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전수. >
‘누구지?’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기억을 뒤적일 때, 라시아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엄청 예쁘죠? 부잣집 아가씨인데, 집안 도움 없이도 혼자 직장다니면서 알차게 사는 언니에요. 무려 KHA에서 일한다니까요.”
‘KHA?’
그게 힌트였다.
‘아!’
어째서 눈에 익은가 싶었더니, 아는 여인이었다.
‘그래. 그러네. 특징이 있네.’
게다가 몇몇 익숙한 버릇들도 보였다.
‘걸을 때 고개 흔드는 거, 디딤발 길게 뻗는 거라거나...’
눈썹을 연타로 들썩이는 것 등등, 여러모로 기억 속 여인의 특징과 일치했고, 덕분에 확신할 수 있었다.
‘각성 측정부의 김나연.’
라시아처럼 초능력 수준은 아니지만, 그 역시 제법 눈썰미가 있는 편이었다. 과거, 현실에서 클놈을 알아본 것 역시 이와 관련 있었다.
게다가 김나연은 KHA에 갈 때마다 마주친 만큼, 눈에 익을 수밖에 없었다.
‘와...’
떠도는 격언 하나가 떠올랐다.
믿지 말자 화장발!
다시 보자 조명발!
속지 말자 보정발!
현실에서도 예쁜 얼굴이건만, 얼마나 보정을 한 것인지, 게임 속 모습은 완전 연예인이었다.
‘이러니까 알아보기 힘들지.’
이와 반대로, 역보정의 대표주자를 꼽자면 강하나의 허파is토스가 있었다. 성별까지 착각될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랴.
어쨌든 KHA의 김나연을 떠올리며 다시 보니, 확실히 닮은 구석들이 제법 있었다.
‘그나저나 부잣집 아가씨라니.’
평소 이미지와 많이 달랐다.
KHA본부에서 본 그녀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에, 더욱 큰 반전으로 다가왔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나연씨가 마총사라...’
아는 사람이란 부분에서, 스킬 전수의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일단 모른 척 하자.’
현실세계 인연은 최후의 보루였다.
어차피 그 역시 외형 보정으로 현실과 다른 얼굴이지 않던가. 잠시 가면을 벗고 인사를 나눴다.
“처음 뵙겠습니다. 장관장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여나라고 해요.”
아이디도 확신에 손을 거들었다.
‘이름 거꾸로 한 거네.’
라시아가 끼어들며 물었다.
“몽크에 마총사지만, 둘 다 베테랑이니까. 사냥은 문제없죠?”
이에 한 차례 눈빛 교환을 한 마루와 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루는 남다른 스탯 뻥튀기가 있었고, 여나의 경우에는 본캐가 3차 전직까지 마친 실력자였다.
게다가 계열도 본래 캐릭터인 궁수와 비슷한 저격수여서, 직업군과 무관하게 1인분은 할 수 있었다.
“3인 파티로 가게?”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달리, 몽크 직업군에 대한 의심은 남아있는 듯, 그녀가 약간은 못미더운 음성으로 슬쩍 물어왔다. 목소리를 낮췄지만 다 들렸다.
라시아가 히히 웃으며 말했다.
“저 아저씨를 보통 몽크로 보면 안 돼. 검색어 순위권에도 올랐다니까. 유명인이야.”
그러며 여나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데, 언뜻 들려오는 ‘호로로’라는 단어에 깜짝 놀라야만 했다.
‘아니, 그것도 알아봤다고?’
경이로울 정도의 눈썰미였다.
‘진짜 초능력 아니야?’
속삭임을 들으며 조금씩 달라지는 여나의 눈빛이 보였다.
[18대 1의 전투!]
호로로와 탈곡기의 일전은 여전히 인기가 있었다. 마루 덕분에 2탄까지 만들어 우려먹으니, 90탄의 방송도 크게 화제가 되며, 연일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중이기도 했다.
영상으로 인해 마루도 주머니가 빵빵해지니, 관련해서 큰 불만은 없었다.
