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솔로. >
100레벨을 찍던 무렵.
라시아와 파티를 이룬 채, 각종 업적 작업을 하며 정체구간을 질주한 결과라고 해야 할까?
[칭호 : 불굴의 의지]
[등급 : 고유-제한]
[지치지 않는 그대의 열정을 응원합니다.]
[HP 10%이하로 떨어질 시, 피해를 MP로 대신합니다.]
아슬아슬하게 99레벨의 끝자락에서 만족스런 칭호 하나를 획득할 수 있었다.
도전자 칭호와 특히 잘 맞는 칭호였다. 도전자로 HP를 10%이하까지 떨어트리더라도, MP를 통해 최소 피통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칭호 시너지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생존력 역시 늘어났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거기까진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제 남은 건 전직!’
그렇게 생각하며 신전을 찾았다.
2차 전직을 위해선, 일단 1차 전직 루트를 고스란히 돌아야만 했다.
1. 약수통에 새벽이슬을 모아오기.
2. 이슬로 성수를 만들기.
3. 기도문 외우기.
4. 신전 보수공사.
등등, 앞서도 했던 일들을 똑같이 행하면 되는 것이다. 이미 전직을 한 상태라서, 이전보단 훨씬 수월하게 퀘스트를 클리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전부 완료할 경우, 본격적인 2차 전직 퀘스트가 시작된다.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사냥!]
심플하지만 그만큼 골 때렸다.
이유인 즉,
[던전 클리어!]
전직을 위한 조건이 너무 황당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기존 1차 전직 구간의 던전도 아니었다. 100레벨을 찍은 시점에서, 다음 구간으로 넘어갈 조건이 충족된 까닭이었다.
[50~100Lv, 100~200Lv]
100레벨은 그 둘의 교차구간이다 보니, 2차 전직 구간의 필드도 뛸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상위 던전을 클리어 하는 게 2차 전직의 조건이었다.
정체구간에서 벗어난 만큼, 던전 난이도가 올라가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그렇잖아도 충분히 골치 아픈 조건이건만, 마루에게는 더욱 골 때리는 조건이 추가되었다.
[클리어 조건 - 단독 사냥]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 혼자 깨라고?”
설마설마 했다.
1차 전직 당시에도 솔플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감으로 퀘스트에 도전했건만, 설마 여기서도 솔플을 강요할 줄이야.
내심 라시아를 끌고 갈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더욱 골머리가 아파왔다.
“아...이러면 나가린데.”
결국, 이 시점에서 라시아와는 헤어져야 했다.
‘환장하겠네!’
앞서도 언급했듯이 던전의 수준이 확 뛰면서, 최소 8인 파티는 짜야지 클리어 할 수 있는 게 2차 전직 퀘스트였다.
게다가 100레벨 던전의 ‘특수성’으로 인해, 난이도 뻥튀기가 심한 편이었다.
[중앙대륙 출입문!]
PP의 세계지도를 살펴보면, 12개의 주변대륙과 거대한 중앙대륙 하나로 이뤄져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그 중앙 대륙으로 건너갈 수 있는 포탈이 던전 중앙에 마련되어 있었다.
물론, 첫 진출만 포탈을 타고 넘어갈 뿐, 이후로는 각종 운송루트를 통해 건너갈 수 있는 조치가 취해져 있긴 했다.
어쨌든 이런 특별한 사정 때문일까?
던전 수준도 ‘최정예’로 고정이었다.
“4인도 아닌, 8인용을 혼자 깨라고?”
뒷목이 뻐근해져왔다.
이 말도 안 되는 퀘스트는 마루를 바깥으로 떠밀었다.
**
마루는 오랜만에 찾은 마수지대를 바라보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네.”
던전에 버금갈 만큼 경험치 획득량이 높은 장소였지만, 마냥 달갑기만 한 공간은 아니었다.
