘변형 홀리십은 어떠려나?’

과연 그것도 활력의 춤처럼 뜻밖의 반전을 줄까?

‘빨리 숙련도를 올려야겠네.’

게다가 궁금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활력의 춤 말고도 더 있을까?”

느낌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현실에서 다른 이들에게 적용되는 스킬이란 게, 왠지 이걸로 끝일 것 같지 않았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갔다.

< #22. 표현할 방법이 없네.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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