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감시자. >
호흡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왜 여깄어?”
마루의 물음에 초롱이가 답했다.
-불렀으니까.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혼잣말처럼 입에 담기는 했다.
“아니. 여기에 왜 있냐고.”
-건물주가 불러서.
같은 문답의 반복일 뿐이었고, 답답함에 가슴만 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초롱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돌아봤다.
-여기 공기 탁해. 기분 나쁘다.
그러더니 이젠 제법 자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올랐다. 아직 장기 비행은 무리지만 잠시 떠오르는 정도는 가능했다.
마루는 이를 올려다보며 새삼 깨달았다.
던전과 PP의 연결고리!
둘 사이에 분명한 접점이 있다는 것이다. 스킬의 발현으로 그 부분에 대해 짐작하고 있었지만, 초롱이의 등장은 이를 더욱 확실히 해 주는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해 궁리하고 있노라니, 날갯짓에 지친 초롱이가 그의 어깨로 내려앉았다.
-여기 기분 나빠. 지친다. 들어간다.
그러더니 뿅 하니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급히 불러보려 했지만, 마침 그 타이밍에 맞춰서 지원팀이 도착했다.
저들 앞에서 초롱이를 부를 순 없어, 결국 입을 닫으며 그들과 합류한 뒤 안전지대로 넘어갔다.
하지만 틈틈이 기회를 노렸고,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인지, 밖으로 나가는 던전 대기실에서 홀로 남는 타이밍이 나왔다.
그 시점에서 다시 초롱이를 불러봤다.
“초롱아.”
혹시 몰라 속삭이듯 입을 열었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던지 뿅 하며 초롱이가 나타났다.
-나 불렀어?
그러더니 대뜸 눈살을 찌푸렸다.
-으...아직도 거기야. 기분 나쁜 곳!
주변을 돌아보는 시선이 좋지 않았다. 마치 주변 공기를 밀어내려는 듯, 날개를 파닥이는 몸짓 가득 불쾌감이 묻어나왔다.
나오기가 무섭게 돌아가려는 듯 보여, 급히 생각해놨던 질문을 던졌다.
“기분 나쁘면, 저기로 같이 나갈래?”
그러면서 던전 입구를 가리키는데, 이를 본 초롱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저어보였다.
-안 돼. 아직 저기 못 지나가.
‘아직?’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답이었는데, 그 부분을 뇌리에 새겨 넣고 있노라니, 초롱이가 불쾌감에 몸부림을 치며 말했다.
-갈래. 나 아직 애기야. 매연 몸에 안 좋아.
그러더니 다시금 뿅 하니 사라졌다.
“어, 잠깐...”
짧은 문답이 끝이었다. 더 불러 봤지만, 이번에는 그의 부름에 호응하지 않았다. 입맛을 다시며 좀 전의 대화를 되새겼다.
‘아직이라고 했지?’
느낌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언젠가는 나갈 수 있단 뜻인가?’
왠지, 현실에서도 초롱이를 만나는 날이 올 것 같았다.
“형 안 씻어?”
상념은 거기까지였다. 샤워를 마친 장현성이 저 앞으로 머리를 털며 나타났다. 그와 마찬가지로 저격팀의 일원이다 보니, 간단한 샤워만으로도 몸 정리가 끝난 것이다.
“난 밖에서 씻으려고. 별로 땀도 안 흘려서.”
“그래도 찝찝할 텐데.”
“괜찮아.”
그들 저격수와 달리, 근접 및 지원팀은 직접적으로 몬스터와 부대낀 탓인지, 샤워 시간이 제법 길어지고 있었다.
“오늘 정말 엄청났어.”
그러면서 쌍엄지를 날리는 장현성의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형 승급했다는 소리야 들었지만, 이건 뭐 B급으로 올랐다고 해도 믿겠어. 솜씨 대단한 건 알았는데, 오늘은 정말 상상 초월이었다니까.”
내심 뜨끔한 이야기였지만, 변명거린 충분했다.
“원래. 우리가 장비만 잘 만나면, 포텐 터지는 건 일도 아니잖아.”
“하기야, 그게 총기 각성 특징이긴 하지. 그래도 괜히 오버클럭 크게 하고 그러진 마. 오래 가야지.”
그러면서 묻는다.
“새 파트너가 맞춤형이라며. 어디서 제작한 거야?”
“단야 대장간이라고 있어.”
그 말에 장현성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라? 단야에서 총기 제작도 해?”
“알아?”
“당연하지. 여기 던전 지대에 있는 대장간이잖아. 은근히 이름값이 있어서, 알만한 이들은 다 안다니까. 우리 3총사가 쓰는 장비도 거기서 제작한 거야.”
“그래?”
마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전투에서 확인했던 건, 다른 공방의 마크가 찍혀있었다.
