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머니? >
키홀 클랜!
Max-Man들은 유럽 방면에서 넘어온 헌터들로써, 그들은 이면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범법집단이기도 했다.
그들이 쓴 가면은 일부 의도가 섞인 것으로써, 행적이 발각되더라도 미국 측 클랜의 행위로 넘기려는 위장이었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의외로 이런 자잘한 부분에서 시야가 분산되다 보니, 자주 사용되는 교란술이기도 했다.
카일리 바이프!
클랜에서 한국행을 맡긴 팀장으로써, 무전 한 번으로 임씨 남매의 도주로를 정확히 짚어내고, 차단까지 한 것 역시 그의 활약상이었다.
그는 갑작스레 등장한 불청객, 아이언슈트를 매서운 눈으로 관찰 중이었다. 팀장다운 안목이 빛을 발하며 하나 둘 핵심 정보들을 짚어나갔다.
‘베어울프가 비록 동물형이지만, 상위종 몬스터지. 그런 걸 상대하면서 멀쩡할 리가 없어.’
뜬금없이 베어울프가 나온 부분은 여전히 미스터리지만, 당장은 알 길이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 그렇지. 상처가 제법 보이네.’
실제로 불청객의 옷가지 중에 멀쩡한 부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강철 같은 근육이 더욱 도드라지며, 묘한 위압감을 추가했지만, 포장지에 시선을 뺏길 생각은 없었다. 그 사이사이 드러난 상처들에 집중했다.
‘저 놈도 멀쩡할 리가 없지.’
베어울프를 잡은 시점에서 상대가 A급 헌터라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랭커라면 또 모를까.’
이 역시 우스운 생각이었다. 정말 랭커라면 저런 몰골은 말이 안 됐다. 베어울프가 비록 상위종이라지만 레이드 클레스에는 끼지 못하는 녀석이었다.
‘겨우 베어울프에 저만한 부상을 입는다고?’
웃기는 이야기였다.
좀 전에 봤던 마정석이 잔상처럼 남아 눈앞을 아른거렸다.
츄릅...
입술을 핥으며 재차 상대를 관찰했다.
‘남의 작업장에 들어왔으면, 자릿세를 내야겠지.’
팀원들은 죄다 B급이고, 그의 경우에는 A급 헌터였다. 게다가 이 주변은 그들이 작업 중인 공간이지 않던가. 사방으로 퍼져있는 클랜원도 더 남아있었다.
츄릅!
어찌나 핥았던지, 입술이 번들거렸다.
**
아이언슈트!
사실, 그 정체는 마루였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위장을 위해 가면을 쓴 건데, 신체적인 부분에서도 변화를 준 상태였다.
[펌핑]
몽크가 99레벨이 되면 배울 수 있는 방어계열 스킬로써, 근육을 한껏 부풀리는 게 특징이었다.
이를 통해 일종의 근육갑옷을 두른 채, 탱킹 능력을 한껏 키우는 것이다. 덕분에 이젠 장비에 뽕을 넣고 다닐 필요도 없었다.
‘이 정도면, 라시아나 수미도 못 알아보겠지?’
그만한 자신감을 가져도 될 만큼, 체형에 확실한 변화를 주는 스킬이었다.
‘몽크 첫 출전인가.’
작정하고 능력발휘를 할 생각이었다.
100레벨을 찍고 뜻밖의 정체기에 머물면서도, 꾸준히 스킬 구현을 진행한 덕분일까?
지금에 이르러선 게임 속 장비를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비슷한 스팩을 맞춘 상태였다. 그걸 전부 동원해가며, 현실 속 그의 위치를 제대로 알아볼 생각이었다.
‘몽크스킬 한정이지만.’
스토킬 스킬은 여전히 미구현 상태로써, 비주류 3대장 센터의 전용스킬 답게, 숙련도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은 몽크로써 전투에 임할 생각이니 문제될 건 없었다. 그렇게 마수지대에 뛰어드는데, 거기서 스킬 하나를 앞세웠다.
[맵핑]
오감으로 받아들인 정보를 좀 더 체계적으로 분류한 뒤, 간이 지도를 만들어주는 스킬이었다.
