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54화 (54/325)

< #4. G-EYE... >

한 아이가 있었다.

부족함 없이 자라 세상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 미소에 그늘이 끼는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돌발 게이트!

그 현장에 서서 참혹한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해 버린 것이다.

다행히도 아이는 무사할 수 있었지만, 당시 사건은 트라우마가 되어, 오랜 시간을 시달려야만 했다.

이를 벗어난 건, 우연히 하게 된 게임을 통해서였다.

가상의 세계에서 트라우마를 일으켰던 몬스터를 잡음으로써, 아이는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피가 두려웠다.

그럼에도 피를 봐야만 했다.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악몽을 피하기 위해, 몬스터를 사냥할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활을 들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마저도 부담스러워 더 멀리서 방아쇠를 당기고자 했다.

**

단야 대장간!

마루는 그 앞에서 수차례 망설였다.

끼이이익...

그러다 결국 대장간의 문을 열었고, 그 너머에서 번뜩이는 귀화(鬼火)를 볼 수 있었다.

‘히익!’

그게 강하나의 안광임을 깨닫고, 급히 목을 움츠렸다.

“미쳤지?”

다짜고짜 날아드는 욕설에도, 어째서인지 얌전한 합죽이만 될 뿐이었다.

“아주 돌았지? 제정신이 아니지? 주리를 틀까? 주둥이를 틀까? 명년 오늘을 제삿날로 할래? 산소가 필요 없지? 묏자리 잡아줘?”

이 갑작스런 폭언은 무엇 때문일까?

“여난지, 요난지, 그 골 때리는 년은 뭐야?”

마루가 스킬 전수를 위해 알려준 제작자, 그게 바로 강하나의 허파is토스였던 것이다.

그 귀하다는 건스미스 유저에 대한 정보였다. 여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장간으로 찾아갔고, 이후 꾸준히 허파is토스를 괴롭히는 중이었다.

덕분에 강하나는 때 아닌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젠장! 정보원이 나라는 건 비밀로 하라니까.’

뜬금없는 강하나의 소환령에 짐작하긴 했다.

“왜 그랬니?”

문득, 목소리의 톤이 바뀌는 걸 느꼈다.

한기가 가시고 온기가 깃드는데, 그 시점에서 마루는 더욱 큰 위기감을 느꼈다.

어째서?

“마...망치는 좀 내려놓지?”

활짝 웃으며 큼지막한 쇳덩이를 손에 쥔 모습이란,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고물은 쳐서 고쳐야지.”

“고치는데 망치는 왜?”

“TV는 왜 두드리는데?”

천둥신의 그것처럼, 망치가 날았다.

**

PP라는 게임 속에는 실로 다양한 공부들이 담겨있었다. 세계 각국의 제련기술도 그 중 하나였다.

강하나는 이를 통해서 스스로의 실력을 발전시켜왔고, 그 때문인지 게임 속 제작법들을 허투루 대하는 법이 없었다.

건스미스 자격증도 그런 과정에서 딴 거였다.

“NPC들도 진짜 ‘장인’은 몇 안 돼서, 이거 배우느라 얼마나 개고생 한 줄 알아?”

“그...그랬나.”

마루는 새 휴지를 콧구멍에 쑤셔 넣으며 어색하게 반응했다.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가까스로 멈춘 코피가 다시 터질까 겁난 탓이다.

‘이젠 나도 각성자라고, 진짜로 패네.’

비각성자일 때는 그래도 손속에 사정을 뒀었는데, 지금은 자비가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분노하는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다.

“하...숙련도 다시 올리는 게 얼마나 귀찮은데.”

마총사가 건스미스 제작법을 배우는 방법이 하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스킬 전수!]

그 때문에 어렵사리 유저 건스미스를 찾아도, 스킬을 배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기의 마총사들은 그 때문에 학을 떼며 떠나갔다.

차후 남게 된 마총사들의 경우, 대부분이 돈깨나 만지는 이들이어서, 돈으로 스킬을 샀다고 들었다.

그녀의 이야기에 마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제작법 가르쳐주게?”