그렇잖아도 각종 범죄를 끼고 있는 공간이 마수지대였다. 헌데, 이면의 문제아들이 들끓는 요즘, 이곳에 발을 들인다?
‘요즘 시국에는 위험한데.’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게이트는 숫자도 적고.’
출동 주기도 들쑥날쑥 제멋대로였다. 게다가 그 작은 게이트마저 이면의 헌터들이 들쑤셔대니. 제대로 된 경험치 획득이 어려웠다.
결국 마수지대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24시간 풀 오픈이니까.’
게다가 최근 발생한 작은 마찰로 인해, 게이트 방면은 왠지 껄끄러워진 상황이기도 했다. 작정하고 건드린 만큼 간판도 앞세웠지만, 일단 돌아가는 상황을 좀 살필 필요가 있었다.
결국 결론은 마수지대였다.
마수지대의 경우 입장 조건이 좀 까다로운 게 단점이긴 하나, 최근 그에게는 프리패스권이 하나 생기지 않았던가.
[혜성 길드 특수 1팀 정마루]
간판이 깡패였다.
그가 현실 사냥터를 찾는 건, 평소와 달리 게임으로 성장을 촉진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2차 전직!
경험치가 ‘동결’되는 구간이었다.
퀘스트 자체는 단순하지만 전직 난이도가 높은 건, 전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현실의 사냥터를 찾게 된 것이고, 그 때문에 PP는 한동안 휴식기였다. 숙련도 작업도 대부분 마친 상태다 보니, 당장은 접속할 이유도 없었다.
현실 던전도 제외대상이었다. 알 수 없는 현상으로 인해, 현실 던전도 PP의 경험치와 연동되고 있는 만큼, 그곳에서의 사냥은 의미가 없었다.
던전에서도 스탯이 올라가는 걸 경험하긴 했지만, 그간 경험으로 봤을 때, 레벨 경험치와 나눠서 분배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효율이 안 좋아. 지금은 스탯에 몰빵해야 되니까.’
돌 수 있는 던전도 제한적이었다.
결국 남은 건?
‘게이트와 마수지대!’
현실 경험치가 특히 매력적인 건, 이곳에서 쌓는 경험치는 레벨이 아닌 스탯에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계획은 간단했다.
1. 현실 사냥으로 스탯을 쌓기.
2. PP에서 2차 전직 도전하기.
당장 도전할 용기는 없었다.
혼자서 18대 1의 무쌍을 찍는 것과는 달랐다. 던전에는 패턴이란 게 존재하고, 그 때문에 파티 조합이란 게 필요로 했다.
이런 지원 없이 혼자서 던전을 깬다?
‘아직 8인용 솔플은 무리지.’
그렇게 찾은 마수지대였다. 혜성의 간판 파워가 작용한 것인지, 까다로운 절차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턴 시선도 신경 써야 하니까.’
적당한 변장은 필수였다.
**
대외적으로 발표만 되지 않았을 뿐, 각종 범죄가 잇달아 발생하는 공간이 바로 마수지대였다.
그 때문일까?
“빌어먹을 Max-Man 놈들!”
임수현과 임지현, 그들 이란성 쌍둥이 남매는 한껏 욕설을 쏟아내며 수풀 사이를 달리고 또 달렸다.
“젠장! 그러게 새해에는 얌전히 집에서 TV보는 게 최고라니깐.”
동생 임수현의 투덜거림에 누나 임지현이 입술일 삐죽 내밀었다. 그녀도 할 말이 많은 까닭이었다.
“그렇게 싫었으면 따라오질 말던가.”
“이 미친년아. 새해 일출 보러 북한산을 오른다는데, 누가 안 쫓아와.”
북한산은 마수지대가 된지 오래였다.
“에헤~이. 내가 봐 놓은 포인트는 그렇게 안 위험하다니까.”
실제, 임지현이 점찍었던 장소는 위험도가 낮은 편이었고, 그 때문에 몬스터로 인해 문제될 일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무려 B급 헌터가 아니던가. 어느 상황이건 제 한 몸 빼낼 자신이 있기도 했다.