“평소에는 보조 장비를 사용하니까. 개별 맞춤형이 아니라, 단체 주문형 장비. 오늘처럼 몸 풀기 사냥에 맞춤형 장비를 쓰긴 아깝잖아.”
일종의 단체복 같은 개념으로써, 길드 자체적으로 지원되는 장비였다.
“뭐, 오늘 사용한 작업복이 양산형이긴 해도, 퀄리티가 나쁘진 않아서, 적당히 써먹기는 딱이야. 것보다 단야에서 총기 제작한다는 소린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니, 그보다 단야는 어떻게 아는 거야?”
알만한 이들은 다 아는 만큼, 주문을 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는데, 그런 곳에서 개별 맞춤 제작을 했다는 게 놀라웠던 것이다.
“거기 주인하고 친구.”
“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일단, 고교 동창인데, 인연은 좀 더 길지. 부모님끼리 아는 사이라서.”
어릴 땐 틈틈이 만나는 사이였지만, 고교시절 우연히 같은 학교로 입학하면서, 과거 친분이 포텐을 터트린 경우였다.
“사장님이 엄청 미인이시던데. 학생시절엔 어마어마했겠네.”
“뭐...”
문득, 강하나의 고교시절을 떠올렸다.
‘유명하긴 했지.’
미모?
‘성격이.’
그 외모에 홀려 껄떡대던 사내놈 상당수가 구급차에 실려 갔었다.
“계란 한판.”
“뭐가?”
“그 녀석 학창시절 별명.”
“...뜬금없네요.”
마루가 쓰게 웃었다. 사타구니를 붙잡고 병원에 실려 가던 놈들이 얼추 그쯤 됐었다. 덕분에 어느 시점부턴 독사과나 독버섯으로 불렸던 게 기억났다.
‘깽 값으로 돈깨나 깨졌었지.’
잡담이 이어지는 사이, 샤워를 마친 다른 팀원들이 다가왔다.
“오늘 대단했어.”
“인정.”
김미애가 엄지를 세우고, 진수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대수를 비롯한 다른 팀원들도 각자 한 마디씩 더했다.
“솜씨 좋네요.”
“자주 좀 보자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계속 같이 갑시다.”
등 뒤를 맡길만한 실력자이기 때문일까?
용병이란 부분에서 묘한 거리감을 두던 이들 마저도, 하나같이 미소를 보이며 악수를 청해왔다.
혜성과 마찬가지로, 블록에서도 성공적인 던전 데뷔였다.
**
던전 바깥으로 나왔을 때, 마루는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을 수 있었다.
‘스킬의 영향이 남아있다고?’
통로를 넘기 전, 마지막까지 확인한다며 각종 스킬들을 발동시켰고, 그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거기에는 감각과 연결된 스킬도 적잖았는데, 이를 통해서 스킬의 여운이 남아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알게 된 사실 하나.
‘시선?’
감시자를 찾아낸 것이다.
[눈치, 코치, 피치, 귀치, 입치!]
이 다섯 스킬은 하나가 추가될 때면, 각각의 시너지로 인해 스킬 상승효과가 발휘되는 스킬들이었다.
아직 입치 스킬은 구현되지 않아서, 현실에선 오감을 전부 개방할 수 없었지만, 던전에서 발동시킨 스킬의 영향인지, 다섯 스킬의 시너지가 극대화 된 상태였다.
그 덕분에 그간 몰랐던 시선을 잡아냈다.
‘맙소사!’
여태 스킬이 이어진다는 점도 놀랍지만, 이곳 블록의 아지트 내에서, 그것도 제법 가까운 거리에 감시자가 있다는 건,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오싹한 경험이었다.
예리하게 날 선 오감을 통해, 정확히 그를 쫓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감각 연계로도 위치 파악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오래지 않아 스킬 효과가 사라지면서, 그나마 발견했던 흔적마자도 놓쳐버렸다.
호흡이 흐트러진 까닭일까?
“왜?”
진수미가 다가와 물었다.
이에 감시자에 대해 밝힐까도 싶었지만, 섣불리 입에 담기가 어려워 마른침과 함께 넘겨버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얼굴, 까매.”
“그냥 던전을 나와서, 그래서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보다. 피곤해진 모양이야.”
“좀 씻어.”
“그래야지.”
“냄새 나.”
“......”
일단은 모른척하기로 했다.
‘빨리 입치 스킬을 끄집어내야겠네.’
다섯 스킬의 조합까지 하고 싶었지만, 그건 2차 전직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라서, 당장은 불가능했다.
김미애가 끼어들며 물었다.
“뒤풀이 갈 거죠?”
억지로 목소리를 높였다.
“달려야지!”
**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세상에도 표면과 이면의 세계가 구분되어 존재했다.
암흑가라는 명칭으로도 표현되는 그곳, 거기에는 드러난 세상 못지않게 수많은 강자들이 우글대며 살아갔다.
