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불씨. >
몸놀림이 좋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총구 방향을 통해 상대를 움직일 줄 알았다.
“설계를 할 줄 안다는 뜻이지.”
이 부분이 핵심이었다.
“원래 건가드는 총을 활용하는 무술이지.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긴 한데, 무기 의존도를 확실히 보여줄 줄 알아야 건가드에 통달했다고 할 수 있어.”
전문가의 설명에 청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음기는 왜 달았냐 싶겠지만, 사실 저것도 의도한 거야. 총의 각을 크게 만들거든. 상대에겐 저 궤적이 더욱 잘 보일 걸. 권투로 치면 잽을 스트레이트처럼 보이게 만들어주는 거야.”
그렇게 되면?
“설계하기도 편해져.”
게다가 소음기를 달았다는 건, 총기 소음이 줄어든단 의미였다.
“은밀함은 건가드를 더욱 위력적으로 만들어 주지. 이건 말 그대로 건가드의 교본이라고 해도 될 수준이야.”
전문가, 제타 박건은 거기까지 이야기하며, 청자들을 돌아봤다.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는 게 보였다.
특수 1팀만이 아니라, 휴식 중이던 다른 팀의 팀원들도 함께하고 있었는데, 비상시국이다 보니 특수 팀들은 던전 붙박이 신세였다.
그 때문에 구분 없이 모여 있는 상황이었다.
“포인트는 여기야.”
영상의 반전부분을 재차 돌려서 보여줬다.
“저기 탄창 버리고 총알 먹이는 장면, 저기서 잠깐 정줄 놓을 뻔 봤다.”
이유인 즉,
“저 때 사용된 탄환 숫자를 세 보면, 이전보다 한 발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몇몇 눈치 챈 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맙소사!”
“허...지렸다!”
박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 이전에 버렸던 탄창들 살펴보면, 전부 탄알 한 발씩 남아있을 걸.”
그제야 다른 팀원들도 상황을 깨닫고는 탄성을 내질렀다.
“저 순간을 위해서, 꾸준히 탄을 한 발씩 내다버린 거라고?”
“설계 오지고 지렸다. 난 이미 축축하다.”
“제타조장 말처럼, 완전 교본 수준인데.”
“인정한다!”
겨우 탄알 하나였다. 하지만 그 한 발이 꾸준히 중첩되면서, 상대하는 이들에게 탄창의 규모를 헷갈리게 만든 것이다.
“겨우 한 발이 아니라, ‘무려’ 한 발이야. 그 작은 오차야 말로 설계도의 화룡점정인 거지.”
박건이 검지를 들어 제 머리를 두드렸다.
“건가드는 신체 능력이 아니라, 설계가 핵심이야.”
놀란 얼굴로 재차 영상을 돌려보는 팀원들을 쭈욱 살핀 뒤, 영상을 가져온 여인, 김연희에게 물었다.
“신입 휴가 아니었어?”
“그랬죠.”
“딱 봐도 팔팔해 보이는데, 슬슬 부르는 게 어때?”
“아직 안 돼.”
단호한 대답은 이소희에게서 나왔다. 그 말에 눈살을 찌푸리던 것도 잠시, 다시금 영상을 살피며 물었다.
“그나저나 이거 내려야 하는 거 아닌가? 괜히 시끄러워질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사이트 본사 쪽에 요청을 해 놓긴 했는데, 국내가 아니라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네요.”
김연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긴, 해외 쪽은 좀 복잡하지. 요즘 문제아들깨나 들어왔던데, 그놈들인가?”
“웬 골 때리는 놈이 현장 영상 찍어서 올렸더라고요.”
시작은 게이트 사냥 영상을 풀로 잡은 것인데, 마침 거기에 특수 1팀의 신입, 마루의 액션 영상이 찍혀버린 것이다.
액션의 퀄리티가 높아서, 차후 이 부분만 쪼개서 편집까지 해 놨을 정도였다.
“보기 드문 건가드 액션이라면서 조회수도 꽤 나왔는데, 제타 조장 이야기처럼 교본 수준이라서, 그것 때문에 보는 사람도 꽤 되는 것 같아요.”
“골치 아프게 됐네.”
“찾아보면 옛날 영화하고 교차 편집한 버전도 있어요.”
그 즈음 반복재생을 끝낸 듯, 청자들의 말문이 트였다.
“하여간 이면에서 활동하는 놈들은 개념이 없다니까. 몬스터 사냥도 아니고, 이런 대인전을 올리면 어쩌누.”
“이거, 아무래도 말이 많겠는데.”
“풀 영상이니까 전부 돌려보면 알 거 아니야. 먼저 장비 건들고 시비 턴 건 저쪽이잖아.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줘도 이상할 게 없었어. 오히려 저 정도면 많이 봐 준 거지.”
“그래. 그래서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일반인들이 보기엔 시끄러울 수 있어.”