마루가 정보를 제공했지만, 딱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강하나의 성격을 미루어 봤을 때, 결국 허탕만 치고 쫓겨날 거라 여긴 것이다.

상도덕이 없니 뭐니 할 수 있지만, 그는 정당히 정보를 주고 스킬을 산 거였다. 건스미스 유저의 정보는 그만큼 희귀하기에, 문제될 이유도 없었다.

‘귀찮게 한 만큼, 욕 좀 먹을 건 알았는데.’

코피까지 턴 이유가 있었다.

‘제작법 털린 거면 맞아도 싸지.’

입술을 말아 넣으며 다시 합죽이가 됐다.

“그래. 가르쳐 주기로 했다. 스킬들 전수하고 일일이 숙련도 다시 올리는 게 귀찮지만, 그만큼 뜯어낼 생각이야.”

하지만 그 정도로는 마루를 납득시킬 수가 없었는데,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쯧! 하필이면 아는 사람일 게 뭐야?”

기겁할 소리였다.

‘나연씨를 알아?’

“전에 나 각성할 때 측정해 준 동생이야. 어쩌다 알아봐서는, 끝까지 모른 척 했어야 하는 건데.”

애매한 친분관계였지만, 일단 안면이 있다는 게 중요했다.

“사실, 걔 부모님을 좀 알지.”

“부모님?”

“우리 거래처 사장님이야.”

문득, 김나연이 부잣집 아가씨라는 게 떠올랐다. 두 눈 가득 의문이 깃들지만, 이런 부분에서 강하나는 단호했다.

“난 너처럼 입 싼 여자가 아니란다.”

중지를 까닥이며 호기심을 일축해버렸다.

“몰랐더라면 그냥 쫓아냈을 텐데. 쯧!”

혀를 차며 째려보는 눈길에 마루가 거북목이 돼선 열심히 손을 비볐다.

“그나저나 거래는 뭐야?”

“응?”

“스토킬 때문에 정보 팔았다며.”

‘정말, 다 말했구나.’

한 치의 거짓 없이 순순히 분 모양이었다. 김나연에게 상도덕이 없니 뭐니, 속으로 한바탕 쏟아내는 것과 달리, 겉으로는 열심히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몽크가 무슨 스토킬이야?”

“어허! 몽크 해 봤어?”

“......”

“안 해 봤으면 말을 마. 오라버니의 빅피쳐는 함부로 재단하는 게 아니야.”

강하나가 조용히 망치를 들어올렸다.

“아...?”

**

마루는 양쪽 콧구멍에 새 휴지를 쑤셨다. 까불다 터진 쌍코피가 쉬이 진정되질 않아, 벌써 두 번째 리필이었다.

맘 같아서는 걸음아 나 살리라며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입사 선물 있다.]

분노의 소환령과 함께 날아들었던 문자 한 줄.

‘대체, 뭘 주려는 걸까?’

그 기대감이 마루를 붙잡아놓고 있었다.

“괘씸해서, 그냥 화로에 집어넣어 버리려다가 참았다.”

그리 말한 강하나가 큼지막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아빠하고 같이 만든 거야.”

‘오...!’

무려 강철의 솜씨까지 더해졌다는 소리에 깜짝 놀라야만 했다.

‘부녀가 힘을 모은 작품이라니. 꿀꺽!’

은연중에 부담되는 느낌도 있었다.

‘그런 걸 받아도 되나?’

공짜를 좋아한다지만 그래도 이건 좀 과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색을 읽은 것인지, 강하나가 한 마디를 더했다.

“목숨 값이라고 생각해.”

“...언제적 일을 아직까지.”

“이 정도 선물은 해야지.”

“물건 싸게 주는 걸로도 충분해.”

“네 덕분에 살린 목숨이야. 겨우 그 정도로 퉁칠 생각 없었다. 원래 너 각성하면 거기에 맞춰서 선물 하나 하려고 계획하고 있었어. 늦어도 20대에는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뭔 각성을 서른을 훌쩍 넘겨서 하냐. 쯧!”

“......”

오래전 ‘사건’까지 언급하고 나서니, 마루도 더는 부담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순수하게 선물에 대한 감탄만을 준비했다.

