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건가드. >
벽안금발의 외국인들이었다.
“요상한 무기를 쓰네.”
“이게 권총이야 저격총이야?”
하지만 그 언어는 너무도 유창한 한국어였다.
[번역기!]
기계음 없이 깔끔한 음질에서, 비싼 번역기를 사용 중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중요한 건 그런 것들이 아닌 불청객들의 정체였다.
‘하! 그래 이 쉐이들인가.’
마루는 한 눈에 저들을 알아봤다.
검은 색 눈물 속에 하얀 십자가를 담은 문신, 그게 특징인 만큼 몰라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그게 뒤집힌 역십자라면? 빼박이었다.
그레이 셰이드(Gray Shade) 클랜!
이면세상을 살아가는 범법집단으로써, 저 멀리 미국의 암흑가에서 말썽깨나 피우는 놈들이었다. 적어도 저들 터전에서 중상위권은 될 터였다.
‘저런 문신을 했다는 건, 신삥인가.’
차후에 연차가 쌓이면 문신 제거가 가능해지는데, 그 전까지는 필히 문신으로 신분증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유독 관련 정보가 많은 건, 과거에 저들과 한 차례 마찰을 빚은 바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들의 하부조직원과 빚었던 마찰이고, 중요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한 때는 괜히 겁먹고 움츠렸던 기억이 있었다.
그 때문에 도망치듯 미국을 떠나오지 않았던가. 이후로도 미국 파견은 자제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지난 기억이 떠오른 탓일까?
‘...짜증나네.’
확 하니 열이 올랐다.
게다가 저들이 보여주는 행태도 가관이었다.
“신기한 거 사용하네.”
“그러니까. 권총 같은데, 막 늘어나고 그러네.”
“나도 총기계열인데, 한 번 구경 좀 해도 되나?”
그러더니 한 사내가 G-eye에 손을 뻗고 있었다.
‘하...’
헛웃음과 함께 손목을 잡아챘다.
우득!
그리고 비틀었다.
“아악!”
거칠게 힘을 쓴 까닭인지, 뼈대가 우는 소리가 제법 요란했다.
“으악! 이 새끼가...아야얏! 잠깐, 잠깐만...야! 놔봐. 안 놔?”
마루는 비튼 팔을 억세게 움켜쥔 채, 씹어 먹듯 물었다.
“죽고 싶지?”
거기에는 진심어린 살기가 묻어있었고, 그 시점에서 팔목이 잡힌 사내도 숨을 삼키며 목청을 잠가야만 했다.
“허락도 없이 남의 밥벌이에 손대려 했으면, 그만한 값을 치러야지. 이 바닥 처음이야? 초짜야?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 안 배웠어? 면상은 중고 같은데, 신입이었니?”
오랜 시간 생사의 경계에서 외줄타기를 해온 만큼, 각성 이전부터 살기를 내비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 정도는 기본이었다.
거기에 각성자의 기운까지 실어 보냈다. 그 농도 짙은 살기는 상황의 심각성을 단숨에 뻥튀기시키기에 충분했다.
팔을 꺾은 채 불청객들을 돌아보던 마루가 물었다.
“남의 구역에서 까부는 거 아니다.”
그러고는 잡고 있던 사내를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우득!
한 차례 더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요란한 비명성이 터져 나왔지만, 마루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채, 장비 정리에 들어갔다.
당연하게도 분위기는 한층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
발탄 타이라.
그는 그레이 셰이드 클랜에서 한 개 팀을 맡고 있는 장으로써, 최근 발생한 던전 승급 현상을 조사하기 위해, 멀리 한국까지 찾아온 상황이었다.
팀장급 중에서는 겨우 중간 수준이나 될까?
그리 대단한 실력자는 아니었지만, 그가 이번 파견조사에 선택된 이유는 별 거 없었다.
[우리 구역도 아니고, 연줄도 짧으니까. 너무 말썽 피우지는 마.]
문제아 집단 내에서, 제법 유한 성격을 지닌 까닭이었다.
클랜장의 경고를 생각해서라도, 적당히 얌전을 떨며 지낼 생각이었다. 싸게 맞춘 위장 신분이다 보니, 더더욱 몸을 사릴 필요가 있었다.
‘뭐, 우리나이쯤 되면, 말썽부리기도 지치지.’
쓰게 웃으며 호텔방으로 들어갔다.
“으어...이러다 돼지 되는 거 아닌가 몰라.”
“이 조그만 나라에, 먹거리가 너무 많아.”
“멀리 보내서 복잡한 임무인 줄 알았더니. 완전 휴가였네.”
“꺼억~!”
제대로 늘어진 팀원들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 와중에 그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광경이 있었다.
“얘들 어디 갔어?”
막둥이들이 사라진 까닭이었다.
“어. 요 근처에 게이트 터졌다면서 뛰어갔어.”
“아직 젊잖아.”
“한창 뛸 나이지.”
“부럽다. 청춘!”
