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57화 (57/325)

< #7. 웅크림? >

[착각일까?]

앞서 그런 의문을 느낀 뒤, 꾸준히 이를 머릿속에 담아둔 덕분일까?

이번에는 확신할 수 있었다.

‘들켰어!’

레베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목표물’을 바라봤다.

‘저게 연기였다니.’

술 취해 비틀대는 모습이 거짓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녀를 방심시키기 위한 밑밥의 일환이었을 줄이야.

그녀가 이 방면의 스페셜리스트가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눈치 채지 못한 채 넘어갔을지도 몰랐다.

‘연기력 좋네.’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C급 A형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겨우 그 정도 수준으로 그녀의 은신을 알아채는 건 불가능했다.

‘최소 B급!’

전력으로 은신을 펼친 게 아니라지만, 그래도 그녀는 이 방면의 전문가였다. 힘을 뺀 은신만으로도 충분한 ‘격’을 지닌 것이다.

[스킬 : 여명의 눈동자]

[새벽녘 어스름 속, 빛과 어둠의 경계를 살피는 눈.]

시각 계열의 스킬이지만 시력과 연관 있는 건 아니다보니, 저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근거리를 찾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남다른 눈 덕분에 시야의 사각을 절묘하게 넘나들 수 있었다. 밝은 장소건 어두운 장소건 그녀에게는 틈이 보였다. 이를 파고들며 쌓아올린 은신 능력이며 은신의 격이었다.

힘을 뺐어도 격은 격이었다.

‘어쩌면...A급?’

또 다시 고개를 저었다.

각성하고 1년도 안 된 사내였다. 성녀 레아가 관심을 쏟아 붓는 존재라지만, 그래도 1년도 안 돼서 A급은 너무 과했다.

‘말도 안 되지!’

발각된 걸 알았지만 기척을 지우진 않았다.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알릴 필요는 없지.’

그녀가 여유를 버린 채, 진지하게 은신에 들어가는 순간, 목표물의 경계심이 한층 더 높아질 터였다.

‘일단, 지금은 이대로 지켜보자.’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감시자에 대해 알아챈 목표물의 다음 행동에 대해서도 보고 싶었다.

‘달려들까? 함정을 파려나?’

그런 기대감과 달리, 목표물은 여전한 모습으로 취객 연기를 이어나갈 뿐이었고, 그 모습에서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목표물의 신중함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연기 참...잘하네.’

구토를 쏟아내는 퀄리티라니.

‘으...!’

실로, 가관이었다.

**

따로 뭔가 할 생각은 없었다.

감시자의 존재유무!

그 부분을 확실히 하는 걸로 충분했다. 감시자를 찾아내서 목을 죌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과거, 김연희가 붙인 요원들도 굳이 건들진 않았었다. 섣불리 건드렸다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앞전에는 기계장비를 이용한 감시망이었지만, 지금은 순수 능력을 통한 감시자였다. 어설피 접근하는 건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능력을 통한 감시자라는 걸 상기하며, 혹시 그가 감시유무를 알아챈 걸 들켰을까 싶어, 필살기까지 꺼내들었다.

“우웨에엑!”

과감하게 목젖을 후볐다.

“웨엑!”

연기 혼을 불태웠다.

**

두 번째 던전 승급!

앞전의 승급보다 한 등급 높은 정도였지만, 그 파급효과는 수십 배 이상 컸다.

이유는 간단했다.

[A등급!]

던전의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던전 하나만 변화한 게 아니라, 그에 딸려있는 던전지대 전체가 변화한 것이다.

승급 장소에는 4개의 던전이 있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A급에 오른 던전만 무려 3개였고, 남은 하나도 B+급은 되는 던전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수많은 헌터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던전의 안정화를 위해서였는데, 이를 내버려두고 방치하다간 ‘웨이브’ 현상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승급현상 자체가 아직 낯설다 보니, 웨이브까지의 기한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첫 번째 승급을 통해 작게나마 정보는 뽑아낸 게 있었다.

일단은 기존 던전의 웨이브 현상과 맞물려서 움직여도 된다는 결론이었다.

승급 현상 자체는 특이했지만, 던전 생태계는 기존 던전과 다를 게 없기 때문에, 크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갑자기 A등급 던전이 3개나 추가되었다는 점이었다.

사실, A등급 던전이 한 장소에 이만큼 밀집되어 있다면, 일찌감치 던전 클리어 및 해체작업에 들어가야 옳았다.

하지만 ‘던전 승급’이라는 특수성 때문일까?

[조사가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던전을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고, 주변 여러 길드가 던전 안정화를 위해 손을 보탰다.

물론, 여전히 관리자는 혜성이었다.

“원래라면 다른 구역에서 애들 좀 빼와야 했을 텐데.”

김연희는 그리 중얼거리며 던전 주변을 살폈다. 남다른 눈을 지닌 그녀의 동공 가득 실력자들이 넘실거렸다.

다른 길드의 지원군도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유달리 뛰어난 실력자들은 전부 외부의 인사들이었다.