“하...그래서 지금 이 꼴이 난 거냐?”
“발정난 짐승새끼들이 쫓아오는 건 계산에 없었지. 하여간 사내놈들이란. 아홉수라 그런가? 올해만 지나면 그것도 끝일 텐데. 막판에 꼬여버렸네.”
그녀의 이야기처럼, 실제로 문제가 된 건 몬스터가 아니었다. 사람이 문제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골칫거리로 여겨지는 이들, 바로 이면을 살아가는 범법헌터들이 말썽이었다.
“요즘처럼 골통들 많은 시국에는 조심해야지!”
“알았어. 알았다고. 다 내가 잘 못 했어. 그러니까 그만 좀 쪼아대라. 설마, 마수지대가 이렇게까지 개판일 줄 알았냐고. 남의 나라에서 무슨 개지랄들인지.”
현재 그들을 쫓고 있는 건, 미국 유명 만화인 맥스맨의 캐릭터 가면을 쓴 놈들로써, 저들의 목적은 그들 남매에게 있었다.
“하...지랄 같네.”
임수현이 안면을 한껏 구겼다. 언급했듯이 저들 맥스맨의 목적은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는 즉, 임수현 역시 목표라는 것이다.
“뭔, 변태새끼들이 이렇게 많은 거야.”
“그러게 내가 근육 좀 키우랬잖아. 사내놈이 쓸데없이 뭔 기생오라비 같이 생겨선.”
“젠장! 근육이 안 붙는 걸 어쩌라고.”
그 말에 임지현이 살짝 짜증난다는 얼굴로 제 동생을 바라봤다. 임수현은 분명 사내놈이건만, 어지간한 여성진 못지않게 선이 고왔다. 재수 없게 피부도 우윳빛이었다.
“퉷!”
그녀의 일발 사격에 임수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에이, 더럽게.”
“시끄럽고. 곧 쫓아올 것 같은데. 어떻게 해?”
“어쩌긴 뭘 어째, 잡히면 붙어야지. 그 전까지는 최대한 튀는 거고.”
임수현이 거기까지 이야기하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혹시, 상황이 안 좋다 싶으면, 먼저 빠져나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내가 여자라서 그딴...”
“헛소리 한다. 그런 거 아니니까 흥분하지 말고. 희생이니 뭐니 하는 것도 아니다.”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잠시간 동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보다는 누나가 더 발이 빠르잖아.”
“그게, 얼마나 차이난다고.”
“게다가 내 스킬 알잖아. 버티기는 내 전문이야. 그러니까 여차하면 먼저 빠져나가서, 다른 헌터들한테 도움 좀 청해.”
짜증나게도 합당한 내용이었기에, 불만스런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할 때였다.
“까꿍~!”
“어딜 그렇게 가시나?”
남매의 앞을 막아서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맥스맨 가면을 쓴 사내들이었다.
“어떻게...?”
깜짝 놀라며 급정지하는 남매의 모습에 사내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며 남매의 의문에 대해 답해줬다.
“이 근방은 며칠 전부터 우리 애들이 작업하는 구역이라고.”
“무전 한 방이면 끝이지.”
“흐흐...마굴용 무전기가 비싸긴 해도, 효과는 확실하지.”
“문명에 취한다. 캬~!”
말인 즉, 추월당한 게 아니라, 다른 무리가 앞을 막아섰다는 의미였다. 확실히 앞서 그들과 마주쳤던 가면들이 아니었다.
남매가 당황하는 사이, 등 뒤로 추격자들의 발길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잡았다!”
“헉헉! 이 쥐새끼 같은 년들!”
“틀렸어. 년놈들이라고 해야지.”
“맞다! 흐흐...사내놈은 내가 찜했어.”
남매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저들의 지저분한 쑥덕거림이 귀지처럼 파고든 까닭이었다.