‘적어도 올해는 지나야 좀 잠잠해 지려나.’
그 덕분일까?
“파이팅 해 봐요!”
“아자아자!
“가자!”
3인 파티 체재로 사냥이 시작되었다.
**
신관이라고 하면 대개 후방에서 버프만 줄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이는 큰 착각이었다.
물론, 무직자일 경우엔 거의 크리쳐 수준이지만, 1차 전직을 하고 제대로 된 전용스킬을 받으면? 그들도 나름의 전투 특화 스킬을 개화하게 되면서, 이미지가 크게 개선되는 것이다.
“속박의 빛!”
라시아가 주문을 외우고, 신관 스킬이 발동되면서 밝은 빛 무리가 떠올랐다.
그에 따라 주변 그림자가 크게 축소되는데, 이 스킬의 특징은 지정 대상을 그림자의 영역에 가둬두는 거였다.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화끈한 불 맛을 보는 거지.’
어둠만이 저들의 쉼터였다.
그 덕분에 마루는 편하게 표적사냥을 할 수 있었다.
‘찌르고, 쑤시고, 후비고...’
그림자에 갇힌 몬스터들은 협소한 공간 속에서 열심히 몸을 흔들다 죽어나갔다.
창술의 기본 숙련도야 올려놨지만, 아직 데미지가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부분은 라시아의 도움으로 해결 가능했다.
“별의 가호!”
지금도 적절한 타이밍에 발현된 스킬에 의해, 창날에 별빛이 스며들고, 예기가 상승하면서 단숨에 사냥감을 꿰뚫을 수 있었다.
“용맹의 노래!”
그간 경험치를 꽤 쌓은 듯, 요소요소 절묘하게 버프를 넣어주며 그의 몸짓을 한층 날래게 만들어줬다.
여러모로 합이 잘 맞았다.
‘확실히 센스가 있네.’
물론, 위기의 상황이 없던 건 아니다.
미흡한 창술 스킬 때문이었는데, 넘치는 스탯과 실전의 감각으로 커버해 봤지만, 아무래도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파앙...
대기가 터져나가는 충격파와 함께, 어디선가 날아온 탄환 하나가 그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크워어억!
비명을 내지르며 휘청거리는 사냥감이 보였다.
푹!
창으로 마무리를 지으며,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여나를 떠올렸다.
‘본캐가 궁수여서 그런지 저격 타이밍을 잘 잡네.’
그리 생각하던 마루가 좀 전에 쓰려트린 사냥감을 바라봤다. 정확히 관자놀이 위로 총상이 남아있었다.
군침이 돌았다.
‘츄릅...’
이 정확도의 ‘비밀’을 알기 때문이다.
저기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있었다. 그 때문에 총상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집어넣은 채, 사냥을 하며 이를 분석했다.
‘호오...이것, 보소?’
그리고 내린 결론이 입 꼬리를 올렸다.
‘뭘 거래해야 할지, 견적이 나오네.’
상념은 짧았다.
“한 눈 팔지 마요!”
라시아의 일갈에, 창대를 바로잡아야만 했다.
**
“와...정말 어마어마하네.”
여나는 조준경에 담긴 현장을 보며 연신 탄성을 터트렸다.
“탈곡기를 상대로 무쌍 찍었다더니.”
더욱 놀라운 건, 지금 저 모습이 전용 스킬도 아닌 기본 스킬이란 점이었다.
[2차 전직 대비해서 작업 중이라, 죽창 좀 들게요.]
낭창거리는 창날이 사냥감을 농락하는 모습이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수준이었다. 저게 정말 기본 스킬이며, 초심자의 재주인가 싶을 정도로 매끄러웠다.
‘틈이 없진 않지만...’
주먹만 쓰던 몽크가 너른 간격의 창대를 움켜쥔 까닭일까? 중간중간 거리 조절의 미스로 뒷걸음질을 치는 모습이 비쳤는데, 그 정도는 그녀의 저격으로 보조할 수 있었다.