두근두근...

실제로 가슴도 뛰었다.

끼이이익...

그렇게 상자를 오픈하고,

“응?”

두 눈 가득 의문을 내비쳤다.

“불만이냐?”

이를 정확히 캐치한 강하나가 매섭게 노려봤다.

‘아 놔, 망치는 좀 내려놓지.’

“그럴 리가. 너무 기뻐서 감정이 막...막힌 거야.”

억지로 미소를 그렸다.

그도 그럴게,

‘총이라고?’

상자 속에는 총기 세트가 들어있었다.

강철과 강하나!

그들 부녀의 실력을 의심하진 않는다.

‘실력이야 믿지. 믿는데.’

단지, 거기에도 조건이 걸린다.

‘하지만 총기 제작은 처음이지 않나?’

도검류의 병장기나 방어구를 기대했건만, 뜬금없는 총화기가 튀어나올 줄이야. 당혹스런 와중에도 열심히 기억을 뒤적이는데, 그 어디에도 저들 부녀가 만든 총기는 없었다.

꺼억...

좀 전의 부담감이 거짓말처럼 소화되는 걸 느꼈다.

‘상자가 커서 장비 세트나 될 줄 알았더니.’

총기 세트였다.

애써 웃는데, 울렁이는 목울대가 불안감을 내비쳤다.

“싫으면 말고.”

그러면서 강하나가 상자를 회수하려 하자, 저도 모르게 뒤로 빼면서 품에 안았다. 상황이야 어쨌든 공짜가 아니던가.

“어허! 줬다가 뺏는 게 어딨어?”

기억이 완전한 것도 아니고, 그가 모르는 시점에 총기를 제작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장인소리를 듣는 인간들인데.’

명장 둘이 엉터리를 만들진 않았을 터.

‘그래. 그렇겠지!’

생각을 달리하고 보니, 상자 속 총기세트가 묘하게 반짝거리는 느낌이었다.

‘장인의 혼이 담긴 물건.’

슬쩍 콩깍지까지 씌워졌다.

“이름은 뭐야?”

“G-EYE!”

괜찮았다. 그래서 의심이 갔다.

“무슨 약잔데?”

“자이언트(Giant).”

의심이 더욱 커졌다.

‘저게 순순히 좋은 이름을 줄 리가 없는데.’

그 눈빛에 눈살을 찌푸린 강하나가 말했다.

“내가 지은 이름 아니야. 아빠가 지었어.”

마찬가지였다.

‘아저씨도 다를 게 없지.’

이름을 잠시 되새겼다.

‘커다란 눈. 커다란 눈. 커다란 눈...’

“큰눈이?”

흠칫하는 강하나의 모습에 답이 나왔다.

“개구리 큰눈이?”

“크흠! 아빠가 빨리빨리 승급하라며, 높이 도약하라는 의미에서 지었대. 게다가 자체적인 뜻도 좋잖아. 커다란 눈, 총기류 각성자는 멀리 잘 보는 게 중요하잖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물었다.

“너는 뭐라고 지으려고 했는데.”

“B-EYE...C......”

“그건 또 무슨 약잔데?”

“...Big.”

“에라이!”

C는? 시선을 피하는 걸 봐선 뻔했다. 누가 부녀 아니랄까봐, 똑같았다.

아니, 더했다.

**

갑작스런 던전 승급 현상과 그로 인한 일정의 변화.

“아깝게 됐어.”

블록 길드의 부길드장 장대수는 그 부분이 항상 미련으로 남았다.

“마루형 때문에요?”

조카 장현성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승급현상만 아니었으면, 우리 길드로 끌어들일 수 있었을 텐데. 하아...정말 알토란같은 친구인데.”

“하긴, 실력은 진짜죠. 듣기로는 승급까지 했다던데.”

“그러니 혜성에서 스카웃을 한 거 아니겠냐.”

이를 상기하니 더욱 속이 쓰렸다.

“빌어먹을 던전 승급!”