팀원들의 말에도 미간의 주름은 펴질 줄 몰랐다.
상황과 무관하게 그의 팀원이라 데리고 오긴 했는데, 혈기왕성한 신입이다 보니,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설마, 또 말썽피우고 있는 건 아니겠지?’
불길한 예감은 꼭 틀리질 않았다.
**
오감 개방의 영향일까?
‘C급 넷!’
마루는 단번에 문제아들의 실력을 읽어냈다.
개중 한명은 조금 전 그의 참교육에 의해서 아웃이나 다름없었다. 총기 각성자가 팔이 망가졌다. 그것도 딱 봐도 장비를 다루는 팔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멋대로 장비 만진 건 미안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팔을 제대로 비틀어놨네.”
“재주 좋게 근육만 찢어놓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병원비깨나 나오겠어. 한국은 병원비가 싸던가?”
세 명의 문제아들이 그의 주변으로 둘러섰고, 호되게 당한 놈도 그들 뒤에서 두 눈 가득 독기를 태우고 있었다.
이에 마루가 재차 입을 열었다.
“팔 하나 가져가려다 남겨준 거면, 많이 봐줬다고 생각하는데. 어째, 거스름돈이 너무 후해서 그러나?”
철컥. 철컥.
마루의 양 손엔 어느새 권총이 한 자루씩 들려있었다.
“한 발씩 꽂아줘?”
사냥용 총화기가 아닌, 일반 총기였다. 이들은 몬스터가 아니기에, 이런 무기가 오히려 더 어울렸다.
이에 문제아 셋이 마루와의 간격을 계산한 뒤, 서로 눈짓을 하더니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럴 줄 알았다.’
마루가 실소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푸슉! 퓨퓩!
소음기를 달아둔 탓에, 소리가 요란하진 않았다. 하지만 주변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그들 네 명이 어우러지며 내비치는 기세 때문이었는데, 뜻밖의 헌터대란으로 인해, 게이트 주변에 몰려있는 헌터들 중 각성자 아닌 이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결국 한 판 붙네.”
“누가 이기려나.”
“피 좀 튀겼으면 싶은데.”
“내기 콜?”
“콜!”
게다가 죄다 이면과 연관되어 있는 탓인지, 갑작스런 소란을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퓨퓻! 퓻! 퓨웃...
마루는 자신이 ‘총기계열’이라는 걸 상기하며, 최대한 그에 맞는 움직임을 보이고자 노력했다.
구경 중이던 헌터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저거 건빵 아닌가?”
“그게 뭔데?”
“총으로 뚜까 패는 거, 건가드.”
“아...그러고 보니. 그러네. 쌍권총 쓰는 것도 그렇고.”
의문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건가드는 또 뭔데?”
“총으로 하는 무술.”
“그런 것도 있었냐?”
“총기류 각성자가 만든 건데, 고전 영화의 총기 액션에서 힌트를 얻었다나 뭐라나?”
근거리에 약한 총기 각성자들을 위해, 호신용으로 만들어낸 무술로써, 마루는 이 역시 통달하고 있었다.
‘군대에서 지겹게 배웠었지.’
퓻! 퓨퓻! 퓨퓨퓨퓻...
절제된 움직임을 보이며 문제아들을 컨트롤 하는데, 죄다 근접전에 특화된 능력자들인 것인지, 쉬이 맞추기가 어려웠다.
‘보는 시선이 많으니까.’
적당히 힘을 빼고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감각이나 시야는 살아있어, 문제아 셋을 컨트롤 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민첩, 괴력, 예측인가?’
몸으로 부대껴가며 정보를 수집한 결과, 대략적인 능력치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차각. 차각.
총알이 다 된 듯, 탄창을 빼며 교체를 위해 몸을 움츠리는 찰나, 민첩 스킬 각성자가 힘차게 돌진하는 게 보였다.
투둑...
빈 탄창이 바닥을 두드릴 때, 이미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남다른 반응속도였지만, 바로 그 부분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걸렸다!’
히쭉 웃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이 순간을 위한 설계였다.
퓨퓻!
탄창은 비었지만 장전된 총알은 남아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격이었던 듯, 민첩 스킬 각성자가 눈을 크게 뜨면서 몸을 비틀었다.
‘늦었어!’
푸푹!
두 발 모두 박혀들었다. 정확도는 낮았지만 총알 두 방이면? 각성자의 단련된 육체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가장 번거롭던 사내를 잡았으니, 나머지 둘이야 문제 될 게 없었다.
**
구정물, 똥국 등, 아는 이들 사이에선 좋지 않은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리는 이가 있었다.
구정국!
무려 광호길드의 정보팀장을 맡고 있는 사내였는데, 그런 위치에 있음에도 존경과 선망이 아닌,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있는 건, 그의 일처리 방법 때문이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지저분한 짓도 서슴지 않는 까닭인데, 그런 이유로 은연중에 적이 많은 편이기도 했다.
“C급 A형 정마루.”