라시아가 펼친 속박의 빛 덕분에, 몬스터 커트도 한결 수월했다.
딜탱, 버프, 저격.
확실히 나쁘지 않은 조합이었다.
몽크 그리고 마총사!
하지만 내용물이 함정이었다.
“원래 이렇게 쉬운 사냥이 아닌데.”
특히, 아직 마총사로써 불완전한 그녀 때문에, 더더욱 어려운 사냥이 돼야 정상이었다.
‘이건, 전부...’
그녀의 시선이 조준경 속으로 들어갔다.
‘...장관장. 저 사람 때문이겠지.’
내심 부러운 마음도 컸다.
“어떻게 하면 몽크로 저만큼 할 수 있는 거야?”
방어력에 특화된 직업으로 저런 공격력이라니.
“생태 파괴종이란 별명이 괜한 게 아니네.”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쳇! 나도 ‘약점’만 해결하면 1인분 이상도 할 수 있을 텐데.”
2차 전직까지 버텨 봤다가, 그래도 답이 없으면 다시 궁수 캐릭터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때까지 약점 해결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의외의 방향에서 해법이 나타났다.
“거래...요?”
“예. 지금 겪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해 드릴게요.”
사냥이 끝난 뒤, 라시아가 퀘스트 보상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뜻밖의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문제점이라뇨?”
제대로 알고하는 소리인지, 확인을 위해 슬쩍 튕겨봤다.
“화력부족 때문에 골치잖아요.”
눈이 동그래졌다.
“장관장씨가 그걸 어떻게?”
그녀는 자신의 ‘약점’을 정확히 짚어내는 그의 모습에 깜짝 놀라야 했다. 분명 화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이번 사냥에선 충분히 1인분을 했고, 그 때문에 모를 거라 생각했다.
마총사란 직업군의 희귀성으로 인해, 눈치 채기도 어려운 부분이었다.
“예전에 마총사 유저하고도 몇 번 파티를 짜 봤거든요.”
지금이야 전설 속 기린이니 뭐니 불리지만, 마루가 게임을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그래도 제법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 기억이 그녀의 단점을 잡아냈다.
‘너무 약해.’
마총사의 장점이자 단점은 강력한 한방 파괴력으로써, 그만큼 반동이 심해 연사가 어렵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 때문에 ‘사거리’만 장점으로 언급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파괴력은 손에 꼽히지.’
아는 이들은 전부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원샷 원킬은 기본인데.’
여나는 딱 보조 저격 정도의 역할만 했다. 마무리는 전부 그가 하지 않았던가. 이를 통해서 그녀의 문제점을 알았다.
“대장장이 스킬이 말썽이잖아요?”
마총사를 더욱 비주류로 만든 결정타.
“총기 제작법, 구하기가 쉽지 않죠?”
“으음...”
“무작정 대장장이 스킬만 배운다고 끝이 아닐 걸요? 마총사라는 직업에 걸맞게, 건스미스 기술이 필요하니까요.”
이 부분이 포인트였다.
“기술자를 찾아가도, NPC 장인은 정식 대장장이가 아니면 가르쳐주질 않으니, 결국 유저 중에서 기술자를 찾아야 하는데...쉽지 않죠?”
총화기가 PP의 세계관 내에서 귀족들의 전시품 역할을 하다 보니, NPC들 중에선 배우는 이들을 제법 찾아볼 수 있지만, 일반 유저들은 실용성이 떨어진다며 멀리하는 기술이었다.
골 때리는 설정이었다.
“아시다시피 PP에서 총기는 인기가 없습니다,”
당연히 유저 기술자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예전에도 그랬지.’
함께 파티를 했던 마총사들도 이 부분 때문에 접을까 생각 중이라며, 불평불만을 줄줄이 늘어놓고는 했다.
‘그리고 죄다 접었지.’
과연, 비주류의 센터다웠다.