레베카!
그녀 역시 이면을 살아가는 강자 중 한명이었다.
거기서도 특출난 실력자로써, 무려 A급의 끝자락에 이르러, 랭커에도 한 발 걸칠 수준의 강자였다.
남다른 역할을 부여받은 탓인지, 세상 이면에서만 활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의 임무는 실로 막중했다.
성녀의 그림자!
밤낮없이 성녀 레아의 곁을 지키며 호위하는 것이다. 헌데, 그런 그녀가 교황청이 아닌, 전혀 뜬금없는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South Korea!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으로 가 주겠니?]
성녀의 부탁 때문이었다.
[그분을 지켜주렴.]
레베카는 성녀가 말한 ‘그분’을 바라봤다.
‘C급 A형 헌터. 정마루!’
좀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착각인가?’
아주 잠시였지만 그의 경직된 모습을 봤고, 주변을 훑는 은밀한 시선도 느꼈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은신이 발각된 건가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렇다고 치기에는 마루의 시선이 너무 두서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게 된다.
‘착각일까?’
묘한 찝찝함이 남았다.
**
감시자가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정확한 기척을 파악하진 못했다. 그나마도 눈치코치 스킬의 오감개방의 연계로 겨우 시선만 잡은 정도였다.
내심 조급증이 일었지만, 그 때문에 더더욱 평소와 같이 행동했다. 예정된 일정을 갑자기 트는 건 좋지 않았다.
“달려! 달려!”
뒤풀이에서 신나게 먹고 마셨다.
“부어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 쭉쭉!”
그렇게 블록 길드의 특수 1팀 팀원들과 어울리며, 2차까지 신나게 달렸다. 3차 이야기도 나왔지만, 지쳤다면서 적당히 발을 뺐다.
연령대 있는 팀원은 1차가 끝나며 전부 빠졌기에, 따로 눈치 볼 이유도 없었다.
“벌써 들어가시게? 클럽은?”
장현성의 물음에 마루가 손을 저었다.
“어우...던전 뛰어서 그런가? 오늘은 좀 지친다.”
“늙어서 그래.”
“너도 머지않았다.”
“킁!”
남아있는 다른 팀원들과도 적당히 인사를 나눈 뒤, 마루는 귀갓길에 올랐다.
술기운이 한껏 들이치는 탓인지 휘적대고 또 휘청거리며, 주정뱅이마냥 밤거리를 어지러이 걷고 또 뛰었다.
얼마나 마신 것일까?
빠악!
“어이쿠!”
담벼락과 전봇대에 헤딩을 하고, 땅바닥에 다이빙을 하는 듯, 취객들의 전형적인 골병 루트를 타고 있었다.
지나는 행인들이 걱정스레 쳐다볼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시선이 무색하게 마루의 정신은 더없이 또렷했고, 몸뚱이는 매 순간 활력을 되찾아가는 중이었다.
[PRI 효과에 의해 스킬 위력이 상승합니다.]
[Holy-Sip 효과에 의해 스킬 위력이 상승합니다.]
실제로 그런 알람이 뜬 건 아니었다. 현실에는 알람 시스템 같은 건 없기 때문이었다.
‘A등급은 엔트라넷에 알람 기능 추가 된다던데.’
당장 그의 현실에는 없는 기능이었다.
어쨌든 마루는 그런 환청이 들릴 만큼, 너무도 선명한 육신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술 취한 주정뱅이?
우습게도 그 모든 것들이 전부 연기였다. 어딘가 있을지 모를 감시자를 의식한 몸부림으로써, 우스꽝스런 몸놀림은 홀리십의 춤사위였고, 이리저리 들이받는 행동은 PRI를 위한 혹사작업이었다.
물론, 술기운이 거짓은 아니었다.
[정마루]
[각성 등급 : B]
[컨디션 : 5]
[스킬 : 오염된 여의주] [#] [*] [@]
그 증거가 바로 엔트라넷 상태창이었다.
‘컨디션 5!’
환청마냥 들려오는 몸의 외침!
[칭호 ‘도전자’가 발동합니다.]
[모든 스탯이 5% 증가합니다.]
한껏 들이부은 알콜의 결과물이었다. 연공법을 통해 몸 상태를 끌어올렸지만, 누적피로는 무시할 수 없는 탓에, 컨디션은 5점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단순 수치만 놓고 본다면, 15%나 되는 3중첩 버프의 상승효과가 적용된 상태였다.
거기서 오감 개방이 이뤄졌다.
아직 입치 스킬은 미구현 상태라서, 눈치코치의 시너지 효과가 극한까지 발휘되진 않았지만, 3중첩 버프가 부족함을 채워줬다.
화아아악!
채우다 못해 넘친 것일까?
‘찾았다!’
감시자의 기척을 잡아냈다.
< #6. 감시자.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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