“사람 몸뚱이에 총질을 했으니.”
“겨우 저 정도로 시끄러울까?”
“대격변 이후로 피 보는 게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모를 일이야. 게다가 우리나라는 좀 특수하잖아.”
“뭐, 해외하곤 다르지.”
대격변 이전에도 그러했지만, 그 이후로도 한국이란 나라는 유독 치안 부분에 있어서는 제법 인정받는 국가였다.
그런 이유로 몬스터 사냥이 아닌, 저 같은 대인전 관련 영상에 대한 거부감이 꽤 있었다.
“그나저나 신입 이거, 제대로 물건이네.”
“그러게. 대인전을 저만치 한다니.”
“저건 오버클럭도 아니잖아.”
“실력이야. 진짜배기 실력!”
“제타조장이 보기엔 어때?”
그들의 물음에 박건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저 정도면 내 전성기에 비해도 안 꿀리겠네.”
박건은 총기계열 답지 않게 근접전을 즐겨했었고, 그 때문에 황혼기도 짧아진 역사가 있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건가드는 그의 핵심 전공이었는데, 스페셜리스트의 인정에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떠야했다.
“올~!”
“허...그 정도야?”
그들의 탄성에 박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등급에 따른 차이 정도야 있겠지만, 솔직히 사냥용이 아닌 대인전용 건가드는, 등급 보다는 설계 능력이 핵심이니까.”
다른 저격수들도 공감하는 바였다.
“솔직히 저 정도는 나도 어려울 듯.”
“건가드는 맛만 본 정도라.”
“난 건가드는 아예 안 배워서 패스.”
“이하동문!”
등등의 반응이었는데, 실제로 총기계열이라고 해서 반드시 건가드를 익히는 건 아니다 보니, 크게 이상한 반응은 아니었다.
워낙 퀄리티 높은 영상이었던 탓인지, 팀원들은 이후로도 몇 번을 더 돌려보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
해외에서 화제가 된 까닭일까?
마루가 영상에 대해 알게 된 건, 약간의 시일이 더 지난 이후였다.
“너 밖에서도 떴더라.”
강하나의 언급이 아니었다면, 영상 확인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을지도 몰랐다.
“허...이건 또 언제 찍었대?”
강하나가 알려준 주소로 접속한 결과, 황당하게도 그의 영상이 올라와있는 것이 아닌가.
“액션이 워낙 찰져서 그런가? 해외 쪽에서는 제법 인기가 있더라.”
그 말을 한 귀로 흘리며, 각종 댓글들을 살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건가드인가.
-건가드가 뭐임?
-예전에 총기 각성자가 만든 무술.
-한 때, 해외에서 좀 유행하긴 했는데, 솔직히 총기계열이 근접전 할 일이 드물고, 효율도 별로라는 말이 있어서 사장됐던 걸로 아는데. 이게 이렇게 등판하네.
-사장 노놉! 해외 쪽 찾아보면 건가드 영상 꽤 있음.
-그래봤자 알쓸심각 아님?
-심각하게 쓸모없음.
-가성비 최악인 건 맞지.
-그래도 우리나라 특수부대 필수 코스임.
-비주류인데?
-그래서 배움.
-아...
한숨이 푹 나왔다.
-영상 찾아보니까 죄다 연식이 있던데. 최신 영상은 이거 밖에 없음?
-비주류라.
-그런데 이게 왜 이렇게 화제가 된 건데?
-완성도가 높다나 뭐라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교본 수준이니 뭐니 하면서, 그쪽으로 제법 공유가 됐다더라.
-거기서부터 건너 건너면서 화제몰이가 된 거지.
마루는 그 ‘전문가’들의 반응들도 살피며 쓰게 웃어버렸다.
‘그냥 기본을 보인 것뿐인데.’
아무래도 그마저도 상당한 수준이었던 모양이었다.
사실, 마루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스탯의 영향으로 전체적인 시야를 비롯하여, 두뇌의 회전속도까지 전부 업그레이드가 된 상황이었다.
그 나름대로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행동한다지만, 항시 전력을 아끼고 여력을 남겨왔기 때문에, 온전히 자각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결국, 기본은 교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장 건가드의 전문가 수가 줄어든 탓에, 더더욱 관련 영상이 Hot해진 듯싶었다.
‘그래도 너무 시끄럽진 않아서 다행이네.’
한국에는 이제 막 편집본 몇 개 올라오는 수준이었고, 그나마도 매니아들 사이에서나 공유되는 정도였다.
물론, 해외에서는 제법 화제가 되고 있기에, 결국 그 흐름이 밀려들어 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얼굴 모자이크 됐으니까. 그렇게 똥 씹을 거 없어.”
강하나가 그리 말하며 마루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네 복장하고 장비 아니었으면 몰라봤을 걸.”