해외에서 찾아온 헌터들이었다.

저들 덕분에 타 구역의 던전 공백을 방지할 수 있었지만, 이를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이곳 던전지대가 그야말로 폭풍의 눈이 되어, 매 순간 살 떨리는 긴장감이 맴돌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얼굴이 꽤 많네.”

그 말에 곁을 지키던 이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길드의 간부들이 정보가 부족하다?

실력자만 모인 장소이기에 더더욱 말이 안 됐고, 그게 의미하는 바는 아주 간단했다.

[이면세상의 주민]

물론, 각자 나름의 신분증은 있었지만, 그 대부분이 위장이며 거짓일 확률이 높았다.

앞전의 첫 번째 던전 승급 당시에도 겪었던 상황인 만큼, 당황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긴장감은 한껏 끌어올려야 했다.

한 단계 높은 던전의 등급만큼, 앞전보다 많은 불청객들이 찾아온 까닭이었다.

이면의 일원이 무엇인가?

[범죄자]

아닌 이들도 있겠지만, 암흑가를 살아가기에 기본 성향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신입 빼 놓은 건 다행이네.”

김연희는 그리 말하며 마루를 잠시 떠올렸다.

‘괜히 쓸데없는 관심을 사면 안 되니까.’

저 많은 이면의 주민들을 보라, 어떤 미친놈이 끼어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굳이 이면의 주민이 아니더라도, 목에 힘깨나 주고 방귀깨나 뀌는 헌터들의 경우, 성질이 괴팍한 경우가 허다했다.

휴가를 준 건 탁월한 선택이라 여겼다.

“뭐 하고 있을까?”

김연희의 혼잣말에 이에 이소희가 답했다.

“게임.”

“그렇겠네.”

잠시 실소한 두 여인이 다시금 던전 주변을 돌아봤다. 이번 사태가 진정되기 전까진, 매 시간 긴장하며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밤 깊은 시각, 오늘도 야근이었다.

**

마루는 귀가 즉시 PP에 접속했다.

컨디션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등 뒤를 쫓던 그림자를 떠올리면, 바로 드러눕고 잘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감시자와 무관하게 당장 게임에서 확인할 것도 있었다.

“일단...레벨업은 없네.”

블록 길드의 던전이 낮은 건 아니지만, 그의 레벨에 영향을 주기에는 부족했다. 게다가 치열한 사냥도 아니었다.

그래도 아주 의미가 없진 않았던지 경험치 창의 변화는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거였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인벤을 열었다.

“초롱아.”

-나 불렀어?

여의주를 나온 초롱이가 파닥거리며 날아오르더니, 언제나처럼 그의 어깨 위로 내려앉는 게 보였다.

마루가 앞서 던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물었다.

“아까 나왔던 장소. 거기가 혹시 어딘지 아니?”

초롱이가 고개를 저었다.

-몰라.

그러다 이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알까?

마루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아리송한 대답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의문을 느끼는 사이 초롱이가 답을 내어줬다.

-좀 더 크면 알거 같아.

초롱이는 성장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다는 게 떠올랐다. 건물주라는 단어도 그런 과정에서 배운 거였다.

“얼마나 더 커야 되는데?”

-음...머리에 뿔 나면?

‘뿔?’

거기서 슬쩍 새로운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그의 시선이 초롱이의 날개로 향했다. 저게 생겼을 무렵부터 가져왔던 의혹이었다.

“내가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초롱이 너 도마뱀 맞니?”

그 순간 초롱이 미간이 구겨졌다.

-누가 도마뱀이야!

제대로 화가 난 모양인지, 씩씩거리며 마루를 들이받았다.

그 작은 몸뚱이와 조막만한 머리로 박치기를 해 오는 것이 아닌가. 이에 마루가 입맛을 다셨다.

‘어으...시원하다!’

솔직한 심경이었다.

제법 강도가 있는 박치기였는데, 그게 딱 마사지 수준의 강도였다. 그래서 화가 풀릴 때까지 골고루 받아줬다.

그렇다고 이를 그대로 표현하진 않았다.

“어구구! 아이고고...”

앓는 소리로 연기력을 불살랐다. 그러며 몸을 이리저리 돌려주니, 전신 마사지가 따로 필요 없었다.

-앞으로 까불지 마!

리액션에 만족한 듯, 속사정을 모르는 초롱이가 그리 말하며 콧김을 뿜었다. 그게 꽤 귀여워서 웃음이 나오려했지만,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럼, 네 정체는 뭐니?”

-나?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답을 내어놓는다.

-드래곤! 맞아. 난 드래곤이야. 히히!

놀라운 내용이었다.

‘설마설마 했더니...’

초롱이가 고개를 빳빳이 세웠다.

-멋지지? 존경해도 돼.

귀여우면서 좀 얄미운 모습이라, 작게 주문을 외웠다.

“소환, 루미.”

-주인님 오늘도 정의로운 도우미가 되는 걸 허락해 주세요. 루미팡! 루미피! 루미~얍!

-히익!

아니나 다를까. 초롱이가 기겁했다.