발동 후 두 눈을 감으면, 어둠 속에 잔상처럼 지도가 떠오르는데, 시전자의 오감이 얼마나 예민하냐에 따라, 지도의 완성도 역시 올라가기 마련이었다.
눈치코치의 완성과 탐색 스킬의 연계까지 더해지니, 제법 그럴싸한 맵핑을 그려낼 수 있었다. 이를 살펴가며 사냥을 한 결과, 몬스터 수색이 수월해지며 쉼 없는 사냥이 가능해졌다.
베어울프 역시 그렇게 찾아낸 녀석이었다.
언뜻, 곰과 늑대를 합쳐놓은 외형을 지닌 동물형 몬스터로써, 그 행동패턴은 곰에 더 가까웠는데, 그런 이유로 지금은 겨울잠에 젖어있는 시기였다.
‘PP 스킬 구현이 이런 점은 좋네.’
홀로 탐색과 감지가 가능하며, 주변 지형을 통한 생태계까지 그려낼 수 있다면?
게임에서나 할 수 있는 사냥법을 현실에서도 그대로 따라할 수 있게 된다.
베어울프를 깨운 것 역시 PP 특유의 사냥법이었다.
‘정식으로 붙었으면, 오우거만큼 어려운 놈이지만.’
자다 깬 놈들은 그냥 까다로운 수준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비몽사몽 정신이 혼미한 걸 사정없이 두드려 패면 됐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스라는 게 있어서, 잠결에도 베어울프의 저항은 거셌고, 그 덕분에 제법 요란한 공방을 이어나가며, 주변 가득 소란을 떨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황당한 맥스맨 밭에 떨어져버린 것이다.
[태세전환 - 울프]
‘선빵필승!’
마루는 필승 전략을 되새기며 뛰어들었다.
**
임씨 남매는 감탄을 거듭했다.
“와...저걸 저렇게 피해가네.”
“급제동 미쳤다. 저기서 90도로 꺾어친다고?”
“미쳤다!”
“미쳤어!”
갑작스레 등장한 아이언슈트의 전투는 환상적이란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그들 남매는 근접전을 주로 하는 까닭에, 더더욱 아이언슈트의 전투가 인상적으로 와 닿을 수밖에 없었다.
임수현의 경우에는 딜러형 탱커였고, 임지현은 탱커형 딜러였다.
미묘한 차이로써, 방어력과 공격력의 우선순위를 두고서 기준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 때문에 임지현이 좀 더 날렵했고, 임수현이 그녀를 먼저 보내려 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어우, 지금 공격 흘려서 한 번에 둘을 친 거야?”
“흘린 걸로 옆에 놈 치고, 카운터로 공격한 놈 맥이고, 레알 크레이지네!”
임지현과 임수현의 감탄이 연달아 이어졌다.
그들 남매에게도 맥스맨들이 한 명씩 붙어있었지만, 서로 대치만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각자가 서로를 알아볼만한 실력이 있어, 맥스맨들도 선뜻 공세를 취하지 못했다.
자칫, 임씨 남매가 끼어들면서, 3대 9의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1대 7과 3대 9는 또 이야기가 다르기에, 맥스맨들 입장에선 대치만 하며 남매의 개입을 방해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만큼 아이언슈트가 위협적이었다.
그 덕분에 임씨 남매는 전장에서 한 걸음 물러난 채, 뜻밖의 중계석까지 차려버렸다.
물론, 2명의 맥스맨을 경계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아서, 언제든 틈만 보인다면 기습할 수 있도록, 남매끼리 수시로 눈짓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중계실황은 저들의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한 작업이기도 했다. 목소리를 높이는 와중에도 손짓은 은밀하게 수화를 나누며, 파고들 타이밍을 재는 것이다.
‘지금 갈까?’
‘아직. 기다려. 누님.’
그러는 와중에도 아이언슈트의 활약은 멈출 줄을 몰랐다.
파파파파파팡!
순간 가속과 함께 아이언슈트의 손에서 레이저가 쏘아졌다. 아니, 그렇게 보일 정도로 빠른 연격이 퍼부어진 것이다.
탱커를 향해 펼쳐지는 연타였는데, 언뜻 가벼워 보이는 공격이었지만, 결과물은 너무도 무거웠다.
정확히 급소만 노린 것이다.
“꺼억...”