“후...그러면 뭐 하냐. 저 정도 모자이크는 작정하고 해체하면 금방 뜯어 낼 텐데.”
게다가 모자이크를 해 놔서, 영상 내리는 절차도 더 복잡해 졌을 터였다.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괜히 나섰나?’
게임과는 달리, 얼굴을 가리는 것도 숨는 것도 불가능했다. 표정이 굳어버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모습에 강하나가 그의 등을 강하게 두드리며 물었다.
“혜성길드 특수 1팀의 정예가 쫄았냐?”
그게 또 도움이 됐던지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흔들리던 마음도 바로잡혔다.
그레이 셰이드의 문제아들과 마찰을 일으킬 때, 어느 정도 자신을 공개할 생각으로 움직인 게 아니던가.
‘이렇게 세계적으로 오픈할 생각은 없었지만.’
생각보다 판이 커져서 놀랐을 뿐이다.
‘맞아. 쫄 거 없어!’
그도 이젠 ‘배경’이 있었다.
게다가 ‘실력’도 충분했다.
‘호위도 있고.’
레베카를 떠올리니 괜히 든든해졌다. 마루의 표정이 살짝 풀어지는 걸 확인한 강하나가 새로운 사이트를 열었다.
“마음가짐도 된 것 같으니까. 이제 좀 아플 시간이다.”
“응?”
그렇게 악플의 장을 마주했다.
**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세계 어느 곳이건 이면세상은 특유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이는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치안 강국이라며 이면의 그늘이 얕을 것이라 착각하지만, 오히려 더 깊고 어두운 면이 있었다.
존재를 느끼지도 못할 만큼, 그들의 은밀함이 특별하다는 뜻이기 때문인데, 거기에는 이면의 대단함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표면세계, 즉 외부세계와의 연계가 잘 이뤄지는 게 결정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면과의 연계가 잘 이뤄지는 길드를 찾아보라 한다면, 광호길드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었다.
아는 이들만 알고, 그마저도 쉬쉬하는 분위기지만, 분명 광호길드는 이면과의 연계가 원활한 집단 중 하나였다.
구정국은 바로 그 선봉에 서 있는 길드의 대표자이기도 했다.
그가 구정물이나 똥국으로 불리는 건, 바로 이런 지저분한 일들을 도맡아 해 왔던 게 결정적이었다.
이번에도 한 차례 비슷한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었는데, 그 확인 작업을 위해 이면의 루트로 연결을 시도했다.
[모시모시?]
“영상 작업은 잘 됐겠지?”
[하오하오!]
잠시 구정국의 미간에 주름이 새겨졌다.
“족 같은 말투 쓰지 말고, 제대로 대답 안 하냐?”
[햐~! 형님도 참. 걱정 마쇼. 어련히 잘 했으니까.]
“최대한 복잡하게 가야 된다.”
[예이, 예이! 말씀하신대로 이번에 들어온 외국 놈들하고 연계했고, 외국 서버 삥삥 돌렸수. 유모 작업도 잘 해놔서, 절차 거치려면 골 좀 때릴 거요.]
“애들도 움직이고 있지?”
[주소 몇 개 불러줄 테니까. 확인해 보쇼. 댓글부대 쫙 깔면 편하긴 한데, 형님 말처럼 복잡하게 처리 중이라, 일단 잔불 모드로 잔잔히 깔아놓고 있수. 사실 해외서버에 투입된 게 많아서, 국내에다 쓸 게 없기도 하고. 흐흐!]
이후로도 몇몇 지시사항을 더 나눈 뒤 연결이 끊기고, 언급했던 사이트 주소들이 핸드폰으로 넘어왔다.
잠시 후, 구정국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저게 한국이라고?
-사람한테 총질이라니.
-누가 모자이크 좀 잘라봐.
-뭐, 문제 될 게 있나? 풀 영상 보면 상대가 먼저 잘 못 했네. 대가리를 쏴버려도 할 말 없지. 저 정도면 오히려 양호한 수준인데.
-치안 강국 대한민국은 어디로 갔나?
-모가지는 붙어 있잖아. 저만하면 많이 참은 거다. 외국에선 이걸로 태클 거는 애들 없더라. 오히려 칭찬 일색인데, 여기만 왜 이러누?
-킬러네!
-요즘 애들 무섭네.
만족스런 결과물이 한가득 펼쳐졌다.
‘어디 보자...’
중요한 포인트를 찾아 화면을 움직였고, 오래지 않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거 어디 소속이냐?
-혜성이란 말이 있던데.
-거기서 저런 게이트 출동을 왜 하누? 헛소리 자제점.
미지근한 반응이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일단, 불씨는 지폈고.”
순차적으로 장작을 넣으면 될 터였다.
“C급 A형 정마루!”
목표물의 정보를 되새겼다.
“C...어중간하니 딱 좋네.”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 #10. 불씨.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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