“건스미스 제작자를 알고 있는데. 어때요?”
그러며 눈짓으로 제안한다.
[거래, 콜?]
적잖은 고민 끝에 요나가 물었다.
“내용부터 들어보고 결정하죠.”
이에 마루가 웃으며 답했다.
“스킬 전수!”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너무...싸게 먹히는 것 같네요.”
“그렇죠? 그 귀한 총기 제작법을 익힐 수 있는 기회인데, 스킬 숙련도 날려먹는 것 정도야 별거 아니죠.”
스킬 전수의 유일한 단점!
숙련도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총기 제작법인데. 그 정도쯤이야.’
거래라는 소리에 잔뜩 긴장했던 게 우스울 정도였다. 단지, 이 와중에 의문이라면 하나뿐이었다.
‘스킬 전수라고 해도, 핵심 스킬은 배울 수 없을 텐데.’
게다가 몽크와 어울리는 스킬도 없었다.
‘창술 스킬하고 관통계가 좀 어울리긴 하지만.’
그걸 굳이 마총사에게 배울 필요가 있나 싶었다. 일단, 그쪽으로 초점을 맞추며 질문을 던졌다.
“어떤 걸 원하시죠?”
“스토킬! 그걸로 주십쇼.”
잘 못 들었다 생각했다.
“스토킬 맞습니다. 유도탄 스킬이요.”
능력 설명까지 추가됐다.
‘환청이 아니라, 진짜?’
그녀가 지닌 정확도의 ‘비밀’이자, 그들 마총사의 밥줄이라고도 불리는 스킬 중 하나가 아니던가. 연공법과 같은 핵심 스킬은 아니지만, 주식 못지않은 부식의 파워를 지니고 있었다.
매력적인 스킬인 건 분명했다.
단지,
‘몽크가 유도탄을?’
이해하기 어려울 뿐이었다.
Why?
**
실로 뜻밖의 연락이었다.
[블록길드!]
마루는 그 문자를 보며 눈을 번쩍 떴다.
“맞다! 여기가 있었지.”
갑작스런 승급 현상으로 인해, 혜성에선 생각지도 못한 휴식기를 맞아버렸고, 던전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 길이 막막해진 참이었다.
“그런데...계약 끝난 거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위 용병 계약이다 보니, 기간도 짧아서 수시로 갱신을 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블랙의 부길드장인 장대수의 원래 계획은, 단기 계약으로 인연을 만든 뒤, 그 실력을 길드장에게 증명하며 장기 계약을 끌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갑작스런 던전 승급 현상으로 인해, 마루에게 신경을 쓰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블록 길드의 던전이 C급으로 올라버렸고, 당시 마루의 자격증은 D급이었다. 더더욱 그의 실력을 보여주기가 어려웠고, 하릴없이 계약 기간만 허비할 수밖에 없었다.
‘블록 던전은 첫날 이후로는 간 적이 없으니.’
던전의 안정화 및 안전지대의 확립 이전까진, 등급 아래의 헌터는 던전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돌변한 던전의 관리 때문일까?
“클놈 녀석들도 바빠서, 자주 보기가 어려웠고.”
이래저래 블록과의 계약도 애매해진 상태로 시간만 흘러버린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날아든 연락이었다.
“나 C급이었지.”
이젠 블록 던전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었다. 계약 여부와 무관하게 용병 출전이 가능한 등급이었다. 저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는 건, 일단 그가 좀 더 유리한 입장이란 뜻이었다.
‘적당히 단기로 재계약 하는 것도 괜찮겠네.’
슬금슬금 입 꼬리가 올라가려는 찰나, 핸드폰이 또 다시 진동하는 게 보였다.
‘블록인가?’
추가 메시지인가 싶어 확인하는 순간,
[강하나]
올라가던 입 꼬리가 뒤집어졌다.
“...꿀꺽!”
조심스레 내용을 클릭했다.
[당장 튀어와!]
정말로 튀어나갔다.
< #3. 전수.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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