그는 최근 관심을 기울이는 헌터에 관한 보고서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총기류 각성자라 이건가.”
경력과 능력의 시너지가 제대로 발휘된 듯, 평가점수가 높게 측정되어 있었다.
‘기왕이면 혜성 특수팀 정보도 있으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곳은 가드가 너무 심했다.
‘그래도 블록 길드는 찔러볼 수 있어서 다행이네.’
현재 올라온 최신 정보는 블록과 연결된 게 많았다. 신생이라 할 수준은 아니지만, 아직 완성도가 부족한 길드였고, 덕분에 옆구리가 허술한 면이 있었다.
그곳을 통해 얻어낸 정보였다.
‘블록 특수 1팀도 실력은 상당할 텐데. 거기서 한가락 했단 말이지.’
총기계열 각성자라고는 하나, 그래도 아직 각성 초기라는 이유로 인해, B-에서 C+정도로 예상했다.
하지만 보고서에 올라온 반응으로 봤을 때, 그의 기대치를 웃돌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완숙 단계인가.’
오버클럭에 밑줄이 쳐진 게 보였지만, 그런 건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어떤 방법을 사용했건, 일단 실전에서의 능력치가 중요할 뿐이었다.
‘하긴, 김연희의 선택을 받았으니, 그만한 잠재력은 있다는 의미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일말의 아쉬움이 스미는 걸 느꼈다.
‘기왕이면 직접 확인했으면 싶은데.’
이런 보고서가 아닌, 좀 더 생생한 현장감을 확인하고 싶었고, 그런 이유로 일정을 잡아서 찾은 게이트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해야 할까?
‘호...이런 걸 보게 될 줄이야.’
구정국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멀리 액션의 현장을 바라봤다.
‘보통 실력이 아니군.’
광호길드 정보팀장으로써, 다양한 헌터들을 만나 봤기에, 더더욱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건가드를 저 정도로 사용하다니.’
목표물, 정마루의 정보 하나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몬스터 부대 출신이었지.’
건가드는 특수부대 필수코스였다.
‘15년치 짬밥이란 건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움직임이 너무 좋았다. 딱 봐도 상대하는 세 명은 신체계열 각성자로 보이건만, 오히려 그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총기류 각성자의 등급 외 실력이라는 건, 몬스터 사냥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일 뿐, 저 같은 대인전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오히려 등급 아래로 분류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더더욱 놀랍기만 할 뿐이었다.
새삼스레 감탄이 나왔다.
‘과연, 김연희가 찍을만 하군.’
마루의 솜씨만이 아니라 김연희의 시야까지, 전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뭔가, 좀 묘한데.’
그는 마루의 전투 방식을 보며 적잖이 놀라야 했다.
‘딱 봐도 총기류 각성자 수준의 움직임인데.’
기이할 만큼 회피율이 높았다.
‘감이 좋은 건가?’
세 명의 무법자들 중, 예측 능력자로 보이는 사내가 있었는데, 마루는 그 사내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며, 적절한 최소동작만으로 치고 빠지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흐음...수 싸움에 능한 거려나?’
정답이 뭐가 됐건, 확실히 대단하단 말밖에 안 나왔다.
‘C급 A형. C급...C...’
마루를 향한 그의 두 눈에 묘한 열망이 번뜩였다.
“딱 좋은 등급이야!”
**
전투가 끝났다.
‘후우...’
마루는 바닥에 너부러진 세 명의 불청객들을 뒤로하고, 사건의 발단이 된 사내를 바라보며 한 마디 했다.
“남의 구역에서 깝치지 마라.”
독기는 어디로 간 것인지, 얌전히 눈을 까는 모습에 잠시 실소가 나왔다.
그레이 셰이드!
제법 규모가 있는 클랜인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저들의 무대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날뛰고 싶으면 너네 넓은 야메리까나 가서 까불어.”
저들 리그를 벗어나면 힘이 쪽 빠지는 것이다. 셰이드라는 걸 알면서도 굳이 건빵을 먹인 것도 그런 이유였다.
게다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이 정도 보여줬으니까. 괜히 건들 놈들은 없겠지?’
여전히 구경중인 다른 이면 헌터들이 보였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분위기가 한층 진중해진 게 느껴졌다.
현재 그는 현장이 간절한 상황이었다.
‘빌어먹을 2차 전직!’
PP에서의 일정이 꼬인 탓인데, 그로 인해 출동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현실 스탯이 필요하니까.’
그 때문에 현장을 놓치면 안 됐고, 적당히 보여줄 건 보여줘 가며, 저들과의 거리감을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물론, 실력만 보여주고 끝낼 생각은 아니었다.
언제나 뒤를 생각하며 몸을 사리던 그가, 답지 않게 과감한 총질을 했던 건? 전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꼬우면 찾아와.”
그 말과 함께 명함 하나를 던졌다.
[혜성 길드 특수 1팀]
간판이 깡패였다.
< #9. 건가드.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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