‘하나, 둘, 셋...아홉 놈인가.’
각자 B급의 실력자인 만큼, 상대를 보는 눈썰미도 남달랐다. 그 결과가 생각 이상으로 처참했다.
‘하나같이 만만한 놈들이 없네.’
죄다 B급이거나 그에 근접하단 의미였다.
던전 승급으로 인해 해외의 많은 헌터들이 유입된 결과, 이래저래 생태계가 파괴되는 느낌이었다.
“젠장! 베스 같은 놈들.”
임수현의 투덜거림을 임지현이 받았다.
“생긴 건 황소개구리 같은데.”
“가면 너머가 보이냐?”
“안 봐도 척 아닌가?”
맥스맨들의 기세가 일변했다.
“까부는 게 귀엽네.”
“길들이는 맛이 있겠어.”
“낄낄낄...”
그에 맞춰서 남매의 긴장감도 한껏 고조되는 찰나,
콰아아앙!
저 멀리서 알 수 없는 폭음이 터져 나오더니, 이내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그들 무리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우왓!”
“이건, 또 뭐야?”
“습격인가?”
의문 속에서 그림자를 확인해 보니, 놀랍게도 그건 베어-울프(Bear-Wolf)였다.
동물형 몬스터로써, 곰과 늑대의 외형을 반반씩 따온 탓에, 저처럼 기이한 이름이 붙은 것인데, 놀랍게도 동물형 중에서 몇 안 되는 상위종이기도 했다.
레이드 클레스로 분류되진 않지만, 그래도 A급에도 걸쳐있다면서 상위종으로 구분된 것이다.
“Holy Shit!”
“What the...?”
“이 근처에 베어울프가 있었다고?”
“것보다, 저거 뒈진 것 같은데?”
“아직 살아있어.”
“그러게. 꿈틀거리네.”
“어...어? 일어난다.”
“쳐! 쳐! 죽여!”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베어울프를 치려는 찰나였다.
“동작-그만!”
한 줄기 우렁찬 외침과 함께, 또 다른 그림자 하나가 그들 앞으로 내려섰다.
‘아이언...슈트?’
맥스맨과 형제격인 만화의 강철 히어로가 그들 앞에 등장한 것이다. 실제로 착용한 건 안면의 가면뿐이었지만, 옷 위로도 두드러지는 강철 같은 근육들 때문인지, 이마저도 갑옷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캐릭터의 특성 때문일까?
임씨 남매의 긴장감은 한층 고조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와중에 아이언슈트가 입을 열었다.
“어디서 막타를 쳐 먹으려고.”
그러더니 베어울프에게 성큼 다가가 해머 같은 주먹으로 뒤통수를 냅다 내리꽂았다.
빠악!
꾸역꾸역 고개를 들던 베어울프의 최후였다.
“푸후우우...”
짧게 숨을 고른 사내가 그대로 베어울프의 심장을 헤집더니 놈의 사냥의 핵심을 뽑아냈다.
그 순간 분위기가 일변했다.
‘마정석!’
맥스맨들은 더 이상 임씨 남매를 신경 쓰지 않았다. 저 찬란한 광채를 본 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본분을 떠올렸다.
약탈자!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그들은 마루를 중심으로 포위망을 다시 형성했고, 그 즈음 임씨 남매도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할까?’
눈짓과 수화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는 가운데, 일단 지켜보자는 걸로 결론이 내려졌다. 발을 빼려다가 저들 관심을 다시 모을 수 있기에, 지금은 잠시 숨고르기를 할 때였다.
“하...이것 봐라?”
아이언슈트가 주변의 분위기를 살피고는 실소를 터트리는 가운데, 맥스맨들 중 한명이 물었다.
“혼자 왔니?”
“어. 솔로야.”
대답과 동시에 아이언슈트가 움직였다.
[태세전환 - 울프]
< #11. 솔로.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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