결국,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탱커의 가드가 활짝 열리더니, 그 사이로 시원한 스트레이트가 파고들었다.
쿠웅...
제대로 들어간 일격 앞에 탱커의 무릎이 꺾였다. 물론, 맥스맨들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빠악! 빠바바박!
각자가 노련한 헌터라는 걸 보여주듯, 등 뒤와 좌우 옆 공간을 제대로 노릴 줄 알았는데, 그렇게 공격이 들어가도 반응이 허무했다.
“맷집 뭔데?”
“딜러야 탱커야?”
“미쳤네!”
“미쳤다!”
임씨 남매의 감탄은 멈출 줄을 몰랐다.
아이언슈트는 그 갑옷 같은 근육이 허세가 아니라는 듯, 단단한 몸뚱이로 그 모든 공격들을 받아내고 있었다.
“각도 봐, 완전 예술이다. 예술이야!”
“저 와중에 살짝씩 몸 틀어서 정타는 전부 뺐어.”
피하고 때리고, 흘리고 때리고, 맞고 때리고, 근접전의 스페셜리스트가 그들 눈앞에 있었다.
아이언슈트는 최대한 타격기로 상대를 하려 했고, 맥스맨들은 관절기로 들어가거나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잡고 잡히는 관계가 되는 순간, 다수가 유리하기에 자연히 발생하는 흐름이었다.
“배우고 싶다.”
“완전, 교본인데.”
임씨 남매의 탄성에 몽롱함이 젖어들 즈음, 그들을 경계하던 2명의 맥스맨들이 틈을 보였다.
동료들이 줄줄이 당하는 모습에 당혹감과 조급증이 인 듯, 시선이 분산되고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가자!’
남매의 눈빛이 교환되고, 동시에 달려들었다.
[병영]
[탈영]
임지현과 임수현 남매가 동시에 스킬을 발동시켰다. 각기 그림자를 접촉시켜 병마를 심고, 기운을 탈취하는 스킬이었다.
“헉!”
대치 중이던 맥스맨 2인이 화들짝 놀라며 물러나는데, 그 시점에서 이미 한발 늦은 감이 있었다.
‘잡았다!’
그림자가 짙게 겹쳐들었다.
이란성 쌍둥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일란성이 아닐까 싶을 만큼, 똑 닮은 미소를 지으며 남매의 헌팅이 시작됐다.
**
저 한편에서 새로운 전투가 시작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지금껏 관전만 하던 카일리가 본격적인 개입을 시작한 까닭이었다.
번쩍!
섬뜩한 검광이 마루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이는 실로 절묘한 타이밍으로써, 막 크게 한 방을 내지른 탓인지, 마루의 자세가 일부 흐트러진 상황을 노린 것이다.
팀원들을 미끼로 던져가며 잡아낸 공수전환의 포인트였다.
‘치고 빠지는 순간, 잡았다!’
입 꼬리를 올리던 카일리의 동공이 일순 흔들렸다. 아이언슈트 가면 너머로 휘어진 눈매가 보였다. 웃고 있는 것이다.
그 눈이 말하고 있었다.
‘잡았다?’
공수전환의 포인트?
연격의 전환점이었다.
파앙...
검광을 가르는 권격이 뻗어졌다.
‘쳇!’
마루가 아쉬움에 혀를 찼다. 아슬아슬하게 놓친 것이다. 하지만 최초의 목적은 이뤄냈기에, 일단 그걸로 만족했다.
‘설계는 괜찮았는데. 마무리가 아쉽네.’
틈을 보인 덕분일까?
저 후방에서 뒷짐만 진 채, 뱀의 눈초리로 그를 훑어대던 관전자를 끌어들인 것이다. 한 번 발을 들인 이상, 이제와 발을 빼기란 늦었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도 없었다.
이를 아는 것인지, 카일리의 표정이 한껏 굳어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놈...설마, 공수전환의 타이밍을 일부러 노출시킨 건가?’
카일리는 등허리가 쭈뼛 서는 걸 느꼈다. 상대가 의도적으로 원패턴을 입력시켰음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그게 의미하는 건 실로 다양했다.
아이언슈트가 보이는 것 이상의 실력자라는 것, 그리고 패턴의 수가 실로 다양할 것이라는 점 등등, 여러모로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젠장! 너무 깊이 들어와 버렸어.’