그 때문에 마루와 계약을 해 놓고도 부를 수가 없었다. 그들 블록의 관리 던전이 C등급이 되어버린 탓에, D급 헌터인 마루는 투입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몇몇 절차를 거칠 경우, D급 헌터도 C급 던전에 들어갈 수 있지만, 그게 상당히 까다로웠던 탓일까?

“길드장 멱살을 잡아서라도, 승인을 받아놓는 건데.”

겨우 D급 용병에게 연연할 필요 없다며, 그의 주장을 묵살해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죠. 길드장님 입장에선 그게 맞으니까요.”

던전을 맡고 막 도약을 위한 발판을 대던 시기에 사건이 터진 것이다. 하급 용병 때문에 신경을 분산시킬 이유가 없었으리라.

“쯧!”

알기에 이 정도로 그치는 거였다.

“지금부터 좋은 인연 만들어 가면 되죠. 이번에 승급도 했고, 던전 안정화도 얼추 끝나가니까. 던전 좀 같이 돌면서 친해지면 되죠.”

용병 계약이 끝난 것도 최근이었다. 이를 빌미로 다시 연락을 해 놓은 상태였다.

“그래야지. 혜성 길드도 던전 승급 때문에 마루 그 친구 위치가 애매한 것 같던데. 이참에 같이 던전 좀 돌면서 살살 꼬셔 봐야지.”

혜성이 눈독을 들인 이상, 전속 계약까지 바라는 건 무리겠지만, 용병으로 재계약을 하는 건 가능할 터였다.

“게임에서 만난 인연이랬지?”

“예.”

“던전 안정화도 끝나가니까. 너도 자주 접속해서 인연 좀 쌓아 놔. 같이했던 미애하고 수미도 데려가고.”

“거 참, 게임하라고 부추기는 겁니까?”

“그래.”

“엄마한테 이르면 되는 각?”

“시말서 쓰면 되는 각?”

“어우...”

직장 상사는 당할 수가 없었다.

**

스토킬!

마총사들의 밥줄이라 불리는 스킬로써, 유도탄 기능으로 말도 안 되는 정확도를 보여주는 게 특징이었다.

그 때문에 PP의 초기 무렵 적잖은 화제가 됐던 스킬이기도 했다.

‘궁수들이 배우고 싶어서 난리가 났었지.’

하지만 불가능했다.

‘스토킬은 사용조건이 있으니까.’

무려 2가지나 됐다.

첫째, 사거리!

[원거리 저격 시에만 발동.]

이 부분은 궁수들도 환영하는 바였다. 거리도 늘리고 명중률까지 높일 수 있으니, 만세 삼창도 아깝지 않을 수준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조건이 문제였다.

[총기 사용 시에만 발동.]

그 의미는 아주 간단했다.

[마총사만을 위한 스킬!]

그 때문에 황당했으리라.

몽크가 스토킬을?

누가 봐도 미쳤다고 할 터였다. 실제로 여나 역시 비슷한 눈빛으로 봤었다.

‘못 쓰는 건 아니지.’

마루는 PP의 세계관을 떠올렸다.

귀족들의 전시품으로 사용되는 총기는 실제 사냥에도 사용할 수 있는데, 이는 ‘일반 대장장이’의 손길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 의미인 즉, 일반인을 위한 총기도 있다는 것이다.

“대신, 더럽게 약하지.”

유저들이 붙인 별명도 있었다.

[BB탄총]

[공기총]

[딱총]

각종 마법과 환상, 기적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일반 총기 정도로는 이곳 기준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마루는 자신의 새 파트너를 봤다.

[G-EYE!]

“현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이곳 역시 총화기의 한계가 명확하지만, 그래도 게임처럼 밑바닥 계급은 아니었고, 한층 더 다양한 활용법도 존재했다.

‘게다가 이건, 보통 물건도 아니고.’

문득, 강하나의 설명이 떠올랐다.

[A급 특수탄도 장전 가능해.]

그게 의미하는 건 간단했다.

‘상위 던전도 OK!’

대장간의 지하 사격장에서 시연한 결과, 제대로 만든 작품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묵직한 손맛에 확신도 더해졌다.

오늘은 이를 확인하는 날이었다.

[블록 길드!]

던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4. G-EYE...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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