급히 인벤토리 속으로 도주를 시도하지만, 안타깝게도 루미가 좀 더 빨랐다.

-꺅~! 초롱이다. 우리 겸둥이. 오랜만이야.

-으으...악덕 건물주!

초롱이가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왔다.

마루는 이를 무시하며 깜찍이들의 재롱을 구경했다. 그러며 머릿속으로 오늘 있었던 일과 좀 전의 대화 등을 차분히 정리했다.

‘초롱이의 성장으로 알게 되는 건, 어디까지일까?’

어쩌면 던전에 대한 비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감이 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궁금증도 이어졌다.

‘저 지식은 어디서 오는 거지?’

떠오르는 건 역시 하나밖에 없었다.

[오염된 여의주]

그 안에서 성장해 온 아이가 아니던가.

‘게다가 드래곤이라...’

초롱이의 성장이 한층 더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게 뭘까?

[수면]

가장 기본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마루는 그 외에도 초롱이의 성장을 부추길 수 있는 걸 알았다.

‘내 성장인가.’

그가 1차 전직을 하던 날, 초롱이의 날개가 생겼다.

‘2차 전직을 하면 어떻게 되려나.’

어쩌면 뿔이 나지 않을까?

-악덕 건물주!

조금 다른 의미로 뿔이 나긴 했다.

**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경험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경험치는 상위 몬스터 사냥으로 획득량을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PP는 이 부분의 제약이 컸다.

각 구간마다 구간에 맞는 수준의 몬스터만 깔아놓은 것이다.

1차 전직 구간인 50부터 100레벨의 경우, 거기에 맞는 50부터 100레벨의 몬스터만 깔려있을 뿐이었다.

그 때문에 90레벨쯤 되면 조금씩 사냥 경험치 획득량이 줄어들게 되는데, 유저들은 이를 정체구간이라 부르고는 했다.

이 부분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 던전으로 뛰어드는데, 던전 속 몬스터는 ‘정예’로 분류되기 때문이었다.

동레벨의 몬스터라도 경험치 획득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만큼 난이도나 위험도 역시 높아지겠지만, 빠른 성장을 위한다면 던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 때문에 라시아는 반쯤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비...빛이 보고 싶어!”

마침 정체구간이었던 탓일까?

[던전 콜?]

마루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게 실수였을 줄이야.’

더군다나 2인 파티였다.

불안한 감이 있었지만, 마루가 그간 보여준 말도 안 되는 모습들을 상기하며, 과감히 ‘도전’을 외친 것이다.

투귀와 검귀!

과연, 그 명성이 부족하지 않았고, 사냥 자체는 문제없었다. 2인 파티로 들어온 목적도 이뤄냈다.

[던전 클리어.]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특수 보상이 지급됩니다.]

성직자에게 유리한 암속성 던전만 돌았다지만, 그래도 2인 파티로 클리어까지 이뤄낸 건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받아낸 보상도 특별했다.

[일주일간 경험치 30%가 증가합니다.]

기간 제한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빠른 성장을 위한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쉴 시간 없어. 바로 GOGO!”

“저 아직 학생이라고요!”

“방학이라며.”

“아......”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정체구간을 빨리 건너뛸 수 있는 만큼, 라시아도 결국 백기를 들며 던전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쉴 틈 없이 달리고 달렸다. 그러다가 경험치 획득량이 줄어들라 치면, 좀 더 윗줄의 던전으로 넘어가 새롭게 업적을 만들어냈다.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특수 보상이 지급됩니다.]

[일주일간 경험치 20%가 증가합니다.]

비슷한 알람을 수차례 마주하며, 매 순간 광란의 질주를 거듭했다. 경험치 증가량의 차이가 조금씩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20~30% 내에서 머물렀다.

그렇게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던전이란 마굴 속에서, 미친 듯 몬스터의 살점만 뜯어댔다.

그 결과,

세 자릿수 레벨이 문을 열었다.

**

감시자의 존재를 알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는 두렵지 않았다. 초반에야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도 받았지만, 그것도 잠시 잠깐이었다.

‘쫄 거 없어!’

오우거를 잡고 난 이후였을까?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붙었다.

자존감도 되찾았다.

아직 자존심을 챙길 수준은 아니지만, 슬슬 어깨 정도는 펴도 된다고 여겼다.

무려 A등급 몬스터였다.

성체가 아니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피어를 발산할 정도였으니, 거의 레이드 클래스급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놈을 혼자서 사냥한 것이다.

그가 여전히 자신을 낮추고 감추는 건, 아직 각성 1년차도 안 된 ‘신인’이란 딱지 때문이었다.

혜성에 발을 담근 이유가 무엇이던가.

상위 던전 진입과 사냥 경험치 획득도 있지만, 이를 통해 자신의 남다른 성장도를 포장하기 위함이었다. 주변 시선을 혜성이란 간판으로 커버할 생각이었다.

그는 몸을 웅크린 거지 움츠린 게 아니었다.

[레벨 : 100]

도약이 머지않았다.

< #7. 웅크림?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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