생각한 것보다 한 발 이상 깊었는데, 이는 그가 들어왔다기 보다 마루가 다가간 영향이 컸다.
‘발을 빼야 되는데.’
이처럼 치열한 전장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일단 한 발 물러나고 싶었지만, 개입 시기가 좋지 못했다.
그의 손발이 되어줘야 할 팀원들은 대부분 넉다운 상태였다. 1대 1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저들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는 뜻이고, 이는 즉 집요하게 달라붙는 마루의 공세를 회피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필이면 간격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
‘젠장!’
당혹스런 와중에도 A급 헌터의 경력이 어딜 가는 건 아닌지, 적절히 상황에 대처하며 전투를 이어나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묘한 어긋남이 그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손발을 섞다보면 자연히 상대에게 적응하기 마련이건만, 어찌된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난해해 지기만 할 뿐이었다.
‘패턴 때문인가?’
그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힘과 속도!’
전체적인 기본 능력치가 매 순간 조금씩 높아지고 있던 것이다. 애초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어떻게?’
포인트를 알게 되자, 더더욱 상대방의 몸놀림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꾸준히 더 빠르고 강해지고 있어서, 더욱 큰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이런, 미친!’
당연히 그만큼 손발이 꼬일 수밖에 없었고, 제 실책을 깨달았을 땐, 이미 흐름은 마루의 것이 되어있었다.
빠악!
시원한 스트레이트가 안면을 짓이기며 들어왔다.
‘아...’
겨우 한 방이었건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무릎이 풀렸다.
이럴 땐 차라리 버티기보단 넘어간 뒤, 바닥을 뒹굴며 자세를 가다듬는 게 나았다. 그리 생각하며 일단 드러누웠다.
하지만 그게 패착이었다.
덥썩!
얼씨구나 엉겨 붙는 아이언슈트.
그는 주짓수 블랙 벨트였다.
**
임씨 남매의 누나, 임지현의 스킬인 병영은 일종의 저주계열 스킬이었다.
상대 그림자와 접촉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특수 저주인 탓에, 근접박투가 기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스킬의 기본적인 패시브 효과인지, 접촉량에 따라서 육신의 강화까지 이뤄지니, 그녀가 딜탱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동생 임수현의 스킬 탈영은 그림자 접촉을 통해, 상대 기운을 탈취하고 전장의 지속력을 높이는데, 그런 이유로 방어형 탱커라기 보단 유지형 탱커로 분류됐다.
이래저래 남매 모두 몸놀림을 중요시했고, 그 때문에 마루에게 감탄을 거듭한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독특한 스킬 특성으로 인해, 남매의 전투는 항상 장기전을 염두에 둔 채 이어지고는 했다.
이번에도 제법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는데, 거기에는 메인 전장에 신경이 쏠린 탓도 클 터였다.
그 결과 남매가 전투를 끝냈을 즈음, 어느새 메인이벤트도 막을 내리고 있었다. 절묘하게 두 전장의 종막이 함께 내려간 것이다.
“결국, 혼자서 다 뚜까 팼어.”
“오지고 지렸다.”
남매는 그리 말하며, 아이언슈트의 전장을 바라봤다. 모두가 누운 가운데, 홀로 서서 전장을 내려다보는 모습이란, 그야말로 전율 그 자체였다.
“멋져!”
합창하듯 입을 모은 남매가 슬금슬금 아이언슈트를 향해 다가가는데, 그 순간 아이언슈트가 대뜸 맥스맨들을 뒤집더니 뒤적이는 것이 아닌가.
‘저거, 설마?’
‘아니지?’
‘맞는 것 같은데.’
아이언슈트의 손 안 가득 들려나오는 금품들을 보라, 누가 봐도 도적질이었다. 순식간에 맥스맨을 털어먹은 그가 남매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전우로써 악수라도 하자는 것일까?
“Money.”
그럴 리가 없었다.
대놓고 금품을 요구하는 모습에 벙찌는 것도 잠시였다. 활짝 펼쳐졌던 손을 꽈악 움켜쥐며, 주먹을 내미는 게 보였다.
“Money!”
목소리 톤도 한층 무거워졌다.
아니, 무서워졌다.
< #12. 머니?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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